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에 있던 2005년 말~2006년 초까지,
이른바 "황우석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언론보도 추이에 대한 미완의 코멘트.
코멘트를 썼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사실상 황빠 계열에 가까웠던 총수의 스탠스 자체를 어찌 하진 못한 채, 그런 스탠스의 위태로움을 "완화"해줄 뿐이었던 내 처지에 대한 답답함이 하나.
또 하나는, 좀 낡은 비유를 들자면 만석꾼 지주라 할 서울의대(+자연대)/세브란스의대의 문신용-노성일 계와, 날벼락 같이 등장한 신흥 (천석군?)지주 서울대 농대/수의대의 황우석 계가 벌인 살벌한 알력다툼이 중심축이었던 당시의 문제구도를, 그저 황우석의 "추악한 탐욕" 탓으로만 일괄정리하려는 데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황우석 씨의 당시 행보를 "과학애국"의 일념에 짙게 드리운 그늘 쯤으로, 그것도 마지 못해 마무리한 주류 언론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황 씨의 도덕성, 혹은 그의 사제관계나 일처리방식에서 보이는 "전근대성"에서 사단이 난 것으로 마무릴 지으려는 소위 진보 언론의 보도양태도 마치 한창 똥을 누다 만 듯 영 개운치가 않았더랬다.
물론, "그저"라 하기 곤란한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던 당시 분위기에서, 그렇게 정리한 것만도 어디냐 할 구석이 전혀 없진 않다.
다만, 나 같은 "소작농" 입장에서, 이른바 '생명공학/BT'라는 이윤과 명예의 노다지를 놓고 지주들끼리 벌이는 추악한 주도권 다툼에 나 자신을 그 어느 한 쪽과 동일시하는 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더라는 거.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아닌 게 아니라 이걸 쓴 게 언젠데, 여즉 "다음에 계속" 상태다.- -;;
***
1.
신문을 신문답게 만드는 요소가 뭐라고 알고들 계신가? 얼핏 듣자니, 크게 속보성과 정확성, 그리고 심층성, 요 세 가지 요소가 신문매체의 질을 가늠하는 리트머스라던데. 다만, 매체의 성격은 이 요소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이 실리느냐를 놓고 갈린다나.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만큼이나 지극히 교과서적인 얘기기도 하다. 모든 게 '속도전' 위주인 현대사회에서 매체성격을 규정하는 데 속보성이 사실상 여타 요소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거는, 중앙일간지 몇 개만 모니터해도 바로 접수 되니까. 日新, 又日新해야 할 지면은 넘쳐나는데 이 지면을 채워줄 뉴스는 늘상 그만 못하다는 거, 모든 언론매체들을 만성적으로 짓누르는 강박인 게다.
정말이지 어느 매체냐를 떠나 정확성과 심층성, 이거 대놓고 도외시한다는 매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본지 최초' 같은 익숙한 표현이 웅변하듯이, 속보성에 대한 강박, 나머지 두 요소를 '있으면 좋은 것' 쯤으로 치부하게끔 만든 지는 이미 오래라는 거.
2.
이번 황우석 사태 때 이런 잘못된 습관, 그 앙상한 몰골을 남김 없이 드러낸 바 있다. 먼저, 조중동 같은 주류매체들.
이들 보도기사에서 연구관련 사안에 대한 정확성과 심층성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언감생심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황 교수, 대한민국 생명과학계의 자존심이자 과학구국의 화신으로 추켜세우는 데만도 여념이 없었으니 말이다.
연구윤리 문제 및 논문조작 의혹 논란이 한창일 땐 어땠는지 보라. 생뚱맞게도, 황 교수를 비판했던 진영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문제삼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보도의 정확성과 심층성 확보라는 정당한 요청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호도한 건 바로 이들이었다.
현 정권의 정책지원 부실이 황 교수를 그토록 힘겹고 고독하게 만든 거라더니, 채 열흘도 안돼 황 교수에 대한 방만한 정책지원이 모든 사단의 씨앗이었더라는 쪽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던〈조선일보〉의 기회주의적 보도행태는 이를 극적으로 증명한다.
하긴, 이같은 촌극은 이미 준비됐던 것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2002년 3월 4일자에 이미 강원래가 줄기세포 덕분으로 조만간 일어서게 될 수도 있다는 왕거품기사 낸 매체, 바로〈조선일보〉였으니까. 황 교수만 죽으면 사회정의 바로 서는 양 구는 이른바 '황까'들이야 황 교수가 강원래를 농락한 거나 다름 없다며 비호감의 기치를 한껏 드높였겠지만, 그런 농락의 씨앗은 조선에서 일찌감치 흩뿌려놓았던 셈이다.
'국체수호'가 매체의 본령이다 보니, 국위선양과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 고취만 염두에 둔 이런 기사가 '헛된 희망'만 부풀리고 말 뿐이라는 점은 안중에도 없었다 봐야 할 거고.
이에 견주어, MBC〈PD수첩〉팀과 인터넷매체〈프레시안〉이 보여준 꿋꿋함 내지 일관된 접근기조는 '일단' 높이 평가할 만했다. 구체적 경위를 떠나, 어떻든 이들 매체에서 이뤄진 지속적 의혹제기 덕분에 사태의 전모를 밝힐 계기가 마련됐단 점마저 부정할 순 없다.
다만〈한겨레〉와〈오마이뉴스〉의 경우, 이런 평가에 대해 유보적일 수밖에 없음이다. 그 이윤 누구보다 해당매체가 잘 알고 있을 게다. '시민기자제'가 안고 있는 오마이뉴스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건, 유연할지언정 국익 자체까지 문제삼을 생각은 없는 한겨레 편집국의 기본논조 때문이건, 두 매체가 황우석을 놓고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했던 건 분명했으니까.
3.
그런데 이런 논조상 차이와 상관 없이 황우석 사태의 '총체적 전모'가 뭐냐를 놓고 봤을 때, 〈PD수첩〉및〈프레시안〉에 대한 평가 역시 마냥 긍정적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황 교수가 이번 사태의 핵심 환부라는 덴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논문'조작'이라는 질환 자체를 치유할 급소라 보기엔 아주 석연치 않은 대목들이 차츰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황우석 개인이 저지른 과오 또는 과욕의 실상을 명백히 밝히는 것만큼이나, 이를 일부로 하는 보다 커다란 알력 구도를 포착해야 함에도, 이들의 스탠스는 이 작업을 감당해 나가기엔 첨부터 폭이 너무 좁았다.
〈프레시안〉과〈PD수첩〉에서 말하는 '진실'의 속내가 과학적 성취에 들린 어느 생명과학자의 잘못을 넘어 의생명과학 분야 연구를 둘러싼 산(産)-학(學)-정(政) 커넥션의 전모이길 바랬던 이들에게,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절반의 진실'에 자족하고 마는 양 비쳤던 게다.
황 교수에 대한〈한겨레〉와 〈오마이〉의 '선명한 입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과거 줄기세포연구의 추이를 놓고 보인 어정쩡한 스탠스에 대한 '속죄'처럼 비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실험실의 도제식 연구체계를 황우석 사태의 본질로 마금질하려던〈시사매거진2580〉의 스탠스가 일면적이라는 지적을, '황빠들의 반동'과 곧바로 동일시하는 게 사태의 전모 파악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 스승에 그 제자"란 제목으로 인간 황우석에 대한 비호감만 거듭 강화할 뿐이었던〈프레시안〉이나, 종교단체 라엘리안이 황 교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는 휘발성 기사로 희화화 기법을 구사한〈오마이〉의 스탠스 역시 마찬가지.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난 황우석의 잘못을 마치 고해성사하듯 확인, 또 확인하며 도덕적 지당함의 경구만 되뇌이는 거, 안전한 만큼이나 극히 안이한 접근이다. 줄기세포 사태의 본질이 황우석 한 사람의 폭주 '너머'에 웅크리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4.
그런데도 관성 탓인지 어정쩡했던 과거 탓인지, 황우석 일 개인의 '부정부패'나 '과욕'에 초점을 맞춰 사태 본질을 황 교수의 '원천사기'라고 보는 기사는 그칠 줄을 모른다.
심지어 "발목을 잘릴 각오로" 논문작성에 임해야 한다는 온라인 게시글에다, 영구 자격박탈이 불가피하다고 한 이학 전공 교수의 글까지 끌어오며 황 교수에 대한 '부관참시'를 감행하는 기사도 있다.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① 인간적 배신감. 다시 말해, 황 교수에 대해 갖고 있던 기본적 신뢰의 붕괴가 공격적이고 심지어 가학적이다 싶을 정도의 기사작성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가슴아픈 이야기.
② 실존적 공포. 이미 얘기했듯, 황 교수에 대한 부관참시, 기자란 사실이 무색하리만치 그간 헛다리를 짚고 있던 데 대한 자괴감을 털어내려 이뤄지고 있으리란 얘기 되겠다.
둘 중의 하나여서건 둘 다여서건, 당사자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서 그게 바람직한 건 또 아니라는 데 있다.
기사작성이 무슨 그림일기도 아니건만, 황빠와는 거리가 먼, 아니 어느 쪽이냐면, 황우석 교수의 나라사랑 스피릿일랑 터럭만큼도 지지할 맘 없는 내가 보기에도, "대체 왜 저래?" 싶을 정도로 뻔한 반성문 삘의 변죽이만 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판이니.
5.
이번 줄기세포 사태의 본질 또는 전모는 황 교수의 폭주 너머에 있을 거라 했다. 황 교수의 과오에 대한 도덕적 성토만으로는 이 너머,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도덕적 성토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원래 나쁘긴 해도, 간혹 가다 쓸모가 없진 않으니),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접근은 아주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면도용 거품 발랐으니 면도 들어가야 하건만, 계속 거품만 비비적대는 꼴이랄까. 그렇다면 황 교수를 믿었건, 그가 보유한 기술이 가져올 국운상승 효과를 믿었건 간에, 언론은 그로 인해 저지르고 만 직무유기, 사태의 전모를 드러내야 할 이 시점에 또다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건상의 제약이 없지 않다. 부자언론사야 그러기가 아예 성가실테지만, 그렇지 않은 군소독립 언론사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다른 각도에서 아무리 심증이 잡힌다고 그것만으로 기사 썼다간, 바로 소송 들어와 옴팡 거덜날 수도 있으니까.
이리 보면 지금 내가 '진보' 언론에다 대고 하는 지적은 다소 부당할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줄기세포 사태 건과 관련해, 이 때문에 몸 사리는 게 아닌 줄 아니까 하는 소리다.
분명한 건 "발목을 잘릴 각오로 써야" 하는 게 학술논문만은 아니란 점이다. 언론 역시 손을 잘릴 각오로 기사를 쓰고 있느냔 물음에서 결코 자유롭진 못할테니까. 궁금하다. 이 물음 앞에서 우리 언론사 기자님들,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