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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경제가 망가진 이유

보리스 카갈리츠키(Boris Kagarlitsky)

원 제목 = 미국이여, 우리가 문제를 스스로 풀게 놔두라

 

러시아의 좌파 지식인 보리스 카갈리츠키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엉터리 같은 개입이 러시아를 위기로 몰아갔고 민영화를 마구잡이로 실시해 러시아가 제3 세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합니다. 민영화를 하지 않은 벨로루쉬와 러시아를 비교해 민영화의 문제를 보여줍니다. 1998년 9월20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프레드 하이아트의 칼럼에 대해 반박한 글인데, 신문이 실어주지 않았답니다. 이정훈님께서 번역하셨습니다.

 


미국이여, 우리가 문제를 스스로 풀게 놔두라.

(America, Please Leave Us Alone To Solve Our Problems)

 

보리스 카갈리츠키/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비교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프레드 하이아트의 "누가 러시아를 잃었는나?"에 대한 카갈리츠키의 반박문. 신문은 싣기를 거부했다.]

 


 

나는 프레드 하이아트(Fred Hiatt)의 "누가 러시아를 잃었는가"(워싱턴 포스트 98년 9월20일치)를 읽고 당혹스러웠다. 하이아트씨는 국제통화기금과 G7의 대러시아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만약 한 정책을 그 결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뭘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하이아트씨에 따르면, "개혁" 이전의 러시아는 우주항공과 핵분야에서 선진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외 모든 것은 거의 제3세계 수준과 동일했다. 즉 대부분 공장은 투입한 원자재보다도 가치가 못한 상품을 생산하고, 많은 도시는 영원히 국가의 수용소로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외떨어지고 얼어붙은 곳에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실제로 러시아가 제3세계 국가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소비에트 산업은 확실히 비효율적이고 기술적인 근대화가 시급했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도 러시아는 생산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개혁론자"들이 집권한 직후부터 러시아는 원자재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됐다. 사유화 이후 산업 수출이 축소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 경쟁력 또는 국내 시장의 경쟁력 또한 쇠퇴하였다. 러시아 경제는 기술적으로 훨씬 더 후퇴하였고 과학연구 집단은 혼란에 빠졌다. 지금 어떤 것이라도 수출할 여력이 남아있는 러시아 회사는 사유화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하이아트씨는 1991년 이전 러시아인의 교육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모르거나 모른 척한다. 그것은 우리의 주요 재산이며 근대 기술을 흡수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 러시아는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미국에 전문가를 "수출하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한" 사람들은 거만한 IMF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나중에 밝혀졌듯이 자금시장의 실제 운용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야만인"인 러시아인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러시아 인구의 교육수준은 10년전보다도 낮고 나라를 다시 세울 기회 역시 마찬가지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무너졌고, 평균 수명은 쇠퇴했으며, 유아 사망률은 증가했다. 우리는 수용소에 갖힌 이들을 학살한 스탈린을 비난한다. "자유화"된 경제체제 아래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은 어떤가? "개혁" 과정에서 보건체계가 무너져 죽은 수십만명은 또 어떤가? 적어도 공산주의자들은 후루스쵸프(Khruschev)와 고르바쵸프 정권아래 그들의 죄를 인정한다. 국제통화기금은 절대 그들이 야기한 파괴를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 국제통화기금 고문들이 정책을 강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들을 보자. 그들 중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벨로루쉬이다. 중국은 지난 20년동안 세계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나라의 하나이다. 벨로루쉬는 1997년에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97년은 러시아의 성장률이 0%로 1989년이래 가장 좋은 해였다.) 벨로루쉬 산업은 과거 러시아와 똑같았지만 외화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석유나 가스는 없다. 벨로루쉬는 산업을 사유화하는 대신 재조정하여 근대화시켰다. 지금 그들은 과거 소련이 산업생산품을 수출했던 바로 그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시장들을 잃었다. 벨로루쉬는 러시아에도 수출하고 있으며 서양 제품들과 성공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물론 벨로루쉬는 경찰국가이지 민주국가는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의 정치체제가 러시아와 똑같다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경찰과 관료가 덜 부패했다는 것이다. "벨로루쉬 마피아"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부패가 "개혁"의 실패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그것이 빠른 사유화 과정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소련체제에 물론 많은 부패가 있었지만 "자유화"과정에서 배가되었다.

 

러시아에 실제 일어난 것은 단순하다. 수많은 문제가 있었고 소련체제는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개혁론자들"은 실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른바 개혁론자와 서구의 친구들은 절대로 러시아를 재건하거나 산업 실적을 향상시키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은 민주주의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소련을 약탈하는 기회로 소련체제의 위기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완전한 성공이었다. "새로운 러시아인"인만 자신들의 모국을 약탈한 것이 이나라 미국 기업들도 그랬다. 그런 "우호관계"로 인해 10년후에 좀더 많은 러시아인들이 점점 반미주의자가 되더라도 놀라지마라. (반미주의는 "냉전시기"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제발 우리를 그냥 놔둬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간섭하지 말라. 그리고 폭력배 지원을 중지하라. 그러면 조만간 우리는 이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나라를 재건설할수 있을 것이다.

 


번역: 이정훈
2004/07/19 17:49 2004/07/1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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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빌리 2000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원 제목 = Jubilee 2000

 

`주빌리 2000'은 2000년을 기독교적 희년(주빌리)으로 삼아 제3 세계의 외채를 탕감해주자는 운동입니다. 이를 계기로 촘스키 교수가 제3 세계에 자금을 빌려준 서방 금융계의 무책임함, 외채에 짓눌린 제3 세계에서 자본이 해외로 도피하는 현상, 외채 문제 밑에 깔린 자본의 논리 등에 대해 썼습니다. 이정훈님께서 번역하셨습니다.



주빌리(Jubilee) 2000

노엄 촘스키


 

주빌리(희년) 2000 부채 무효화 요구는 환영할 만한 것이고 지지할만한 것이지만, 검증해볼 여지가 있다.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부담하게 마련이다. 역사 기록은, 힘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명할 때 추정할 수 있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자유 기업 자본주의"라고 잘못 이름 붙여진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비용이 그렇듯 위험도 사회화하는 경향이 있다.

 

보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 책임은 빌리고 빌려준 사람에게 있다는 오래전 유행하던 방식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남미 농부들(campesino), 조립공장 노동자 또는 빈민지역 거주자가 돈을 빌린 것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는 이런 차관으로 얻은 것이 거의 없으며, 실로 차관의 여파로 지독하게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방 세계의 납세자들과 함께 부채 상환의 짐을 져야 한다. - 악성부채의 책임이 있는 은행이나, 부를 외국으로 빼돌리고 자기 나라의 자산을 인수하면서 부를 늘린 경제, 군사 엘리트들이 아니라.

 

1982년부터 위기수준에 이른 남미 부채는, 국외로 빠져나갔던 자본이 돌아오면서 급격하게 감소될 수 있었다. -- 어떤 경우에는 극복되기도 했다. 물론 비밀스럽고 가끔은 불법적인 방식때문에 모든 수치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세계은행은 베네주엘라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1987년의 경우 대외부채보다 40%가량 많았다고 추정했다. `비즈니스위크'지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주요 8개 채권자에게 빌린 돈의 70%가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추정했다. 그것은 이후 1994년 멕시코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지만, 경제붕괴 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의 인도네시아 "구제 조처"는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 규모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한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는 약 800억달러의 외국 부채 중 95%는 50명의 개인이 갖고 있다고 추정했다. 한 아시아 학자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에 쓴 글에서 표현했듯 "교활한 도시에 세워진 스탈린주의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부채 때문에 고생하는 2억 국민이 갖고 있는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채가 많은 41개 국가의 부채는 지난 몇 년동안 미국의 저축 및 대부기관의 긴급구제를 받은 것이다. 이것은 위험과 비용이 사회화되는 대부분의 경우 중 하나이다. 이는 레이건주의적인 "보수주의자"들이 가속화시켰는데, 여기에는 부채와 (국내총생산과 관련된) 정부 지출이 따른다. 남미 국가 재산 가운데 외국인 소유분은 저축 및 대부기관의 긴급구제 금융 액수보다 25%가량 많으며 1990년까지 2500억에 가까운 액수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화되며 이를 깨고 새로운 기반이 만들어지지 못한다. 최근 국제관계 연구 회의에서는 "1890년대 미국 철도산업의 외국채권 부도액과 현재 개발도상국 부채의 규모가 비슷하다"라고 지적됐다.; 영국과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930년대 미국에 대한 부채를 부도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것에 따르면 워싱턴은 이를 "탕감해줬다.(또는 잊어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미국으로 상당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두쪽이 협조해 통제했다면 자금이 전후 재건설을 위해 국내에 남아있었겠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부유한 유럽인들이 자금을 뉴욕 소재 은행들에 입금하길 선호했다. 그 때문에 유럽 재건 비용은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떠넘겨졌다. 그 장치가 이름하여 "마셜플랜"이다. 마셜플랜은 주요 경제학자들이 예상했고 실제로 맞아떨어진 "예민한 해외도피 자본의 대량 이동"의 빈자리를 매웠다.

 

이와 맥이 닿는 다른 선례도 있다. 미국이 100년전에 쿠바를 점령할 때 부채가 "동의 없이 무력에 의해 쿠바 국민들에게 강요됐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쿠바가 스페인에 진 부채를 무효화시켰다. 후에 법학자들은 이런 부채를 "증오스런 부채"라고 불렀다. 이는 "국가의 의무가 아니라" "빚을 발생시킨 권력의 빚"이며, "민중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저지른" 채권자는 그 희생자(민중)에게 상환을 기대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전직 독재자가 캐나다 로열은행에게 진 부채를 무효화하는 코스타리카의 법률에 대한 영국의 문제제기를 기각하면서, 이 문제의 중재자 -- 미 대법원 판사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 는 이 은행이 전혀 "합법적인 용도"가 아닌 데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상환 요구는 "반드시 좌절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논리는 오늘날의 부채 문제 대부분에 쉽사리 적용된다; 어떤 합법적 또는 도덕적 근거가 없는 "증오스런 부채"가 민중의 동의없이 부담지워졌고 종종 그들을 탄압하는 데 쓰이며, 권력자들만 살찌운 것이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은행대출이 두배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는 "1973년 말 기름 구입비용이 크게 늘었는데도 다음 두해동안 대출이 안정화되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했다. 개발기구는 이어 "가장 결정적이며 극적인 증가는 1972-73년 -- 오일쇼크 이전 -- 주요상품 가격 급등과 관련되어있다"고 덧붙였다. 한 예는 미국 밀 수출가격이 세배가 오른 것이다. 이후 은행들이 기름으로 번 돈(petrodollar)을 돌리면서 대출은 증가했다. 기름 가격의 (일시적인) 증가는 중동 기름이 "소수 기름회사를 위해서가 아닌 전 인류를 위해 국제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진지한 요구가 제기되도록 만들었다. (월터 라케르, Walter Laqueur). 하지만 미국 농업의 국제화에 대한 제안은 없었다. 미국 농업은 천연적 혜택과 오랫동안의 공공 분야 연구개발 덕분에 높은 생산성을 지니게 됐다. 물론 농지 개발 조처가 여기에 기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생산성이 시장의 기적 덕분은 아니다.

 

은행들은 돈을 빌려주는 데 열심이었고 전망을 낙관했다. "가장 위대한 재순환자"라고 알려진 시티은행 이사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은 1982년 재앙 하루전, 남미에 대한 대출에 아무 위험이 없어, 상업 은행들이 안전하게 제3세계 대부를 (자산 비중으로) 3배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재앙이 일어난 뒤 시티은행은 "우리는 비정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았다고 느낀다"고 선언했지만 브라질의 은행 빚은 이 때까지 4년만에 두배로 늘었다. 시티은행만 해도 브라질에 자본금 전체보다 더 많은 자금을 빌려줬다. 리스턴이 주동해 만들어낸 국제적인 대출 붐이 1986년에 사그러진 이후 그는 "지난 12년동안 일어난 일은 우리(은행가)가 일(위험평가)을 합리적으로 잘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썼다; 만약 위험의 사회화를 지적한다면 이는 사실이다. 이 사회화란 정부를 경멸하고 자유시장을 추종하는 것으로 유명한 리스턴과 다른 이들이 환영하는 것이다.

 

국제 금융기구 역시 (빈민의) 재앙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70년대에 세계은행은 활발하게 대출을 장려했다.: 1978년 은행은 "부채를 유지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에는 어떠한 일반적인 문제도 없다"라고 권위있게 선언했다. 1982년 멕시코 위기 몇주 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 은행의 합동 출판물은 "생산성을 증가시킬수 있도록 도와주는 추가대출의 여지가 아직 상당하다"고 말했다. -- 예를 들면, 소용없는 멕시코 소재 시카르차(Sicartsa) 제철 공장이 그렇다. 이 공장은 대처주의자의 중상주의 정책 실천 차원에서 영국 납세자들이 자본을 대줬다.

 

기록은 현재까지 계속된다. 멕시코는 1994년 12월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자유시장의 승리이며 다른 나라의 모범이라고 칭송받았다. 이 때의 경제 위기는 대다수 멕시코인에게 "승리"의 시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줬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타이와 남한의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과 "부러울만한 회계 기록"을 칭송했다. 1997년 세계은행 연구보고서는 "가장 역동성있게 떠오르는 (자본) 시장" 곧 "한국, 말레이시아, 타이, 그리고 조금 뒤쪽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의 "특별하게 강력한" 발전을 지목했다. 세계은행의 지도를 받은 이들 모델의 자유시장 성공은 그들이 이룬 "깊이와 유동성" 및 기타 장점에서 "두드러진다." 그 보고서는 동화가 깨져버린 것과 똑같아 보였다.

 

예언 실패는 죄가 아니다. 사람들은 경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힘있는 집단의 손아귀에 있다는 이유로 잘못된 생각이 넘쳐난다"는 지적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실용적인 것에 대한 확신은,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의해 역시 강화된다. (세계은행 핵심 경제학자 조세프 스티그리츠, Joseph Stigitz) 게다가 이 종교는 광란적인데다 위선적이다. 수세기동안 "자유시장 이론"은 `양날의 칼'같았다.: 시장 규율은 빈자와 약자에게는 정밀했지만, 부자와 권력자는 할머니같은 국가의 날개 아래 피난처를 얻는다.

 

부채 위기의 또 다른 요인은 1970년대 초반부터 이루어진 금융 흐름의 자유화 조처였다. 전후 미국과 영국은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반면 무역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고안하였다. 자본 통제 결정은, 자금 자유화가 자유무역을 방해한다는 믿음과, 정부의 정책결정을 약화시키고 그래서 또 국민의 대단한 지지를 받은 복지국가를 위협한다는 명확한 이해, 이 두가지에 근거해 이뤄졌다. 길고도 험난한 투쟁 끝에 일구어낸 사회계약뿐만 아니라 실질 민주주의도 자본 흐름의 통제를 요구한다.

 

이 체제는 경제성장의 "황금시대"를 거치면서도 제자리를 유지했다. 이 체제를 분해한 것은 영국의 지원을 엎고 나중에는 다른 나라의 지지도 받아낸 닉슨 정부다. 이것은 그 뒤 자본 흐름의 거대한 폭발을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자본흐름의 구성도 급속도로 변했다. 1970년에는 거래의 90%가 실물 경제(무역과 장기 투자)와 관련있었고 나머지는 투기적이었다. 1995년에는 대략 95%가 투기적이며 이의 대부분은 단기 투자(80%가 상환기간이 1주일 안팎이다.)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결과는 일반적으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예상을 확인시킨다. 레이건주의자들이 주도한 사회 계약에 대한 심한 공격이 나타났으며 보호주의와 다른 시장 간섭이 늘었다. 시장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위기는 더 잦아졌다. 국제통화기금은 자신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뒤바꿨다.: 금융 유동성 억제를 돕는 기능에서 "신용사회 구축자"로서 유동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국제통화기금 경제학자 캐린 리사커스, Karin Lissakers)

 

당장 금융 자유화는 부유한 사회에 저성장과 저임금을 초래할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난 25년동안 성장률과 생산율은 상당히 저하되었다. 미국에서 상류 몇 퍼센트의 사람들은 상당히 번 반면 다수의 임금과 수입은 늘지않거나 줄었다. 지금 미국은 표준 사회지표(standard social indicators)로 보면 선진국가 중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영국이 근접하게 그 뒤를 따르며, 덜 극단적이지만 비슷한 결과가 경제개발협력기구 소속 국가 전체에서 나타난다.

 

결과는 제3세계에서 훨씬 더 냉혹했다. 동아시아 성장지역과 남미의 비교는 극명하다. 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며, 동아시아는 가장 평등한 축에 든다. 교육, 건강, 그리고 사회복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미의 수입품은 부유층의 소비를 위한 경향이 아주 강하다; 동아시아에서는 생산적인 투자를 위해 주로 수입을 했다. 남미와 달리 동아시아는 자본 해외도비를 통제했다. 브라질 경제학자 브레세르 페레이라(Bresser Pereira)가 지적하듯 남미 부유층은 사회적 의무를 면제받았다. 문제는 "국가가 부유층에 종속된 점"이다. 동아시아는 아주 다르다.

 

전반적으로 나쁜 실적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외인 남미 국가 칠레는 교훈적인 사례다. 피노체트 독재 아래 행해진 자유시장 실험은 1980년대 초반 철저하게 망가졌다. 그때부터 (국유화된 구리 회사를 포함한) 국가의 개입과 단기자본 흐름의 통제와 사회적 비용 확대가 결합하면서 경제는 회복되었다.

 

금융 자유화는 지금 아시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것은 심각한 시장 실패, 부패, 구조적 결함과 더불어서 최근 경제위기의 중요한 요소로 널리 인정된다.

 

부채는 단순한 경제적 사실이 아닌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구조이다. 게다가 오래전에 이해된 것처럼 자본 흐름의 자유화는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최근 정책 결정은 신비스러운 "경제법칙"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근거하여 힘있는 자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의 최악의 영향을 완화시킬수 있는 기술적 장치는 오래전에 제안되었지만 이윤추구자들의 힘에 의해 무시되었다. 그리고 국가적, 전세계적 체제를 디자인하는 기구들은 해체된 게 다행인 과거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합법성을 증명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번역: 이정훈

2004/07/19 17:45 2004/07/1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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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기업권력에 대한 지구적 저항을 말하다

<소셜리스트 워커> 2000년 5월호 노엄 촘스키 교수가 영국의 <소셜리스트 워커>와 한 인터뷰입니다. 촘스키는 시애틀에서 시작된 지구화 반대 운동, 세계화라고 불리는 기업 주도의 국제적 통합, 코소보전쟁, 20세기 초, 중반 제국주의의 유산인 제3세계의 비극, 미국의 외교정책 등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현재 세계질서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촘스키 교수의 혜안이 돋보입니다. 이 글은 류석원님께서 번역해주신 겁니다.



노엄 촘스키가 기업권력에 대한 지구적 저항을 말하다.

<사회주의 노동자>(Socialist Worker) 1696호 (2000년 5월 13일)

 


 

노엄 촘스키는 오늘날 미국의 저명한 저술가이자 반제국주의 활동가들 가운데 하나다. 그는 언론의 구실 및 코소보에서의 나토의 전쟁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글을 써왔다. 그는 점점 커지고 있는 반자본주의 정서에 대해 '사회주의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노(사회주의 노동자) : 세계무역기구에 대항한 시애틀의, 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맞선 워싱턴의 저항은 얼마나 중요했나?

 

촘스키 : 매우 중요했다. 나는 그와 같은 어떤 일도 떠올릴 수 없다. 그간 매우 많은 사람들 - 아마도 세계 인구의 대다수 - 에게 피해를 입혀온 기업 주도의 특정한 국제 통합 양식이며, 세계화라고 잘못 불리운 것에 대한 분명한 저항들이 오랫동안 있었다. 이것(세계화)은 특정한 사안들에 대한 지역적 저항들을 야기해왔다. 그러나, 최근 2∼3년간 그러한 저항들은 서로 통합되었다. 우리는 그에 관한 많은 실례들을 보아왔다. 다자간 투자협정(the Multilateral Agreement on Investment)을 무너뜨린 국제적 노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행동들은 사실상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시애틀 시위는 주요한 저항이었고, 주류 기관들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은 일이 워싱턴에서도 반복되었다. 이 저항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다양성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저항은 예전에는 서로 별로 관련이 없었던 철강노동자들과 동성애 활동가들, 환경운동가들을 끌어들였다. 이 투쟁들은 브라질의 땅 없는 노동자들의 운동, 인도의 농민운동과 미국의 근로민중들을 한 데 모으는 국제적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사·노 : 워싱턴에서 있었던 운동은 심화되고 더욱 정치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연대했다.

 

촘스키 : 그렇다. 저항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 저항들을 개량적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개혁은, 그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면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좋다. 그러나 또한 개혁이 제한될 때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촉진되며, 이것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그러한 사안에 대해 조금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그리고 나서 그들은 철벽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그들은 철벽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묻게 되고, 세계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보게 된다. 이 때, 더 많은 억압들, 때로는 더 많은 반동들이 존재하게 된다. 저항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는 저항하는 이들을 교육시켜내는 것이다. 지배기구들이 어느 지점에서 양보하며, 또 양보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사람들은 배우게 된다. 그것은 다음 단계를 위해 저항하는 이들을 단련시킨다.

 

사·노 : 투쟁하는 이들 중에서는 기업들이 세계 곳곳의 삶을 옥죄는 방식과 더불어,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의 전망에 대해 정교한 이해를 갖고 있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촘스키 : 그들 중 일부는 그렇다. 그리고 그들은 기업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된 사람들이 다수이다. 사람들은 주주총회에 참여하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투자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아주 작은 변화를 이뤄낼 순 있어도, 그다지 멀리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사람들은 왜 할 수 없는지를 묻게 되고, 당신이 묘사한 것(정교한 이해 : 역주)에 이르게 된다.

 

사·노 : 십년 전에 우리는 전쟁과 분쟁의 종식을 뜻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날 세계 현실에 그 말은 얼마나 들어맞는가?

 

촘스키 : 소련 제국이 붕괴되자 유고슬라비아 같은 다른 여러 지역들이 무너졌다. 전체주의 국가들과 같이 제국주의 체제들은 내부의 분쟁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붕괴가 일어났을 때 폭력적인 민족분규가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는 오늘날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보다 훨씬 더 심한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다. 남아시아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대규모 전쟁이 있었고, 50년 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제국이 무너졌을 때, 아프리카의 전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1970년대 중반 포르투갈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생독립국을 약화시키고자 애쓰는 미국과 영국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앞잡이 노릇을 수행했던 아프리카에서는 커다란 전쟁들이 벌어졌다. 포르투갈이 소제국을 건설했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했던 노릇을 이번에는 인도네시아가 수행했다는 점만 빼고는. 동티모르에서 있었던 잔학한 행위들은 지난해까지도 계속 되었다. 소련 제국이 무너졌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르완다 사태처럼 오늘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분쟁들은 벨기에, 독일, 프랑스 제국주의 체제들의 붕괴로 인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결과물이다.

 

사·노 : 미국의 외교, 군사정책은 이 그림의 어디에 들어 맞는가?

 

촘스키 : 마찬가지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지표는 무기 이전이다.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얻고 있는 주요국가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이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기를 얻고 있다. 그것은 중동의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관련이 있다. 터키 역시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다. 터키는 나토 회원국이며 냉전시기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하지만 무기 이전의 수준은 매우 일정했으며, 1984년까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이후 그 수치는 훨씬 더 높아졌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정점이었던 해는 1997년이었다. 그 한 해에만 터키는 1950년에서 1984년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무기를 받았다. 이는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을 분쇄하기 위해 많은 양의 미국산 무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터키 남동부의 거대한 인종청소와 대량학살을 위해 미국산 무기들이 마구 퍼부어졌다. 1998년에 터키는 쿠르드족 운동을 제압했고, 이에 따라 무기 거래량은 감소되었다. 그때까지 터키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보다 미국산 무기를 훨씬 더 많이 수입하는 국가였다. 이는 1999년에 콜롬비아로 대체되었다. 콜롬비아는 1990년대를 통틀어 서반구에서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였다. 또한 이 나라는 1990년대 최악의 인권기록 중 하나를 갖고 있다. 왜인가? 콜롬비아에는 정부가 분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게릴라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노 : 작년에 있었던 나토의 발칸 폭격은 어떻게 배치되는가?

 

촘스키 : 나토가 유고를 폭격했던 것은 인권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인권문제는 그들에겐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나토는 세르비아가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밀로세비치가 전쟁범죄자이자 깡패(gangster)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전쟁범죄자, 폭력범을 지원하는 데 개의치 않으며 항상 그러하다. 사담 후세인의 경우를 보자. 토니 블레어와 미국은 후세인을 대중학살용 무기를 개발해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국민에게도 이를 사용해온 역사상 유일무이한 괴물(the only monster in history)로 지칭해왔다. 단지 다음 문장을 빠뜨렸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국민에게 대중학살용 무기를 사용해 왔지요. 미국과 영국의 '지원'하에서요." 그들이 사담 후세인을 잡으려 했던 진짜 이유는 후세인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건 범죄가 되었다. '네가 원한다면, 너는 쿠르드족에게 화학무기를 쓸 수 있다. - 우리는 그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 다만, 명령에 불복해서는 안 된다!' 이게 강대국들이 행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그 방식으로 일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공격견이나 다름없는 구실을 하고 있는 영국 역시 그러하다. 러시아 역시 체첸에 대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사·노 : 대기업들은 이 그림에 어떻게 끼어 들어가는가?

 

촘스키 : 국가는 어느 정도까지는 독립적인 행위자이다. 하지만 국가는 압도적으로 그들 내부의 권력 집중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현대 산업국가 내부의 집중된 힘은 집중된 기업 권력이다.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미국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국제적인 - 비록 거대 기업들이 그들 자신의 국가에 뿌리를 두고 깊이 의존하더라도 - 힘이기도 하다. 지난 25년간 이루어진, 세계화라고 불리는 발전 과정은 집중화된 기업권력의 일부, 그리고 그와 연계된 국가들 간의 실제적인 권력게임(power play)이다. 그들은 금융기관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 특정한 형태의 국제적 연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실, 경제적 성장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난 25년동안 경제적 지표가 얼마나 놀라웠는지에 대해 흥분된 어조로 논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건 말도 안된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동안 산업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절반 가량 감소하였다.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임금은 동결되거나 줄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미국에서 그러하다. 노동시간은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으며 혜택은 줄어들고 있다. 성장속도가 둔화되었음에도, 이윤은 고도로 집중되었다. 제3세계에서 1990년대의 성장률은 1970년대 성장률의 약 절반수준이다. 그것은 금융자유화의 실제 지수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세계화라는 한 특정 양식이 낳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25년간 있었던 이러한 변화들은 국제경제에 역효과를 낳았다. 국제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부와 권력을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시키고 민주주의적 절차들을 파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를 보자. 유럽연합의 가장 핵심적인 구실 가운데 하나는, 책임을 지지 않는 중앙은행들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공격이다. 사실 그것은 너무 심한 조치여서, 심지어 미국의 보수파에게도 충격을 던져주었다.

 

사·노 : 미래의 전망은 어떤가? 미국의 노동자 계급 내에서 변화되고 있는 게 존재하는가?

 

촘스키 : 이제 미국에서의 평균 임금은 아마도 20년 전의 수준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성장이 계속되던 때에조차 평균 임금이 동결 또는 감소되었던 지난 20년은 아마도 전에 볼 수 없던 기간일 것이다. 미국 노동자들은 산업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몇 년 전에 일본을 넘어섰다(일본 노동자들의 노동량을 넘어섰다는 뜻 : 역주). 미국에서 한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가족 중 두 명은 일자리를 가져야만 한다. 미국은 탁아제도가 구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계속 자녀를 돌볼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은 노동자 가족에게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며, 엄청난 짐이 된다. 이것의 결과일지도 모르는, 이와 관련된 요소는, 아동학대와 같은 일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회지표조사에 의하면,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이래로 퇴보하고 있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 문제에 대해 느끼지만, 그들은 그것을 집단적으로도 느끼기 시작했다. 단지 산업노동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 영역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가난한 농부들은 타격을 입고 있으며, 소규모 상점 주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소수 영역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들이 함께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시애틀 시위에서 눈에 띈 것 가운데 하나다. 미래에도 갈등과 투쟁은 항상 계속될 것이다. 이건 절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원문: www.socialistworker.co.uk/1696/sw169613.htm

번역: 류석원

2004/07/19 17:42 2004/07/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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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