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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노인문화를 위하여

건전한 노인문화를 위하여
November 22, 2004

 

'노인이 되면 다 저래야 하는 것인가'

노인문화의 특수성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매우 부정적인 형식으로 인지되어 왔다. 고스톱과 술판, 관광버스 춤과 고성방가, 나중에는 길거리 매매춘조차 노인문화의 전형인양 왜곡되어 '노인이 되면 다 저렇게 놀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인문화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일부는 노인들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지만 우리의 노인들이 그런 은밀한 즐거움밖에 가질 수 없었던 사회적 환경을 외면한 채 비난만 한다면 그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현재 노인문화는 획기적 전기를 맞고 있다. 건강하고 솔직한 노년문화, 손자손녀와도 자랑스럽게 공유할만한 노인문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으나 그 문화적 파장의 수혜자가 아직은 너무 한정적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조금만 솔직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노인문화기획을 통해 노인문화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을 출발로 노인문화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사회적 환경과 경로를 살펴보았다. 현대문명의 총아 TV에 이르렀을 때 노인문화의 열악함과 심각성에 다시 한번 절망을 경험했다. 과연 노인문화에 미래는 있는 것일까. 노인문화가 성인문화와의 합류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미래의 문제를 논할 희망을 얻기 위해서이다.

성인문화와의 합류라고 하면 일반 보편문화 속으로 노인문화가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문화의 한쪽 얼굴은 배타적이다. 또 다른 얼굴은 한없는 포용력과 무한의 상상력을 허용한다. 수백 가지의 얼굴을 지닌 문화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도 하고 분열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문화에 있어서 분열의 의미가 반드시 분쟁과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합류의 의미가 반드시 일체화는 아니다.

노인들 스스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고 다른 세대들에게 공식화 할 수 없는 음습하고 은밀한 즐거움은 스스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성인문화와의 합류를 뜻한다.

최근 노년학회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건강하고 밝은 노인과 젊은세대 간의 접촉이 끼치는 영향력은 전반적으로 우리사회가 연령분리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일반적인 노인들만 접해본 청소년집단과 달리 자원봉사 등 건강한 사회활동을 하는 존경할만한 노인을 접촉해본 청소년집단은 노인에 대해 적극적이고 매력적이며 현명하고 진보적인 건강한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노인인식이 비생산적이고 보수적이며 쇠약하고 지루한, 더욱이 지저분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노인문화의 작은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다.

노인문화는 지금까지 매우 특수한 집단의 한정적 영역으로 치부되어 왔다. 특수성의 이면에는 덜 중요한 것에 대한 투자의 유보라는 의미가 깔려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안일한 생각으로 버려 둘 수 없다. 노인은 조금 거슬리다가 금방 세상을 떠나가 줄 존재가 아니라 10년이고 20년이고 다른 세대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건강한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데는 노년층 자신을 위한 이유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섞여 살아가는 2세대와 3세대에 대한 배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노인문화 양성의 책임은 노인들만이 아닌 모든 세대, 우리사회도 함께 나눠져야 하는 문제가 된다.

하루아침에, 밥은 굶을지언정 한 달에 한번은 발레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다니는 동유럽 노인들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장기불황으로 젊은이들이야 자살을 하건 말건 전세계로 두루 여행 다니는 서유럽 노인들처럼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우리사회의 건강한 노인문화란 과연 어떤 것인가. 적합한 해답은 해답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을 공유해 가는 과정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 Senior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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