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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철학없는 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

오랜만의 인터뷰.

지난 초록아고라 때 토론문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메신저든 빈집이든, 미디어에 대한 피로가 누적된 탓에,

결코 친절한 인터뷰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기자의 인내와 진지함 덕에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최근에 좀 쳐져있던 생각의 페달도 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저 즐거운 상상에 그쳤었던...

이른바 '자전거 메신저 100인 양병설'도...

다듬어서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기자 덕에 좋은 사진도 몇 장 얻었고...

인터뷰 후에 얻어먹었던 곤드레밥도 맛있었고...

이래저래 소득이 많은 인터뷰였다. ^^

메트로신문 박태정 기자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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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없는 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아침 비가 제법 내렸다. 약속을 미룰까 하다 얄밉게도 일부러 강행했다. 인터뷰이의 요청도 없었다.

만나기로 한 시각 정확히 오전 10시, 지음(35)씨는 광화문 인근 커피숍 문을 열고 성큼 다가왔다. 남산 3호터널 넘어 용산 집에서 ‘자전거’로 오는 길이었다.

오는 길 험난하진 않았나. “15분 걸렸다. 버스 타면 30분 넘게 걸린다. 좀 젖긴 했지만 괜찮다.”

왜 자전거를 타나. “서울은 넓으니까 걸어다닐 순 없지 않나. 돈도 없고 재미도 없고. 양심도 없는 것 같아서…….”

대중교통 타면 되지 않나. “자동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 타라는 건 설득력이 없다. 가고 싶을 때 가고, 서고 싶을 때 서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면 석유든 제도든 타인의 의지든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충분히 넓은 거리를 다닐 수 있다.”

 

◆ 평정심과 배려심 정도면 ‘OK’

지음씨는 ‘자전거 메신저’다. 쉽게 말해 오토바이가 아닌 ‘자전거퀵’이다. 직업형 자전거 라이더다.

그를 만난 건 자전거 예찬론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자전거를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다. ‘왜’라는 이유까지.

그는 ‘동네’부터 정의하기 시작했다. “보통 동네의 기준이 ‘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거리’라고 들었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가면 반경 10㎞다. 서울 전체가 동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면 정확히 주차장까지가 동네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만한 안전한 도로가 없지 않나. “그냥 자동차처럼 달리면 된다. 자동차 전용도로 빼고 다 된다. 필요한 건 평정심과 배려심 정도. 바보 같은 차들이 빵빵거리면 ‘내가 날씬하니까 먼저 가세요’라는. 하하.”

그래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거 아닌가. “길이라는 게 이어져야 하는데 어딘가에선 끊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교통수단으론 의미가 없다. 자전거 길만 달려 ‘아, 오늘 재밌게 놀았다’ 할 수는 있지만 예를 들어 우리 집에서 광화문까지 2시간 걸리면 안 되는 거다.”

 

◆ 자전거 타기는 새 삶의 방식

그가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타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다. 이유는 “대중교통이 너무 짜증나서”였다. 당시 다니던 회사까지 집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하지만 두 번의 환승에 역까지 한참 걸어야 해 무려 50분이나 걸렸다.

그러다 누가 사무실에 버려놓은 자전거를 오랜만에 탔다. 상쾌하긴 했는데 집까지 1시간 걸렸다. 차도를 피해 인도로만 가려니까 시간이 되레 늘었다. 그래서 차도로 내려섰고 4일 만에 높은 언덕도 거뜬히 올랐다. 출퇴근시간은 15분으로 단축됐다. 보름 새 벌어진 일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1년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2008년 10월부터 자전거 메신저를 시작했다.

거리에 자전거가 늘었다. “주말 한강공원에 나오는 자전거는 많아졌다. 하지만 2004∼2005년 자전거 붐이 일면서 늘었던 ‘자출족’은 이후 그대로다. 사양도 올라가 가격도 비싸졌음에도 자전거 판매량은 되레 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거리에 자전거가 많아지면 뭐가 좋을까. 매연과 이산화탄소 발생량 줄여 ‘녹색 서울’ 만들려고, 아님 ‘웰빙’ 누리고 ‘몸짱’ 되려고. (이 부분에서 지음씨는 말을 끊고 오래 뜸을 들였다.)

“그건 자동차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과 자전거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계속 그렇게 살 거냐’는 문제다. 자전거를 타면 바뀌는 건 몸만이 아니다. 삶의 습관과 생활 패턴이 자전거를 따라간다. 자동차를 사서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고 타고 멀리 가기 위해 또 벌어야 하고, 자동차 끌고 마트에 가서 소비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 “자전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부단히 이동한다. 빠르게 더 멀리,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동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삶의 공간에서 행복하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백번 동감한다. 그래서 4대문 안에 대중교통과 물류차량을 빼고 차량 진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 자전거와 함께할 수 있도록 운행 속도를 제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전거는 녹색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전거 생산에도 에너지는 필요하고 자전거 전용도로와 편의시설 같은 꼭 필요하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서다.

“자전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선전용 행정은 예산만 축낸다. 자전거를 통한 정책적 목표가 있는지 달성을 확인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검토된 상황에서 집행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전거도로가 폼 나서인지 따져야 한다. 그 돈으로 아이들 ‘무상급식’이 먼저인 건 아닌지도.”

전국에 걸쳐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해 자전거를 노래하는지 따져봐야 할 때다. 철학 없는 ‘녹색’이 난무하는 시대가 아닌가.
 

2010-04-05
박태정 ptj@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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