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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그대 살찐 가슴 위에 언덕 위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평등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놓은 법이
법관이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농부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너머 평지길 황토길 위에
사래 긴 밭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는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투석기의 돌 옛 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평등이여 평등의 나무여
삶창> 르포문학교실 6강 / 다큐멘터리, 시대의 현장에 서다(김미례)
김미례 감독이 '다큐멘터리, 시대의 현장에 서다'는 주제로
2시간 30분 정도 강의를 했다.
15분 가량 늦어 김미례 감독이 자기소개를 거의 마칠 때 쯤 들어갔다.
이어서 강사는 수강생들도 자신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강생 몇 명이 자기 소개를 하고,
그들의 말에 덧붙여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편하고 느슨하게 강의가 몇 십분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진행된 강의였지만 왜인지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십 분간의 휴식.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조금씩 끊어서 감상했다.
질문 몇 가지가 머리 속에 남아 적어놓는다.
강사가 던진 것도 있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도 있고 그렇다.
강사도 수강생들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지금 던져진 질문인지라 잘 와 닿지가 않았다.
천천히 숙성시켜나가야 하는 문제들이라 생각한다.
.
.
.
사람들은 왜 르포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까
좋은 다큐멘터리의 요건은
윤리의식이라...
르포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혹은 접하고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앎을 통해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찍고자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
.
.
작년 13회 인천인권영화제에서 '빛나는 삶'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부당한 정리 해고에 맞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작년에 이 작품을 볼 때, 투쟁이 500일이 넘었다고 했다.
지금은 2009년 11월. 투쟁이 1000일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위장 폐업을 하고 노동자를 부당 해고한 이 회사는 여전히 잘 굴러간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진 사이,
부당 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2년 반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일터에서 내몰린 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기타 제조 회사인 콜트악기의 숨겨진 진실과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해외로 원정을 가고,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4956
인천인권영화제를 찾은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수줍어하던 한 노동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강하고 억척스럽기보다는 따뜻하고 여린 어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평생 일했던 일터에서 쫓겨나고도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일년이 지난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분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분신했던 동료의 이름을 입 밖에 낼 때,
조금 더 심하게 떨렸던 목소리와
그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던 이름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아직 잘 모르겠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습을 담아내는 것,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잘 들리게,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잘 드러나게 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살아있는 목소리, 생생한 증언을
듣고 기록하고 또 들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작은 목소리가 모여 함성이 되고 작은 목소리가 이어져 역사가 된다.
작고 수줍던 그분의 목소리가 일년 동안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작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건,
분명 잘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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