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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0
    "현장파"의 모순
    겨울철쭉

"현장파"의 모순

'현장파'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노동자운동에서 '좌파'와 혼용되어 사용된다.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물론 이렇게 된데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사업장 단위의 경제투쟁에서 전투성과 비타협성을 좌파들이 일관되게 지지해왔고, 이것이 이러한 정서를 공유하던 현장활동가들과 결합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전노협이 약화-소멸되면서 대공장 중심의 경제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단위 경제투쟁의 전투성과 비타협성은 좌파들이 현장활동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향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좌파'는 '현장파'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한 활동가가 좌파이자 현장파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좌파=현장파는 아닌 것이다. 좌파는 정치적 입장이며, 현장파는 대중운동의 한 경향이니까.(그것도 주로 대공장 현장조직들을 중심으로 하는 경향들이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다시 하는 이유는, 좌파=현장파의 도식, 좌파가 자신의 대중운동적 기반을 주장하고 확대하기 위해서 활용해왔던 이 도식의 모순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고, 그 모순을 적대적으로 전개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생각 때문이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류기혁 열사의 분신 이후에 민투위가 크게 비판받았던 적이 있다. 대공장 현장파운동이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태도가 문제였다. 물론 당시에 이 문제는 정파간의 비난으로 얼룩졌고, 그것을 특정 정파(말하자면 노힘)의 책임이라는 식의 비난이 많았다. 하지만 현대차 집행부의 태도가 노힘의 입장과 같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런 비난은 진정한 쟁점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았다. 말하자면 노힘이라는 정파의 입장이 아니라 대공장 현장파의 입장이 문제였던 것이다.(현장(파)를 '신성시'하는 이런저런 정파들의 비난이, 현장조직이 문제라는 비판이 아니라 정파(노힘)가 문제라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최근 공공노조나 연맹 주변의 상황을 보면서도 다시 느끼게 된다. 공공노조-연맹 안에서 좌파라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존재한다.(본인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하나는 산별노조를 지역조직을 중심으로 강화하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을 주된 입장으로 하는 경향.
또 하나는 대공장의 현장투쟁을 강화하는 데 우선을 두고 따라서 산별노조로의 집중을 비판하는 경향.

경향적으로 지역운동 활동가들, 비정규직 활동가들은 전자의 입장을, 대공장 현장파 활동가들은 후자의 입장을 가진다. 이런 입장은 산별노조 안에서 대공장 조직의 발전방향, 향후 산별노조 발전방향, 지역조직과 비정규사업에 대한 예산과 인력의 배정 등에서 입장의 차이를 나타낸다. (이것은 국민파와 형성하는 산별노조에 대한 쟁점과는 또 다른 축의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어떤 현장파 간부는 이후 산별노조 내 예산배정비율을 [중앙:기업지부=3:7]로 하자고 제안한다. (현재는 4.5:5.5이며, 내년에는 5:5로 조정할 예정이니 이 현장파 활동가의 입장은 현행보다 기업별 지부의 예산을 확충하는 안인 셈이다.) 이런 입장은 사업장단위 현장에 더 큰 힘을 주어야한다는 관점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산별노조의 지역조직,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재정과 인력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 어떤 현장파활동가들은 '제대로된 투쟁'을 위해서 현재의 산별노조를 탈퇴해 유사업종 대공장 노조들로  새로운 산별노조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것이 실질적인 "총파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산별노조의 재편단계에서 몇번씩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이런 지점에서는 오히려 국민파의 "업종노조" 입장과 유사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역설적인 현상도 아닌 것이, 양자 모두 실리주의와 경제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양자의 입장은 상호 토론되고 합의점을 찾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적대적으로 전개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쟁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확인해야한다. 그저 범-좌파라는 입장으로 뭉개고 갈 수는 없는 상황들이 터져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정규직-대기업 사업장 운동이 어떻게 "현장에 기반하여" 사업장 경제투쟁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으로 확장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제기될 필요가 있다.(양자의 입장의 산술적 합,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업장 단위의 전투적 경제투쟁, 구조조정 반대투쟁이 가진 의미와 한계가 모두 확인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문제제기는 이제까지 노동자운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많은 학자들의 논문과 정치/사회단체들의 입장에서 확인된 것들이다.(그래서 너무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활동가들 사이에 충분히 동의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모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사고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좌파-현장파라고 불리는 경향 안에서 이런 쟁점과 모순이 확인되어야 그런 동의도 비로서 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쟁점들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려고" 하는 입장들이 다수인 것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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