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에 나는 꽤 잦은 부음을 접했다. 친구 아버지 세 분, 고모부 두 분, 선생님 한 분, 열사 다수. 사실 모두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죽음 자체를 애도하기보다 산 사람들의 슬픔을 슬퍼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아가 눈물을 흘렸고, 눈물이 나오지 않아 곤란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열사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만은…

 

  몇 달 전, 박경리 님이 가셨다는 소식을 기사에서 읽었을 때 나는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런 느낌임을 처음 알았다. 물론 나는 그 분을 먼 발치에서도 본 일이 없고 당연히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다. 다만 밤을 새우고도 그치기 싫던 독서의 기억, 어느 여름 붙들고 살았던 그 토지가 지금의 나를 얼마만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것일지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을 헤아려 보다가, 그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져서 우리가 잘 알았던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있는 지도 모르고 살던 자그마한 장기 하나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겪은 가까운(?) 작가의 죽음에 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울적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어느 날 키다리 아저씨가 조용히 떠난 것을 알게 된 주디의 기분이 이러할까. 지금보다도 어린 눈으로 당신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한 때 이후로 읽었던 이청준 님의 작품은 사실 최근의 한 편 뿐이다. 그러나 수 번을 되풀이해 읽으며 곱씹었던 그 한 편이 내가 무엇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는지 이제 그 분은 아실까. 상대의 죽음을 듣고서야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가 많았음을 깨닫는 것이 슬픈 일만은 아니다. 맑은 기억으로 남은 옛 친구를 오랜만에 추억할 때면 뒤따라오는 상실감 같은 것에 기운이 살짝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생전에 차마 남들 앞에 나서지 못했던 정부가 연인의 장례식장에 찾아와 낯선 눈길 속에서 쏟는 눈물처럼, 나는 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애도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이청준은 한국에서 가장 실한 작가다. 내겐 이렇게 단언할 자격도 없고, 표현이 경망스럽지만 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야하겠지만 진심인걸. 

 

  그리고 그 남자, 내가 그를 알았던 날부터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는 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네. 관계로는 흩을 수 없는 외로움에 녹아나고 있을 때 나를 찾아준 그 안에서 받았던 위안은 어떤 친구도 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그저 공감해 주었고 나는 이대로, 나대로 괜찮은 거라는 안도를 얻었다.밀란 쿤데라는 나이가 많아서 정말로 멀지 않은 때에 죽게 될 것이므로, 내가 매일 혹시나 그가 죽었을까 노심초사 하게 되는 게 오바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의 죽음에 관한 생각은 언제나 따라다니게 되는 거라고,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그도 했던 것 같다. 책 표지에 붙은 앞머리가 훵한 노인의 사진을 보고서도 섹시하구나 느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죽기 전에 프랑스로 날아가서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은 것도 아닌데 나는 무얼 두려워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밀란 쿤데라가 죽으면 굉장히 슬플 거라는 건 매일 상상해 보기 때문에 알고 있다. 별 건 아니지만 그래두 죽기 전에 노벨상이나 받게 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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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12:56 2008/07/3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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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8/06 16:07 Delete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어느바람
    2010/08/19 14:57 Delete Reply Permalink

    이런... 뭐라 해야 할지..
    요샌 시험을 위한 글, 거짓말 섞인 글들을 쏟아내느라 혼이 쪽쪽 빨리는 느낌이에요. 가끔 넋두리도 쏟아주고 해야 하는데 블로그 돌볼 여유도 없고.. 무튼 부끄럽게 만드는 말씀이지만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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