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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치의신보'에 치과의사들이 보는 신문다운 기사가 실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린 기사를 인용한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웃을 때 드러나는 치아 기준으로만 보면 존 케리-존 에드워즈 후보가 부시 후보를 압도적 차이로 누르고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한 치아표백제 회사가 주장했다고 한다.
지난 달 20일 '부라이트스마일'이라는 치아표백제를 제조하는 회사가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조사 결과 '백악관을 차지하기에 가장 맞는 치아'로 케리-에드워즈 후보가 58%의 지지를 얻어 부시-체니 후보의 33%보다 크게 앞섰다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4명의 정부통령후보 가운데에 에드워즈 후보가 1위를 했고, 후보 부인들 사이에선 부시대통령 부인인 로라 부시 여사가 56%를 1위를 했고, 체니 부통령의 치아에 대한 지지는 4%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후보들의 경우 모두 치아를 더 닦아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를 바라보는 기준에 별의별 기준이 다 적용된다는 생각도 얼핏하였지만, 어찌보면 치아와 관련된 기업의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미국 대선 뿐만 아니라 최근 치뤄지는 대부분의 선거가 '이미지와 돈'으로 치뤄지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사실이다. 그러한 선거의 과정에 각종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이해에 기반하여 개입하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IT산업은 케리를 지지하고, 굴뚝산업은 부시를 지지하는 따위는 바로 자기 산업의 이해와 결부되어 '자본 분파'간의 경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권적인 야욕으로 수많은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그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경제, 빈곤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과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중요한 기준이 될 지라도,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 '패션감각'이 뛰어난 후보를 가르는 여론조사도 발표될까?
우리 사회에서 '빈곤' 달리 말하면 '가난'이란 말은 과거 보릿고개 시절을 떠올리게 하거나, 일부 극소수 계층에 국한된 상황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빈곤대책'이라 함은 '죽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로 전체 국민 중 극히 일부분에게 해당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수립하고 실행하는 게 그간 대한민국 정부에서 취해온 것이 전부이다. 물론 여기에는 '성장이 곧 분배이다'라는 '성장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유럽에서는 '빈곤'의 개념을 확장하여 '사회적 배제'란 말을 선호하려는 경향이 보편화되는 추세이다. 영국 정부에서는 '사회적배제위원회'를 설치하여 가난을 비롯한 차별, 사회적 배제의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빈곤'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확장되고 있다. '사회권'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정통적 관점에서도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구분하에 근대적 부르주아사회를 뛰어넘은 새로운 사회의 모습 중의 하나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상을 내놓은 바도 있다.
흔히 '20대 80의 사회'라고 명명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빈곤'의 문제는 '물질적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평등'이기도 하고, '차별'이기도 하며, '사회적 배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며, '권리'의 영역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제 '빈곤'의 문제는 '노동' '전쟁' '반세계화' '통일' 등의 영역만큼이나 우리 운동의 핵심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아래에 퍼온 기사 글은 현장에서 온몸으로 실천하면서, 또는 현장을 온몸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이를 기반으로 글쓰기를 해온 두 사람이 우리 사회의 '빈곤'에 대해 대화한 내용이다.
"빈곤 해결 못하면 민주주의 미래도 없다" | ||
[대화] <6> 박수정 & 최영선, '우리 안의 빈곤'(상) | ||
2004-08-14 오후 1:45:05 |
1970년 한국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삶을 고발하며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의 삶을 극화한 <연극 전태일>, YH 노조 최순영, 원풍모방 박순희 등 1970년대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한 <숨겨진 한국 여성의 역사>(아름다운사람들 펴냄), 구로동 공부방 아이들, 조선족 여성, 독거노인, 영등포 지역의 노숙자, 탈북자 등의 이야기를 담은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이학사 펴냄).
'글이 작가의 삶이 투영된 그릇'이라면 작가 박수정(37)씨의 '그릇'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져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이 넘게 '구로노동자 문학회'에서 활동한 그는 현재는 진보 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 '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를 꼭 닮은 문학회에서 만난 남편은 <삶이 보이는 창>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자신의 글의 주인공들과 이웃하며 구로구 구로3동, 일명 구주택에서 살고 있다.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하면서 어린이 건강 사업, 독거노인 방문 보건 사업 등을 하고 있는 '구로건강복지센터' 박혜경 대표가 친언니이기도 하다.
작가 박수정 ⓒ프레시안 | |
최영선 위례시민연대 지역복지센터 사무국장 ⓒ프레시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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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이학사 펴냄) ⓒ프레시안 | |
ⓒ프레시안 |
"나를 계속 활동하게 만드는 힘은..."
박수정 : 나는 영선 씨 얘기 쭉 들으면서, 이런 게 듣고 싶다. 지역복지센터에서 주민들과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하면서 그분들과 어떤 교류가 있나?
최영선 : 사실 그 분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그 분들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결국 그 분들의 인생 경험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의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 분들도 나를 친한 동네 동생으로 생각하면서, 얘는 이런 부분은 우리보다 낫지만 부족한 것도 많구나, 이렇게 느끼는 것 같다. 활동가가 잘난 척하지 않기, 나서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그러기가 쉽지가 않을 텐데......
최영선 : 훈련을 따로 해야 한다. 사실 그러기 쉽지가 않다. 회의만 해도 그렇다. 사실 회의를 해보면 결론은 뻔하지 않나? 금방 끝날 얘기들인데, 길게 될 때가 있다. 그래도 꾹 참는다. 결론을 미리 얘기하면 재미도 없고, 그 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것이 되니까. 그렇게 끊임없이 교류하고, 인간적인 대화도 많이 나누고......(웃음) 그러다보니 나를 많이 무시한다. 예를 들어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그 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선배니까. 그리고 나도 굉장히 없이 사는 걸 알고 날 불쌍하게 여기고. 나중에는 부식도 사오고. 언젠가는 "나도 와인도 마시면서 고상하게 살고 싶다"고 얘기를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를 가져왔더라. 힘들지만 이런 관계들이 나를 계속 활동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 이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자. 빈곤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여성, 아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우선 생활고, 실직, 양육의 문제 등 온갖 것들을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저소득 여성들의 얘기부터 해보자.
(박수정 씨와 최영선 씨의 <대화>는 '우리 안의 빈곤'을 주제로 계속됩니다.)
"당신들도 가난하지 않나"
[대화] <6> 박수정 & 최영선, '우리 안의 빈곤'(하)
2004-08-20 오전 11:10:18
"대다수 사람들이 가난의 영역에 있다. 나도 그렇다. 정부 보조만 받지 않을 뿐이지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아주 극소수의 상위 몇 %에 속한 사람들을 제외한 우리들은 이제 '누구의 눈'으로 가난을 봐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앞서 박수정(작가ㆍ37)씨와 최영선(위례시민연대 지역복지센터 사무국장ㆍ33)씨는 "빈곤의 문제가 곧 민주주의의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회복과 국가 차원의 사회복지시스템의 유기적 결합이 '신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우선적 과제임을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빈곤의 여성화, 빈곤의 대물림 등 좀더 구체적 현상과 그 치유책에 대해 논의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짐들을 떠안고 가는 아이들'은 '교육'에서도 소외된채 이제 빠르면 초등학교 3,4학년때 첫 가출을 경험하며 서서히 가난을 대물림하게되는 과정을 겪는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따라서 저소득층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전담할 조직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현재의 학교 교육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낙인 찍히고 소외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IMF 이후 실업 등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특히 저소득층 가정에서 가족 해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개인을 지탱해주는 최후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가족의 해체로, 그 구성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동시에 더이상 사회복지의 기본틀을 '가족'에 맞춰서는 안된다는 인식 전환을 요구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가는 사회복지의 의무를 개별 가족, 특히 그 안에서 '보살핌의 노동'을 하는 여성에 떠넘겨왔다. 이들은 이제는 사회복지를 공동체, 사회의 것으로 다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가난,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논의됐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된 여러 가지 사연들을 같이 공감하다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법도 드러날 것"이란 아주 간단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치유책을 두 사람은 깊이 공감했다.
다음은 대담 후반부 전문이다.
"빈곤의 여성화, 공보육 도입이 절실"
작가 박수정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제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보자. 빈곤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여성, 아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우선 생활고, 실직, 양육의 문제 등 온갖 것들을 다 짊어지고 가야하는 저소득 여성들의 얘기부터 해보자. 여성들이 왜 남성들보다 빈곤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지 먼저 짚어봤으면 한다.
최영선 : 여성들은 아무래도 남성들에게 많이 의존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가 그렇게 짜여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남편이 죽거나 실직을 할 경우에는 여성은 당장 빈곤의 위협을 받게 된다. 가족 부양으로 위해 취업을 하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 식당일이나 가정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고학력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에는 저임금과 비정규직을 감수해야 하고, 그나마 고용도 불안정하다. 이런 사회 구조적 요인들이 여성의 빈곤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레시안 : 여성은 취업을 하고도 자녀 양육 등을 책임져야 하는 이중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최영선 : 그것도 큰 문제다. 보육의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여성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커지는 게 사실이다.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일자리를 찾는 데 소극적이 되고,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체계적인 직업 교육을 접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제한적이 되고, 이게 맞물려 있다.
프레시안 : 아주 어려운 문제다.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사회나 비정규직의 확산을 부추기는 '노동의 유연화' 흐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단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최영선 : 방금도 얘기했지만 일단 보육의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공보육'의 도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방과 후 학교' 이런 데서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방과 후 보육'을 책임져 준다면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기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사실 방과 후에 학원을 보내도 안심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뭘 배우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이런 걸 챙길 수 없으니까. 돈도 많이 들고. 특히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이런 공보육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빈곤층 아동들, 사회로부터 미래도 박탈"
최영선 위례시민연대 지역복지센터 사무국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보육ㆍ교육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옮겨갔다. 빈곤층의 아동 문제도 심각하다. 그들은 제대로 된 보육ㆍ교육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으로부터 학대를 받기도 한다. 또래들 사이에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한다. 결국 사회로부터 미래도 박탈당한다.
박수정 : 내가 살던 지역이 철거가 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선 후에 그 전에 동네에 살았던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공부방만 해도 작년까지는 30~40명이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한 20명 정도만 남았다.
그렇게 다른 동네로 간 아이들 중에 못 잊고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사실 그 아이들은 공부방에 다니면서도 밖에서 가난한 아이라고 손가락질 할까봐 공부방에 나오는 걸 알리지 못했던 아이들이다. 그래도 외로우니까 다시 찾아온 거다.
아무리 공부방 선생님이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교육은 너희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얘기해도 아이들은 곧이듣지를 않는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면 그 때부터 다들 가출을 한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 봄까지 얼굴을 보이던 얘들이 한동안 안 보이면 다들 가출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가끔 교복을 입은 채 동네에서 보이는 얘들도 있다. 분명히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학교에서 도망쳐 나온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 적응 못 하는 정도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최영선 : 요즘에는 첫 가출을 초등학교 3, 4학년 때 한다고 한다. 중학생이 되면 더 자주하고......
프레시안 : 학교나 집을 나온 아이들이 주로 하는 일이 뭔가?
박수정 : 학교에서 도망 나온 아이들이 대개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교는 적응이 안 되고, 아이들은 따돌리고, 배는 고프니까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그 아르바이트라는 게 빵 하나 사먹으면 없어질 푼돈을 버는 거다. 불쌍한 아이들을 이용해 부려먹는 어른들이 여전히 많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면 텅 비어 있고, 거기서 또 정도 못 느끼고.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그들의 삶의 수순이 뻔히 보여서 너무 답답하다. 여자애들 같은 경우에는 그대로 가만히 두면 성매매를 할 것 같기도 하고.
최영선 : 나는 그런 아이들 이해가 된다. 나는 부모님들 뭐하냐는 질문이 제일 싫었다. "아버지는 미국 가셨고, 어머니는 일 나가시는데요", 이런 답을 항상 준비해 놓고도 말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아마 '가난'에 대한 편견이 싫어서였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너무 많은 짐들을 떠안고 있다.
박수정 : 보면 학교에서 그렇게 따돌림을 당한 아이들이 또 동네에서 아이들을 따돌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가 있는 경우에는 알코올 중독에, 폭력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폭력을 쉽게 대물림한다. 아이들이 폭력을 겪으면서 그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싸움이라도 잘 하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내내 따돌림 당하고, 위축돼 있다가 동네에 오면 동생들을 괴롭힌다. 그렇게 괴롭힌 당한 아이들이 또 자기 밑에 있는 동생들을 괴롭히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뭘 해도 '대박' 터지는 세상"
프레시안 : 말씀을 듣고 보니 가난한 아이들이 느끼는 사회의 폭력, 박탈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박수정 : 우리 지역의 독거 논인에게 3~4년째 하는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자매가 있다. 그 아이들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사회가 평등한 것 같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뭘 해도 '대박'이 터지는 세상이다.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면 잘 사는 사람들이 가난을 체험하도록 하겠다. 가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안 다면 좀더 나누지 않겠느냐", 평소에는 철없는 아이들 같기만 했는데 아이들이 대견했다.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또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보다 더 정확하게 사회를 보는 '진실의 눈'을 가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또 아이들이 마냥 '사회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뭔가를 해낼 것 같은 희망이 들기도 하고.
프레시안 : 사실 그런 아이들의 박탈감을 보상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거야 말로 구조적인 문제이다. 최근에 '탈학교'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현장에서 직접 보기에 아이들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시급히 해야할 일이 뭐가 있겠나?
박수정 : 구로에 보면 '청소년 수련관'이 아주 멋지게 지어졌다. 수영장도 있고, 각종 강습 프로그램도 있고. 그걸 보면서 우리 동네 내가 아는 얘들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습비가 아주 싼 것도 아니고.
동네에 놀이터가 2곳이 있다. 한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나 이용할 만한 시설인데 어떤 날에는 할아버지부터 아주 어린애들까지 다 모여 있다. 할아버지는 앉아 있고,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낮부터 술 먹고 욕하고 싸우고 땅바닥에 누워 자기도 하고, 중ㆍ고등학생들도 와 있고. 그런 중ㆍ고등학생들은 동생들 괴롭히고. 아이들끼리도 고스란히 어른들이 하는 욕설을 그대로 따라하고. 아이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 그렇게 된 거다. 아무리 청소년 수련관을 멋지게 지으면 뭐하나? 그것을 이용할 수 없는데.
ⓒ프레시안
프레시안 : 결국 공간이 문제인데, 그런 공간에서도 아이들이 배제되는 현실이 답답하다. 공간에 대해서는 좀 있다가 더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최영선 : 작년(2003년)에 정신장애 아이 둘을 돌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그 아이 둘을 돌보느라 다른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진짜 저소득층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전문적으로 전담해서 할 조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최소한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지역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한다. 송파구의 비닐하우스 촌의 특징이 있다면 결손 가정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 이런 아주 어려운 빈곤 가정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다. 빈곤층 여성의 경우 경제활동 참여율은 90% 이상이나 된다. 생계 때문에 저소득 여성일수록 취업한 여성들이 많다. 여성들을 밖으로 내몰고, 남자들끼리는 모여서 술 마시고...... (웃음)
박수정 : 구로에는 이혼한 경우가 많다. 남편하고 같이 살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면 여자들이 집을 나가거나 아버지, 어머니도 집을 나가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애들을 맡아서 키우는 경우도 있고.
가만히 지켜보면 빈민층의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아주 제한적이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건설 일용직일인데, 일감이 계속 안 떨어지고 기술까지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개 장마 때는 일 자체를 구할 수 없다. 주변에서 일을 구하기 쉽지 않으니 지방으로 가는데, 지방에서는 쓰는 돈이 버는 돈보다 많다. 단적인 예로 여관 앞에 '장기 투숙자 구함', 이런 게 붙여 있는데 결국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 달에 힘들게 번 돈을 숙박비로 다 쓴다. 또 일이 힘드니까 집으로 바로 안 가고 술 마시고. 여성들이 저임금, 비정규직에 노출돼 있는 만큼 남성들도 이런 상황이니 둘이 번다고 해도 여전히 가난하다. 그나마 '가족의 끈'으로 연결돼 공동체에 대한 결속감이 큰 가정은 잘 극복하는데, 그렇지 않은 가정은 곧 파괴되고, 또 가정 구성원 개인들의 파괴로 연결된다.
"복지를 공동체의 몫으로 끌어내야".
ⓒ프레시안
프레시안 : 방금 박수정 선생이 '가족의 끈'을 얘기했다. 그런데 사실 '가족'을 어떻게 볼지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현실에서 가족은 개개인을 불행으로 떨어뜨리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하고, 든든한 울타리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결손 가정' 아이들이 좀더 불행해질 가능성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물론 가정 폭력에 노출될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최근에 국가의 사회복지 서비스, 지역의 공동체, 가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박수정 : 글쎄, '가족 해체' 상황이 반갑지는 않다. 사실 '가족 해체'가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게 아니라 사회의 하중을 받으면서 해체되는 게 현실 아닌가?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그런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처해 가족이 해체되는 현실이니까. 그렇게 해체된 가정을 뒤로 하고 개인들은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외로움의 끝까지 가게 되고. 가족 개개인이 서로 족쇄가 되기보다는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는 그런 식의 모습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최영선 : 솔직히 나는 새삼 '가족'을 강조하는 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 꼭 국가가 사회복지의 의무를 가족에게 미루는 것 같으니까. 예를 들어 부양가족이 있으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렵게 사는 한 독거 할머니가 수급자가 안 된다는 통보를 받고, 알아보니 아들이 고위 공직자더라. 그런데 할머니가 자기는 차라리 수급자가 안 되고 말겠단다. 아들한테 혹시 피해가 갈까봐. 어이없는 현실이다.
외국에서는 결손 가정이 많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더 많아질 테고. 그런데 예전의 '가족' 개념에만 묶여 있는 건 문제가 많다. 가족이란 게 꼭 피로 맺어진 것만은 아니다. 나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이 1촌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아버지, 형제의 빈 자리를 채워줬다. 이제 '전통적 가족'에서 좀 '유연한 가족'으로 변해야 한다.
박수정 : 동감한다. 남성 노숙인들이 모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남성 노숙인 네 사람이 돈을 모아 집세와 생활비를 만들어 사는 거다. 가만히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저게 바로 '공동체'고 '대안 가족'이다.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저렇게 사냐', 하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서로 아픈 경험을 보듬으며 공동체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거다. 나는 기존의 가족들도 서로 그렇게 열린 관계로 변할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최영선 : 전 세대만 해도 시골 마을에서 얘가 굶어죽었다 하면 그 동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런 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마을 공동체의 책임이었다. 부모가 돌볼 수 없으면 공동체가 돌봐야지. 그런데 요즘에는 얘가 죽으면 부모 잘못이다. 그들을 그렇게 몬 공동체, 사회에 대해서는 성찰이 없다. 우리도 사회복지를 이제 공동체, 사회의 것으로 다시 끌어내야 한다.
"정부 재개발 대책, 빈민 공동체 파괴하고 변두리로 내몰 뿐"
ⓒ프레시안
프레시안 : 아까 잠깐 공간의 문제가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주거 문제를 얘기해보자.
정부의 재개발 정책이 자활을 모색하는 빈곤 공동체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효과로 나타난다는 비판을 본 적이 있다. 현재의 재개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 그들이 공동체를 지키면서도 스스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영선 : 아이들이 가장 전형적인 예다. 재개발되기 전에는 방과 후 학교 아이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또래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재개발되면 당장 아이들은 그런 또래 문화도 없다.
박수정 ; 구로는 이미 재개발이 됐다. 아까 얘기했던 도시락 배달을 하는 아이들이 "여기 있는 할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걱정을 하곤 한다. 알아보면 그 할머니들은 더 열악한 주거지로 이동해 있다. 가 보면 몇 층짜리 집의 반지하방이다.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하고 계속 그늘이 져서 이끼가 끼어 있다. 집 주인들은 그런 방 같지도 않은 방을 만들어 돈을 챙기는 거고. 그래도 할머니들이 갈 때라도 있으니까 다행인건가? 구로는 그래도 '쪽방'보다는 좋은 형편이다. '벌집'이라고 구별해서 부르니까.
최영선 : 인도에 그런 마을이 있다고 한다. 무허가촌을 개발할 때 우리처럼 정부가 밀어버리고 새로운 주거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주민과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협의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주민들이 그 공간에 살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준 거다. 당연히 공동체도 파괴 안 되고, 주거환경 개선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주민과 아무런 협의 없이 위에서 만든 계획대로 밀어버리고, 임대아파트 분양권을 나눠주고, 주민들은 또 당장 갈 때도 없고 형편이 어려우니까 임대 아파트 분양권을 현금으로 바꿔 금방 써 버리고. 주거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프레시안 : 당장 현실적인 대안은 뭐라고 생각하나?
최영선 : 임대 아파트 분양권이 아니라 입주권을 줘야 한다. 당연히 임대 아파트를 늘려야 하고, 거시적으로 분양원가를 공개해 주거에 대해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프레시안 : 사실 대안적인 주거 방식이 아파트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에 대해서도 한번도 합의한 적이 없지 않나. 아파트라는 공간이 지속가능한 주거 공간도 아니지 않나? 너무 급진적인 얘기인가? (웃음) 임대 아파트 입주권을 받는 것은 가능하나?
최영선 : (웃음) 서울에서 현실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아파트에 사는 것만이 가능하니까. 임대 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단체들이랑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지어진 '신생 발생 무허가촌'의 경우에는 건축물 대장이 없다고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대신 공영 개발일 경우에는 보상을 해주는데, 보상의 구체적인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서 협상하기 나름이다. 한 마디로 싸워서 많이 가져와야 된다.
지금 송파구에서 '신생 발생 무허가촌'을 개발할 때 보상 기준을 제안할 생각이다. 이게 안 되면 그들은 또 더 변두리로, 변두리로 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
최영선 : 그렇다. 서초구에도 아직 무허가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송파구가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그 쪽까지 파급 효과가 있다.
"우리 대다수는 가난하다"
프레시안 : 오늘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는데, 이제 얘기를 마무리 지었으면 한다.
박수정 : 사실 난 직접 활동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구체적인 것은 잘 몰랐는데, 영선 씨 얘기를 듣고 '아, 굉장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빈곤 여성의 문제, 아동의 문제는 결국 사회가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것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돼 있다. 그래서 국가 정책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하는 것이 필요할 테고. 다행히 영선 씨처럼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 둘 사회를 바꿔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도 더 관심을 가져야지. (웃음)
최영선 : 항상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데 박수정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하루하루 활동하면서 답답한 것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오늘 대화도 그랬던 것 같고.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박수정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빈곤의 문제에 대해서, 가난한 이웃들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누가 가난하고 싶어서, 노숙인이 되고 싶어서, 결손 가정에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들도 멋지게 살고 싶은 꿈이 있고, 또 그런 꿈을 펼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사회가 그 꿈을 꺾어버리고 있으니까. 언제 그런 일들이 바로 나한테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한국 사람은 눈물을 많이 흘리는데, 눈물만 흘리고 끝날 게 아니라, 눈물을 실천으로 옮겨 세상을 바꾸는 데 좀 나섰으면 좋겠다.
박수정,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이학사 펴냄) ⓒ프레시안
박수정 : '한 인간은 곧 자신에게는 진실이며'라는 문구를 읽고 가슴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그 다음에 한 노숙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다르게 보였다. 누구나 실패한 인생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삶도 스스로에게는 여러 가지 사연이 담긴 '진실'이니까.
이제 우리 사회도 편견으로 가득찬 '차별의 시선'들을 좀 거둘 때가 됐다. 자기가 뭘 할 수 있을지,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쏟아지는 '차별의 시선'들은 삶에 대한 의지를 꺾는다. 그 사람 개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된 여러 가지 사연들을 같이 공감하다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법도 드러나지 않을까?
대다수 사람들이 가난의 영역에 있다. 나도 그렇다. 정부 보조만 받지 않을 뿐이지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아주 극소수의 상위 몇 %에 속한 사람들을 제외한 우리들은 이제 '누구의 눈'으로 가난을 봐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노동자의 파업도 마찬가지다. 오늘 언론에서 욕 먹고 있는 노동자가 한두 사람 건너면 알게 되는 내 이웃이고, 나랑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다. 어렵게 사는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의 눈으로 사회를 바로보고, 이웃들을 바라볼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해봐야 한다.
프레시안 : 두 분 말씀 잘 들었다. 앞으로도 서로 교류하면서 우리 사회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박수정 :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할 때 내 목소리보다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그들의 진실이 여과 없이 글 속에 드러나도록 신경을 쓴다. 그런데 기자들의 글을 보면, 이미 듣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진실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목소리가 차별받고 피해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고,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이다. 나도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를 통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텐데, <프레시안>도 그런 언론이 되길 바란다. (웃음)
프레시안 : 마지막에 좋은 덕담도 고맙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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