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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6
    [애니] 최종병기그녀(1)
    겨울철쭉
  2. 2008/10/20
    [독서]연금술사, 불한당들의 세계사
    겨울철쭉

[애니] 최종병기그녀



금융위기가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시기에, 블로그에 글을 잘 올리지는 않고 있지만 가장 몰두하게 되는 독서는 역시 금융위기와 공황,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관련된 책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상하게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이런 위기와는 상관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최종병기그녀(最終兵器彼女).

자세한 설정을 여기서 소개할 여유는 없지만, 세계가 멸망해가는 전쟁통에 "최종병기"가 된 치세와, 그녀의 남자친구 슈지의 이야기다. 한편으로, 여성의 신체를 군사무기로 전유하는 설정에 대해서 페미니즘적 비판이 있기도 하고, 군국주의적인 설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렇게 비판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정작 "최종병기그녀"가 보여주는 세계는 전혀 가상적이다. 말하자면 전혀 있을법하지 않고, 그래서 일종의 판타지.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이라고, 혹은 현실과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둘이 사랑하던 말던, 아파하던 말던, 세상은 전쟁으로 멸망할 예정이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당연히 희망도 별로 없다. 마지막편에서는, 주인공들이 있던, 후카이도에  마지막 남은 마을마저 폭격과 해일로 사라진다.



우리가 경험하는 금융위기의 시작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뒤메닐-레비나 윤소영선생의 분석처럼 2012/13년 경에 최종적 위기를 경험하게 될까, 혹은 지금일까, 혹은 더 먼 언젠가일까,

여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우리의 주관적 희망과는 무관하게 점점 더 최악으로 상황으로 전개되어갈 것이다. (하지만 치세와 슈지가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고 살아남고자 했던 것처럼)

***
너희들이 무슨 점쟁이냐는, 혹은 너희가 뭔데 그렇게 오만하게 예상하냐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렇게 말하는 운동권들의 심리는 순전히 사태의 진실을 믿고싶지 않은 주관적 희망 때문일 것이다. 희망이 무지의 근거가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니면 어떤 선의에 기반한 희망들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세상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도 최후의 희망은 노동자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혹은 구하는 것일테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어떤 준비라도 다 할 것이다. 이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는 이상, 우리는 적어도 5년 후의 시각에서 현재를 보아야한다. 매순간 그렇다. 5년후에 지금을 돌아본다면, 그 때 무엇을 했어야한다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상황을 인식하는 우리 모두는 전혀 다른 책임감으로 행동해야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지는 전혀 알수 없다.
다만 시간은 그저 '역사의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최종병기그녀"의 시간대, 그 시간대에 살아가는 치세와 슈지의 시간대는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다. 무엇에 최선을 다하는지는 치세와 슈지와는 다르겠지만(이건 연애얘기는 아니니까), 그/녀들의 말처럼, 살아남아야한다.

하지만 어쨋든, 결과가 세상이 망하는 것이거나 혹은 아니거나,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치세와 슈지처럼,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적어도 아직은 그/녀들 보다는 좀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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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연금술사, 불한당들의 세계사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사실, 내가 제목에 적은 두 책은 일종의 판타지들(환상문학)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 큰 상관은 없어보인다. <연금술사>는 게다가 판타지라기 보다는 일종의 "처세술" 혹은 "자기계발서"로 이해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같다. (덕분에 책은 아주 많이 팔린 것으로 안다.)

코엘료도 남미 문학가이니, 그리 보면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닌 것같다. 어쨋든 보르헤스가 쓴 언어로 읽고 쓰는 사람이니까.


불한당들의 세계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최근에 보르헤스 연작을 읽는 중인데, 모두 다섯권 짜리다.
첫째 권인 <불한당들의 세계사>에는 천일야화의 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꿈을 꾸었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제목이다. 천일야화 351째 밤의 이야기. (이 대목만은 "뻥"이 심한 보르헤스에게도 "예외적으로" 진짜인데, 실제로 천일야화 351째 밤의 에피소드는 비슷한 내용이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전체 구조와 같은 내용이다. 아마도 코엘료는 보르헤스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엘료는 어디에도 보르헤스도, 심지어는 천일야화도 언급하지 않는다.(물론 번역된 책이 아닌 다른 글에서 언급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어판에는 언급이 없다.)

그렇게 보면, 참 실망스러울 수 밖에.
적어도 소재의 출처는 밝혀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한편, 앞서 말한 것처럼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어느 정도는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들의 맥락에서 소비되는 것같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예를 들어 베스트셀러로 역시 대박을 터뜨린 <시크릿> 같은 책이 유행하는 맥락, 모든 것을 "자아"의 문제로 환원하는 식의 사고방식. (종교적으로는 80년대 이후 미국의 뉴에이지 운동, 신사상 New Thought운동 등과 관련되어 있다. 기존 종교의 위기에 대한 대응의 하나인 셈인데, 이에 반대하는 극단은 종교적 근본주의다.)

뭐, 어찌 보면 천여년 전의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재현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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