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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에서 구로까지.

아침 먹고, 사과도 한알 먹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주문이 왔다.

 

구로중앙유통단지에서 구로구청사거리. 총 1.8km

구로에서 구로로 가는 주문이다. 보내는 물건은 핸드폰.

 

사람들에게 자전거메신저를 설명할 땐 서울시내 전지역 커버한다 말하면서 막상 이런 주문이 오면 갈등한다.

갈것인가 말것인가. 1.8km를 배달하기 위해 17.9km를 달려가야 한다.

하루의 첫 주문, 한 주의 첫 주문. 가기로 했다. 중간중간 버스와 지하철의 유혹을 견뎌내며 쉬엄쉬엄 달렸다.

다행히 가는 길 내내 허벅지에 힘 들어갈만한 오르내림이 없다.

화전-수색-모래내-가좌-망원-홍대-합정-양화대교-영등포구청-문래동사거리-구로역-구로유통단지 도착.

구로유통단지에서 구로구청사거리는 눈 깜짝할 거리. 시내 안이었다면 기본요금에서 할인이 들어갈 거리.

첫 주문이라는 손님이 주는 요구르트를 마시며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거리는 짧지만, 짧은 동안이지만 기분좋은 만남 앞에서 잠시나마 오기를 주저했던 게 미안하다.

 

시내로 복귀하는 도중 가까운 곳에서 주문이 하나 더 와 픽업하러 가는데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합정에서 픽업, 신촌까지 배달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흠뻑 젖었다.

바지는 물솜바지, 구멍난 신발 안은 이미 물이 철퍽. 안경에는 물방울이 또록또록 맺혔다.

비었을 줄 알고 잠시 들른 언니집에 언니가 있었고, 이런날 황사비 맞으며 꼭 일해야했냐는 걱정과 잔소리 잔뜩 듣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깥부터 속 깊은 곳까지 젖은 것들을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조물조물 빨아 널고 나니

정신이 든다. 슬슬 배가 고파온다.

그새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고 있다. 춘분도 지난 3월의 끝자락에 날리는 눈발. 낯설다.

 

어제 집 뒷켠에서 캔 냉이보따리를 풀어 손가락을 다섯바늘 꼬매 손쓰임이 불편한 언니와 마주앉아

냉이무침과 냉이된장국을 끓여 오랜만에 한솥밥을 먹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갔다.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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