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조차에도 글을 써본 지가 오래에다 빈도는 갈수록 뜸해진다. 공개든 비공개든.. 나는 글을 쓰면서야 생각을 한다. 생활에 대해 성찰을 하지 않으니 글을 쓰지 않고, 그러다보면 생각하는 방법을 점점 더 잊어간다.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지우고 덮고 나를 속여가면서.. 일부러라도 머릿속을 헤집어서 쓰고 말해야 한다.

  마감 일자는 곧 다가오는데 소설은 잘 쓰여지지 않는다.. 두페이지 정도나 썼다가 다른 소재로 또 조금 써보다가 집어치우기를 반복하고 있고 마음만 다급하다.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그냥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내 삶과 내 태도가 솔직하고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에, 글 쓰는 마음에도 진정이 깃들지를 못함을 안다. 수 년 전에 지인이 나더러 김수영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냥 지나가는 한마디에 그때야 무슨 뜻인지도 잘 몰랐지만, 왠지 허세를 채워주는 느낌에 마음에 드는 말이라 이제껏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로 언행일치, 사행일치에 대한 강박과 어쩔 수 없는 간극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커서 거기 눌려 질식하겠던 청춘의 한 시절도 있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오래 바라왔지만..

 

-아침에 경찰서를 돌지 않고 편하게 집에서 두시간 더 자기 위해서 사건을 지어내서 보고하고, 혹여나 놓친 부분을 선배가 물어올 때면 곧바로 답을 지어내고.. 수습 말년의 생활이란 그런 거였다. 거짓말하는 법과 내 이름이 달려 나가는 기사를 내가 쓴 게 아닌 것처럼 마음에서 떼어내기 위해 기를 쓰는 법.. 틈만 나면 잠을 청하는 습관. 이제 와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때 그런 것들을 배웠던 게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가늠해 보기도 어렵다. 그 탓만을 하려는 건 아니다.

 

-최근에 봤던 '광대 샬리마르'에는 사람의 성품과 마음은, 사랑은 언제든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매우 잘 나와 있다. 내게는 그게 그 책의 주제처럼 느껴졌다. 살만 루슈디의 책은 처음이었는데 반했다. 이후로 유명하다는 '한밤의 아이들'을 읽는 중인데, 이 책이 영국 최고 문학상을 3번이나 받은 건 인도를 식민지배한 역사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도 큰 것 같고, 기대보다는 좀 못 미친다. 물론 그 작품 발표했을 때 작가는 20대 후반에 불과했다지만... 

 

-병신같은 년, 씨발, 머저리같은 것들. 옆집 말소리가 다 들린다. 옆집 사내는 매일 커다랗고 착해 보이는 개나 식구들에게 한두번씩 욕을 하고, 두번인가 크게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다. 이외수가 씨발, 할 때마다 하늘에서 별이 하나씩 떨어진다고 했던가, 옆집 사내가 욕을 할 때마다 나는 아프다. 얼마 전부터 친구가 쓰는 걸 따라 씨발 대신 수박을 써보고 있다. 주옥같다는 별 같다로 바꿨다.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 골칫거리는 없다 정말이지. 반십년 정도는 수련해야 좀 알겠다 싶겠지만, 두달 된 내게도 합기도는 점점 손에 익어가고 즐겁다. 힘들다 엄살 부리는 이들도 많지만 여러모로 기자는 하기 편한 일 중의 하나고, 나름 보람과 재미가 있는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선망과 환상과 질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여태 만나 그 수많은 기자 중에 멋있는 놈 하나가 없다... 정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게 나를 좀먹는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그저 월급쟁이가 됐고 모두가 나를 월급쟁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던, 꿈에 지랄맞게 아프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끝나지 않았다. 몇 달 하면 휙휙 될 줄 알았던 합기도인데, 아마 평생 하게 되겠구나 마음이 간다. 평생 예정하면서 정거장을 들리듯,

 

-오랜만에 자소서를 썼다. 꼭 드라마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거즌 진실이다.

"꿈과 간절함이 없는 삶은 아무리 안온해도 퍼석거리고 위태로울 뿐임을 알았다. 열렬한 짝사랑의 대상이야말로 사람이 간직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1년 남짓 다른 일을 해오면서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내 가장 순정한 사랑인 드라마에 대한 못난 질투와 선망을 거둬들일 수 없으리라는 거였다. 내가 세상을 호흡하는 방법은 드라마로 정해져 있다는 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10/03 23:01 2012/10/03 23:01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peel/trackback/391

« Previous : 1 :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 22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