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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독서]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겨울철쭉

[독서]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미국의 잘 알려진 흑인 페미니스트 벨 훅스는 성-인종-계급적 차별이 서로 분리된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현실에서 억압은 이런 모순들의 복합체이고, 성과 인종적 차별은 이제 이야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계급적 차별의 문제는 미국의 언론과 학문공간의 담론에서 금기시되어 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간과된다.
 
흑인이자, 노동계급 출신이자, 여성인 벨 훅스는 이러한 모순이 종합적으로 사고되어야하고, 또한 계급적 불평등의 문제 해결이라는 지점에서 이 모순들의 해결책이 만난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신지어 베티 프리던의 "이름 없는 문제" 조차도 상류계급의 백인여성들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백인 상류계급-중산층 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그러 문제를 겪는 동안 대부분의 엿어들은 장시간 저임금으로 노동시장에 있었다. 그러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말해서는 안되겠지만 페미니즘의 역사를 말할 때 그  한계 또한 말하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않다.
  
"이름없는 문제"의 제기에서 시작된 백인 특권 계급이 주도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개량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을 뿐이다. (벨 훅스는 이 지점에서 차라리 남성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레즈니언 페미니즘-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옹오하는 데, 이러한 입장이 계급적 분석과 융합될 수 있을 것인지는 쟁점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페미니즘은 대학의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유폐되어 가거나 혹은 인종차별문제와 결합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여전히 계급이라는 문제는 배제되고 있다. 이런 동안, 여성의 평등은 특정한 권리--특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게 되고, 특권층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상황에서 배제된 여성들과 노동계급이 페미니즘을 적대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마치 특권층 여성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이념인 것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 흑인 특권 층도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문제는 더욱 인종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적인 것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층계급이 가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에 관해서는, 비난만이 아니라 비판,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여성운동이 누구의 이익을 보장하려고 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리천장' 문제에 집중하는 여성운동은 청소용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직면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동의 여성화,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를 사고할 수 있는가? 노동계급은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빈곤은 그나마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던 흑인공동체마저도 파괴해가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결합해가기 때문이다. 빈곤한 흑인들은 빵을 위해서는 강도질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 마약을 위해서 강도와 살인을 한다. 흑인 공동체는 파괴되어가는데, 이것은 흑인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지배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한편, 미국에서 빈곤의 문제를, 따라서 계급의 문제를 사고하는데 있어서 인종문제와 결합하는 것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흑인들이 빈곤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인구수의 비율로 따지면 빈곤층의 다수는 백인 빈곤층이다. (흑인은 인구비율이 적다)
  
그런데도 빈곤을 흑인들만의 문제로 상징화하는 것은 백인 빈곤층을 보이지않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인종 사이의 계급적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빈곤의 문제를 인종과 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계급의 문제로 사고하고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벨 훅스의 이 책은, 이러한 주장은 노동계급이며, 흑인이며, 여성인 자신의 출신배경의 개인적인 경험을 곁들여 말하면서 설득력을 갖는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러한 모순들이 현실에서는 별개의 추상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나하나의 개인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한가지를 마지막으로 지적하자.
벨 훅스는 계급적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미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어떻게"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녀가 제시하는 것은 "연대"정도이다. 그러나 누구와 누구가, 무엇을 위해서?
  
벨 훅스의 문제제기에는 "계급"은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계급투쟁"은 없다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책개혁으로 충분할까? 오히려 계급문제의 해결은 그/녀들이 자신의 계급적 조건을 인식하고 투쟁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계급이 가시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특권층의 "나쁜 의도" 때문이기 이전에 계급투쟁이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이 계급을 형성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미국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이 간과되는 현실은 당연할 수 있다. 도덕적 비판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계급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그녀에게,
보다 체제에 위험해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흑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마약 밀매보다 계급투쟁이 체제에 더 위험할 수 있어야 그 지배를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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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는 <행복한 페미니즘>이라는 인상적인 책을 쓴 바 있다.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백년글사랑,시와시학사)
 
 
이 책에 대한 리뷰는 아래 참고 (예전 홈페이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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