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윤상원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16
    [펌]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2)
    겨울철쭉

[펌]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정은교 선생이 프레시안에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셨군요.
>> 화려한 휴가' 유감 [독자 기고] 항쟁의 주체와 실상 왜곡

좋은 글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 붙은 덧글이 하나 있습니다. 광주와 지식인에 대한 어떤 분의 짧지만 무거운 언급입니다.
그냥 기사 하나에 댓글로만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이네요. 퍼왔습니다.



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원문있는 곳(링크)
무념 / 2007-08-15 오후 2:58:40   
추천 17,    반대 1 

광주항쟁은 소위 먹물이라는 자들의 결정적 치부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들은 이러한 미세한 흐름을 표현하기가 두려워 소위 지식인이라는 계층의 활동가들을 통채로 삭제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 실 윤상원씨는 운동권을 제외한 일반 학생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야학을 열성적으로 해 간 의식있는 청년 정도로 여겼었던 것 같습니다. 항쟁이 마무리되고 그가 도청에서의 저항을 주도하고 최후를 맞았다는 애기를 듣고 멍치끝이 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끄럽다는 느낌, 내가 배신자라는 오욕감,  자신의 삶이 그다지 가치있을 것 같지는 않겠다는 뭐 그런 감정이었지요. 한마디로 광주항쟁은 젊은 우리들의 인생관을 크게 뒤바꾸어버린 경험을 안겨주었지요.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지도부에 속한 인물들의 대다수가 끝까지 싸우겠다는 약속을 뒤로 한채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씨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는 군인들의 체포작전이 시작되자 도피하여 서울의 어느 작은 공장 직공으로 들어가 체포될 때까지 숨어 지냈었지요.

박관현씨는 옥중에서 단식항쟁 끝에 운명하게 됩니다. 그가 그리 치열하게 단식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산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극심한 자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알려지고 전남대 학내에서의 항의데모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한달여 동안 매일의 데모 끝에 진압경찰들이나 학생들 모두 지쳐서 그저 도로에 앉아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쓴 웃음만 나옵니다. 이렇게 지독하다 할 정도로 데모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학생들 개개인이 느꼈던 그리도 심한 자괴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데모진압의 강도는 훨씬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정예부대를 투입하여 데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떼려잡는 그런 것일 거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광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그저 버스를 타려거나 내리는 사람들을 아무 경고도 없이 덤벼들어 검은색 박달나무 곤봉으로 머리통을 내려갈겼습니다. 고시학원으로 난입하여 수업중인 수험생들을 두들겨패고 피흘리는 그들을 질질 끌고 나와 도로에 꿇어앉혀 놓거나 트럭에 태워 어디론가로 데려갔습니다. 충장로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 점원들을 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과 함께 항의하는 가게 주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일부는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나중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움직이는 것만 보면 덤벼들어 물어뜯는 미친개, 바로 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상입니다.

집집을 수색하여 사람들을 폭행한 것은 그야말로 집 또한 안전하지 않겠다는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시외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교통은 두절되었고 시외로 빠져나가다가 포위중인 군인들에게 걸려 변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자자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상무대에서 교육받는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어서 우리 동네까지는 수색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무척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이즈 음해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거의 모두 잠적해버리고 맙니다. 데모는 즤들이 다해놓고 정작 필요할 때는 한놈도 안보인다. 광주 시내에서 흔히 들렸던 투덜거림들이었습니다. 개학해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니 모두들 나와 똑같이 행동했다는 걸 알고 참 기가 막히더군요. 소위 먹물이라는 작자들은 그렇게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빴습니다.

영화에 윤상원씨를 등장시키려면 이러한 먹물들의 행동양태가 반드시 묘사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랬으면 이 영화는 또다른 저항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사 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선은 그 당시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심리상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가 싫고..... 지금 내 나이 오십하고 하나, 그 영화가 잘됐든 잘못됐든 또 영화감상 시간이 길든 짧든 그 당시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되돌아가기 싫기 때문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