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살던 집을 나와 떠돌다가 겨우 안착한 동네가 아이키도 도장 인근이었으니.. 어느 하나만 들어맞지 않았다면 내가 아이키도를 만나지 못했을 걸 생각하니 아찔할 정도다. 이 인연을 생각하면 믿는지도 모를 신께 벅차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문학과 사랑(=가정)만이 내가 평생 가져갈 두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이키도가 금세 따라붙었다. 내 가장 부족하고 못난 점을 자주 깨우쳐 주고 돌아보게 해주니 인생에 이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

 

 

 

  저같은 사람 이야기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적습니다.

 

 어느날 9시부 수련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고개를 숙여 “미안합니다” 하시던 모습의 여운이 깁니다. 사과하실 것이 없는데 사과를 받아 민망스럽기도 하고 진심이 느껴져 감동돼기도 하고요.

 

그날은 선생님께, 도장에 나와 그날 그날 배우는 것을 따르는 것 외에 뭘 더 하면 좋을까 여쭈었습니다. 공부할 때 강의만 들어봤자 학습 내용을 소화 못하면 쓸모 없는 것처럼 제가 아이키도에 대해 그런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말씀 드렸고요. 저는 제 미련함 때문에 잘 안되는 것 같아 질문한 건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런 기분을 갖는 것은 당신께서 초심자를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미안하다고 하신 거였습니다. 저로서는 초심자로서 받은 게 너무 많아 죄송할 지경인데요..


지난 금요일에 어버버하며 7급 심사를 마치고 선생님 말씀처럼 어쨌든 유급자가 되었습니다. 지인이 그럼 이제 너가 무도인이냐는데, 민망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무도는 한참 멀었지만 그간 아이키도를 만나고 얻은 게 참 많습니다.

 

 스트레스 풀려고 시작한 건데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이러고 있나... 처음 두세달 간 도장 다니며 가장 많이 한 생각입니다.

 

 뭐든 운동을 하나 해보려던 차에, 마침 집 근처에 본부도장이라니 좀 있어 보이고 검도같은 것보다 덜 번거로워 보여 아이키도 도장을 찾았습니다.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은 시기에 내 몸이라도 쥐고 통제하고 싶었고, 곧 유단자가 돼서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만 상상했지요.


 그런데 현실은... 도장에선 세상 없는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도장 갈 생각만 하면 한숨이 먼저, 갔다 나오면 기분은 바닥까지 처졌고요. 뭐든 처음 뛰어들면 무참히 깨지고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알았지만, 몸 쓰는 일은 처음이라 최소한의 감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다 보면 나아진다는 말을 믿어보자는 마음과, 덜떨어진 내 몸으론 안되는 거라는 마음 사이에서 매일 그네를 탔습니다.

 

 주변에 합기도 다닌다고 호들갑 떨었던 게 창피해서 버텼지만 그뿐만이었다면 곧 그만뒀겠지요. 당시엔 잘 몰랐지만 아마 제가 끌렸던 것은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장 안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제게,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한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가르쳐 주는 것도 이상했고, 또 싸울 일이 생기면 싸워야지 피하라시니.. 대체 여긴 뭐지? 했어요. 이해가 안 갔지요.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저 스스로도 가져본 적 없는 마음이었습니다. 무능력은 죄에 비호감이고, 누군가 뭘 못하는 건 자기 게으름 탓이니 알아서 극복할 일이라 여겼고, 봉사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으니까요.


 어떻게 이런 방식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내내 머리 한쪽을 차지하게 됐고, 관용과 배려, 인내처럼 전엔 생각해본 적 없던 주제에 사로잡히게 됐습니다. 어느 날엔가 갑자기 선생님과 선배들에 감사한 마음이 둑 터지듯 몰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직 일천하지만 기자로 일하고 있는데요. 어느 일터나 아이키도 도장같은 원칙이 작동하는 곳은 드물겠지만, 언론사는 개중에서도 극단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실수할 수밖에 없는 극한조건에 던져 놓고 실수에 무자비하고, 싸움을 장려하는 게 기본 교육방침입니다. 자기 과시가 자연스럽고, 타인에 대한 감정적 배려는 버리기를 요구받습니다.

 

모두의 입장을 다 배려해서 따지다 보면 세상에 잘못된 게 없고, 당사자의 잘못이 아니라도 공익에 해가 되는 일도 있으니까요. 기사 때문에 누군가 곤란해지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라, 남의 기분은 잊어야 내가 덜 괴로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뜻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훈련이 되는지, 점점 많은 일에 냉담해지는 스스로를 느끼면서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종종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쓰니 마치 제 일터가 나쁜 곳 같지만, 나름의 보람과 감동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회 초년생으로서 새로운 일들을 겪으면서 내 원칙이나 윤리가 어그러지고 뒤바뀌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도장에서 주시는 말과 행동이 제 도덕률이 돼고 반성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왠만해선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 못됐는데, 선생님이 수련 중에 기술을 가르치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체감하면서 들으면 절실히 와닿습니다. 제 몸 또한 세상 만물의 하나이니, 그 말씀이 곧 진정 세상의 이치구나 싶어 감동스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아이키도에서 ‘힘을 뺀다’는 것의 의미를 길게 가르쳐주셨던 날이 있습니다. 원하는 바에 아득바득 매달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 원해야 얻는다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 굉장히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성실함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았던 걸 반성한다고, 한동안 모든 일에 안달복달난 것처럼 성실하게 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제스춰에 불과했고 마음은 함께 성실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는 걸, 그 시간 팔에 힘을 줬다 뺐다 하는 동안에 깨달았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일도 사랑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적도 없었지요.

 

 그 당시에도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강박적으로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날 힘을 뺀다는 말을 배우고 나서야 제가 허영심 때문에 내 꿈을 모독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허위의식 없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외에도 남의 평화를 위해 먼저 다가가라, 초심자에게는 눈빛까지도 친절하라,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 등등... 아이키도 덕택에 어떤 게 행복한 길인지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가르침 아래서도 몸은 여전히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ㅎㅎ 어느 선배는 모두 각자의 속도가 있는 것이라셨고, 평생 신경쓰지 않던 몸이 한순간에 내 맘대로 될 거라는 기대도 욕심임을 압니다. 그저 선생님과 선배들에 폐도 좀 덜 끼치고, 가르친 보람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은 거지요.

 

그래도 이젠 도장 오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지만, 여전히 수련 시간의 대부분은 자괴감과 비참함의 향연이랄까요. 이 또한 참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기자가 되고 노숙인부터 고위 공무원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힘있는 이들일수록 기자에게 과한 대우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불편하면서도 어차피 자기 목적을 위한 것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어느새 저도 모르게 분수에 맞지 않는 대우를 당연시하게 될까 항상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도장에서 헤매고 자괴하면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뭔가를 이토록 해내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기만 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이전보다 도움받는 일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저 뻔뻔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장에서 받은 만큼 남에게 해야겠다 싶어 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도 하게 됐습니다.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배려까지는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간 일을 하면서 만난 이들에게 무심했던 걸 가장 많이 반성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지치기도 했지만 단지 제 편의 때문에, 타인의 호의에 사무적으로만 대하고 감사할 줄 몰랐거든요. 당연히 미숙한 회사 후배를 가르치기보다 짜증도 냈고요. 무튼 실천은 참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감탄하고 있습니다.

 

 쭉 적다 보니 아이키도를 만난 인연이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도장 근처로 왔을 때는 주거지 관련 불쾌한 일들이 연속돼 갑자기 이사하면서 몇달 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이 컸는데, 이제 보니 아이키도를 만나라고 예비된 일들이었으니 어찌나 감사한 행운인지 싶습니다. 제 부족함을 보듬어주는 선생님과 선배님들에 그저 고마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저도 언젠가 후배님들에게 열심히 베푸는 선배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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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3 16:45 2013/02/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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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3/04/04 16:45 Delete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Re: 어느바람
      2013/04/07 00:04 Delete Permalink

      네 그저 감사해요ㅎㅎ 또 자주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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