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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쿠르드족, 또다른 피압박민

시민의신문에서 펍니다.


이라크에 있을 때였다. 필자가 터키의 쿠르드족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터키를 통해서 이라크에 들어가던 중에 만났던 한 친구가, 이라크의 마흐무르라는 곳에 터키 쿠르드족 게릴라의 무장 캠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 준 것이다.

터키의 쿠르드족이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기에 평소에 약간의 관심을 갖고 있던 차라, 잘됐다 싶어서 바그다드 들어가는 길에 잠시 방문을 하였다. 그런데 웬걸? 게릴라의 무장 캠프라는 마흐무르 캠프는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하지 않은가?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을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잠시 후 만난 캠프 관계자에게 게릴라의 무장 캠프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무나 평범한 난민캠프니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자 웃는다. 그러면서 터키 정부의 ‘프로파간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캠프 이곳 저곳을 안내해 준다.

캠프를 돌아보면서 너무나 평범한(사실 난민 캠프가 평범할 수는 없는 곳이지만, 여러 난민 캠프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필자에게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전쟁 상황이 평범한 상황이듯이.) 난민 캠프라는 필자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유일한 소망으로 꿈꾸며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나가는데 급급한 다른 난민캠프와는 달리 이곳 사람들은 여기서 대안공동체를 가꿔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가장 먼저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었다. 1만 여명이 생활하는 이곳 캠프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지은 학교들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여러 개가 있었고,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공급받는다는 물을 아끼고 재활용하여 캠프를 푸르게 가꿔나가고 있었다.

캠프의 가장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에 여성들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이곳은 금남의 집은 아니지만 여성들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남성들은 대단히 조심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회관을 짓기 위한 공사가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의해 뙤약볕 아래서 진행되고 있었다.(사실 학교의 교사들도 모두 급여를 받지 않는 자원자로 이뤄져 있는 등, 이곳에서의 대부분의 활동은 자원에 의해 이뤄진다.)

또한 필자를 안내해줬던 친구는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깡통에 드는 음료수를 마시기를 거절하는 등 도저히 난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 십여 년 간 캠프를 세 차례나 옮겨서 지금은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 제일 변방인 이곳까지 밀려왔을 정도로 동족인 쿠르드족에게서조차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이들은 한번도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난민촌을 둘러본 후 필자에게 소감을 묻자 '난민촌이 아니라 대안공동체를 둘러본 것 같다.'고 소감을 말하니 배꼽이 빠져라고 웃는다. 웃음이 많은 사람들이다.

바로 난민촌을 벗어나 차로 20-30분만 가면 현재 무장 저항 세력의 새로운 집결지로 알려진 모술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흔적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마을의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것저것 질문을 퍼부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부족한 난민촌 생활이지만, 유엔의 지원을 받고 있기에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문제로 꼽은 것은 청소년 교육이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어떻게 스스로 학교를 세워서 가르치고 있지만, 대학교육을 시킬 교육기관이 없기에 난민촌 밖의 대학에 보낼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를 통틀어 컴퓨터가 단 한 대밖에 없고, 그나마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전혀 시키지 못해 안타깝다고도 했다.

시간에 늦어 다음에 다시 들러 더 많이 돌아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곳에서 받은 감동은 필자가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비록 같은 쿠르드족이라고는 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과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지난 걸프전과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를 침략하기 전, 쿠르드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족에게 협력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터키의 쿠르드족은 전쟁의 명분을 들어 거절했고 결국 미국은 이라크의 쿠르드족과 손을 잡았다.

터키 정부의 엄한 박해 속에서도 터키의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쿠르드족에게 항상 연대를 표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안정을 누리고 있는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마흐무르 난민촌의 사례에서 보듯이 터키의 쿠르드족에게 별로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라크의 두 쿠르드족 지도자는 아랍권의 다른 정치지도자들처럼 유력 가문 출신으로 가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있지만, 터키 쿠르드족의 지도자인 압둘라 오잘란은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전체 터키 쿠르드족의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터키 정부에 의해 그 지도자들이 몇 차례에 걸쳐 암살을 당하고 정당 자체도 해산 당해 이름을 네 번이나 바꿔야 했던 터키의 쿠르드족 정당은 터키내의 다른 정당들보다도 훨씬 더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록 쿠르드족이 이 지역의 몇몇 나라에서 흩어져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많은 수가 터키에 살고 있고, 또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터키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는 디야르바크르가 전체 쿠르드족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터키의 쿠르드족과 디야르바크르를 포함한 인근 지역을 이해하는 것은 전체 쿠르드족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되는 것이 사이프러스와 함께 쿠르드족 문제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 쿠르드족의 문제는 중동지역 뿐 아니라 유럽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제적인 문제이다.

쿠르드족이 독립을 시도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관측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쿠르드족이 구소련 지역을 포함 6~7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고, 수백만 명이 유럽 등 다른 서방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결코 허황된 예측은 아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터키의 쿠르드족 거주지역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과 함께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단어의 의미는 ‘두 강의 사이’라는 의미이고 이 두 강은 터키의 쿠르드 지역에서 나란히 발원하여 2000여 km를 흐른 후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다시 만난다.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라크의 남부 메소포타미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기적으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인류 문명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

사실 쿠르드족 문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함께 중동지역의 가장 민감한 문제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 문제가 국제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터키 정부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터키의 쿠르드족 문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여행자가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 십 수년 간 거의 4만 명에 육박하는 쿠르드족 사람들이 터키 정부군과 터키 정부의 사주를 받은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학살당했고 이들 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인종탄압 정권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스라엘에서 2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가 학살한 팔레스타인 수가 3천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터키 중부 지역에서 한 한국인 여행 안내인이 터키 동부지역에 관한 한 관광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국제적으로는 평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단어를 단지 언급했다는 이유로 터키인 여행 안내인에게 구타를 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즉 쿠르드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면 외국인조차도 폭행을 당하는 것이 현재 터키에 살고 있는 쿠르드족이 처한 현실인 것이다. 또한 터키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으로 평가받는 터키 공산당조차도 쿠르드족 문제에 있어서는 터키의 다른 보수 우익 정당들과 똑같은 입장을 취한다.

필자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터키의 쿠르드족과 인근 지역에 살고있는 쿠르드족에 관해 글을 쓸 예정이다.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과 연대를 기대하면서, 이 지역의 문화와 이들의 생활 그리고 이들이 받는 정치적인 억압 등과 함께 이 지역에서 발생했던 여러 가지 해프닝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생각이다.

터키=아쉬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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