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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1/16
    태왕사신기 본색(2)
    겨울철쭉
  2. 2007/11/09
    태왕사신기, 영웅의 시대?(2)
    겨울철쭉

태왕사신기 본색

무한한 연습님의 [<<주몽>>과 <<태왕사신기>>: 자본주의적 욕망의 서사(와 민족 서사)로써의 고구려 역사 드라마들.] 에 관련된 글.
님의 [<태왕사신기>와 포섭의 정치] 에 관련된 글.

드디어 이번주 태왕사신기 방영분(18~19회). 태왕사신기의 본색이 위에 링크한 글에서 무연님, 삼님이 말한 것과 같은 식으로 너무 '친절하게' 드러났다. '친절한 담덕씨' 우리 태왕폐하는 아주 친절하게 프리젠테이션까지 준비해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한다. 어디선가 들었던 표현을 언급하자면 "벤처 사장들의 북방 개척론"이랄까.

자신이 하려는 것은 피흘리는 전쟁이 아니라 거란이나 부여나 주변의 이런저런 나라들과 무역을 하려는 거다, 그게 '쥬신민족'이 평화롭게 하나되는 길이라나.(18회) 그러다가 드디어 다음회(19회)에서는 소금장사하러 거란으로 떠나신단다. (게다가 태왕 담덕이란 인물은 점점 더 내적 모순이 완전히 제거된 무슨 꽃미남 밀납 인형같은 캐렉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결국, 신자유주의 시대에 적합한 전략이라는게 세계화된 경제라는 식의 연설을 광개토대왕이 하는 셈. 이걸 보면서 정부의 한미FTA 홍보광고가 당장 떠올랐던 것이다. "더 넓은 시장에서 경쟁합시다" 실제로 국정홍보처의 한미FTA 광고 중에는 광개토대왕 어쩌구하면서 하는 것도 있었다. "경제영토"가 뭐네하는 광고도 있다.


요것은 태왕사신기의 한 장면? 아니다. 국정홍보처의 FTA광고 "도전편"에서 광개토대왕 어쩌구하는 장면이다. http://fta.korea.kr/Article/?dataSeqNo=9007&dataGubun=TV&PageMode=Detail

그런데, 여기까지는 MBC 뭐 니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건데 좀 더 생각하다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물론 나름 드라마 재미있게 보다가 기분 잡치면 그 자체가 좀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게다가,)
이게 위에서 말한 "벤처 사장들의 북방개척론"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건데, 이건 뭐시기냐하면,
권영길 후보 공약을 비판하면서 우석훈씨가 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레디앙] 소제국주의 식민지 전략보고서?

"코리아(=고려=고구려)연방"으로 "쥬신(조선)민족" 대동단결해서 북방시장 개척하자는 거잖아, 이거..
전근대적인 것과 초근대적인 것의 결합이랄까, 민족주의 상징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한 대중동원에 결합하는 이런 방식을 사회운동들까지 따라해야하나..

그러다가 작년 투쟁할 때 민주노총에서 만든 총파업 깃발에 메인 로고가 '태왕사신기'에도 열심히 출연하고 게시는 삼족오라는 것도 떠올랐다. 젠장.. 이러다가 민주노동당이 태왕사신기 컨셉으로 선거 선전할까봐도 심히 걱정된다.

뭐, 작년에 민주노총은 그게 삼족오가 아니라 주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니 문소리나 이지아를 섭외하려나? (남조선은 남쪽이라 주작인가??.. 그런 심오한 고려까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작(朱雀)이 민주노총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투쟁을 수호한다.

민주노총은 이번 총파업 상징으로 선정된 주작을 이미지화해 깃발로 제작, 연맹과 지역본부, 지구협에 보급하고, 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 장소에서도 배포한다.

깃발 이미지는 ‘민중적 내용을 민족적 형식에 담는다’는 원칙아래 주작의 상징적 모양과 붉은 색조를 기본으로 형상화했다. 또 검정과 회색톤을 가미해 강렬하면서도 현대적 이미지를 표현했다.

주작은 우리 민족 설화에서 청룡, 백호, 현무 등과 함께 하늘의 사방四方을 지키는 신을 일컫는다. 주작은 남방의 수호신으로 삶, 생존을 의미하는 사신四神 중의 하나다.

봉황이 득도를 하면 온몸을 붉게 물들이며 주작이 된다 하여 ‘붉은봉황’이라고도 한다.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실장은 주작을 총파업투쟁 상징으로 정한데 대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변혁세력의 단결로 민족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감으로써 역사의 변환점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상징물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이 참여하는 민중총궐기 투쟁에서도 이용될 것”이라며 상징물의 쓰임세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노동과 세계 기사, 홍미리 기자 gommiri@naver.com   2006년11월06일 )


http://newscenter.nodong.org/news/view.php?board=mainnews&id=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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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영웅의 시대?

요즘에 태왕사신기를 재밌게 보고 있다. 사실 요즘에 그나마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는 셈인데, 여행을 다녀와서 지난 주에 14회를 처음 본 후에 1회부터 주말내내 찾아봤다는,,;;

나도 영화나 드라마 보는 취향은 그저그래서 일단 판타지 줄거리에, 멜로 라인, 멋진 쌈박질 장면 등이 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CG는 별로라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쪽에는 예산을 줄이다가 "싸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태왕 담덕 역의 배용준은,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반할 정도로 멋있게 나온다.

재미있게 보다가 생각나서 몇가지.



신화, 영웅들의 시대

드라마의 배경은 고대. 좀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신화적인 시기로 그려진다.(고구려 정도는 이미 역사시대인데..;)

주인공인 태왕 담덕은 '영웅'이다.
그런데, 이 영웅에는 두 가지 정도의 부류가 있다. 전자는 영웅신화나 설화에 등장하는, 탄생-고난-성장-귀환으로 연결되는 일생을 사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타고난" 운명을 갖고 있어서 언젠가는 승리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고난을 겪어야하고 그 운명을 알아보고 돕는 것들을 만나야한다.

이런 영웅들은 매우 전형적이어서, 어느 민족들의 영웅신화, 설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홍길동전같은 중세소설에서도 그렇고, 지금 쓰여지는 소설이나 영화들에서도 활용되는 구조.

그런데, 또 다른 영웅들이 있는데,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세익스피어에서도 그렇지만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보자. 이들은 운명의 장난에 따라, 혹은 자신의 기질 때문에 비극적인 상황에 봉착하지만 자신의 고귀함을 지키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다. 이들은 파멸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고귀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성격의 영웅은 그 위대함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 위대하게 느껴진다. 두 가지의 영웅 성격이 결합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나, 영화 '메트릭스'에 네오가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튼, 태왕사신기의 영웅인 태왕 담덕은 전자의 성격에 가까운 인물. 그래서 14회 정도부터 시작해서 17회 정도에 이르러서는 고난을 거의 이기고 이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극적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편으로는 극적 재미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반감하는, 이 드라마의 판타지적인 성격이 관련되어 있다.

기계신(deus ex machina)

14회, 15회를 TV에서 보고 앞 부분을 찾아서 다시 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담덕이 어떻게 (신물을 다 찾을 때까지 임시라고는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가하는 점이었다.

11회. 선왕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던 태왕 담덕은 신당에서 "가우리검"(심장에 칼을 박아넣고 죄를 지은 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하여 재판하는 제도라는 데, 중세시대의 마녀심판과 비슷한 것이다.)을 요구받는다. 심장에 칼을 찔린 담덕은 여기서 심장이 찔린 칼(동명왕검)이 한순간 가루로 변하면서 설아남는다. 그 결과로 짜자잔~ 선왕을 죽였다거나 귀족 자제들을 납치했다는 모든 의혹을 뒤로 하고 왕위 등극.

그 순간 당장 떠오른 것이 진중권 덕분에 유명해진 기계신(deus ex machina)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사건자체의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외부적인 힘 덕분에 모순이 해결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개념. 여기서 동명왕검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렇다보니, 담덕이 왕위를 인정받는 것은 그의 고귀한 인품이나 고난을 헤치는 용기같은 것이라기 보다는(물론 그것들도 제시는 되지만), 판타스틱한 기적에 의한 것이 된다.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서 주인공 영웅을 도울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극적 긴장은 떨어질 수밖에. 4개의 신물을 모두 찾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것이지만, "가우리검" 장면은 특히 심했다.



인물들, 입체적이거나 밋밋한.

이런 상황이다보니, 태왕 담덕은 주인공이지만 점점 재미없고 더 밋밋한 인물이 되어간다. 물론 배용준의 멋진 외모 덕분에 여전히 (극에는 외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그의 성공은 그의 고귀한 영웅적 자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힘들이 이미 닦아준 길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해서, 오히려 태왕 담덕과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결국 대립하게 되는 기하(문소리)나 연호개(윤태영)가 더 입체적이고 극적인 인물이 된다. 이들에게는 내적인 갈등이 있고 고뇌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처한 운명 속에서 파멸되어간다. (아마 이들의 성품이 좀 더 고귀하게 그려졌더라면 이 드라마의 진정한 영웅은 태왕 담덕보다는 이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극중 인물들의 사랑에서도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기하가 태왕 담덕에게서 멀어져가는 과정, 그리고 파멸을 예상하면서도 (기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연호개의 경우다. 수지니(이지아)를 둘러싼 태왕 담덕과 처로(이필립)의 미묘한 감정보다도 더 그렇다.

오늘 방영한 17회에서 "(더 멀어지고 파멸하기 전에) 자신을 멈추어 달라"는 기하의 대사나, 지난주(아마 15회?)에서 연호개가 기하에게, "내가 필요없어져 버리더라도, 당신 손으로 내 가슴을 찔러줘요"라고 말하는 연호개의 경우가 더 생생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느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드라마는 고대 귀족정 시대를 다룬다. 이것은 영웅들을 묘사하기에 쉬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귀한 인간들의 귀족적 성품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귀족정을 옹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성품의 인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귀족적 성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이 '평범'해지는 이 시대에는 고귀하고 위대한 영웅들을 그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혹은 인간의 위대함을 억압하는 시대.) 그러다보니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정치판에서 영웅 행세를 하려고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고대민족들의 역사

한편, 이 드라마는 '쥬신'이라는 이름으로 동이족들을 통칭하면서 이들이 같은 민족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말갈, 거란 등이 언급된다.

사실은 여기에 왜(倭)도 넣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하지 않는데, 왜를 포함해서 동이족을 지칭할 경우 '내선일체'를 상기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거란, 말갈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지금은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그런 점에서 남한민족보다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일본은 '내선일체'를 말할 수 있지만 일본민족보다 열위에 있는 조선민족은 그것을 반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기만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백제가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동부지역에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설을 채용하지만, 마찬가지 맥락을 갖는 다른 가설, 백제와 왜가 연합왕국이었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같지는 않다. 이것 역시 일본에 대한 미묘한 입장 때문일텐데, 이 드라마가 일본자본의 적극적인 투자, 그리고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인 일이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왜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드라마를 보면, 주요 전투장면은 황량한 초원과 사막지역에서 촬영한 것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스텝지역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무대였던 만주에서의 촬영에 대해서 중국정부가 내용상 문제를 들어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수입과 방영도 불허할 방침이라고 한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이족을 통칭하여 '쥬신'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이 드라마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고대사를 두고 각 민족국가들이 벌이는 역사전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에 대한 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구성된 역사들에 대해서 말이다.

중국의 경우에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그들이 (말로라도) 체제의 성격으로 사회주의를, 그리고 다민족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로 민족간의 우애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라면, 오히려 각 민족들의 고유한 역사를 평등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 민족적 우애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한족(漢族)의 주요 제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하고, 다른 민족의 역사는 "지방정권"이라는 식으로 폄하하는데, 이는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한족의 패권적 역사관일 뿐이다. 이렇게 되는 데 티벳을 지원하는 미국과 같은 위협, 민족들의 분리독립의 위험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그것이 다민족 국가로서의 중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는데에 올바르고--게다가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의문이다.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만드는 한국이나, 그것을 금지하는 중국이나, 또 일본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드라마는 앞으로도 재미있게 보겠지만, 극 자체의 재미를 기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같고, 화려한 영상과 몇가지 극적 에피소드가 더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다. 아, 그리고 배용준을 비롯해서 인물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아직은 충분히 볼만하고 앞으로도 상당히 그렇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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