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존재의 심리학 아브라함 H. 매슬로 지음, 정태연.노현정 옮김 / 문예출판사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가 이 책에서 한 주장은 주로 "인사노무관리" 서적에 주로 도식으로 인용된다. 사람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위계화한 그래프인데, 한 번 쯤 본 적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 안전 욕구(sefety needs), 애정과 소속의 욕구(love and belongingness needs), 자기 존중의 욕구(self-esteem needs), 그리고 자아 실현의 욕구(self-actyalization needs)가 등장한다. 이들 그래프에서는 아랫 단계가 충족되어야 위에 단계가 가능하다고 인용하면서, 조직 안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를 어떻게 창출(따라서 기업조직에 충성)할 것인가를 검토한다.
하지만, 정작 매슬로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러한 인용의 도식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목적에 있어서도 조직에 충성스러운, 혹은 창의적이고 따라서 효율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것과도 다르다.
오히려 매슬로는, 자기실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위의 욕구들이 부차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실현을 통해서 보다 건강하고 고귀한 인간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절정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절정경험'은 자기 자신과 세계-대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몰입의 순간이다.)
매슬로에게 자기실현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경이로운 가능성과 심층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동기는 결핍을 채우기위한 욕망이라기 보다는 존재를 실현하기 위한 욕구가 된다.(매슬로는 이런 맥락에서 프로이트를 '결핍의 심리학', 자신의 주장을 '존재의 심리학'이라 부른다. 책의 제목은 이렇게 나왔다.)
사실, 이 책에서 매슬로의 주장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론'이라고할 만큼 근거를 갖거나 논리적인 체계를 갖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 전체의 내용은 '묘사'들에 불과하고 기껏해야 묘사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저자도 어느 정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는데,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켜 동료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증명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구절들이 등장한다.) 물론 '설명적'인 부분에서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정신분석 혹은 심리학적인 상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흥미로운 내용들은 많다. 설득력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이론적인 동기라기 보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주장, 즉 자신과 대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순간(매슬로는 '절정경험'이라고 부른다.)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서 자신을 더 발견하게 될 때, 사람은 더 높이 고양된다는 것(매슬로는 이를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자기실현'이라고 부른다)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에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지만, 최근에 여행에서 경험한 강렬한 자기고양의 순간들은 매슬로가 묘사하는 '절정경험'과 대단히 유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의 효과--자기존중과 고양, 신경증 증세의 해결 혹은 완화--도 그렇다.
여행에서 그 경험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만나오면서, 그리고 나 외에는 대화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불현듯 나 자신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눈물이 나는 아픈 것이기도 했지만 어느 때에도 경험하지 못했을 행복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서, 베를린 아테 미술관의 네페르티티 상 앞에서, 스위스의 등산열차, 절벽 앞에서,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정오의 종소리에서, 피사의 다리 위에서, 아테네 리카비토스 언덕의 야경 앞에서, 등등. (다른 어떤 이유보다, 이런 경험이 짧은 기간에 집중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난 여행은 내 삶에 최고의 시간들이었던 셈이다.)
(한편, 매슬로가 언급하는 것처럼 그런 절정경험은 보통 사람들에게 연애/사랑에서 자기고양과 대상에 대한 직접적/총체적 인식으로 나타난다. 나에게도 이와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연애들 중에 적어도 한 번의 사건--그 보다 강렬하지만 오히려 섹스는 아닌--에서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을 내가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매슬로가 보여주는 묘사의 내용은 나의 개인적 경험과 생생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의 주장은 어떤 이론적인 근거를 갖는다거나 실증적인 증거도 거의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매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이 책의 묘사, 그리고 이런 것이 적어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증명하는 노력이 더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한편으로, 이 책은 묘사적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근거를 갖지 못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묘사들은 읽고 있으면, 그런 경험들의 순간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고 행복해진다. 그래서 매우 개념적인 언어들로 이루어진 묘사이지만 마치 시처럼 느껴진다. 글의 어떤 논리적 구조보다, 이어지는 낱말들의 연쇄가 행복을 준다.
자, 어쩌면 다른 이들의 독서에서는 말도 안된다는 비난을 받을지 모를 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매슬로가 말한 것들(정확한 개념도 부여하기 힘든 것들일 수 있다)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독서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마치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같았던 나의 독특한 경험을 누군가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 더 좋은 것은 그 경험이 자신의 발전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해준다는 점이다.
댓글 목록
ksw
관리 메뉴
본문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해도, 우리의 상식선상이나 논리상으로는 타당하다고 매슬로우는 말하죠ㅎㅎ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