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에 대한 오해(제도에 대해서)


- 이정우(철학아카데미)


모든 사상들이 그렇지만 노마디즘에도 중대한 오해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노마디즘을 해체주의적으로 읽는 것이다.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구성주의/구축주의'라고 분명히 밝혔거니와,

노마디즘의 핵심은 해체보다는 구축에 있다.

그리고 해체와 구축을 대립(opposition) 개념으로 보는 것 자체가 오해이다.

해체와 구축은 언제나 서로의 안감=裏面인 것이다.

해체와 구축은 언제나 정도(degree)의 관점에서, 차생적/미분적(differential)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들뢰즈의 정치적 관심은 제도들을 해체하는데 있기보다는,

새로운 제도들, 새로운 삶의 양식들을 구성하는 것, 창조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과 창조는 항상 그 이면에 해체를 동반한다.

해체를 한 후에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바로 이 이미지가 들뢰즈에 대한 오해의

원천이다)

해체와 구성은 대립 관계도 아니고 선후 관계도 아니다. 한 사태의 양면인 것이다.

미분적/차생적 관점에서 볼 때에만, 기존의 제도들이 해체되는 동시에

새롭게 구성되어 나가는 과정을 볼 때에만 노마디즘을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가 흄에 관한 데뷔작을 쓰기 이전에 편집한 책의 제목이

[본능과 제도]이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 서문을 유심히 읽어보면, 거기에서도

제도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제도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도들의 동일성을 부단히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 무너뜨림의 과정이

새로운 제도들의 창조/구성의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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