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봤다. 사람의 허리와 넓적다리를 이어주는 본래의 역할을 상기시키지 않는, 어느 유기체의 일부로서가 아닌 그냥 엉덩이, 둥글고 커다란 엉덩이. 내가 그간 봐온 엉덩이란 사람의 옷맵시, 몸매, 체형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엉덩이, 겨우 그 정도였지 엉덩이를 그저 엉덩이로서만 인식해본 적은 없었던 거다. 스무 해가 넘게 살면서 엉덩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었다니...

 

  주말의 번잡한 강남역 출구, 층계 중간에 그 엉덩이가 솟아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바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들의 엉덩이는 모두 머리보다 저만치 아래 달렸는데, 얼굴을 바닥에 묻고 엎드린 그이의 엉덩이만 마음껏 푹 퍼진 채 위를 향했다. 누군가의 소유물로서가 아니라 엉덩이 개별 자체의 특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정말 보기 드문 엉덩이... 사람은 그나마 사람에게는 가끔 적선하지만, 인격이 없는 것에까지 동전을 베푸는 일은 드물다. 얼굴을 가리는 건 구걸의 필요조건을 내팽개치는 일이다. 엉덩이 주인은 목적을 달성했을까?

 

  거대한 엉덩이나, 사람에 섞여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의 표정이나,  뒤를 홀깃거리며 내빼는 새끼 고양이의 뒷모습이나... 제가 쓸쓸해 보이는 줄 모르는 것의 쓸쓸함은 되려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군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1/16 14:20 2011/01/16 14:20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297

« Previous : 1 : ... 77 : 78 : 79 : 80 : 81 : 82 : 83 : 84 : 85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