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일상다반사

드라이한 송신음이 이어진다.

받지 않는다. 어쩌면 다행이다.

그의 얼굴이 내내 굳어있었던 이유는, 혼자는 도저히 감당못할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었단다.

켁, 연애상담.

짐짓 진지한체 하지만 뻔한 남녀 얘기가 그리 특별하게 들릴리 없다. 하지만 에둘러 격려 몇 마디를 나눈다.

의외로 이런데 소심하군. 그러게 여자친구 메일은 왜 열어본담.

차마 입밖으로 뱉지는 못한다. 

아무튼 나는 그가 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전화받지 않아준 그가 조금 고마웠다.

내 심신 또한 지쳐 소주 한잔 기울일 여력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의 받지 않는 전화로 구원을 얻는다.

 



내 어깨만한 남자애가 횟집 앞 수족관을 뚫어져라 본다.

저 기세라면 정말 수족관이 뚫어질수도 있으리.

아직 너무 길어 손목으로 십센치는 족히 접어도 될만한 교복을 입은 저 아니는 분명 중학교 1학년.

검소하고 살뜩한 엄마를 가진.

아니, 엄마는 없을지 모르지.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서 자신의 몸뚱이와 가족의 생계를 교환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을지도.

그 남자애는, 기를 쓰고 수족관을 기어나오고 있는 지 가방만한 킹크랩을 뚫어져라 본다.

정말 뚫어지겠다, 얘.

거기가 개천일지라도 시커먼 뻘밭이라도 의지와 인내만 있다면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는걸까, 그 희망에 감격해있는걸까.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올 정도도 못되는 킹크랩탈출소동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고 있으리.

뭐, 아니면 그냥 먹고 싶어서겠거나.

 

출출하다.

강냉이 아줌마는 오늘도 열심이다.

닝닝한 그 맛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마는 오늘같이 저녁을 제대로 갖춰먹지 못한 날은 그것마저 군침돈다.

주춤하는 순간,

강냉이 사가요 살도 안찌고 맛있어.

눈썰미가 대단하다.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을 읽히고 만다.

하지만 가던 길 그냥 간다. 아줌마에게 돌아가기엔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 거리까지 걸어온 후므로.

다음엔 0.5초만 일찍 불러보세요.

 

치킨집은 일찍 문을 닫았다.

자세히 보니 상중이라는 투박한 매직글씨.

누구일까, 주인 아저씨, 주인 아줌마,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었던거 같은데.

아니던가, 머리 허연 노부부였던가.

고단한 일상에 자기 몸 돌볼 여유없이 종종거디라 중병을 얻어 채 손써보기도 전에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으려나.

혹은, 닭뼈에 사래걸린채 의문의 죽음을.

곧 알게 되겠지.

며칠전 펼쳐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로저부부가 생각난다. 10명의 주인공 중 유일한 부부공범자였던 그들. 그런데, 이름이 로저가 맞았던가.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언제나 중요한건 결론뿐이었다.

오늘 치킨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에 또 쓰레기차는 지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집앞에는 새로 이사와 내놓은 짐들이 가득하다.

낡은 테레비다이와 몇 번 쓰지도 않고 버렸을 것이 뻔한 꽃병, 동네슈퍼에서 받은듯한 촌스런 세숫데야가 널부러져 있다.

엄마가 보고 기겁을 했다던,

가급적 계단에서라도 마주치지 말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두 딸에게 하게 만든,

온몸 용문신 5층 아저씨의 쓰레기다.

용문신 아저씨는 한여름에도 반팔을 입지 않을까. 최근 나는 거리에서 깊게 문신한 남자를 본적이 있던가.

이런 의문을 품다 밝은 대낮에 본다면 전혀 무서울것도 없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할수도.

전혀 별다를게 없는 짐이다.

2층 서울상경 여대생의 짐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특별하다는 얘기는 집어치우더라도.

각자는 그 하나로 총체의 완결이며

모두의 집합으로서의 일상을 산다.

 

각자의 모양으로

울고 불고 웃다 지쳐 일상으로 돌아오며

각자의 말로

울고 불고 웃다 지쳐 일상으로 돌아오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너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