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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2/27
    [詩] 그러자고 했다
    챈챈
  2. 2009/02/24
    [詩] 그 해 작은 기억들
    챈챈
  3. 2009/02/20
    [詩] 붙들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챈챈
  4. 2009/02/14
    [詩] 그 여자
    챈챈
  5. 2009/02/06
    [詩] 아버지의 겨울
    챈챈

[詩] 그러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황영선


살면서 멍든 가슴 쯤이야
낯가죽 번지르하게 포장된 길 바닥에 찍힌 발자국이라 치자
드문 드문 가슴 한쪽 베어문 상처 덧난 굳은살의 묵은 여력도
다문 입술에 포개기로 했다
엉성한 어깨쭉지에 시끌벅적 날아오른 바람도 사정이 있는 법,
무례히 침범한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도 꾸짖지 않기로 했다
냅다 달음박질 치며 삐긋거린 동경
할퀴고 돌아서는 비정한 바람 앞에 통째로 내맡긴 영혼들도
다들 그렇게들 살다 갔다고 콧노래 흥얼거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랑에 패인 상처 깊고 얕음이 있겠는가

 

그냥 그렇게 싸매주고 다독이며 살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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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 해 작은 기억들

그 해 작은 기억들

 

황영선


나의 시댁인 벌교읍 호동리 1구
사십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갠지 아무개 집 제삿날이 언젠지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울타리없이 사는 소박한 마을
한달에 네번 오일장이 설 때면 자전거도 드나들 수 없는
산길을 따라 정성껏 가꿔온 밭 작물들을 머리에 이고
혹은 지게에 지고 읍내 장으로 돈 사러가는 마을 사람들
읍내 장엘 갈려면 족히 십 오리는 걸어야 했다
구불 구불 좁은 산 길 언덕을 넘어 비 포장된 신작로 길
뿌연 먼지를 평생토록 마셔 오면서도 불평없이 새벽에 갔다가
어스름이 들어서야 돌아오는 사람들

 

그 때가 아마 70 년대 후반 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시집 오던 해에 남편이 마을 일을 맡게 되었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펼쳐질 때다
농촌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초가 지붕이 기와나 스레트로 바뀌고
곳곳 마다 도로가 확장 된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느날
마을 사랑방 학성기에서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르신들 기뻐해 주십시오
  드디어 우리 마을에 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제 경운기도 다니고 차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취로 사업
남편이 날마다 군으로 읍 내로 쫓아다닌 보람이 있었나보다
당시 밭 작물 아니면 돈 만져볼 기회가 없는 마을에
돈도 벌고 길도 넓힐 수 있게 됬으니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일 손이 많이 부족 했지만 어린애서부터
칠순 노인 분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울퉁 불퉁한 좁은 길이 고르게 펴지던 날
마을에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남편은 마을에 딱 한대 뿐인 경운기에 어른들 몇분을 태우고
마을 뒷산 바람을 가르며 시멘트를 발라 단단히 굳어진 길 바닥이 행여나 패이지 않을까
조심 조심 그렇게 읍내를 한 바퀴 돌고왔다
그날의 함성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삼십년하고도 몇년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그 좁은 길이 생각난다
굳이 고개 숙이지 않아도 몸으로 부딫혀 주고 받았던 길 위의 정겨운 인사
궂은 일 좋은 일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던 길 위의 안부
바쁘지만 느긋할 수밖에 없었던 그 좁은 길 위의 사람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지금 눈 앞에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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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붙들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붙들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황영선

 

비움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채워야 하는 것만을 고집한 어리석음을
반성합니다
구석구석 모나게 살아온 아픔을
또한 반성 합니다
허락 되지 않아 성급히 서두른 불평
모른 체 해주길 바랐던 때묻은 속
이제사 뜨끔합니다

붙들어야 할 것을 버리라 하심은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찬
욕심을 일러 주심이겠지요
더 많이 낮아지고 버려지고난 후에야
무엇을 붙들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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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그 여자

그여자

 

황영선

 

아이고매 고것이 시방 참 말이다요?
쪼깨 찬찬히 말해보시오 통 먼 말인지 못 알아 묵것소이
긍께 저 머시냐 우리 아그들 아부지가 딴 살림을 채랬단 말이지라?
오매 이 일을 워째야 쓴다냐 을매나 됐다고 그럽디오?
머라고라? 칠팔년이면 우리 막둥이 년이 시상에 나오기도 전인디
아니여 아닐 것이여 잘 못 안 걸 것이여 나 눈으로 보기전에는 못 믿것당께
그나저나 요것이 참 말이라면 남의 입살은 고사하고 우리 아그들한테 머라고 한디야?
참 말로 환장허것네이
근디 어떤 년 인지 눈이 삐엇구만
가진 것이라고는 허름한 집구석 하나 뿐인디 멀 보고 덤벼 들었으까?
허기사 남정네가 잘 나면 열 지집도 본다는 우리 할매 말씀이 맞는가도 모르제
이 마당에 나가 할말은 아니지만 우리 서방 폼새 하나는 끝내준께

 

우라질 지금 먼 생각하고 있는겨?
누군지 당장 그 년을 잡아다 머리끄뎅이를 다 뜯어놔야 할거아녀?
아니여 아니여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닌께 생각좀 해봐야 쓰것구만
그러고본께 묵고 사는 것이 다가 아닌가벼?
남 보다 잘 난 서방 따라 살라믄 입술 연지라도 찍어 바르고
정순이 어매처럼 삘건 치마라도 걸치고 댕겼으면 안 그랬을랑가도 모른디
허구헌날 헐렁한 몸빼 벗을 날이 없었응께
이쁘게 채려 입은 각시 보고 눈 안 돌린 사내 있겄어?
아 그라고 막말로 내 서방이고 아그들 아부진디 나가 못 챙긴거 그쪽에서 챙겨 줬응께 고마운 생각도 해야 안 쓰겄어?
맞네 맞아 고것이 정답이여
까짓껏 옛날에는 성님 동서 그럼시롱 한집에서도 살았다고 하덩구만
그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제 암 다행이고 말고

 

근디 요놈의 눈물은 왜 자꾸 나오는 것이여?
가슴에 울홧증이 올라와서 못전디것네
뭣인가 시꺼먼 것들이 눈 앞에 와그르르 무너지고 어질어질 한 것이
필시 땅이 꺼지고 있는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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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아버지의 겨울

아버지의 겨울

 

황영선

 

추우시지요
쩡쩡 울던 메아리 소리 그친지 오래입니다
모진 비바람에 잎 떨군 나무
제 가지 찢어 자리 메김한 흔적 아직 역역한데
굽어진 등 뒤로 썰렁 내려앉은 찬기
뉘라서 데워 드리지요
빈집을 틈 없이 꽉 채워 느긋하기만 하셨던 그 너른 품
힘없이 놓아 버리신 그 크신 무게
아버지, 추우시지요
텅텅 비워진 가슴 단돈 몇 닢으로 채워 드렸던
제 가슴도 아버지를 닮습니다

 

아버지,
겨울이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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