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 합기도를 만났을때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합기도가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때 비참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거짓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출장과 해외에서 보낸 휴가를 연달아 마치고 남은 감정은 비참함과 열등감이다.
태국인들은 내게 강남스타일과 싸이, 소녀시대와 성형수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독일인을 만나 토마스 만과 귄터 그라스, 타인의 방과 굿바이 레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도 이청준이 있다, 그렇지만 이청준보다 싸이를 더 존경하는 한국인들이 훨씬 많을 거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사람들이 격분해 있는 한류는 문화라기보다 욕망이고, 예로 든 독일 문화는 정신이다.

신경 안 쓸고 살던 걸 새삼스럽게 생각하면서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

한류 한류 해봐야 결국 젊은이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손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문제다.


수영할 때 편하기 위해 입는 수영복 입을 때도 몸매에 신경쓰는 나라, 주변국으로 전파한다는 게 성형인 나라, 유학은 다 외국 가서 하는 나라, 학계는 권위주의 병폐로 찌든 나라... 교육과 노동 환경은 또 어떠하며. 여성으로서 외모 압력과 겉치장도 주요 스트레스거리고..


다 알고 있던 거지만 여기서 계속 살 걸 생각하니 나쁜 점만 떠오르면서 피곤해진다. 바람이 들어 잠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지.. 우리나라의 역동성은 참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내 타입이랑은 잘 맞지 않는 나라다. 어느 곳이든 자기와 맞는 정신이 있는 곳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처음 든다.


전에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이유는 한글과 국문학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땐 그 사랑이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 외에 사랑할 수 없는 것들만 떠오른다.

 

회사에선 견문 넓히라고 해외 출장을 보내고, 연이은 휴가도 맘편히 다녀오게 해줬는데 그 결과 나는 다시 직업에 회의를 품고 일에 의욕을 잃었다.


작은 기사라도 기사를 쓸 때마다 이게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느 부분에서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꼭 따지고 납득하면서 쓰자..

여전히 초짜지만, 처음 기자가 되면서 내가 세운 원칙이었고 100%는 못 되도 꼭 스스로 설득할 수 있을만큼 일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기자로서의 특혜, 별다른 게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나 대우 측면 등이 내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자주 인지하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기 어려워질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시장도 공무원도 아니고 시민들의 삶이 다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자로서 역할놀이에 몰입한 지도 모르게 몰입하면서, 나름의 보람과 감동은 충분했고 안정감이 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었나? 그리고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나한테 중요한 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거짓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인데..

참, 맨 위에 인용한 글은 아이키도 선생님이 쓰신 글이다. 십수년 간 몸바쳐온 것을 버리고 진실을 찾은 용단을 생각하면, 그 외 것들도 생각하면 우리 선생님 참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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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23:07 2013/03/1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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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학성
    2013/03/24 21:08 Delete Reply Permalink

    토마스 만과 이청준에 대해서 독일말로 이야기하였단 말씀이십니까

    1. Re: ㅎㅎ
      2013/03/26 17:09 Delete Permalink

      설마 그랬을라고ㅋ 영어를 쓰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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