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찾아서라니 퍽 거창한, 아니 거추장한 제목이다. 저런 제목을 달고서 글을 쓰자면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진실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깊고 무겁다. 사실로도 진실은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모두가 가볍고 싶어하므로...

 

"결혼하는데 부담스럽고 돈 들 게 뭐가 있나. 생각을 바꾸면 된다. 원룸에다 원래 쓰던 가구들 쓰고 몸만 합치면 되는 거 아닌가."

 

가장 최근에 진실을 안겨준 말이다. 그이들은 손님을 위한 독채가 딸린 집과 주유소와 펜션까지 소유한(임대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이었고 나는 앞으로 원룸에선 신혼이든 독신이든 어떤 생활도 할 생각이 없지만 그와 별개로 진리는 사람을 자유케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 것만을 정해둔 짧지 않은 휴가에서 뭘 찾고 싶었던지 스스로도 몰랐는데, 저 말을 해준 부부의 집에서 하루 묵던 밤 차를 퍼마시면서 내가 여행에서 바랐던 게 뭐였는지 깨달았다.

 

그전에 전주에서는 술을 마시다가 "나는 내가 이미 다 커버린 줄 알았는데 너무 많이 커버린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완전 완전 초짜구나!!" 이 비슷한 말을 술집노트에 적어 넣었다. 눈이 시큰하고 시원했다. 부끄럽게도 정말 그 순간에야 처음 알았던 것이다.

 

남들은 너그럽게 넘기는 작은 허위를 견디지 못했던 졸렬함이나, '인간적'인 것을 알면서도 나와 화해할 수 없던 순간들.. 온 삶 동안 찾아 헤맸던 건 진실이었음을 퍼뜩 깨달았던 순간에 눈물이 났다. 이런 문장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서는 안 된다. 내게 이런 걸 안겨준 건 문학이다.

 

신형철은 문학이 아닌, '문학적인 것'을 말했다. 문학적인 것의 핵은 진실 혹은 본질. 나는 소설을 썼고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를 찍었고 연기가 애타게 하고 싶었고 시를 썼고... 나만의 장르라는 게 뭔가, 불안해하며 찾고 싶었던 것도 안정감에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이다. 어디서든 진실만 붙잡고 버티면 된다.

 

어느 순간 그냥 시를 써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냥 그랬다. 손아귀 틈새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기분... 말했다가 토로했다로 바뀔 때, 결- 매일같이 결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나날들에서 뭘 잃어버리고 있었는지 나는 마음 깊이 알고는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에 대해 자기 생각보다 훨씬 잘 안다. 시가 가장 적은 우회로를 지나 진실로 직구하는 장르라는 건 본능적으로 느꼈던 같다. 문학적 본능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인의 본능이다, 시는 가장 돈이 되지 않는 장르이므로. 공정하게 돈이 들지도 않는다.

 

시는 겨우 찾았다고 생각한 세계평화를 산산히 깨트렸고 지금 나는 몹시 가난한 것 같다. 가난하다는 말을 좋아하지만, 전방위적으로 가난하다고 말하려니 마음이 쌔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카뮈는 가난은 모든 것에 제 가치를 돌려준다고 했다. 더더욱 가난해져야 한다. 가난과 함께 오는 자폐의 시간, 오늘 어느 선배는 사람을 사귀어야 정보를 얻는다고 충고했고, 나는 알겠습니다 대답하면서 사람을 사귀는 일이라니 정말 끔찍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실과 가까워지기 위해 캐치프레이즈에 진실을 담은 회사를 나오려 한다니 아이러니다. 기자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발견하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그 결과물은 지독하게 진부한 데다 언제나 일정 함량 이상의 거짓이 섞여 있다. 정재계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받고 도처에서 성폭행과 칼부림이 일어나고 공무원들이 일년 전 정책을 재탕하여 다시 내놓는 일은 천 년 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고 오늘의 1면과 5년 후의 1면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혀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그러나 누군가 그런 지루한 일들을 매일같이 말해주지 않으면 세상은 지루가 아니라 지저분해질 터, 언론의 진부함은 진부한 것들이 모두 그렇듯 어느 무엇보다도 덜 숭고하지 않다. 그러나 나의 존경은 논리적이고..

 

누구나 진실을 찾는 방식은 자기 나름인 것이다. 기자가 되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몇 년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모든 것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청춘식의 불안에 몸을 맡겼다. 고등학생 때부터 해온 모든 적성검사와 성격 검사는 내 길을 뚜렷이 가리켰고, 나는 생각보다 나를 훨씬 잘 알고 있으니 나에 대한 앎에 대해서만은 좀 자신을 가져도 좋다. 외로움과 더 가까워진 것 같지만 외로운 느낌이 없어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7/17 20:29 2012/07/17 20:29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384

« Previous : 1 :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