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일어나는 분란의 많은 경우는, 어느 한 쪽도 특별히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는데도 우연과 오해로 인해 일어난다. 그래서 사실 내가 의도적으로 잘못한 건 없더라도, 역지사지의 윤리를 열심히 복습하고 서로를 상하게 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끝내면 딱 훈훈한 마무리다. 그리고 결국 잘 해결됐더라도 사실 상처를 주고받은 이와 다시 아무렇지 않은 관계로 돌아가기란 시간과 공이 들기 마련이라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 피곤한 일이다. 연인과의 이별이 아무리 끝이 좋았어도 길에서 마주치는 것까지 달가울 리는 없을 것처럼. 게다가 별 연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일이라면, 진심으로 한번 사과하고 각자 갈길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당사자가 괜찮다는 데도 필요이상으로 여러 번씩 구구절절 사과와 상황 설명을 늘어놓는 게 과연 사과인가? 빨리 끝내고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자꾸 신경쓰이게. 말이 사과하고 싶다는 거지 상대의 마음보다는 자기 결백을 확인하고 증명받고 싶은 이기심이다. 세심한 것도 좋지만 거기다 대고 전 정말 괜찮다고  반복해야 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나? 그러다보면 괜찮았던 것도 안 괜찮아진다. 문제를 대화로 푸는 게 중요하대도 맥락이 있고 정도가 있다. 남남인 사람과 앉아서 들었던 소리 또 듣고 괜찮은 척 연기해야 할 일을 생각만 해도 열이 받아서, 나는 엄청 바빠서 휴대폰 손댈 시간도 없다고 당당히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대놓고 완전히 사실무근인 거짓말을 해본 건 처음이라 좀 설렌다.

 

  정말 제대로 사과해야 할 인간은 왠지 미적대고 있고, 그냥 간단히 끝내도 될 일 가지고 누구는 난리를 치고. 학교에선 사과하는 법 이런 걸 정말 가르쳐야 된다. 보고 배울 게 맨날 말로만 사과하는 정치인들 밖에 없으니 나라가 이모냥이지.................으허 뭔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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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17:51 2010/11/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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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u_topia
    2010/11/03 20:13 Delete Reply Permalink

    이런 것도 있네요. 용서한다고 하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특히 기독교인들), "절대 용서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1. Re: 어느바람
      2010/11/05 21:26 Delete Permalink

      용서란 무엇인가도 적어봐야 할까요? ㅋㅋ 당장 내 일이 아닌 남의 사과에 대해 얘기하긴 쉽지만 용서란.. 참 너무 어려운 얘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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