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안 다닐 때였으니 대여섯 살  쯤이었을 적의 일이다. 동생과 나는 배가 고팠다. 엄마가 밥을 안 주고 누워서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우며 엄마 밥줘, 라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내가 니들 식모냐?" 그때가 아마 엄마가 전날 아빠와 싸우고 난 다음날이었을 테다. 엄마는 아빠랑 싸우고 나면 다음날 가게도 나가지 않고 밥도 주지 않고 종일 누워 있곤 했다. 가끔 생각난다. 내 나이는 그때 엄마의 나이와 가까워져 가는데, 그때 엄마의 삶은 어떤 거였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 한글을 뗄 때, 이모가 아이들 보는 한글 글자판 같은 걸 사들고 놀러왔다. 엄마는 애가 자꾸 물어보고 귀찮게 하는데 왜 이런 걸 사왔냐고 짜증을 냈단다. 이모랑 술 한잔 하면서 들은 얘긴데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주저리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으며 이모를 탓했다.

  엄마를 나쁜 사람 만든 것 같은데, 엄마는 일년에 몇 번 빼고는 매 끼 나에게 밥을 먹였고, 나를 위해 각종 전집을 샀고 자주 읽어줬다. 

 

  열흘 전쯤 엄마에게 문자가 왔었다. 힘들어도 기운내서 잘 지내라고, 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항상 화이팅이라고, 그리고 엄마의 고정 레퍼토리인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애인도 생긴다고 하하. 아르바이트 하나를 그만두게 됐다는 소식을 동생에게 듣고선 내 빈 통장에 돈도 넣어놓았다. 엄마가 준 돈으로 나는 여행도 가고 술도 마셨다.

 

  이번 추석 때 나는 집에 내려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번까진 가고 설에는 안 가야지 생각했었다. 엄마 아빠 만나기도 부담스럽고 친척들 만나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내가 집에 있는 사흘 동안 내게 구직활동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친척들도 그랬다. 그리고 내가 터미널에 가려고 택시를 타러 나올 때 엄마는 배웅을 나와서 내 손을 잡고선 '올해는 힘들겠지' 한마디만 했다.

 

  아빠는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약간 늦었기 때문에, 아빠 친구들 자식들은 대강 다 취직했다. 그래서 모임에 나가면 아빠는 친구들이 자식이 어딜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원래 딸 자랑을 지나치게 하고 다니던 아빠는 듣고만 있다가 집에 와서 푸념을 늘어놓는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느네 아빠 할 말이 없어서 어쩌냐고 웃었다.  

 

  재작년엔가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엄마가 나와 동생더러 취직하면 한달에 50만원씩은 내놓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계산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나도 돈 모아서 집 사고 결혼해야 되는데 50만원은 너무 많다고, 엄마 아빠도 아직 돈 버는데 왜 내 돈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잘라 말했다. 동생은 그냥 하는 말인걸 그냥 준다고 하면 되지 나쁜 년이라고 욕했다. 경제적으로 거의 독립해서 생활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 아빠에게 뭘 해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올해 완전히 백수가 되면서는 엄마 돈으로 내가 망가뜨린 장비를 사고, 충치 치료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기를 썼던 건 엄마 아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네들이 혹시나 내 인생에 관여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까봐 무서워서였다. 이제야 나는 받는 일이 어떤 건지 좀 배워간다.

 

  몇 년 전에 엄마는 집으로 보냈던 내 짐 꾸러미에서 담배 케이스를 발견했다. 친구가 선물한 거라 갖고 있었는데, 엄마의 전화를 받고 X됐다 생각했다. 나는 그냥 예뻐서 갖고 있는 거라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했고 엄마는 그냥 넘어갔다. 후에 동생이 얘기해줬는데 엄마는 걔는 담배를 피울 것 같다고 했단다. 후에 동생이 내가 담배 피운다는 뉘앙스를 흘렸을 때도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집과 떨어진 고등학교에서 기숙사에 살던 시절 나는 평일에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집에 와버린 일이 몇 번 있다.  대학에 와서도 그랬다. 그때 엄마는 혼내거나 뭘 묻거나 하지 않았다. 가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뒀다. 초중학교 때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정부리면 가지 말라고 했고, 끄떡하면 꾀병으로 조퇴를 해도 뭐라고 안 했다.  

 

  엄마가 아빠와 못 살겠다고 울면서 전화했을 때 나는 엄마 인생이니 그냥 이혼하라고 말하고 말았다. 엄마가 내게 바랐던 게 무엇인지 몰랐던 건 아닌데 내가 너무 좁아서 엄마를 토닥여주고 안아주지 못했다. 그런 일이 처음이라 엄마가 나에게 의지하려고 한다는 게 무서웠다.

 

  무슨 얘길하다였는지 모르지만 한번은 엄마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유학도 못 보내주고,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할 때면, 엄마 아빠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쓰고 말았다. 수련회 가서 으레 하는 촛불의식 때 다들 부모님 생각하며 눈물 흘릴 때도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쑥스러워서 엄마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글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자꾸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자꾸 느낀다. 엄마 말은 다 맞는 거 같다. 이렇게 다 말해주고 싶은데 말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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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15:25 2010/11/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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