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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이 노래를 듣다가 펑펑 울고 말았다.
노래가 曲이고 哭인 이유를 알겠다.
저 평등의 땅에
작사작곡 류형수
저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처럼 저 바다 깊이 비늘 잃은 물고기처럼
큰 상처 입어 더욱 하얀 살로 갓 피어나는 내일을 위해
그 넓고 넓은 허물을 벗고 잠 깨어나는 그 꿈을 위해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저 넓디 넓은 평등의 땅위에 뿌리리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 <저 평등의 땅에> ⓒ 신학철
18년만에, 두 번째 공연
지난 3월13일, 조계사 안에 있는 한국불교문화역사문화회관에서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2> 공연이 열렸다. 몇몇 동지들과 공연장을 찾았다.
윤선애는 말한다. 18년 전, 1992년 <윤선애씨 어디가세요> 공연 이후, 다음 공연을 언제 할 수 있을지, 혹은 할 수 있을련지도 알 수 없었다고. <소녀의 꿈>으로 시작한 윤선애의 목소리는 맑았다. 천상의 목소리, 역시 윤선애다.
윤선애의 이름을 최근에 다시 듣게 된 것은, 2005년에 나온 앨범 <하산>부터였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언제였나, 미국산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절정이던 습한 그해 여름, 서울시청광장에서 무대에 섰다. 그녀의 등장에 나는 무척 놀랐지만, 주변에 있는 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녀를 잘 알지(혹은 기억하지) 못했다.
*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은 영 좋지 못하다.
성장에서 현재까지
노래공연은 1부, 2부로 나뉘었다. 1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곡을 배치했다. 2부에서는 현재 그녀가 부르는 노래들. 중간에 나온 <윤선애 팬 까페> 중창단 공연까지 감안하자면 그녀의 표현대로 ‘가족’들의 모임같은 분위기도 있다. ‘새벽’ 멤버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중창단은 ‘중년시대’라는 이름이다.
대학 1학년 때, 아크로폴리스, 총학생회 출범식에서 불렀다는 <민주>부터(그녀는 84학번이다), <낭만 아줌마>까지, 그게 26년이다. 벌써.
<저 평등의 땅에>,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이 구절에서는 눈시울이 불거졌다. 세상을 변혁할 자신감은커녕, 갈갈이 찢겨지고 뭉개지고 비난받고, 노동자의 이름마저 다시 빼앗기고 잊혀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 노동자. 하지만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그것이 우리 노동자 계급.
나이들어 간다는 것
공연을 함께 추진하고 준비한 이들이나, 윤선애나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이들이다. 공연을 보면서 그/녀들이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녹여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굳이 <낭만 아줌마>같은 곡까지는 아니라도, 시간의 흐름과 그 변화를 삶의 일부로 소화해간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시간에 너무 조바심내지 않게 되는 여유랄까, 아직 철이 덜든 30대 후반의 나로서는 아직 생소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나이먹어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니까.
PD들의 20년 후
같이 간 동지들의 표현에 따르면 그 공연(3시)에 유일한 “현직 운동권” 집단이었던 것 같은 우리는 인사동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했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기대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사회운동과는 너무 멀어졌다는 이유로 실망스럽다는 이도 있었다. 나는 그냥 윤선애의 노래가 훌륭했다는 이야기만 했다. 사실, <저 평등의 땅에>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다.
한명이 나에게 물었다. “선배는 왜 윤선애 공연에 왔는”지.
PD들의 20년 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땠을까?
나는 조금 슬퍼졌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운동에 가까이 있지 않다거나, 혹은 함께 공연한 <윤선애 팬 까페>의 중창단 멤버들이 현직 대기업 회사원, 자영업자, 학원강사, 컨설턴트, 교수..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NL들은 그랬다. 마음놓고 김대중을 지지할 수 있었고, 노빠가 될 수도 있었고, 청춘의 야망을 어쩌면 막 실현하는 듯도 했고, 또 결국은 그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오히려 자신을 애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PD들은, 적어도 한 때 진실했다면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적응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했다. 노동자의 이데올로기로 전화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진보신당의 좌충우돌, NL을 비판하고 탈당했으면서도 다른 정치를 시도하지 못하는 현실도 그 일부일지 모르겠다. 혹은 18년을 그저 시계침을 멈추어버린 (더 이상은 PD가 아닌) '좌파' 정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윤선애의 공연은, 1992년과 2010년, 긴 시간이 비어있다. 소련이 망하고, 새벽의 마지막 공연 93년, <러시아에 관한 명상>으로부터 지금 그/녀들이 만난 것은 무엇일까. NL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20년을 기억하고 살아온 PD들에게도 이제 애도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그 뒤에 남은 PD였거나 PD의 후배들인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 2006년 <새벽> 공연에 대해서 <월간 사회운동>에 실린 박준도의 글을 함께 소개한다.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532
두보시선
두보 지음, 이원섭 옮김 / 현암사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좋은 비는 그 때를 알고 내리니
봄이 되어 내리네
이 밤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없이 만물을 적시고 있네
들길에는 구름이 드리워 어둑하고
강위에는 조각배 등불만 외로이 떠 있네
새벽이 되어 붉게 반짝이는 곳을 보니
금관성(청두)이 온통 꽃으로 물들어 있구나
春夜喜雨
好雨知時節 /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 江船火燭明
曉看紅濕處 / 花重錦官城
두보를 읽을 생각을 한 건, 영화 <호우시절>, 그리고 영화에 소개된 그의 시 春夜喜雨(춘야희우) 때문이다. (위 시의 번역은 영화의 것이다.)
이백과 함께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 다는 것, 당나라 때 사람이라는 것 정도밖에 알지 못하고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1300년 전의 감성이 지금과 닿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好雨知時節, 좋은 비는 그 때를 알고 내린다"는 단 한 구절에 그런 생각을 모두 접게 되었다.
※ 아래의 번역은 모두 이원섭 역해 <두보 시선>(현암사)의 것을 기본으로 하되, 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표현을 다소 바꾸고 그 일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一片花飛減却春 / 風飄萬點正愁人
꽃잎 한 조각 날아도 봄이 움추리는 데
우수수 바람에 지는 걸 어떻게 볼까 [후략]
- 曲江(1) 중
香霧雲鬟濕 / 淸輝玉臂寒
何時倚虛幌 / 雙照淚痕乾
[전략] 밤 안개에 그대의 머리는 젖고
달빛 아래 구슬 같은 팔은 차가와라
언제쯤 빈 창가에서
달빛에 마른 눈물로 마주볼까
- 月夜 중
花徑不曾緣客掃 / 蓬門今始為君開
[전략] 꽃잎이 길을 묻어도 쓴 적이 없었더니
그대로 두어, 사립문을 그대 맞아 처음 열었다 [후략]
- 客至(손님 오시다) 중
시를 인용하는 데 부분만 가져오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너무나 감칠맛 나는 구절들이라 조심스레 떠냈다. 현대적인 느낌에서 보더라도, 구체적인 대상에 시상을 담는 이런 방법이 있구나, 놀라게 된다. 꽃잎이 날려 쌓은 사립문 앞 길과 봄을, 그려보자.
알려진 것처럼, 두보의 삶은 여유있지 않았다. 안록산의 난 등 당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살았고, 최고의 문장가(시인)이었지만 제대로 된 관직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문장은 뛰어났지만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문장력이 뛰어나면 관료적인 기질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과거제도의 단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늘그막에는 가족과 떨어져 고생하고, 결국 객지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두보의 젊은 시절의 유랑과 중년, 노년의 유량은 성격은 다르지만 여튼 많은 풍경을 그의 시에 담아내게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의 시대, 그의 고난은 시에 독특한 감성을 부여한다. 어려운 시대와 자신, 그리고 민중을 노래하기 때문에 가장 사실적이지만, 또한 가장 감성적이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눈을 바라보며
싸움터 새 귀신의 슬픈 노래
슬퍼 읊조리는 늙은이 하나
구름 자욱한 저녁 어스름,
회오리바람 타고 눈발 날린다
버려진 표주박엔 술 떨어지고
화로에선 불이 꺼져 가는 날
몇 개 고을 싸움 소식은 알 수 없어
앉아서 허공에만 글을 쓴다
對雪
戰哭多新鬼 / 愁吟獨老翁
亂雲低薄暮 / 急雪舞廻風
瓢棄樽無綠 / 爐存火似紅
數州消息斷 / 愁坐正書空
이런 고통에 대한 노래는,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는 민중의 것이 된다. 그의 충군우국(忠君憂國)이라는 것은 유교적인 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제왕에 대한 충성보다는 전쟁의 고통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나라 걱정”으로만 보기는 무리다. 그럼 점에서 두보의 시는 개인적인 감상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의 생생한 표현에서 번지는 감성은 여전하다. 그 이중성이 주는 독특한 효과.
그래서 두보의 시는, 사회와 개인을, 그리고 삶의 고통과 봄의 기쁨을 함께 담고 있다. 그래서 그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쉬운 시대, 쉬운 감성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시를 써냈다. 시인 두보가, 그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好雨知時節,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빗물들이 떨어지면서 우연히 만나고, 다시 없을 그의 시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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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철학과 맑스주의』,알튀세르, 35쪽)
클리나멘이 일으키는 편의(기울어짐) 따라 원자들의 마주침을 만든다. 그 마주침은 “원자들에, 편의와 마주침이 없었다면 밀도도 실존도 없는 추상적인 요소들에 불과했을 바로 그 원자들에, 그것들의 현실성을 부여한다.(같은 책, 39쪽)”
그러니 우연한 마주침에 관한 영화로서, <호우시절> 허진호 감독의 '비'라는 소재는 재미있는 선택이다.(물론 그 '비'의 목적론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
예전에 사회진보연대 <삶의 소리>게시판에 썼던 글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좌파가 형성될 것이라고만 보는 것은 다소 안이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래 인용한 김원 선생의 글과 같은 측면도 있지만, 또한 최근 <전진>과 관련해서 진보신당 내의 논쟁을 봐도 그는 느낌입니다.
[참고 : 레디앙]'전진' 논쟁 중요하다, 제대로 하자
어디로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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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저런 글(특히 월간 사회운동 다음호에 실릴 글)에서 기존의 사회운동-좌파들-이 촛불집회/행진이라는 거대한 운동의 결과를 “조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조직”하고 따라서 이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기존의 사회운동이 무엇을 해야할지가 관심사다. (입장에서부터 구체적인 활동과 사업까지)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현재의 운동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대안좌파가 (일정한 임계질량 이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반정치에 하나의 순환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홍세화 씨가 인터뷰에서 밝히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 시기에 계속 반복될 수 있지만, 또는 심지어 정권을 바꿀 수도 있지만 동일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점은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에 실린 베르티노티의 인터뷰, <정치의 위기와 반정치의 위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소간의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서 베르티노티의 인터뷰 한문장 한문장은 정확히 여기, 놀랍게도 2008년의 한국, 시청과 광화문 거리의 정치를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정세 속에서 좌파, 사회운동이 임계질량을 구성하기 위한 실천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무엇보다 기존의 좌파들의 연합보다는 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새로운 조직화에서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기본으로, 현재의 사회운동에서도 연대할 대상을 찾아야한다. (우리는 이 운동 속에서 노조와 정당의 관료주의, 활동가들의 현장주의의 한계를 보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회운동의 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명박산성”을 넘기위해 연단을 쌓고 발언을 조직한 인권활동가들, 매일 촛불행진에 결합하는 새로운 세대의 기층 노조활동가들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방향은 그저 하나의 ‘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실천으로 연결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조직’은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위기와 반정치의 위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 72~74쪽, 강조는 인용자)
- 반론이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20세기에 유래했던 광범위한 여론은 두 가지 강력한 대조적인 믿음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정부가 아주 혐오스럽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부가 정치에서 유일하게 중요하며 정치는 정부 그 자체를 구성하기 위한 경쟁일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기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 참여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겠습니까?
-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사태에 대한 관찰일 빠름이지요. 이제 우리는 그런 사태의 원인에 대해 인식해야합니다. 정부가 여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의 취약성의 결과입니다. 오늘 유럽은 정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 속에 좌파적 정치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좌파의 이런 위기는 훨씬 더 큰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의 일부일 따름입니다. 정당 및 노조같은 대중정치의 거대한 주체, 말하자면 거대한 사회·정치적인 연합, 이념 및 공동체의 연합의 약화는 거의 사막화된 공적 영역에 여론과 정부라는 두 행위자만을 남겨놓았지요. 그들은 서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매개, 어떤 경험, 요구와 갈등을 정치로 전환함으로써 정치를 생산할 수 있는 어떤 집단적 조직도 없이 말입니다. 현 단계에서 정부는 더 이상 ‘일자리 생산자’로서 중요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치의 다른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덕분에 자신의 이미지와 비중을 확대합니다. 인민 앞에 홀로 남은 정부가 정치의 주체를 대체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런 사태를 용납한다면, 반(反)정치의 승리를 용인하는 셈이지요.
- 왜 정부의 중심성이 반정치를 의미하지요?
- 정치가 부재할 때, 반정치가 여론과 정부를 관계짓는 매커니즘이 됩니다. 거의 산술적인 증명을 해볼까요? 최근 몇 년간 유럽의 선거 경쟁에서 모든 여당이 패배했습니다. 블레어만이 예외였는데, 그러나 이 경우에도 득표율은 크게 하락했지요. 선거 전의 [스페인 총리] 아스나르를 기억하세요? 그는 무적인 것처럼, 거의 신처럼 보였지요. 그는 승리한 현대적 통치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거에서 패배했어요. 슈뢰더를 기억하세요? 그는 아주 경력했고, 거대한 권력을 갖고 통치했지요. [사민당 당수였던] 라퐁텐이 자신의 행동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를 정부에서 축출했지요. 그 후 그는 선거에서 패배했어요. 조스팽, 베를루스코니, 기타 등등,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왜일까요? 정치조직이 부재할 때 [정부에의] 위임과 반정치가 성장하는 데, 그것들은 동일한 불안정한 균형의 양면이지요. 그런 균형은 이미 정해진 세 국면, 즉 위임·사임·붕괴라는 국면으로 구성됩니다. 그것은 실제로 매우 위험한 균형인데, 민주주의를 제거하고 배제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정치에 침투하여 확산되는 반정치가 정치를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 예를 들어 베를루스코니주의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요?
- 그래요, 베를루스코니주의는 분명한 사례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반정치가 중도좌파에도 마찬가지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인 이유로 이탈리아[좌파민주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기로 하지요. 프랑스를 보면,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인] 루아얄의 선거운동에는 수많은 반정치가 있습니다. 아첨하는 인민주의 말이지요. 루아얄은 반정치의 요구와 비판을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반정치는 그것이 정치에 대한 몇가지 비판적 요소를 획득했다는 이유로 인해 더욱 발전하는데, 완전히 정당한 이런 새로운 요소는 정치 그 자체의 위기의 결과입니다. 이런 조건이 민주주의의 전진적 위기를 생산하는 것이지요.
- 반정치가 이렇게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나는 정의롭지 못한 이 사회가 갈등을 생산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확증된,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이 보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사회는 다수의 갈등을 생산하지요. 모든 종류의 갈등, 노동·숙련·코퍼레이션·젠더·지방공동체·동일성 등등에서의 갈등 말입니다. 이런 갈등들은 어떤 정부인가에 따라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과 정부 사이에는 자율성이 존재합니다. 어떤 운동의 승리와 패배는 이것이 그 속에서 작동하는 정부의 조건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어떤 정복[봉기]도 안정화[구성]도 할 수 없습니다. 즉 문제는 승리할 때조차 운동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방할’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운동은 자신의 승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운동은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작동하고,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상하지만, 그러나 운동은 그것에 대항하는 조직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즉 운동은 이전의 순환과 동일한 정치적 결과를 생산할 수 없지요. 지난 세기의 운동은 ‘토치카’를 정복했고 여론의 안정적인 전환을 생산했습니다. 오늘 운동은 아주 강력할 수 있고, 강력한 적을 패퇴시킬 수 있지만, 그러나 대중적 상식과 동의를 건설하지는 못합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지요? 민주주의의 결여가 중요하고, 이런 요구와 이런 압력, 게다가 이런 ‘예방적’ 정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주체의 부재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 전적인 부재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요. 급진적 좌파가 있고, 공산주의 재건당이 존재하니까요..
- 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성공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임계질량’(critical mass,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질량), 즉 경향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해야합니다. 급진적 좌파는 이런 차원에서 자기를 시험할 수 있는, 즉 임계질량에 도달할 수 있는 주체를 여전히 결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가 설명하려는 또 다른 종류의 결과가 발생합니다. 즉 유럽에서 전통적 갈등은 두 가지로 분열되고 또 그 성격이 변화합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갈등을 관찰합니다. 하나는 좌파와 우파의 차이에 관한 것인데, 이런 차이는 좌파가 야당일 때 아주 분명하고 아주 인화성이 높습니다. 또 하나는 사회의 ‘상층’과 ‘하층’, 말하자면 통치계급[엘리트]과 기층[인민대중]의 대조에 관한 것인데, 이런 갈등은 좌파가 여당일 때 훨씬 더 강력합니다. 이 두 가지 갈등은 서로 교차합니다. 상층과 하층의 갈등은 [인민주의적] 반정치의 매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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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늦게 봤네. 한참을 안들어오다보니까.. ^^;잘 지내지? 언제 한번 보면 좋을텐데. 인터넷으로라도 만나자. 메일 주소라도 남겨두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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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독서인’ 서포터즈 모집1. 기 간 : 2011. 3. 17 ~ 2011. 3. 24
2. 신 청 : 지원 신청서를 ‘독서인’ 홈페이지
(www.read-kpec.or.kr)에서 다운로드하여 작성.
3. 발 표 : 2011. 3. 31(목) ‘독서인’ 홈페이지에 게재 및 개별 통보
4. 활동 기간 : 2011. 4. 1 ~ 2012. 3. 31(1년)
5. ‘독서인’ 서포터즈 활동비 분기별(문화상품권 5만원)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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