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 재발견의 의미
철학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워낙 아는 게 없어서 철학을 공개적으로 논할 생각은 없다. 블로그로 복귀(?)하면서 ‘보드리야르 재발견’ 번역 작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철학 이야기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게 ‘보드리야르 재발견’은, 현대 생활을 지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판적 이해 측면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내가 보드리야르를 재발견한 것은, 영국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윌리엄 메린(William Merrin)이 쓴 책 Baudrillard And the Media 덕분이다. 메린은 이 책에서 보드리야르의 미디어 이론을 집중 조명하는데, 기존 영어권의 보드리야르 이해와는 상당히 다르게 접근한다. 그건 보드리야르를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보지 않고, ‘급진적 뒤르켐주의 전통’에 충실한 학자로 본다는 점이다. 이 책이 특히 매력적인 것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e, 허상) 개념을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서구 철학의 맥락에서 설득력있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린의 홈페이지, 구글에서 책 미리보기)
메린의 주장을 보면, 보드리야르가 복제의 시대니, 복제품이 원본을 대체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세상을 접하는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뒤르켐의 이론을 따라서 “성스러운 것(상징적 교환)의 상실”과 이를 대체하는 “안전하고, 세속적이며, 거짓된 형태의 교류”를 대비시킨다. 과거엔 ‘폭력적이고 위험하지만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인간이 실제현실(생각해보니 ‘실제’가 아니라 ‘실재’ 같기도... 쉬운 말로 변경)을 대면했으나, 20세기 대중매체는 이를 ‘폭력이 배제되어 안전한 가짜 이미지의 소비’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이 허상(시뮬라크르)을 실제진짜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이라크전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피 흘리고 죽어가는 진짜 사람이 배제된 <시엔엔>의 영상으로만 이라크전은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이야기고, ‘실제 전쟁’을 이미지가 대체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허상을 깨고 실제진짜 현실을 대면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 될 것이다.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장면, 신문 지면에 묘사되는 현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뜨는 세상 이야기에 매몰된 우리는 ‘실제현실’과 대면하지 않고 대면할 수도 없는 ‘허상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라 ‘급진적인 미디어 이론가’로서의 보드리야르, 그것이 내가 재발견하려는 보드리야르다. (덧붙임: 보드리야르 이야기할 때 제발 매트릭스는 좀 뺍시다!)
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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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트위터의 그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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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6:12
제목을 트위터라고는 했지만 사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소셜네트워크 전반에 걸친 것이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같는데 있어 심리적, 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바꾸어 말해 아이디와 의도만 있다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면접촉을 하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편견과 동질감을 형성하는 인사, 소개와 같은 그런 단계도 생략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졌다. 이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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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교환에 대한 숙고
먼 댓글 보내온 곳
2010/04/15 20:02
marishin님의 [보드리야르 재발견의 의미] 에 관련된 글. 관련 karl Heinz Kohl, Die Macht der Dinge를 읽자.
creep23 2010/04/14 23:23
이전 글('제자리로 돌아오다')에서 언급하신 '보드리야르의 재발견'이 뭘까 궁금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조금 이해가 될 듯 합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marishin 2010/04/15 09:32
메린 책을 직접 읽는 게 최선이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제가 제대로 소개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 여유나 능력이나 다 부족하지만, 짬을 내서 해보려고 합니다.
ou_topia 2010/04/15 20:00
교환과 관련 인류학에서 연구한 결과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기대가 큽니다.
marishin 2010/04/15 20:08
그렇군요. 저도 흥미가 생기는 이야깁니다. 저 또한 기대되는군요.
amisdame 2010/04/19 16:42
그러고 보니 작년 진보넷 번개 때 만났을 때 보드리야르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기대해 봅니다^ ^
marishin 2010/04/19 17:19
괜히 말 꺼내서 부담만 느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