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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찬씨의 종횡무진 활약을 지켜보다가...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제기하는 분에 대하여

 

최근 자신의 블로그(http://blog.jinbo.net/chan/110)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상황과 관련한 글을 올린 사람은 오수영의 남편 김진찬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한 번쯤 사실을 ‘마사지’하여 자신 또는 자신의 편에 유리하도록 글을 쓰는 것 까지는 모른 척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말뿐이고 단지 글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반복해서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논점을 흐리고 참주선동을 일삼는다면, 이건 좀 다르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 방식은 당사자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둘 모두 여의치 않거나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할 정도가 아닐 경우 아주 짧고 명확하게 그를(또는 그 글을, 그 말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하나 내놓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을 택했고 그것이 이 글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가르침에 따라 그의 “운동”이 어떠했는지 말하려고 합니다.

 

김진찬씨는 지난 2월 26일, ‘재능지부 투쟁 1896일에 부쳐...’라는 글 마지막에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 김진찬씨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예의 그 “운동”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김진찬씨는 한솔교육 학습지교사로 근무하다 2007년 3월 해고가 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솔교육은 수사기관에 각종 고소고발을 해댔고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했습니다. 법원은 당연히 한솔교육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고, 한솔교육 본사 앞에 가처분 대상자가 나타나면 이행강제금으로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법원은 가처분 서류를 받지 않은 조합원에게는 가처분 결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일단 가처분 대상자인 조합원들을 한솔교육 본사 건물 주변에서 철수시켰고 해고당사자였던 김진찬씨에 대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이때부터 노동조합이 24시간 농성장으로 사용하던 승합차의 농성에서 김진찬씨는 빠지게 됩니다. 특히 당시 밤 농성에 대해 여성조합원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성조합원들 4명이 돌아가면서 밤 농성을 전담했습니다.(3명은 주중 이틀씩, 1명은 주말 하루) 그 4명 가운데 1명은 월급이 삼사십만 원에 불과한 가운데 병든 아버지까지 간병해야 했습니다. 다른 2명은 모두 막 돌이 지난 아이의 아빠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1명은 밤 농성을 위해 서산에서 올라와야 했습니다.(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때에는 다른 남성 조합원이 밤 농성을 대신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앞의 3명은 아버지 상태가 굉장히 나빠지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파 응급실에 가는 경우가 생겨도 대체할 농성자가 없었기에 서로 대신 농성을 하고 다음에 대신 농성을 해 준 동료의 당번일 날 이를 갚는 방식으로 단 한 번의 펑크도 없이 투쟁이 끝날 때까지 밤 농성을 진행했습니다.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을 마무리하지 못한 2007년 12월, 김진찬씨가 자신의 글에서 “노사협조적 경향”이라 지칭한 유명자와 유득규가 직접 찾아와 천막농성투쟁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미 이현숙이 노동조합이 수용해서는 안 되는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받아온 2007년 4월부터 그에 맞서 함께 싸웠고 유명자를 지부장으로 오수영을 사무국장으로 내세운 때이기는 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때 김진찬을 포함한 학습지노조 내의 자칭 “투쟁파” 몇몇이 모여 이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진찬과 황창훈이 이 논의와는 별 상관없는 감정대립으로 의자를 집어던지면서까지 싸운 그 날, 황창훈은 형이 이민 가 있는 말레이시아로 갈 것이라고 했고, 김진찬은 “깨끗이 패배를 선언”하고 퇴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때 김진찬씨가 그렇게 강조하는 “민주적인 토론”과 무관하게 강종숙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천막농성투쟁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드디어 2008년 4월 22일, 406일간의 농성투쟁 끝에 학습지노조와 한솔교육이 원직복직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그 합의서에 “6개월 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여 자질을 확인한 뒤 재계약을 체결한다.”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학습지노조 최초의 원직복직 사례였던 (주)대교와의 합의서보다 분명 내용상 부족한 합의서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와 교섭을 하면서 원직복직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었기에 잠정합의를 하고 중앙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앙위원회 자리에 김진찬씨도 참석했고 앞장서서 승인을 주장했습니다. 결과는 “많이 아쉽지만” 만장일치의 승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진찬씨는 ‘승리보고대회’를 하는 당일 아침에 문서를 하나 작성해 오더니 배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문서의 내용은, 합의해서는 안 되는 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투쟁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6개월 간 별도의 업무를 부여”받기 위해 당시 학습지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강종숙과 김진찬이 한솔교육의 자회사인 (주)에듀베이스에 함께 갔습니다. 에듀베이스 대표이사는 첫마디부터 “나와 우리 회사는 학습지노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앞으로는 노조가 아니라 김진찬씨와만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진찬씨가 대뜸 “그렇게 하시죠.”라고 했고 그 이후로 김진찬씨로부터 제대로 된 보고를 받아본 바가 없습니다. 약속한 6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한솔교육이 김진찬씨를 원직복직 시킬 의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갔고 이 때 김진찬씨와 에듀베이스 사이의 근로계약서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계약서는 기한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노동자의 근로계약서에 준했고 월급도 한솔교육 학습지교사로 일할 때보다 월등히 많은, 200만원이 넘는 액수였습니다.

 

김진찬씨는 다시 한솔교육을 상대로 싸우는 것에 대하여 주저하고 회피했습니다. 당시 김진찬씨는 모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당연히 그 조직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은 끝에 어쩔 수 없이 ‘투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투쟁기간에 에듀베이스 근무 시 알게 된 팀장으로부터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하고 선전전을 빼먹어가며 ‘투쟁’했습니다. 그러다 “명예복직”을 주장합니다. 김진찬씨가 말한 명예복직이란, 자신이 회사에 복직하지 않는다라고 약속하고 대신 합의서에는 원직복직이라 명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일 밤 중앙위원회를 소집하고 이를 보고한 후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강종숙이 일일이 여러 조직들을 찾아다니며 “부부가 해고자라 생계도 어렵고 해서 일단 투쟁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취지로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김진찬씨는 이 일로 조직에서도 제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이 한창이던 2011년, 김진찬씨와 오수영의 관계가 심각한 상태까지 치달았습니다. 김진찬씨는 오수영이 가정에 소흘하고 날마다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계속 문제제기를 했다고 합니다. 오수영은 해고당사자이자 재능교육지부의 임원이었습니다. 김진찬씨는 자신의 복직투쟁처럼 오수영도 다른 사람들이 투쟁을 대신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을까요? 그래서 해고당사자이지만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을까요? 그나마 오수영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고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해고자 가운데 유일하게 고정 철농요일이 있었습니다.

 

한솔교육 해고자복직투쟁 과정에서 연대동지 3명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전과자가 됐습니다. 학습지노조 조합원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명은 3심까지 모두 종료됐고 집행유예기간도 끝났습니다. 나머지 6명 중 4명이 대법원에서 아직도 이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4명 가운데 2명은 강종숙과 황창훈입니다. 이 둘은 재능교육지부 투쟁과정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기소가 되어 재판 진행 중에 있으며, 강종숙은 현재 1건의 징역형 확정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있고 2건은 대법원 선고기일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1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황창훈도 현재 1건의 징역형 확정으로 집행유예 기간에 있고 1건은 대법원 선고기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2명은 학습지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조합비를 내며 조합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종숙과 황창훈의 재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함께 상고했습니다. 남은 2명 중 1명은 학습지노조 전 위원장이지만 노동조합을 탈퇴했고 상고도 포기했습니다. 마지막 1명은 바로 김진찬씨입니다. 김진찬씨도 오래 전 노동조합을 탈퇴했고 상고도 포기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김진찬씨의 “운동”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진찬씨에게 “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거론하기에 앞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덕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볼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의 진위 여부를 김진찬씨에게 묻기를 바랍니다. 김진찬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진위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에게 꼼꼼하게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게 확인을 요청하신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서류를 공개할 의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능교육지부의 현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계시는 분들, 현 상황에 대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봉변’을 당하신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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