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1/04/18 14:04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정규직 세습이 이슈가 된 오늘.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인가 싶은 속상함이 뭉글뭉글 자라난다. 

뭐, 그래도 묵묵히 또박또박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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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13년 이상 주야맞교대를 한 노동자의 수면장애가 법원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노동계의 관심이 쏠렸던 주간연속2교대 투쟁을 통해 이야기가 되던 심야노동의 건강영향이 비로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대제가 노동자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최소한의 인원으로 생산설비의 가동시간을 늘려서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제도라는 점이 공식화된 것이다. 물론 석유화학산업이나 제철소처럼 생산의 특수성상 설비를 멈출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병원처럼 업무의 특수성상 교대제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업장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교대제는 이윤이라는 목적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생산체계인 것이다.

 

여전히 주간연속2교대제는 생산량의 유지와 생활임금의 확보라는 노동시간 단축과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의해 애초의 의미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고 달성하기에는 너무 먼 목표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간연속2교대제도 사실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제는 심야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는 있고 노동자들의 일상에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24시간이라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행복과 건강이 아니라 일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패러다임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다면 노동시간의 단축은 초과노동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주 40시간제 쟁취라는 노동계의 성과가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지 이미 경험한 바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삶의 전부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임금체계에서 노동시간은 수입과 직결이 될 수밖에 없지만 가족 및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 성원과의 관계, 자아 존중감과 정체성,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삶은 항상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이 많다. 장시간 노동의 만성적 건강 영향과 관련하여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심혈관계 질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체력이 약한 사람에서 주당 근무시간이 46시간 이상인 경우 협심증과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의 발생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하였으며 주당 61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에 급성심근경색의 위험이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월 휴일이 2일 미만인 경우에는 2.3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사고성 재해와 관련해서는 주당 노동시간이나 하루 근무시간이 길수록 일반적으로 재해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장애와의 관련성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교대근무와 야간근무가 포함되어 있는 장시간 근무인 경우 더욱 그 경향이 심하게 나타난다. 피로도, 주관적 건강 인식, 위염과 소화불량 역시 일관되게 노동시간과의 관련성이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행동과 관련해서는 수면시간이 짧고 하루 근무시간이 9시간 이상인 경우 비만도가 증가하고 주당 40시간 일하는 경우에 흡연율이 증가한다는 연구들이 있으며 음주량이나 규칙적인 운동 실천률이 모두 노동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외에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건강과 관련한 부분이다. 노동시간과 활동력의 관계, 일-가족 균형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필자가 사업장에서 만나는 많은 노동자들은 실제로 긴 노동시간에 건강관리가 어렵다고 이야기를 한다. 일 년에 한번 하는 건강검진은 하루의 시간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받기도 어렵도 검진을 받는다고 해도 그 결과에 따라 건강관리를 하기도 어렵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해서 밤 9시에나 일이 끝나는 한 여성노동자는 당뇨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함은 잘 알고 있지만 퇴근 이후나 하루 쉬는 일요일에도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니 운동은 고사하고 처방전을 받으러 병원에도 가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면 되겠지만 라인에는 인원이 적어서 아파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조퇴를 하게 되면 동료 노동자들에게 민폐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 조퇴를 하면 만근이 안 되게 되고 이로 인해 임금이 감소하는 불이익을 감소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건강관리를 위해 규칙적으로 적정한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한편 노동시간의 단축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정규직의 월평균 근무시간이 195.7 시간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167.4 시간으로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세부 형태에 따라 다시 살펴보면 파견/용역 노동자는 월 평균 노동시간이 206.7 시간으로 정규직에 비해서도 월등히 긴 노동시간을 보였다. 기간제 노동자와 한시적 노동자의 경우에도 각각 월 평균 노동시간이 189.3 시간과 193.4 시간으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비정규직의 짧은 노동시간은 일일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자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러한 고용형태 이외의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정규직과 비슷하거나 더 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임금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의 자료까지 포함한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사람들은 영세 자영업자일 것이다. 실업과 반실업의 불안정성 속에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할 때는 장시간 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노동시간의 단축 문제가 해결하기 쉽지 않은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럽의 국가들은 법정 노동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한편에서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교대제와 같은 노동시간의 배치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는 세계 최장기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의 노동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이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 해결의 방향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의 건강영향이 일직선의 양반응 관계가 아니라 U자 모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노동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노동시간이 긴 것만큼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이다. 이는 표준 노동시간 미만의 노동시간이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한 것이고 이로 인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경우에는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를 위한 시간을 포함하여 생활시간을 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부분의 업종에서 여성의 노동시간은 남성에 비해 짧다. 그러나 이들은 가사노동과 육아라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동시간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취약한 집단이라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시간은 빈곤, 임금, 일상의 불안정성, 가족관계와 공동체, 건강과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적정한 노동시간을 쟁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무엇이 아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일자리의 질, 노동시간의 배치와 이에 대한 자율성, 시간압박, 노동강도의 문제가 반드시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젠더적 접근과 일-생활 균형의 측면에서의 고려도 필요하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를 가진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만큼 노동시간에 대한 주체들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본인의 시간을 필요에 따라 배치할 수 있는 시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질라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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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4:04 2011/04/1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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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뽀삼 2011/04/18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자 노조 요구안에 '세습' 규정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놀라긴 했습니다. 현집행부 성격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현자가 갈데까지 가는 거란 생각밖에는 안 들더군요. 하긴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던 관행을 공식화해달라는 건데, 고용불안이 '물량 있을 때 벌자'는 분위기를 현자에 유포한 게 벌써 10년도 지났으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해졌네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후순위로 밀리는 게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네요. 야간노동도 없어서 못할 판이니....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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