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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

아래 행사를 위해서 여기 저기 썼던 글들을 짜깁기하고 조금 첨언해서 급조한 토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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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5회 초록아고라 : 실효성있는 자전거 정책과 방안에 대해]

 

[토론문] 자전거 메신저

나은, 라봉, 지음 (자전거 메신저 네트워크)

070-8226-1968, http://blog.jinbo.net/messenger

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

자전거의 생산은 노동과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자전거의 구매는 그것을 위한 화폐를 필요로하며 화폐를 위한 별도의 노동과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가 필요하다. 고가의 자전거일수록 그 소비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자전거 역시 유지관리를 위해 기름과 재생불가능한 폐기물을 소비한다. 생명을 마친 자전거는 그 자체가 하나의 폐기물이며 재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 걷는 것을 대신하는 자전거, 운동을 대신하는 자전거, 취미를 대신하는 자전거가 녹색이라고? 산과 들과 강을 뒤엎어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 생태적이라고? 얼마안가 망가져 버리는 자전거를 보급하고, 고급 자전거 생산 단지를 만드는 것이 친환경적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자전거가 녹색이 되는 경우는 오직 단 한가지 경우다. 바로 자동차를 대신하는 것. 자동차가 아니면 가지 못했던 곳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 자동차가 아니면 나르지 못했던 짐을 자전거로 나르는 것, 자동차가 아니면 다니지 못했던 길로 자전거로 다니는 것, 그러기 위해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생산하는 것,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자전거를 손질해서 다시 타고 다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외면하고 마치 자전거가 그자체로 녹색인 양, 자전거 정책은 모두 녹색인 양 떠벌리는 것은 거짓이다.

 

자전거는 위험하지 않다.

위험한 것은 자동차다. 위험을 피하길 원한다면 타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다. 길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 걷는 사람, 자전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동차다. 잊어서는 안 된다. 반대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샌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고하게 되어 버렸다. 자신을 엄습하는 위험의 원인이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자전거는 사실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사실 도로가 그렇게 두렵고 위험한 것만도 아니다. 실제로 자전거를 혼자서 탈 때는 위협적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둘이서만 같이 가도 상당한 안도감이 생기고, 셋이면 가끔 장난칠 여유마저 생긴다. 한 달에 한 번 도심 한복판을 떼지어 달리는 자전거들의 무리 발바리 떼잔차질을 아는가? 수십 수백 대의 자전거가 차선 하나를 통째로 누비며 달리는 이들에게 도로가 위험하다는 건 이미 딴 세상 이야기다.

우리는 자전거가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전거가 집 앞과 골목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무엇보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자동차에 점령당한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 길에서 걷고, 뛰놀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자전거 길은 충분하다.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는 일은 완전히 합법적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이미 지나치게 도로가 많은 나라다.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된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나가는 건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가야 한다. 하나가 나가지 않으면 무리도 지을 수도 없다. 다른 방법을 우리는 모른다. 좋은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것인가? 당신이 도로를 나가지 않는다면 그런 행운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떤 도시교통 전문가가 자전거가 다니지 않는 길에 좋은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 있겠는가? 다니다보면 길이 생기는 것이지, 길이 생긴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도로가 두려웠다. 그러던 우리에게 용기를 준 것은 그냥 우리 옆을 스쳐지나가던 한 대의 허름한 자전거였다. 우리는 그 자전거를 따라서, 그 자전거와 함께 달렸고, 어느새 혼자서도 어떤 길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자전거가 되고 싶다.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용기를 내고 페달을 밟아라. 도로를 달려라. 자동차의 경적 따위는 무시해라. 필요하다면 차선 하나를 접수해라. 방금 차선 하나가 자전거 길이 되었다. 당신을 뒤따르는 사람은 이제 자동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 당신 덕분에 우리의 길은 그만큼 더 안전해졌고, 우리의 도시는 그만큼 더 살 만한 곳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메신저다.

메신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달리는 사람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과 사람을 잇고, 물건이 마땅히 있어야할 적절한 곳으로 물건을 움직인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고 사람과 물건으로 이루어진 환경을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사실 모든 사람은 일종의 메신저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직업적으로 하느냐가 다를 뿐.

우리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자전거 메신저가 만드는 세상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면 도로는 자전거 길이 된다. 자전거 메신저들이 늘어나고, 메신저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길은 더 안전해지고 우리의 도시는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점령당한 길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길과 이웃들이 오며가며 얘기 나누는 마을길을 다시 만들것이고,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숲길과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물길을 지켜낼 것이다.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는 단지 물건을 빠르게 배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돈을 받고 하는 당연한 일에 불과하다. 우리의 진정한 ‘서비스’는 돈으로 헤아려지지 않을 것이다. 교통 사고로 인해 찰라에 목숨을 잃는 무수한 생명들, 자동차로 대표되는 경쟁과 위험, 낭비와 고립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생명들, 화석 연료에서 비롯된 온갖 공해와 기후 변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하나뿐인 지구의 생명, 그리고 이 생명들을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는 당신의 살아 숨쉬는 마음, 그 가치의 크기를 돈으로는 어림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메신저는 당신의 바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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