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한 술자리에서 후배가 하던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이해하였다. 그는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 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노통의 생전에는 스스로의 철학이나 이념 없이 그를 막 까대다가, 이제는 눈물을 흘리며 노통을 추모하는 이들과 자신이 같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는 노제에 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노제 날 광화문에 일이 있어 잠깐 들러보긴 했지만 나도 노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후배처럼 대단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고 구경하는 정도 이상으로 머무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무튼 말하려는 건 노제에 갔느냐 마느냐는 아니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이외의 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치 참여의 한 방식인 집회에 대해 특히 그렇다.  이러이러한 점에는 공감하지만 그 집회에 나오는 다른 많은 이들의 이념이나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는데, 그 곳에 가면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같아져 버리기 때문에 집회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을 이전부터 많이 보았다. 행여나 오해받기가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는 것일까? 그냥 내 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다는 소박한 이유에 차라리 진정성이 있다.

 

  그토록 자기 정체성을 세밀하게 보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집회에 가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당신과 그들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때, 당신이 가장 같은 부류로 오해받고 싶지 않은 이들이란, 곧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식에서 비롯하는 온갖 편견에 휩싸여 있고 보수꼴통들일 것이다-과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점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 시간을 엄청나게 쏟아가며 직접 판을 꾸리지 않은 이들도 단지 참여를 통해 자기 표현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물론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말이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고 어딘가에 가고 싶다면,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의 결백을 설명하기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해서 그곳에 오지 않는 이들과 자신의 차이를 통해 결백을 주장하는 게 훨씬 쉬운 일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지 나는 어린 후배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시다시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나 역시 많이 붙잡혀 있던 문제이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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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0 01:23 2009/06/2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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