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 개인정보대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이 사태의 본질은 역시 주민등록제도가 아닐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이 있어 복사해 둔다.
네이버를 여니, 작곡가 이영훈씨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문세 4, 5, 6집을 만든 사람이 아닌가. 아니, 그가 이문세와 만든 앨범은 16년간 10종 가까이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건 알지만, 내게는 특히 4, 5, 6집이 기억에 남아 있다. 4, 5, 6집만 사서 들었으니까. 그것은 내가 중학교때, 그러니까 80년대 말이었다.
사랑이 지나가면, 굿바이, 그녀의 웃음소리 뿐, 시를 위한 시,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
6집을 사고 나서는 좀 시들해졌지. 이영훈씨도 그후 얼마 안가 이문세 노래 만들기를 쉬었다고 한다.
음악, 특히 발라드, 프러듀싱, 폭연, 폭음, 상업주의, 매너리즘, 등등. 우리시대에 이런 사람이 물론 한 둘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지나가면은 90년대 초에 나온 리얼리즘 영화 <파업전야>에 효과음악으로도 나왔다. 물론 나약한 소시민들이 등장하고 노조 분열 책동이 진행되던 다방 씬에서.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 그럼에도 짧은 한 시대, 한 계층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80년대 말 세상 모르던 중학생들의 심금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콘서트가 열려 본 적이 없는 시골에서.
--------------------------------------------------------------------------------------------------
[일간스포츠] 작곡가 이영훈, 대장암 투병 중 14일 별세
2006년 겨울 대장암 판정을 받은 후 1년여 병마와 싸워오던 이영훈이 14일 오전 3시께 삼성서울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영훈의 소속사는 "투병 중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첫 수술 후에는 병세가 호전됐었다. 그후 '옛사랑' 음반을 만들며 음악 작업에 몰두한 후 병세가 다시 악화됐다"고 전했다.
이영훈은 지난해 10월 의료진으로부터 시한부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도 중단한 채 모르핀 등 진통제로 고통을 견디며 생을 이어왔다.
무대 예술음악을 작곡했던 이영훈은 1985년 이문세와 만난 뒤 2001년까지 16년간 정규 앨범 8장을 만들며 1980년대 한국 가요계의 대표 작곡가로 활동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그녀의 웃음 소리뿐' 등 이문세의 히트곡은 거의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그의 유작은 자신의 히트곡 26곡을 수록한 2장 짜리 음반 '옛사랑+'이며, 이영훈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신의 히트곡으로 만드는 뮤지컬 '광화문연가'의 음악 작업에 매진하며 음악혼을 불태웠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고 3 아들이 한 명 있다.
이경란 기자 [ran@jesnews.co.kr]
어떤이가 글을 올리길, 세종과 정조는 문무를 겸비한 왕이었다고 했다. 문무를 겸비했다는 말에 솔깃하여 계속 읽어보니, 문왈-집현전, 규장각이고, 무왈-측우기, 수원 화성이란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말하자면 문과와 이과를 겸비한 것"이라고 주석까지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문무의 구별을 문과 이과 구별과 동일시하고 있다. 여기서 '문'이 공통항으로 소거된다는 점은 안심이다. 그러나, '무=이과'라고 하는 규정에는 몇가지 이 시대 사람들이 지닌 오류가 들어가 있어 흥미롭다. 편의상 문->이데올로기, 무-> 폭력, 理->물질을 상징하는 것으로 상징한다면, 폭력이 곧 물질이란 것, 다시말해 물질적인 것이 폭력의 근원이라고 한다는 발상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의 폭력이 빠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부터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식을 문과로 보내어 고시를 보게 한 것은 유명하다.
각설...文武理... 이것들의 관계...? 이데올로기, 폭력, 물질...나머지 하나는...?
간송학파 사람들이 쓴 책 진경시대를 보았다. 진경시대란 영정조대를 말한다.
혹자는 이 시기를 실학시대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실학이 당시까지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정주성리학과의 단절로 등장했다는 주장이 숨어 있다. 이 시대를 굳이 진경시대라고 또다르게 명명하는 이유는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 다시 말해서, 영정조기 찬란한 문화는 정주성리학의 완성, 개화인 것이지, 단절이 아니다, 라는 것. 그렇다면, 정주성리학이란 더이상 망국을 촉발한 전근대적 사상이 아니게 된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조선이 그렇게 허망하게 망하지 않았을 거라는 허망한 가설과 더불어 생각해보면, 완전 정주성리학이 대한민국도 지배할 수 있었겠다.
아무튼,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실학개념 재규정으로 귀결된다. 즉, 일제시대 정인보, 안재홍으로부터 해방후 새마을운동기까지 상식이 된 실학=탈성리학이라는 명제가 반박되고, 실학자=탈성리학자, 혹은 적어도 성리학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라는 등식을 해체한다. 그런데, 지두환 교수의 입론, 즉 유형원 같은 중농주의학파부터가 아닌, 다음세대의 박지원 같은 북학파, 곧 중상주의 학파부터 실학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단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것 같다. 간송파에서 이렇게 주장하는건, 다름아닌 북학파=주류 정주성리학자(노론)였기 때문이다. 역시 간송은 노론을 좋아해.
또 이같은 실학개념 재구성과 관련하여 뉴라이트의 이론가 이영훈 교수님처럼 18~19세기 소농사회론의 근거로 실학자들이 자본주의를 지향한거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는 것 갔다. 물론, 정주성리학 그 자체를 초역사적으로 중시한 나머지, 실학도 성리학일뿐이라는 주장을 펴는 분들도 있다고 알고 있다.(백민정, <<다산의 철학>>, 이학사 참조.) (만약 그렇다면, 자본론도 성리학의 일종일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이 주제에 관한 작업은, 17~19세기의 수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사승관계를 이리저리 재구성하여 지도를 그리는 작업인 듯하다. 물론, 연속이건 단절이건, 기본적으로는 연속성 위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연속이 없다면 단절을 논할 수 없다. 이것은 변증법의 기본이다. 그러나, 단절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애써 은폐하는 것은 지식사회학의 전제에 어긋나지 않을까.
仁이란 무엇이며, 義란 무엇인가?
맹자는 말한다.
[仁을 해친 者를 도적이라고 하며, 義를 해친 者를 깡패라고 한다. 도적 깡패는 한 필부일 뿐이니, 한 필부인 紂를 죽였단 말은 들어봤어도 임금을 죽였단 말은 못들어봤다.]
은나라 말기 서방의 한 제후에 불과했던 周 무왕이 천자인 紂를 정벌한 역성혁명을 맹자가 정당화해 주었다. 이 구절이 유명한 그 대목이다. 유교란 사친, 사군의 교이고, 맹자는 그 유교사상에 있어 원저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했기에 더 유명해졌을 것이다.
주 무왕은 왕위를 찬탈하였나요?
맹자 : 아니다. 주 무왕의 행위는 왕위찬탈이 아니라, 혁명이다.
왕위찬탈과 혁명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맹자 : 하늘이 정해주면 혁명, 하늘이 정해주지 않으면 찬탈.
하늘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가요?
맹자 : 민심을 보고 정한다.("天視自我民視"!)
민심은 무엇인가요? 그 향배는 무엇이 결정하는가요?
맹자 : 仁, 義가 있는 자를 향한다.
여기까지는 거침없이 대답한 맹자, 그러나 이 질문에도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인과 의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 주 무왕에게 인과 의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판단했나요?
만약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맹자 : "당대의 물적토대와 이데올로기의 조응이 중요해지는 게 아닐까 하네. 아다시피, 은나라 말기 생산력 수준에서 은나라의 자연주의적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사회를 운영하기 어려웠던 것일세. 거북점이나 치고, 무당에게 정사를 맡기고, 귀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등등, 여론주도층에서 불만이 떠돌았던 것. 역사는 주의 인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했네. 마침 그때 주나라 군주가 무왕이었지."
무왕 사후, 주나라는 통치상 협조에 소극적인 은나라 구세력에 대해 모여서 함께 술도 못마시게 하는 무단적 통제를 감행한다. 이런 나라가 무슨 인의를 독점했겠는가. 결국, 인의란 물적토대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적합한 조응,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사랑할 때 어떤 이야기 하는가?
달콤한 이야기만 해야할 연애상황에서,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부양해야
할 무능한 부모형제가 여럿 있다는
솔직한 얘기 하는가?
축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들이다. 축구란 무엇일까.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전투에 비유하셨더랬고, 이런 논리로는 더 나아가면 흔히들 그렇게 하듯 축구는 인생에도 비유되게 된다. 전투가, 인생이 무엇이길래 축구로 비유되든지 간에, 축구는 하나의 상징, 혹은 이데올로기에 관한 현상이지, 전투나 인생 같은, '물질적 삶'의 영역에 해당하는 현상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한, 그러나, 축구가 상징인 만큼, 실제 '물질적 삶'보다 더 많은 광분을 사람들로부터 끌어낸다는 점도 명확하다. 수령님과 공화국의 영광을 위한 것이든, 자본주의적 자존감을 위한 것이든.
객관적 지식, 곧 진리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중심으로, 모든 지식들, 사물의 표상들이,
일사분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배열될 수 있다고 하는 것. 배열되어야 한다는 것.
남북정상회담보고 든 생각.
남북 관료 간에 서로 상응하는 파트너가 빠짐없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대통령-국방위원장(혹은 노동당 뭐?), 국회의장, 혹은 총리-최고인민회의상임위의장, 국방부장관-인민무력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원장-통일선전부 부장으로 파트너 연결이 된다고 한다.
아무리 체제가 달라도 서로간에 마인드는 비슷해서, 하는 일은 달라도, 그것이 처한 사회내 위치, 그리고 또 서로간에 내용은 달라도 형식은 유사하다. 이것은 남북한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형식의 유사관계, 이것은 근대 세계가 탄생하면서부터 전세계가 공유한 것이리라. 그러니까 세계는 하나인 것이다.
만약에 상응의 유사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세계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으리라.
여순반란 이후 한국군에, 특히 육사에, 좌파가 존재할 여지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거기도 사람사는 세상일 것이고, 별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평화재향군인회 대표인 표명렬 예비역 준장이 범여권에서 국방부 장관 자리나 탐내는 사람이 아니란 걸 오늘 알았다.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도대체 정체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