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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9
    [독서]슬럼,지구를 뒤덮다
    겨울철쭉
  2. 2007/07/24
    태국에서 며칠간 ; 비동시대성(1)
    겨울철쭉

[독서]슬럼,지구를 뒤덮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슬럼이 도시의 미래라고 말하는 이 책은, 단지 도시가 아니라 세계인구의 생존조건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말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책은 어쩌면 슬럼에 대한 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민중들에게 어떤 것인지를 도시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고나 할까. 세계최대의 슬럼철거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88올림픽을 위한 72만명 철거가 있었던 나라, 그리고 슬럼철거-재개발이 도시 내부의 극단적 분리와 함께 진행되는 나라인 남한에서도 매우 시사적인 책이다.

한편 이 책은 사센의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의 진정한, 그리고 발전된 후속편이라 할만하다. 사센의 책은 금융세계화가 어떻게 초민족적 금융도시를 형성하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그 이면에서 무엇이 벌어지는 지를 말한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걸맞는 금융화된 세계도시가 발전하고, 그 이면에는 세계 전역에서 슬럼이 ‘폭발’한다.(확장 혹은 팽창이라는 낱말의 어감으로는 부적합할 정도로)

도시의 기괴한 팽창

도시는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세계인구의 절반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025년까지 세계인구가 100억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할 때 새로 증가하는 인구의 95%는 도시에 거주할 것이다. 이미 세계에는 2000만명 이상의 도시(지대)가 도쿄, 멕시코시티, 뉴욕, 서울(수도권 포함)에 형성되어 있다. 이 숫자는 아시아에서만 10여개 이상이 될 것이다. 아마도 도쿄-(서울)-상하이로 연결되는 동아시아 해안의 세계도시가 회랑형태로 연결될 것이다. 도시화는 기존 도시 자체의 확장만이 아니라 시골의 도시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이렇게 도시는 역사상 최대로 기괴하게 팽창하고 있다. 왜 그런가, 특히 주변과 반주변의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팽창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가 이 책이 묻고 답하고 있는 것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도시의 문제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중이다.

도시의 미래는 슬럼

도시화는 산업화 때문일까? 이러한 고전적인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변-반주변에서 도시의 급격한 팽창은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뭄바이, 요하네스버그,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파울루 등은 산업화와 완전히 무관하게(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산업은 오히려 축소되는 중이다), 심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농업생산이 후퇴하는 데도 도시는 급격하게 팽창을 거듭한다. (사진은 뭄바이의 슬럼)

도시의 기괴한 팽창은 70년대 이후 외채위기와 80년대 이후 IMF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주변-반주변의 농업을 몰락시켰고 농촌은 공공서비스의 축소(의료지원과 같은)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더 이상 살수 없는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든다. 이들이 도시에서 살수 있는 곳은 다양한 형태의, 그러나 한결같이 끔찍한 조건의 슬럼지대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부분의 주변-반주변 국가에서 도시의 팽창은 곧 슬럼의 팽창과 정확히 동일한 말이 된다. 슬럼거주자는 선진국에서는 6%, 저개발국가에서는 78.2%에 달한다. 에티오피아와 차드에서는 99.4%의 도시인구가, 아프카니스탄에서는 98.5%가 슬럼에 살고 있다. 슬럼이 바로 도시 자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듯 미래의 도시는 이전 세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상상한 것처럼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 등으로 지어진 도시다. 21세기의 도시 세계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쌓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도시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설고 있는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 생활의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회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볼 것이다."(이 책,33쪽)

슬럼 착취하기

시애틀과 아바나 시민의 1인당 소득격차는 739:1이다. 콜카타에서는 방 하나에 평균 13.4명이 살고 있다. 주거환경의 열악함은 물론이지만 나이로비의 경우 도시 외곽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월 수입의 반 이상을 출근을 위한 교통비에 사용해야한다. 인구 1000만의 킨샤사는 하수(그리고 분뇨)처리 시설이 “전혀”없다. 베이징에 주로 농민공(비정규직노동자)이 거주하는 슬럼에서는 6000명의 주민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한다.
(한편, 케냐의 나이로비는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슬럼주민들의 목소리는 상업화되기까지한 세계사회포럼에도 충격을 주었다. 아래 사진은 나이로비의 슬럼. 출처:프레시안/엄기호/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인용)


이렇게 빈곤한 슬럼에 대해서도 착취할 무엇이 있을까? 물론.

빈민들이 스쿼팅(squatting, 무허가 토지개척)한 토지는 주기적으로 재개발되면서 개발업자가 이윤을 취한다. 슬럼이 유지되더라도 경찰이나 관료들에게 돈을 상납해야한다.(비싼 유료화장실을 개설하기도 한다.) 세계은행WB의 기만적인 '빈민자조주택‘ 프로그램은 어떨까?

마닐라, 뭄바이 같은 곳에서 이 사업은 “오직” 빈민을 축출하고 개발업자를 배불렸을 뿐이다. 심지어 ’변기설치사업‘같은 경우에도 관리가 되지 않아 오히려 오수가 역류하고 전염병을 불렀을 정도다. 빈민을 위한다는 재개발 사업은, (남한에서도 정확히 같은 방식이지만) 중산층에서 주택을 공급할 뿐, 빈민들에게는 철거와 추방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필수서비스의 사유화는 슬럼의 문제를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다. 사유화와 슬럼문제는 직접 연결된다. 특히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는 물-상수도 사유화는 의료서비스의 사유화와 함께 가장 심각하다. 세계은행의 압력에 따라 상수도를 바이워커에 넘긴 다르에스살람에서는 수도 가격의 폭등으로 주민들은 위험한 수원을 이용해야한다. 그 결과 콜레라, 티푸스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에 직접 노출된다. 열악한 위생환경은 기생충, 말라리아, 뎅기열 등을 발생시키지만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에게 가족의 생존을 위한 모든 부담을 전가한다. IMF SAPs는 “가족의 생존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여성의 노동력을 거의 무한대로 잡아늘일 수 있다는 믿음을 냉혹하게 활용하는 체제이다.”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장시간 노동은 물론 구걸, 매춘에 내몰린다. (이것은 “AIDS 대학살”의 원인이기도 하다.) IMF SAPs가 끝난 남한에서조차 여성일자리 정책과 같은 것들을 보면 이런 기대가 경제관료들의 상식인 것같다.

세계은행의 정책이 또 혜택을 준 집단이 있으니 개발업자들과 이들과 결탁한 관료, 독재자 외에 국제NGO들이다. 이들은 “지역사회 리더쉽을 전용하고 이제까지 좌파가 차지했던 사회공간을 패권화하는 데 있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물론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NGO들을 활용한다.

심지어 이들은 “자활”, “자조”라는 명분하에 슬럼에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도입하고자한다. 슬럼주민들에게 주택증서(등기)를 주자, 그렇다면 그들은 재산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공식경제를 기업형태로 조직하자, 그러면 곧 사업가가 출현하고 재산가와 만나서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런 식의 사기극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대 인상으로 빈민들을 ‘새로운’ 슬럼으로 밀어낼 뿐이다.

국가의 해결책 : 철거

국가의 전형적인 해결책은 철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국제행사가 있을 때에는 더 심해지는 데 88 올림픽 당시 서울수도권에서 대규모로 벌어진 철거는 지금 베이징에서 잔인하게 반복되는 중이다.

특히 도시가 팽창하면서 새롭게 중산층을 위한 교외주택을 건설하기에 입지가 좋은 곳이나, 퇴락한 도심지역은 재개발의 대상이다. (서울에서도 뉴타운 건설을 위한 강북지역의 철거, 청계천 재개발과 도심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극심하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불도저와 경찰, 군인을 동원해서 “밀어버리는 것”이 끝이다. (역시 남한에서도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한번에 수십만명의 주거지를 철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공식부문 ;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도시를 미숙련, 무방비, 저임금의 비공식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잉여인간의 처리장으로 만들었다. 농토없는 농민들의 半프롤레타리아화와 유사한 수동적 프롤레타리아화. 법적으로 권리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등장.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극단적이어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90%는 이러한 비공식부문이다. 불완전고용과 실업, 식료품노점, 식당, 이발소, 소규모 물물교환.. 같은 것들이다. 국제금융기구와 신자유주의NGO들은 이들에게 “기업가정신”과 “자활”을 요구한다. (어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 같은 곳에서 왔나부지?) 그러나 그것이 성공할리는 없으며, 다만 정치적 수사들일 뿐이다.

 

한편, 이러한 대중들을 보자면, 전통적으로 사업장에서의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노동자운동의 절대적인 모델로 사고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 남한의 좌파들(현장파들)이 사업장(현장)의 노사관계로 제한되는 (전투적) 경제투쟁을 물신화하고 그것이 노동자 운동의 순수한 형태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도 말해준다. 노동자계급은 사회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 구성되어야하는데, 그것은 안정적인 임단협이 가능한 사업장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구성되어야한다.(그런 점에서 남한 운동에서 '비공식노동자'란 아예 인식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 하긴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것이 인식된 것조차 몇년 안되니.)  

가진 자들의 요새 도시와 새로운 중세

이와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 부유층의 요새화된 교외도시를 건설하는 작업이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식 생활양식을 모방하고자한다. 카이로 외곽에도 “비버리힐즈”가 있고 베이징 외곽에는 “롱비치”가 있으며 홍콩에는 “팜스프링스”가 있다.(남한에는 “타워팰리스”가 있다.)

이들 지역은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24시간 사설경비가 이루어지고 개인 수영장과 폐쇄된 지역주민을 위한 헬스클럽, 쇼핑몰, 병원, 고급식당 등이 위치한다. (강남의 주상복합 건물들과 이렇게 같을 수가!) 이들은 경비를 갖추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요새’를 만드는데, 강박증 증세를 보인다. 가난한자들에 대한 공포라고나 할까.

이러한 분리는 초민족적인 금융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주변-반주변의 엘리트들이 ‘안전하게’ 도시의 주민들과 분리되도록 한다. 이들이 생존하는 공간은 슬럼이 넘치는 현실의 도시라기보다는 뉴욕-런던과 연결된 금융네트워크이다. 이들이 투자하는 곳은 같은 도시 주민들의 일자리가 아니라 미국의 헤지펀드다. 그러니 더러운 도시빈민들과 분리되더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이러한 분리는 도시의 장벽을 건설하고, “새로운 중세”를 불러온다.

콩고의 칸샤사. 이곳에서는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실상의 중세가 도래했다. 국가의 유일한 자금원인 광산산업은 세계은행이 부추긴 외채(이 돈은 독재자가 스위스은행에 빼돌린지 오래다)를 이유로 외국에 넘어갔다. IMF는 SAPs를 통해서 공기업매각, 공무원해고 등으로 공공서비스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이자까지 악날하게 모두 가져갔다. 공식경제는 물론 국가제도 마저도 억압장치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붕괴한 이 곳에 600만명이 살고 있다. 화폐는 전혀 무용하다. 연평균소득 100달러 이하(1년간 버는 돈이 우리 돈으로 10만원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인구의 2/3가 영양실조. 이곳에서는 중세적인 미신이 창궐한다.

절망에 빠진 도시 주민들은 90년대 초 다단계 열풍에 휩싸였고 이것은 91년, 93년 붕괴한다. 이제 IMF와 세계은행도 콩고에서 철수한다. 이제 그들조차 더 이상 착취할 것이 남이있지 않게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세계가 붕괴하고 도박이라는 환상마저 붕괴하자 남은 것은 주술과 예언종교. 오순절파 교회가 엄청나게 확대되면서 주술 서비스를 제공한다. 절대빈곤 속에서 선물경제, 호혜교환도 모두 붕괴하고 미신만 남았다. 이들은 추천명의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하는데, 아이가 마녀로 지목될 경우 부모는 아이를 유기해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된다.

새로운 전쟁

슬럼으로 가득한 제3세계 도시의 청년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전의 병사, 범죄조직, 국제테러조직까지 갖가지 형태를 취한다.(그래서 저자는 네그리의 ‘리좀’과 ‘다중’이 이것이냐고 묻는다. 다소 조롱기로.) 그래서 역설적으로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 가장 투명하게 통찰하는 것은 미국의 펜타곤이다. 공군아카데미, 랜드연구소 등등. 이들은 미래 전쟁을 예상하면서  "도시화지형에서의 군사작전"MOUT이라는 것을 발전시키고 전술을 혁신한다. 21세기의 전쟁은 바로 이러한 슬럼에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서 미국이 마주칠 것은 반란자들의 도시 해방구이자 범죄의 소굴, 이들은 모두 ‘테러와 범죄집단’으로 규정된다.  
(이와 관련해서 주변-반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내부적 배제에 대해서는 최근 읽고 있는 <공존의 기술-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을 참고할 수 있을 것같다. 이 책은 다 읽으면 리뷰.)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만드는 미래의 지구를 예상하고자한다면, 어떤 책보다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다소 장황한 인용과 소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직접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슬럼은 도시의 미래일 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곳에서의 모든 정치적 쟁점들은 이 문제들을 우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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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며칠간 ; 비동시대성

7월 초중순 열흘정도를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일정들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Asian Labor Assembly Privatization Of Essential Service (Focus on Water and Power)

/ 7월 8일~12일
Conference on A Decade After : Recovery and Adjustment since the East Asian Crisis

/ 7월 12일~14일
Understanding Global Finance, Bulilding International Resistance / 7월 15일~17일

주로 남-동남아시아의 사회운동,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행사들이었습니다. 첫번째 것은 '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에서 주관한 노조단위의 회의였고, 공공노조, 공무원노조 동지들과 참석. 뒤의 것들은 노조활동가들도 있었지만 주로 NGO, 학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였습니다.

 

원래는 공식참가 예정이었지만 노조활동 쉬고하는 바람에 개인자격으로 참가. 다소 경제적-정치적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하긴 덕분에 공식참가였다면 함께하기 힘들었을 국제금융 관련 일정까지 함께 참석할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 혹은 전화위복이랄까요. 주로 회의들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서 글을 몇개 쓰겠지만, 우선 태국이란 나라에 다녀왔으니 회의와 무관한 그 곳 느낌부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서 말하자면, 열흘정도,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까 사람을 보는 미美적인 취향도 바뀌더군요.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이 더 친근하고 익숙하고, 어쩌다 가끔 보는 (주로 관광객들인) 한국인들을 보면, 뭔가 피부색도 희멀건한 것이 인상도 밋밋하게 느껴지고 그렇더라구요. 역시 익숙한 게 아름다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저를 포함해서) 한국 사람들 인상이 평면적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음식도 태국음식도 잘 맞고 특히 인도음식이 아주 취양에 맞더군요. 흠;; 인종주의적인 미적 기준이나 그런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혹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밑에 캄보디아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그곳 어린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태국이야, 캄보디아보다는 잘 사는 나라이지만(그렇다고 해도 1인당 GNP는 남한의 1/7 수준입니다.) 유사한 혹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갖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회의는 휴양지로 유명한 파타야의 소박한 호텔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백인남자들이 태국 아가씨들을 한명씩 데리고 다니는 게 길거리의 주된 풍경입니다. 말하자면 '현지애인'일 텐데 변형된 형태의 매매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구걸하지는 않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이 것이 생존방식이 되는 곳. 파타야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다녀온 분의 말에 따르면, 젊은 한국 남성들(기껏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들까지 그렇게 하고 있더라는군요.. 착찹한 일입니다.

 

뒤의 두 회의는 방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방콕에 세계의 배낭여행족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카오산 거리'라는 곳이 있죠. 정말 상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인 거리.(아래 사진)

 

이곳에서 보니, 태국관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보입니다. 의식주 관련된 것을 제외하자면 주로 있는 것들이 (그 유명한 태국) 맛사지, 피부관리, 미장원과 같은 일종의 하인노동들인 대인서비스들과 디스코텍, 바와 같은 유흥업소들.

 

결국, 낮은 임금에 기반해서 값싸게 고급 대인 서비스를 받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중심부국가의 관광객들이 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현지애인'이나 매매춘도 그 일부겠죠. 태국은 이런 방식으로 관광산업에 '특화'한 셈입니다.

 

(사실 태국에 대표적인 '볼거리'인 불교 사원들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인접한 캄보디아 같은 곳에 비해서 크게 볼거리가 있나 싶은데다가, 해변도 필리핀 등에 비해서는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라는 게 중평입니다. 그러니 태국의 관광산업에는 이렇게 '다른 요소'가 있는 셈입니다.)

 

저도 맛사지도 받고 했지만, 이런 것들이 세계체계 안에서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더군요. 특히 이런 하인서비스는, 참. 

 

태국에 또 다른 모습이 이와 관련되기도 합니다. 방콕에는 서울 못지 않게 고층빌딩이 많습니다. 국제금융 회의 중에 들으니 이들 중 상당수는 초민족 금융자본이나 금융거래와 관련된 기업의 것들이라고 하는군요. 그렇지 않으면 호텔, 쇼핑센터이거나 말이죠.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나름대로 유력한 초국적 금융도시(혹은 그것을 지향하는 도시)인데, 이를 위한 인프라가 매우 비동시대적으로 갖추어져있는 셈입니다. 고층 빌딩 사이에는 화려한 쇼핑 센터도 있습니다. 외국인들로 넘치는 이 곳은 Siam센터라는 방콕 중심부의 복합건물로 세계의 명품들이 전시, 판매됩니다. (아래 사진)

 

태국은 국내의 산업기반은 거의 없지만 금융자유화와 매우 저렴한 도시 서비스(하인노동을 포함해서)를 통해서 금융센터를 유치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볼 수 있겠죠. 서울도 이런 동아시아의 도시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서,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거리에는 왕의 재위 60년과 팔순을 축하하는 기념물과 사진이 즐비하고, 이를 축하하는 단체복을 시민들이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며, 군부쿠데타 이후 이들이 헌법제정을 논의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해당 국가의 정치체계가 심지어 봉건적이라고 해도 금융자본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왕실 문장이 새겨진 노란색 반팔T를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매주 월요일마다 반드시 입어야하고, 사기업에도 '권장'된다는 군요. 심지어 TV 뉴스 아나운서과 출연자들까지 노란색T를 입고 방송.)

 

그런 점에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통화위기가 태국에서 시작된 것이 꼭 우연은 아닐 겁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생산과 무관한 자본운동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항상-이미 비동시대적인 착취구조를 전제한다는 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지요.

방콕은 그래서 서울의 다른, 더 적나라한 모습.

 

이런 비동시대성은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녁 시간, 카오산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는 서울의 홍대앞과 유사한 클럽문화입니다. 밴드들이 직접 연주-노래하고 젊은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곳. 그곳에 유명하다는 The Club라는 곳에 일행들과 함게 가게 되었는데요, 그곳은 전혀 또 다른 세계더군요. 그곳의 밴드가 하는 락 음악은 미국이나 영국, 한국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물론 미국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태국의 노래도 다르지 않더라는 것) 음악이나 분위기까지도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색한 느낌. 광케이블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금융자본처럼 문화도 그렇게 이동하는 셈인데, 역시 너무나 비동시대적으로 느껴졌던 겁니다. 그렇다면 그 밴드들에게, 그 음악은 무엇일까, 혹은 그들과 남한의 밴드들과 영국와 미국의 밴드들은 같은 음악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같은 것인가.

낯선 외국에서 금융세계화 시대, 지구적인 비동시대성에 직면하는 또 하나의 순간.

 

그런 비동시대성의 시간들을 압축적으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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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내용들과, 그곳에서 만난 운동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트에 쓰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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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태국의 사원들이 볼거리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느꼈던 것은 두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타국 문화와 유산에 대한 폄하이거나 혹은 어떤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지만,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언급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작년에 와서 처음에 볼 때 놀랐던 그 규모, 황금으로 번쩍이는 것들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

 

옆에 불상은 Wat Traimit라는 사원의 유명한 황금불상입니다. 중세시기에 무려 5.5톤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불상. 이건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는 하지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5.5톤의 황금에 어울리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시기의 많은 금들이 현재의 태국을 구성하는 시암족들이 크메르왕국에서 약탈한 것이라는 점에서도요. 황금으로 도금한 세계최대의 와불상이 있는 Wat Pho 사원에도 다시 가보았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과는 달리 (그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을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슴이 횡한 느낌.

 

더구나 왕이 미륵불이라고 믿는 불교 나라라는 점에서, 불교가 직접적인 왕정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호국불교'나 시청앞 극우 시위에 나서는 대형 기독교 교회들도 마찬가지죠) 종교가 보편적인 어떤 이념이고자 하길 멈추고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는 이상, 황금불상과 같은 것으로 그 권위를 세워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죠. (이런 점 역시 우리나라의 종교들을 비추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얼마전 앙코르와트를 보았다는 것과 연관됩니다. 많은 양식들이 시암족이 그들로부터 독립했던 크메르왕국을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좀 노골적이기도 해서, 방콕에 묵었던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장식품들은 태국의 것이 아니라 앙코르와트 유적의 모작이더군요. 심지어는, 태국 국제공항의 출국대를 나서면 보이는 조형물은, 앙코르와트 유적에서 볼 수 있는 힌두교 신화에 대한 조형물입니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힌두교 신화 조형물이라니 원.(아래 사진)

 

 이 조형물은 힌두교 신화 중에서 비슈누 신이 악마와 신들을 동원해서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 1000년 동안 '우유바다'를 휘젖는다는 내용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불교가 힌두교 신화들에 함께 기반하고는 있지만, 좀 너무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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