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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필라 운동’ 만주와 샤말

꽃필라 운동’ 만주와 샤말

두 사람 앞에 서자 고단하다 느꼈던 내 삶은 투정이 되고 만다. 만주와 샤말은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 잊혀지지 않을 ‘영웅’이지만, 그들의 삶은 누군가의 말처럼 ‘던져진 삶’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모욕을 견뎌야 했고, 또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품에서 꿈을 꿀 나이에 16살의 만주는 가족을 위해 홀로 한국에 왔고,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 세 개를 잃고도 보상은커녕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길거리로 쫓겨났다. 그가 같은 처지에 놓인 12명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우리도 사람”이라며 1994년 1월부터 벌였던 한 달간의 농성은 우리사회에 이주노동자 실태를 고발하는 최초의 행동이었다. 농성은 산업재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과 보상 실시라는 큰 성과를 일궈냈지만 19살 그는 꿈을 잃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생활-


“한국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좋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어린 그의 투쟁이 우리사회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했지만 그는 사람들이 무너진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드러눕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그래서 절망과 공포가 너무 컸을 때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의 투쟁에 격려와 지지를 보냈고 손을 잡아 주었다. 그때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했단다. 앞으론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겠다고.


귀국한 그는 ‘네팔 노동조합 연맹(GEFONT)’에서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책상뿐이었지만 얼마 후 이주노동자를 위한 상담소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는 네팔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운동가로 우뚝 섰다.


하지만 고단한 삶은 오늘도 계속된다. 3명의 동생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 장애인으로, 그리고 전통적인 네팔 사회에서 미혼 여성으로 그는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꿈을 꾼다. 아직도 손을 대면 신음이 새어나올 듯한 상처를 딛고 오늘을 살아내는 꿈을. 컴퓨터를 전공하는 학생으로, 아동노동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로.


네팔 이주노동자 연합 사무국장,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위원장으로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샤말. 그의 20대 역시 한국의 공사판에서, 공장에서, 신문배달을 위해 오르고 또 올랐던 뒷골목에서 지나갔다. 성실히 정직하게 일했지만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욕설과 모멸이 따라다녔다. 생존을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던 이름 모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차별과 천대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꿈을, 목숨을 잃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투쟁을 시작했던 그는 2004년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체포돼 그해 4월 네팔로 강제 추방됐다. 10년 만에 돌아간 고향 땅이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반정부 인사’로의 낙인과 생존과의 전투였다. 자신을 주체하기도 버거웠던 그는 한국에서 2년 동안 일했지만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추방된 또 다른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았다. 공부를 가르치고, 직장을 알선해주고, 가족들의 생계를 도와주고. 사람들의 칭찬에 그는 말한다. ‘더불어 사는 것, 손잡는 것일 뿐’이라고. 낮에는 노동운동가로, 밤에는 생계를 위한 직장인으로, 그리고 학생으로 바쁜 삶을 사는 샤말.


-귀국후 네팔 노동운동가로-


그들은 20년 전의 자신들인 어린이 노동자들을 위한 꿈을 꾼다. 어린이 노동자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한 ‘꽃필라(피지 않은 꽃봉오리에 꽃을 피우는 운동/KOPILA)’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 이를 위해 네팔의 활동가들은 월급의 5%를 보태고 있다. 오랜 가난과 계속된 내전 속에서 네팔에만 2백50만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과 탄광과 거리에서 일한다.


1,000원도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14시간의 노동과 학대를 견디면서. “당장 현실을 바꿀 순 없지만 최소한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 꿈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꿈꿀 수 있기를, 샤말과 만주가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당신 역시 손을 맞잡아 행복해지기길.


<네팔 카트만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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