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사람들
바야흐로 24시간 세상이다. 편의점은 동네 곳곳에서 밤새 불을 밝히고 있으며 요즘은 지하철 역사에도 편의점이 생기고 있다. 또 ‘야간 쇼핑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늦게 퇴근한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 마트도 많다. 작년 비정규악법으로 파업에 나섰던 뉴코아-홈에버 노동자들이 매장을 점거한 시간은 새벽이었으며 그 시간에도 매장에는 많은 손님들이 부지런히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 푸드점도 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새벽 2-3시, 허기진 참가자들은 그 시간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던 패스트 푸드점에서 햄버거로 허기를 달랬다. 새벽 출근길에 그 시간까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나 취객을 마주치는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금요일 밤 비행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갔다가 월요일 새벽 비행기로 귀국하는 주말이용 여행 상품도 인기다. 새벽에라도 차에 문제가 생기면 보험회사에 전화만 하면 된다. 10분 안에 차의 문제를 손봐줄 사람이 출동을 한다.
밤이나 새벽이라고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야간 통행금지가 해지 된 것은 1982년이고 편의점은 1989년 이후에나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하철이 밤 12시를 넘겨서도 다니게 된 것은 2002년이었다. 필자의 기억에는 1995년이나 1996년에는 술집도 12시를 넘겨서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44%가 야간노동을 시행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를 위해서 “모든 기업이 24시간 2교대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생활공간이나 노동자들의 공장이나 24시간 돌아가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24시간 노동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일 밖에는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이다. 15년 넘게 연간 2,500-3,000 시간을 일해온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는 날 되면 쉴 줄도 모르고, 놀러갈줄도 모르고, 어디에 가야 맛있는 곳이 있는지 안 가보니까 모르지요. 있을 때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벌어놓자. 그러다 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지나가고 돌이켜 보면 벌써 40~50세, 정년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그것도 잠깐이거든요. 나중에 좋은날이 오면 즐겁게 재미있게 살겠지 그랬는데 그날이 없네요. 항상 부족하고 힘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재미없이 살아가요. 매일 특근, 잔업, 야간근무 이렇게 살다보니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여름이 가는지 몰라요. 한 번씩 야간하고 볼일 있어 식당에 가보면 점심때 회식하는데 여자들이 맛있는 거 다 먹고 남자들은 돈만 벌어주고 세상이 그렇더라구요. 남자들이 불쌍해요.”
이렇게 일을 해왔건만 그들의 삶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시간당 임금이 정해지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시간제 임금체계에서 그들의 삶은 불안하다. 잔업이나 특근을 못하면 현재 받는 임금의 절반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애가 중학생인데 과외를 하거든요. 만약에 특근을 줄이면 과외를 못 받아요. 이게 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임금, 지출 이거를 줄여줘야만 어느 정도 임금이 감해도 생활이 가능하죠.”
왜 야간노동 철폐인가?
한국이 세계의 각종 통계에서 계속 1위를 하는 항목이 있다. 교통사고 사망률과 자살률이 그렇고 수년째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노동시간이 바로 그렇다. 파업만 하면 귀족 노동자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현대자동차에는 연간 3,000 시간이 넘게 일을 하는 노동자도 있다. 이들은 작년에도 평균 2,300시간 이상을 일했다. 2007년 한국의 노동자는 연간 평균 2,357시간을 일했다. 2위인 그리스 보다 305 시간이,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네덜란드와 비교해 무려 966시간 더 길다.
우리나라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야간에 노동을 하는 비정상적인 나라이다. 생물학적 영향을 고려한 야간노동의 기준인 ‘오전 7시 - 오후 6시 이외의 시간에 노동을 하는 경우’를 적용한다면 전 국민의 대부분이 야간노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 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로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발전소의 노동자들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청소 노동자는 새벽 4시에 시작되는 노동을 하고 있으며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24시간 맞교대를 한다. 2008년 야간노동철폐의 목소리는 현대자동차를 선두로 한 자동차 산업과 금속 제조업 정규직뿐만 아니라 병원, 발전 등의 공공 부문 및 청소, 경비 등의 비정규직 포함하는 문제이다.
현재 한국의 금속노동자들의 근무 형태인 10시간 맞교대 형태는 100년 전의 것이다. 식사 시간이 유급 노동시간에 포함이 안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주말도 없이 11시간 이상을 현장에 있는 2조 2교대는 야간 노동 후에 이틀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유럽 등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근무 형태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요구조차 해결할 수 없다. 3교대를 하느라고 애인이나 아이들과 헤어져 사는 간호사들이나 현장 사람들 이외에는 친구가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다양한 관계는 없어지고 노동자는 고립된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다.
이런 사회적 건강의 문제뿐만 아니라 야간노동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심각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1년에 평균 8명이 과로사를 한다. 조합원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한 해에 1,000여명이 과로사 한다. 40대부터 걱정을 해야 한다는 과로사가 우리나라에는 20대부터 나타난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한국타이어의 노동자들은 20대 후반에 과로사의 일종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29살의 유성영동지회 조합원이 막내아들의 생일날 새벽에 과로사하는 일도 있었다. 야간노동으로 수명이 13년이나 단축된다는 독일 수면협회의 연구 결과를 참고하지 않더라고 철도나 지하철의 노동자들은 정년퇴직 후 대부분 3년 안에 중풍이나 협심증,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그리고 암에 걸리거나 이 때문에 사망한다고 이야기한다. 야간노동은 인간의 기본적 작동원리인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이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생리도 불규칙해지고, 유산이나 조산도 많아진다. 남성들도 정자의 운동성이나 수가 감소할 수 있어서 불임률을 높이기도 한다.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위염이나 위궤양에 걸릴 확률도 높고 고혈압도 더 잘 걸리고 당뇨나 천식 같은 것은 잘 치료가 되지도 않는다. 불면증이나 우울증, 알콜 중독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도 심각하다.
이렇게 생물학적 건강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 바로 야간노동이다. 수명을 단축시킬 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고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마저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야간노동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매일 잠만 자는 사람으로 찍히게 되는 것이 교대근무인 것이다. 여성들은 야간노동 뿐만 아니라 육아와 가사까지 담당하느라 더욱 그 삶이 힘들다. 따라서 야간노동의 문제는 노동자들의 몸을 살릴 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이다.
야간노동철폐와 노동시간의 단축
야간노동의 철폐는 야간노동 금지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서 그 의미가 더 크다. 법정 노동시간인 주 40시간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출퇴근이 제 시간에 이루어지기로 유명한 공무원이나 교사는 퇴근 후에도 집에서 잡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은행의 노동자들은 밤 9시나 10시까지 돈을 맞추고 서류 등을 처리해야 한다. 8시간 노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 대형병원의 간호사들은 보통 정해진 8시간의 노동보다 빨리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질 노동시간의 단축은 그 자체로의 의미가 크다.
역사적으로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자본의 일차적 목표는 노동시간의 연장이고 생산설비의 24시간 가동이다. 따라서 노동시간단축투쟁은 노자 간에 첨예한 접점을 형성하며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양상은 전 세계적으로 다르다. 혁명적 고양기에 이루어진 투쟁(1900년대 초반)에서는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자본의 재공격이 이루어지고 실질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은 없거나 미미한 반면 생산성과 통제는 향상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1848년 프랑스 혁명당시 12시간법이 제정되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잇따른 유럽의 혁명적 투쟁은 8시간 노동법 쟁취로 이루어져 왔다. 1935년 프랑스에서는 좌파가 내각을 장악하면서 주 40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다. 이런 시기 노동시간의 규제는 원칙적으로 전 산업과 기업에 일제히 실시되며 사회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장기간 끈질긴 싸움에 의해서 개선을 쟁취해 가는 경우 노동시간의 규제는 하나의 산업부문으로 확대 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노동시간에서의 개선은 쟁취하지만 다른 노동조건이나 노동의 양상은 개악을 강요당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점차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져왔으며 노동시간 단축이 고용불안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여 생산성 향상과 저임금 시급제 구조의 안착화와 함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자리를 나누자고 했지만 정규직으로의 충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잔업과 특근을 통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지만 유지가 되는 구조속에서 물량에 목숨을 걸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 이는 노동시간이 법제화 되더라도 임금이나 고용불안과 같은 노동자들의 약한 고리를 이용하여 자본이 실질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단협을 후퇴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생산성과 이윤율을 높여온 세계 자본의 흐름과 같다.
야간노동철폐와 생활임금쟁취
야간노동철폐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임금이다. 한국이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게 된 것은 시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임금체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잔업이나 특근을 안 하는 경우 기본적인 생활조차 위협을 받는다. 특히 교육, 의료, 주택 등에 대한 사회적 자원과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늘어나는 사교육비와 한해 1,000만원이 넘는 등록금,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의 증가와 주거지의 확보는 엄청난 자원을 필요로 한다. 한국이 물가가 제일 비싼 나라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절대적인 임금의 수준만을 가지고 외국보다 인건비가 차지하는 총액이 많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시급제의 폐해는 비정규직일수록 더 심해져서 조퇴조차도 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소위 귀족노동자라는 현대자동차의 생산직의 경우 기본급의 비율은 2007년을 기준으로 28%.9%에 불과하며 고정수당을 포함한 통상급이 33.5%이며 그 액수는 평균 182만 원 정도이다. 상여까지 포함을 해야 임금 총액의 57.1% 정도가 된다. 나머지 42.9%는 잔업과 특근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변에 비하면 월급은 많이 받지만 아파트를 사거나 부모님의 병원비를 대느라 연봉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주택융자금의 이자, 각종 민간보험료, 학원비 등의 사교육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이 과연 많은 것일까? 이만큼도 임금을 주지 않으려고 비정규직은 더욱 처참하게 몰아가는 자본이 더 나쁜 놈이지 않을까?
따라서 이런 임금체계에서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완전 월급제의 쟁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역시 그 사실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에 준하는 임금체계 개편을 준비 하였다. 물론 아직 완전월급제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주간연속2교대 투쟁을 통해 현재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사회화 하고 완전 월급제를 쟁취하기 위한 시금석을 놓는 투쟁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더 나아가 노동과 연계되는 복지와 임금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할 사회적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 야간노동철폐
야간노동철폐 투쟁은 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생활임금쟁취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는 이를 통해 노동자가 공장의 부품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쟁취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자본의 절대 기준인 생산량을 가지고 노동(작업)을 조직하고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일상을 기준으로 노동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시간’이라는 것이 자본의 필요와 상황에 맞춰서 배분되고 작업장에 있는 시간 동안의 작업 내용과 형식이 생산성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그런 세상이 야간노동철폐 투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야간노동철폐는 기본적인 인간의 생리 현상을 거스르는 노동의 형태를 인간답게 바꾸자는 운동이며 따라서 야간노동은 철폐하되 생산성을 올리거나 생산량을 유지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는 작업장에도 있지만 작업장 밖에도 있다. 작업장에 있는 시간동안의 노동이 작업장 밖의 시간에서 노동자의 필요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잠자거나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야간노동철폐 투쟁이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것은 맞지만 이것을 일자리 나누기나 고용불안의 해소책이 될 수는 없다. 노동시간단축이 경험적으로 생산성의 향상과 노동조직의 유연화를 최대화 하면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자리 나누기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의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일자리 나누기’를 쟁점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쟁점은 비정규 노동자와 비표준적인 노동현태가 증가한 상황에서 과거와 다른 효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의미를 인간다운 삶의 보장과 노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현실적 투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정당할 것이다.
한편 부품사를 걱정하며 사회연대와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완성차 사업장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품사가 걱정이 된다면 부품사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면 될 것이고,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노동형태를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물량이 줄어 부품사가 다 망한다는 것은 전체적인 자동차 자본의 과잉생산에 대한 문제제기와 현재 국내 생산량의 감소를 고려할 때 아전인수격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부품사의 물량이 걱정이 된다면 산별노조가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견인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이와 관련된 부품사의 전망 속에서 부품노동자들의 ‘시간’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더 강화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귀족노동자라 불리는 이들이 귀족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 지금 더욱 중요하다. 그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귀족노동자도 저임금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며 생물학적, 사회적 건강이 손상되고 있는 주체인 것이다.
실질적인 노동시간단축, 생활임금쟁취, 야간노동철폐!
지금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은 우선, 총노동시간을 축소해가는 선도투쟁이라는 의미에서 심야노동의 축소를 처음으로 제기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야간노동은 오전 7시-오후 6시 이외 시간의 노동을 의미한다. 건강권과 노동시간단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야간노동 폐지를 제기해야 하나 일단 12시 이후부터 6시40분까지 공장을 멈추는데서 24시간의 생산가동을 일부 제한하고 있다. 욕심으로만 본다면 아예 주간조만 운영한다면 우리의 고민은 훨씬 줄어들 것이지만 이렇게 공세를 펴기에는 아직 준비와 조건이 여의치 않다. 현재의 투쟁이 총노동시간의 축소로 이어가지 않는다면 자본의 노동강화 공세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이 투쟁은 ‘생활임금 확보’를 위한 월급제 요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급제(시간당 임금지급)인 임금체계에서는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은 필연적이었다. 이로 인하여 발생되는 산업재해 및 각종 질병에 의해 노동자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귀족노동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 구조는 전체임금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율을 37%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월급제’요구는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를 노동자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이다. 인간생존을 위한 ‘생활비’는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확보되어야 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세 번째는, 공장신설과 증축을 요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엔진·변속기·소재라인은 공장설계부터 전체 생산량의 60∼80%만 공급하도록 설계되었다. 최대 연간 3,000시간을 넘는 장시간노동을 전제한 설계였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실시를 위해서는 이러한 엔진·변속기·소재라인을 포함하여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공장신설과 설비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신규인원 충원 요구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이런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연속2교대의 실현은 만만찮은 과정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IMF 이후 고용불안으로 언제 짤릴지 모르기 때문에 ‘일 있을때 많이 벌어놔야 한다’는 경험적 교훈(?)은 생산량이 줄면 고용이 불안하다는 등치로 조합원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것을 바꾸는 것이 1차적 과제가 될 것이다. 자본은 2교대제변경을 계기로 혼류 생산이나 전환배치를 통해 최대한의 생산속도를 높이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기준 노동시간단축이 노동강도의 증가와 교환되었다는 사례를 염두에 두고 대응해 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밤에 자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생체 활동은 낮에 활발해지고 밤에 휴식을 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본적인 생물학적 요구조차 채우지 못하고 100년 전의 근무형태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장시간-야간 노동에 대한 강요는 표면적으로 자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시간당 임금을 기반으로 한 저임금구조와 물량이데올로기를 사회화 하고 작업장에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작업장 밖의 생활에 대한 노동자들의 필요를 읽어 줄 수 있는 지원책의 부족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또한 임금에 대한 필요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야간노동을 철폐하고 생활임금을 쟁취하겠다는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갖겠다는 투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야간노동 철폐 투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작업장 내외의 노동시간과 일상시간을 활용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며 그런 의미로서 노동자의 시간을 노동자에게 온전하게 되돌려 주기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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