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 있던 레코드점이 점포 정리를 하더라. 같이 걷던 친구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면 육년간 거기에 한번인가 들어가보고 말았던 내가 그곳에 관심 가질 일은 없었을 거다. 막상 들어가서 70% 할인가로 팔리는 음반들, 90년대 가수부터 최근 아이돌 것까지 시대가 잡다히 섞인 CD들을 살피다보니 괜한 감상에 빠졌다. 슬펐다. 마지막 동네 서점인 21세기 문고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서 음반 가게까지 사라진다니, 무언가 사라진다는 건 당연한 거지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날로그 식의 감성에 가끔 동화될 때가 있는 법이다... 어쩌다보니 나도 CD 한 장을 사고 말았다. 한잔 술 값도 안 되는 돈인데, 살 때는 왜 그리 망설여지던지.

  영턱스 클럽을 기억하는가? Young Turks Club. 여기서 Turks는 대체 무슨 뜻일까? 내가 채 열 살도 되기 전, 그들의 노래에 열광했을 땐 한번도 궁금해본 적이 없었다. 영턱스 클럽에 특별한 추억이 있던 건 아니다. 그냥 우연찮게 CD 한 장을 사면서, 영턱스 클럽이 왠지 내게 특별한 기억이 된 거 같은 기분에 잠깐 빠졌달까. 오랜만에 CD를 돌린 노트북 스피커에선 별로 귀에 붙지 않는 노래만 흘러나와서 시끄럽다. 

  음반 가게와 CD가 아니었다면, 내가 언제쯤 다시 영턱스 클럽을 기억했을까. 기약 없는 질문이다. 작년 어느께엔가 동네에서 빵을 사면서, 이 빵집 자리가 수 년 전엔 어느 찻집이었단 기억이 퍼뜩 떠올랐던 적이 있다. 내 추억 혹은 기억은 동네 상권과 학내 건물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가장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깨달음도 함께 퍼뜩 왔다. 사람들이 단골 가게를 찾는 이유 중에는 그 곳에서 떠오르는 수 겹의 기억들을 마음껏 곱씹어 보고 싶어서도 있을 테다. 기억은 가끔 좋은 자위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언제 나고 드는 줄도 모르게 새로운 상점들이 생기고, 오래 좋아했던 가게들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서울의 내 고향같은 이 작은 대학가 상권의 불안정함은 한편 다행스럽기도 하다. 프랜차이즈가 영 탐탁치 않은 건, 그때 그 곳의 기억이 어떤 다른 장소에서도 재생될 수 있을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사랑과 끈덕지게 가던 술집은 문을 닫았고, 뒤끝이 좋지 않았던 소개팅을 했던 카페는 여전히 눈에 밟힌다면, 현재를 기점으로 해서는 어느 사람이 더 자주 기억되겠는가. 결국에 (옛) 기억을 지배하는 건 공간과 냄새, 이런 것들인데, 내 몸 누일 방 한 칸에도 붙박기 어려워 부유하는 서울에서 누군가와 공유한 공간이란 거의가 소비의 공간이다. 그들의 사정에 따라 사라지고 또 다른 사정을 가진 이들이 개점을 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내 운명이 뜻한 바대로 흐르지만은 않듯이 기억하는 행위에도 그런 면이 있었구나, 경험이 강렬하고 깊었대서 그 기억이 꼭 오래 남는 조건이 되는 건 아니라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깐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영턱스 클럽보다 H.O.T.를 훨씬, 백 배 더 좋아했었다. 가게에 H.O.T.음반은 없었고, 그래서 나는 왠지 저 멀리 아련한 90년대를 추억할 아이콘으로 영턱스 클럽을 그 순간 택했던 거다. 다른 기억이 더 없었다면 정말 그런 게 됐을 테고. 근데 간만에 사 듣는 음악이 영 귀에 달라붙지 않아서 금방 잊겠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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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23:35 2011/01/0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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