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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9
    A Piece of Peace Festival
    누구나
  2. 2009/11/09
    장애인과 동행하면서 알게 된 ‘불편함’(2)
    누구나

A Piece of Peace Festival

 

2009년에도 어김없이 'Rogpa'에서는 여러 행사를 치렀다. 'Rogpa'는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비정부 단체로, 티베트 난민의 경제적, 문화적 자립을 지원한다. 2005년,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록빠 무료 탁아소를 시작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빼마(한국이름 남현주)와 제임스 부부를 중심으로 몇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여러 '록빠'의 성원에 힘입어 5년째 꾸준히 한 길을 가고 있다. 'Rogpa'는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친구' 또는 '돕는 이'라는 뜻의 티베트 말이다.

 

올해는 부산에서 평화 티벳 팽창전, 따시델렉 일일찻집,  평화 티벳 캠프 등의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11월 1일, 홍대 앞에서 'A Piece of Peace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문화행사를 개최하였다. 무용, 마임, 퍼포먼스, 음악 등의 공연과 다큐멘터리 상영, 사진과 어린이 작품 전시회, 평화장터, 일일찻집 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행사였다. 행사의 수익금은 티베트 어린이 평화 도서관 운영에 사용될 예정이다.

 

록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하면, 현지에서는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를 지원하는 무료 탁아소와 티베트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여성 수공예 작업장을 운영한다.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 난민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그들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형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자원활동가, 탁아소 학부모, 지역 주민이 힘을 합쳐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한다. 2006년부터 시작한 피스 티벳 페스티벌 다람살라에서 지역문화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제는  티베트인들이 중심이 되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티베트 난민의 현실을 알리고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인디밴드의 공연과 티베트 관련 영상을 상영하는 세이브 티벳 페스티벌, 한국의 청소년과 대학생이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평화를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피스 티베트 캠프, 후원인,자원활동가, 그외 여러 록빠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따시델렉 일일찻집, 평화의 기운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전시회와 상영회 중심의 피스 티벳 팽창전, 현지에서 생산한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프리마켓 등의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11월 1일, 오후 2시에 행사장을 찾았다. 스텝을 제외하면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다. 행사를 진행하는 스탭은 주로 청소년들이다. 록빠 청소년 미디어 프로젝트 참여했던 아이들이거나 즉석 사진관과 평화 버튼 제작에 참여하는 하자 작업장의 아이들인 것 같다. '희망을 파는 아이들'이라는 희망나눔 프로젝트에 참여헀던 정배초등학교 어린이들도 보인다. 평화 장터와 벼룩시장 코너에는 현지에서 생산한 수공예품, 여러 곳에서 기부받은 물건들과 정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손수 만든 이면지 노트가 판매되고 있다. 일일찻집에서는 공정무역커피와 티벳탄 허브 티 등의 먹거리를 판다. 사전에 구매한 티켓으로 차 한잔을 마신다. 탁아소 아기 사진의 엽서는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다. 2000원을 추가로 지불하면 기념 머그컵을 살 수 있다. 컵에 그려진 나무문양이 평화의 기운이 자라는 느낌이 들어 컵을 받아든다.

  

입구에는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록빠 탁아소 아이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인도에서 태어난 티베트 아이들이 티베트의 땅을 밟아 볼 날이 언제나 올런지... 한 여행자가 티베트를 여행하는 길에 탁아소 아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가, 그곳 풍경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어색하게 합성을 한 것도 같고 오려 붙인 것도 같다. 티베트의 아이들이 티베트에서 자랄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아기들의 웃음은 해맑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층에는 또 다른 여행자가 티베트 아이들과 함께 한 소중한 기억이 정리되어 있다. 그들과 찍은 사진, 여행기... 또박또박 적힌 그의 글씨와 손때 묻은 물건들은 작가의 정성 때문인지 글과 사진을 더 생생하게 살아있게 한다. 티베트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에는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엿보인다. 이 역시 티베트의 현실과는 너무도 달라 마음을 아프게 한다. 록빠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중고 디지털 카메라를 다람살라에 보내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좁은 길에 상가와 노점이 즐비해있고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다람살라, 여행자를 통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계를 상상하며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며 성장하는 아이들, 그들 눈으로 보는 세상을 손수 카메라에 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티베트 어린이들이 찍은 사진은 놀랍도록 밝고, 아름답고, 또 자유롭다. 그것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다.

 

이층 한 켠에는 티베트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과 정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만든 앞치마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희망을 나누고 평화를 지키는 일이 어른들의 일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미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바라게 된다.

 

4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록빠 청소년 미디어 프로젝트 참여한 청소년들이 제작한 영상과 여러 공연이 무대에 올려진다. 온앤오프 무용단의몽환”(무용), 이정훈의거미”(마임), Et Aussi Dance(에오시 무용단) “QUATRO”(무용), 사토 유키에의 노래와 연주, 김진수의 "솔문"(퍼포먼스), 강성국의 퍼포먼스, 카락뺀빠의 노래와 연주, 이한주의 노래와 연주...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다채로운 공연은 애시당초 불가능했으리라. 처음 접하는 장르도 있고 낯설기도 하지만 다양성, 자유로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언젠가 제임스가 한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색 가운데 하나의 색이 사라지는 것, 그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우리는 그 색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거라고, 어떻게 슬프지 않냐고... 그때는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지금 떠올려보니, 오랜 시간 지켜온 전통, 문화, 삶 그 모든 것들이 폭력에 의해서 짓밟히고 사라지는 일, 가슴 아프다. 슬픔은 천천히 전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http://www.rogp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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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동행하면서 알게 된 ‘불편함’

그녀가 강좌 수강을 포기한 이유

 

장애인과 동행하면서 알게 된 ‘불편함’

 

*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썼던 글입니다.

 

장애인과 동행을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사회에서 겪게 된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다

 

야학교사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곳에 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세상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마련이고, 그러니 야학이라는 공간에 한데 섞여있는 게 대수랴 싶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고,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거나 노력을 해서 극복할 수 없는 ‘불편함’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야학에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 나보다 다섯 살 많고, 취향도, 취미도, 뭐 하나 비슷한 것이 없다. 그녀는 야학에서 검정고시로 초.중.고등학력을 취득한 후, 방송대 영문과에 진학해 학업을 마쳤다. 지금은 야학에서 교사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나보다 3년 먼저 교사활동을 시작한 선배인 셈이다.
 
언니와 친해지면서, 이동할 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거나 간혹 내가 활동보조를 하는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같이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고, 같이 다니는 일들이 많아지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개인의 인격이나 성품과는 크게 상관없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동행하는 일의 ‘불편함’이 도를 넘는 데서 오는 문제였다.
 
집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지쳐 어색하게 침묵하거나 억지로 밝은 척 웃는 일이 많아졌다. 언니와 1~2년 함께 다니면서 장애인이 집밖으로 나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되었다.
 


지하철 전 역에 승강기 설치, 장애인콜택시 늘려야
 
10월, 우리는 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글쓰기강좌를 신청했다. 1호선 대방 역에 있는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두 시간 가량 8주간 진행되는 강좌다.
 
서울여성플라자는 장애인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는 건물이지만, 문제는 대방 역에서 그 건물까지 이동하는 일이었다.
 
승강장에서 개찰구까지 리프트로: 대방 역은 현재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승강장에서 개찰구까지 리프트를 이용해 이동해야 했다. 리프트를 올리고 내리고 10~15분이 소요된다. 이 리프트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6출구로 나와 차량 이용해 길 건너기: 서울여성플라자는 대방 역 3번 출구에서 3분여 거리지만, 3번 출구는 승강기 설치공사 중이고, 계단으로 연결된 좁은 지하보도엔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이 출구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경사로가 있는 6번 출구로 나가서, 3번 출구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즉, 길 건너편으로 나가서 길을 건너야 하는데,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길을 건너갈 방법은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장애인 이동을 위해 무료 차량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혀서 20여분이 소요됐다.
 
도보 5분거리, 1시간15분 걸려 도착: 강좌를 듣는 우리 일행 셋 중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두 명이 있었다. 일행이 모두 길을 건너 서울여성플라자 앞에 도착한 시간은 장애인 한 사람 이동시간의 두 배다. 대방 역에 도착한 시간은 6시인데,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7시 15분이었다. 비장애인이 3~5분이면 오는 거리가 장애인 한 명이 올 경우 30~35분, 두 명일 경우는 60~70분 이상 걸리는 것이다.
 
차량서비스는 7시까지만, 7시 이후는? 그나마도 차량이용서비스는 7시까지만 제공된다고 했다. 대방 역 측과 이동에 관해 문의할 때, 차량이용시간에 대한 안내는 받지 못했다. 7시 이후에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대방 역 3번 출구로 이동하기 위해 이동식 리프트를 이용해야 한다.
 
이동식 리프트는 사람이 수동으로 조종하는 리프트인데 중간중간 계단이 끊기고 평지가 나올 때마다 휠체어가 45° 각도로 허공에 뜨고 그때마다 앞바퀴가 8cm가량 들린다. 시간은 수직형 리프트보다 더 오래 걸리고, 안전은 뭐라 말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안전하지 않다’ 수준이 아니라 ‘위험하다.’
 
장애인콜택시 대기시간 ‘기본 2시간’: 목적지로 가는 차 안에서, 강좌가 끝난 후 집에 어떻게 가야 할지 알아보았다. 그러나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없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용산 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기 위해선 기본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8시35분 경 예약을 했다. 이동경로를 알아보느라 예약 자체가 늦어졌기 때문에, 강좌가 끝나고 한 시간 정도 길에서 기다리는 것은 감수하기로 했다.
 
9시 반이 못되어서 강좌가 끝나고, 우리는 한 시간 정도 거리에서 기다렸다. 늦은 시간이라 이용자가 많지 않겠다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해보았다. 늦은 시간에는 장애인콜택시 운행대수도 줄어든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장애인콜택시 이용 대기시간은 어느 시간대나 2시간 이상으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10시 24분 지나는 시간, 앞으로 3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하고, 대기자가 10명 있어 30분 후에도 이용할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밤10시30분 대방역 3출구로 이동: 인천행 1호선 전철과 인천지하철 막차 시간을 고려하면 서울에서 발이 묶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행사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무리를 해서라도 계단이 있는 대방 역 3번 출구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언니는 업히고, 언니의 전동휠체어는 행인과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들고 내려왔다. 전동휠체어를 들려면 장정 5명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전동휠체어에서 내려올 수 없는 형편이어서, 위험하지만 전동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이동식리프트를 이용했다. 45° 경사로 허공에 들리고 앞바퀴가 8cm가량 띄는 상황을 여러 차례 반복, 이동하는 내내 위험천만한 순간이 속출해 그때마다 간을 졸였다.
 
안전을 담보로 한 대방역 승강장 행: 전동휠체어를 사람들이 직접 들고, 이동식리프트를 이용하고, 비장애인이 3분이면 이동할 거리를 관계자 3명, 행인 1명, 공인근무요원 3명, 나까지 몇 명이 전전긍긍하여 무려 50여분이 넘게 걸려 겨우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안전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진이 다 빠졌다. 전철 문이 닫히는 시간을 지연시키며, 사람이 가득 찬 전철을 타는 일쯤은 아주 쉬운 일에 속했다.
 
이날 우리는 막차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다. 과연 ‘무사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좌우간 우리 셋은 모두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2주차에는 언니가 아파 강좌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 명은 강좌 수강을 포기했다. 강좌도 좋았고, 내심 기대도 많았던 터였다. 행사 주최 측 관계자 분들도 성심 성의껏 지원해주었다. 수강포기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이나 단체 차원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해결방법은 명확하다. 장애인콜택시의 대기시간이 ‘2시간은 기본’이라는 인식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 모든 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최소한의 이동 가능한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013&section=sc5&section2=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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