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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5
    [독서]자본주의의 노동세계
    겨울철쭉

[독서]자본주의의 노동세계


자본주의의 노동세계
찰스 틸리, 크리스 틸리 (지은이), 윤정향, 이병훈, 조효래 (옮긴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우리가 "노동"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렇다. 정해진 출근 시간에 직장이라는 공간으로 가서 관리자의 통제나 지시를 받으면서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일급, 주급, 혹은 월급을 받는다. 일자리를 구할 때에는 채용공고를 보고 찾아나서는데, 이런 제도를 "노동시장"이라고 한다, 등등.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이미지는 널리 확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노동세계의 극히 일부만을 묘사할 뿐이다. 노동세계는 훨씬 복잡하다. 이 책은 그런 양상을 통해서 노동을 다시 이해하기 위한 시도다.

말을 꺼냈으니 "노동"에서 시작해보자. "노동"을 "재화와 서비스의 사용가치를 증가시키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할 때, 20세기 이전의 세계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유급일자리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 일했다. 서구 산업자본주의와 그 노동시장에서 조성된 편견은 집밖에서 임금을 위해 일하는 것만을 "진정한 노동"으로 인정하고 다른 것들은 단순히 놀이이거나 집안일, 범죄 등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진정한 노동"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는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와 사용자를 연결해주는 노동시장도 "노동경제학"에서 나오는 것처럼 깔끔한 계산이 가능한 영역은 아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관습, 관행, 관계의 복잡한 체계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노동계약이 생산과 비생산 관계를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사회적 관계들에 배태embeded되어 있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이란 것이 형성되던 시기에 자본가들도 그리 탐탁히 않아 했는데, 왜냐하면 노동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생산수단에 투자하는 것은 물론 노동과정을 조직하고 감독해야하고 채용, 해고, 직무배치, 보상 등의 인사관리체계를 만들어야할 뿐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급해야하고 이런 과정에서 정부기관이나 노조, 노동자가구 등의 개입에 대비해야하는 등 골치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노동시장의 발명과 확산은 노동자의 프롤레타리아화와 함께 일어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19세기 내내, 그리고 20세기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다. 예를 들어 전문직이라는 의사들조차 미국에서 관리의료의 확산과 더불어 자영업자에서 일종의 종업원으로, 임금노동자로 변화되어가는 중이다. 전형적인 과정은 18~19세기 면방직 공업에서 상업자본의 (가내생산에 대한) 구매시스템은 선대제(원료와 생산수단을 제공하는)로 변화하고, 또 산업자본의 방직공장을 통한 직물 생산으로 변화되면서 프롤레타리아화가 진행된 일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역전현상도 발생한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확산과정에서 오히려 비공식노동이 증가하고 고전적인 노동시장이 약화된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말 이후 19세기적 형태의 노동소요(연합적 힘에 기반한)이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해준다. 게다가 노동시장들은 다른 노동조직들을 완전히 제거하지도 못했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아직도 만은 노동들은 노동시장 외부에서, 즉 학교, 가장, 감옥, 비공식경제, 가족기업, 소상품생산 등등, 심지어는 노예노동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상당히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공개적인 노동시장이라기 보다는 "연줄"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서다.(공급네트워크)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채용네트워크) 예를 들어 한국계 미국인의 친족집단은 뉴욕의 식품점 점원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 거의 친족-인종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 특정한 인종에 따라 직업별로 큰 편차가 발견되기도 한다. 노동시장, 작업장에서의 분할은 사회적 관계가 깊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간호사에는 백인과 흑인은 있지만 히스패닉은 거의 없는 식이다. 이런 인종, 민족, 성, 종교에 따른 차별화된 네트워크는 직무의 차별적 배치로 강화되고, 이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남-녀의 임금격차는 대부분 직무능력의 차이나 동일직무 내의 임금차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무들의 성별분리에서 비롯된다.(따라서 남녀고용평등법, 비정규법의 차별시정제도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차별은 순환논리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효율성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이라 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의사보다 환자들과 더 지속적으로 접촉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더 잘 진료할 수 있다는 일반적으로 가정되고, 이는 처우에도 반영된다.)

이런 노동시장을 어떻게 통제하는가는 공급자나 수급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노동력공급자 측면에서 노동시장 통제전략의 대표적인 경우는 전문직들이다. 의사들이나 변호사, 회계사 등은 적극적으로 공급을 제한하려고 시도한다. 일전에 있었던 의사파업 사태 이후, 남한의 인구당 의사수는 매우 낮은데도 불구하고 의대 정원은 감축되거나 동결되었던 것이다. 로스쿨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변협의 태도같은 것도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런 노동시장은 내부에서 상이한 집단으로 분절되어 있다. 단일한 노동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종적으로 분할되어있을 뿐 아니라, 성별, 학력 등 다양한 기준이 적용된다. 상이한 직종들 사이의 투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아이를 낳을 때 지금처럼 누구나 산부인과 병원에 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미국에서조차 20세기초 이전에는 조산사가 출산을 봐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여성인 조산사 혹은 산파는 집안일까지 봐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도 내부의 투쟁과정에서 조산사는 거의 사라졌다. 아이는 산부인과에서 낳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노동시장에서 산부인과의사들이 승리했던 것이다.

심지어 의사들 내부에서도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어떤 의료행위가 "정상적"이며 어떤 의료행위가 "사이비(돌팔이)의사"의 것인지 규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노동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 진행된다. 병원 안에서는 의사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했던 간호사들이 점차 세력화하면서 증대된 영향력을 임금과 권력에 반영시킨다. 병원관리자들은 비싼 의사들 대신에 간호사들에게 여러가지 의료과정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의 노동조합 조직화와 함께 여성운동의 발전이 동시에 영향을 준다. 노동자 집단들 사이의 권력관계에 변화에 노동자의 조직화와 사회운동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 사회운동은 노동세계의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기술변화조차도 순수한 기술적 과정이라기 보다는 계급투쟁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마르크스주의적인 선험적 주장이 아니다.) 분업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선제공격의 성격이 있다. 효율성만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력의 수급은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고 이것은 생산기술에 영향을 준다. 노동력이 부족했던 미국에서는 면방직 공업에서 노동절약적인 링방적기가 확산되어 숙련노동자를 제거했던 반면, 영국에서는 뮬방적기가 상당기간 동안 더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석탄 채광에서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각각 긴벽생산방식, 기둥생산방식이라는 상이한 기술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파업물결 이후에도 조직구조의 변화가 시도된다.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1969)를 계기로 노동자들은 공장수준의 노동자조직구조를 형성했고, 사용자들은 생산시스템을 바꾸는 것으로 대응했다. 외주하청, 작업팀 구조의 도입 등이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노동자들이나 사용자들이나 노동현장에서 노동력과 임금만을 교환하거나 그것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생존, 작업장 안에서의 질서, 공동체 안의 위상, 권력과 같이 상이한 목표들을 추구한다.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위해, 작업장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 일을 배우는 즐거움, 동료와의 좋은 관계나 전통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일한다. 이런 요소들 중에서 특히 작업장에서의 권력이 문제가 된다. 조직의 유지와 권력은 '효율성'에 대한 사용자들의 명시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항상 강력하게 작용한다. 특히 노동체계, 작업조직 형태의 혁신은 권력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매우 드문일이며, 오히려 현존 방식의 유지가 일반적이다. 중간관리자들에게 특히 권력은 핵심적인 문제가 되며, 따라서 작업장 체제의 변화에 대한 아래-위의 압력에 강하게 저항한다.

사용자들은 권력을 강화하는 노력으로 노동자들로부터 헌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부단히 시도한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저항이 존재한다. 노동자들은 설사 집단적인 저항(노조와 같은)이 아니라도 일거리를 회피하거나 작업기구를 망가뜨리거나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저항한다. 사용자가 집단적인 저항을 분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형태의 저항을 분쇄하고 헌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사회적으로 제도화된다. 초기의 전투적인 저항의 형태는 국가에 의해 정교한 협상과 투쟁의 절차로 만들어지고 "정당한 파업"이라는 것이 특정한 것으로 규정된다. 이런 틀 안에서만 집단적 저항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조직을 안정화하고 혹은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법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촉진하지만 더 이상 극단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니게 만든다. (남한에서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완전히 불법적인 경우는 거의 없으며, 불법을 감수해야만 하는 투쟁--공공부문이나 비정규직과 같이 노동3권이 제한된 영역--에서도 그러한 여지를 최소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법적 절차를 끝까지 가져가게 된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 특히 파업은 사업장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중간집단 노동자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권력을 강하게 가진 전문직들은 파업이 별로 필요없다. 또한 너무나 조직적으로 취약해서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에도 파업은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조건은 변호사와 의사와 같은 전문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특수고용,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오히려 노동조합에 조직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사무엘 콘Samuel Cohn의 파업연구는 흥미로운 점을 몇가지 지적한다. 당면 파업이 실패했을 때조차 작은 파업은 인금인상을 불러온다는 점, 노동조건과 정치현안에 대한 파업은 임금파업보다 더 장기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 단기적인 파업이 장기적인 파업보다 효과적이라는 점, 관료화되고 중앙집권화된 노조들은 더 적은 성과를 얻는다는 점,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된 복수노조는 노동자의 이익을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그러나 이런 이득은 모두 노동자의 동원능력, 확살한 파업위협의 존재여부에 좌우된다는 점 등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파업투쟁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인 셈인데, 남한에서의 노동자운동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세계는 잘 정의된 노동시장 제도, 노사분쟁의 제도와 관행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요소들 중에서는 단지 설명적인 의미를 갖는 것도 있지만 노동자운동에서 고려할 중요한 사항들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경험하지만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투쟁을 촉발할 경우, 그것은 고전적인 임금인상 투쟁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세계 경험 속에서는 충분히 중요한 요구가 된다. 억압적인 중간관리자의 해고를 요구하는 투쟁도 노동현장의 권력문제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마지막에 언급한 콘Cohn의 지적처럼 실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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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책은 원래 좀 너무 많은 개념이 방만하게 사용되는 느낌인데다가, 번역 또한 읽기 쉬운 우리말 문장으로 된 것은 아닌 것같다. 그래서 읽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점은 언급해야겠다. 한동안 다른 책에 대해서 쓰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책과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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