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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9
    [독서]슬럼,지구를 뒤덮다
    겨울철쭉

[독서]슬럼,지구를 뒤덮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슬럼이 도시의 미래라고 말하는 이 책은, 단지 도시가 아니라 세계인구의 생존조건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말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책은 어쩌면 슬럼에 대한 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민중들에게 어떤 것인지를 도시를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고나 할까. 세계최대의 슬럼철거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88올림픽을 위한 72만명 철거가 있었던 나라, 그리고 슬럼철거-재개발이 도시 내부의 극단적 분리와 함께 진행되는 나라인 남한에서도 매우 시사적인 책이다.

한편 이 책은 사센의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의 진정한, 그리고 발전된 후속편이라 할만하다. 사센의 책은 금융세계화가 어떻게 초민족적 금융도시를 형성하는가를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그 이면에서 무엇이 벌어지는 지를 말한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걸맞는 금융화된 세계도시가 발전하고, 그 이면에는 세계 전역에서 슬럼이 ‘폭발’한다.(확장 혹은 팽창이라는 낱말의 어감으로는 부적합할 정도로)

도시의 기괴한 팽창

도시는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세계인구의 절반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2025년까지 세계인구가 100억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할 때 새로 증가하는 인구의 95%는 도시에 거주할 것이다. 이미 세계에는 2000만명 이상의 도시(지대)가 도쿄, 멕시코시티, 뉴욕, 서울(수도권 포함)에 형성되어 있다. 이 숫자는 아시아에서만 10여개 이상이 될 것이다. 아마도 도쿄-(서울)-상하이로 연결되는 동아시아 해안의 세계도시가 회랑형태로 연결될 것이다. 도시화는 기존 도시 자체의 확장만이 아니라 시골의 도시화를 동시에 의미한다.

이렇게 도시는 역사상 최대로 기괴하게 팽창하고 있다. 왜 그런가, 특히 주변과 반주변의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팽창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가 이 책이 묻고 답하고 있는 것들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도시의 문제가 바로 신자유주의의 문제라고 말하는 중이다.

도시의 미래는 슬럼

도시화는 산업화 때문일까? 이러한 고전적인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변-반주변에서 도시의 급격한 팽창은 중국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뭄바이, 요하네스버그,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파울루 등은 산업화와 완전히 무관하게(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산업은 오히려 축소되는 중이다), 심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농업생산이 후퇴하는 데도 도시는 급격하게 팽창을 거듭한다. (사진은 뭄바이의 슬럼)

도시의 기괴한 팽창은 70년대 이후 외채위기와 80년대 이후 IMF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주변-반주변의 농업을 몰락시켰고 농촌은 공공서비스의 축소(의료지원과 같은)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농촌에서 더 이상 살수 없는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든다. 이들이 도시에서 살수 있는 곳은 다양한 형태의, 그러나 한결같이 끔찍한 조건의 슬럼지대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부분의 주변-반주변 국가에서 도시의 팽창은 곧 슬럼의 팽창과 정확히 동일한 말이 된다. 슬럼거주자는 선진국에서는 6%, 저개발국가에서는 78.2%에 달한다. 에티오피아와 차드에서는 99.4%의 도시인구가, 아프카니스탄에서는 98.5%가 슬럼에 살고 있다. 슬럼이 바로 도시 자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듯 미래의 도시는 이전 세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상상한 것처럼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라, 손으로 찍어낸 벽돌, 지푸라기, 재활용 플라스틱, 시멘트 덩어리, 나뭇조각 등으로 지어진 도시다. 21세기의 도시 세계는 하늘을 찌를 듯 빛나는 도시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로 둘러쌓여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도시일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슬럼에 설고 있는 10억 주민은 9000년 전 도시 생활의 여명기에 세워진 아나톨리아 정착촌 차탈회위크의 튼튼한 진흙집 잔해를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볼 것이다."(이 책,33쪽)

슬럼 착취하기

시애틀과 아바나 시민의 1인당 소득격차는 739:1이다. 콜카타에서는 방 하나에 평균 13.4명이 살고 있다. 주거환경의 열악함은 물론이지만 나이로비의 경우 도시 외곽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월 수입의 반 이상을 출근을 위한 교통비에 사용해야한다. 인구 1000만의 킨샤사는 하수(그리고 분뇨)처리 시설이 “전혀”없다. 베이징에 주로 농민공(비정규직노동자)이 거주하는 슬럼에서는 6000명의 주민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한다.
(한편, 케냐의 나이로비는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슬럼주민들의 목소리는 상업화되기까지한 세계사회포럼에도 충격을 주었다. 아래 사진은 나이로비의 슬럼. 출처:프레시안/엄기호/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인용)


이렇게 빈곤한 슬럼에 대해서도 착취할 무엇이 있을까? 물론.

빈민들이 스쿼팅(squatting, 무허가 토지개척)한 토지는 주기적으로 재개발되면서 개발업자가 이윤을 취한다. 슬럼이 유지되더라도 경찰이나 관료들에게 돈을 상납해야한다.(비싼 유료화장실을 개설하기도 한다.) 세계은행WB의 기만적인 '빈민자조주택‘ 프로그램은 어떨까?

마닐라, 뭄바이 같은 곳에서 이 사업은 “오직” 빈민을 축출하고 개발업자를 배불렸을 뿐이다. 심지어 ’변기설치사업‘같은 경우에도 관리가 되지 않아 오히려 오수가 역류하고 전염병을 불렀을 정도다. 빈민을 위한다는 재개발 사업은, (남한에서도 정확히 같은 방식이지만) 중산층에서 주택을 공급할 뿐, 빈민들에게는 철거와 추방을 의미할 뿐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필수서비스의 사유화는 슬럼의 문제를 더욱 극단적으로 만든다. 사유화와 슬럼문제는 직접 연결된다. 특히 치열한 쟁점으로 부각되어 있는 물-상수도 사유화는 의료서비스의 사유화와 함께 가장 심각하다. 세계은행의 압력에 따라 상수도를 바이워커에 넘긴 다르에스살람에서는 수도 가격의 폭등으로 주민들은 위험한 수원을 이용해야한다. 그 결과 콜레라, 티푸스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에 직접 노출된다. 열악한 위생환경은 기생충, 말라리아, 뎅기열 등을 발생시키지만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에게 가족의 생존을 위한 모든 부담을 전가한다. IMF SAPs는 “가족의 생존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여성의 노동력을 거의 무한대로 잡아늘일 수 있다는 믿음을 냉혹하게 활용하는 체제이다.”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장시간 노동은 물론 구걸, 매춘에 내몰린다. (이것은 “AIDS 대학살”의 원인이기도 하다.) IMF SAPs가 끝난 남한에서조차 여성일자리 정책과 같은 것들을 보면 이런 기대가 경제관료들의 상식인 것같다.

세계은행의 정책이 또 혜택을 준 집단이 있으니 개발업자들과 이들과 결탁한 관료, 독재자 외에 국제NGO들이다. 이들은 “지역사회 리더쉽을 전용하고 이제까지 좌파가 차지했던 사회공간을 패권화하는 데 있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물론 세계은행은 자신들의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NGO들을 활용한다.

심지어 이들은 “자활”, “자조”라는 명분하에 슬럼에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도입하고자한다. 슬럼주민들에게 주택증서(등기)를 주자, 그렇다면 그들은 재산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비공식경제를 기업형태로 조직하자, 그러면 곧 사업가가 출현하고 재산가와 만나서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런 식의 사기극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대 인상으로 빈민들을 ‘새로운’ 슬럼으로 밀어낼 뿐이다.

국가의 해결책 : 철거

국가의 전형적인 해결책은 철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국제행사가 있을 때에는 더 심해지는 데 88 올림픽 당시 서울수도권에서 대규모로 벌어진 철거는 지금 베이징에서 잔인하게 반복되는 중이다.

특히 도시가 팽창하면서 새롭게 중산층을 위한 교외주택을 건설하기에 입지가 좋은 곳이나, 퇴락한 도심지역은 재개발의 대상이다. (서울에서도 뉴타운 건설을 위한 강북지역의 철거, 청계천 재개발과 도심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극심하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불도저와 경찰, 군인을 동원해서 “밀어버리는 것”이 끝이다. (역시 남한에서도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한번에 수십만명의 주거지를 철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공식부문 ;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도시를 미숙련, 무방비, 저임금의 비공식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잉여인간의 처리장으로 만들었다. 농토없는 농민들의 半프롤레타리아화와 유사한 수동적 프롤레타리아화. 법적으로 권리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등장.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극단적이어서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90%는 이러한 비공식부문이다. 불완전고용과 실업, 식료품노점, 식당, 이발소, 소규모 물물교환.. 같은 것들이다. 국제금융기구와 신자유주의NGO들은 이들에게 “기업가정신”과 “자활”을 요구한다. (어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 같은 곳에서 왔나부지?) 그러나 그것이 성공할리는 없으며, 다만 정치적 수사들일 뿐이다.

 

한편, 이러한 대중들을 보자면, 전통적으로 사업장에서의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노동자운동의 절대적인 모델로 사고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또 한편으로 남한의 좌파들(현장파들)이 사업장(현장)의 노사관계로 제한되는 (전투적) 경제투쟁을 물신화하고 그것이 노동자 운동의 순수한 형태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도 말해준다. 노동자계급은 사회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 구성되어야하는데, 그것은 안정적인 임단협이 가능한 사업장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구성되어야한다.(그런 점에서 남한 운동에서 '비공식노동자'란 아예 인식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 하긴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것이 인식된 것조차 몇년 안되니.)  

가진 자들의 요새 도시와 새로운 중세

이와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 부유층의 요새화된 교외도시를 건설하는 작업이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식 생활양식을 모방하고자한다. 카이로 외곽에도 “비버리힐즈”가 있고 베이징 외곽에는 “롱비치”가 있으며 홍콩에는 “팜스프링스”가 있다.(남한에는 “타워팰리스”가 있다.)

이들 지역은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24시간 사설경비가 이루어지고 개인 수영장과 폐쇄된 지역주민을 위한 헬스클럽, 쇼핑몰, 병원, 고급식당 등이 위치한다. (강남의 주상복합 건물들과 이렇게 같을 수가!) 이들은 경비를 갖추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요새’를 만드는데, 강박증 증세를 보인다. 가난한자들에 대한 공포라고나 할까.

이러한 분리는 초민족적인 금융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주변-반주변의 엘리트들이 ‘안전하게’ 도시의 주민들과 분리되도록 한다. 이들이 생존하는 공간은 슬럼이 넘치는 현실의 도시라기보다는 뉴욕-런던과 연결된 금융네트워크이다. 이들이 투자하는 곳은 같은 도시 주민들의 일자리가 아니라 미국의 헤지펀드다. 그러니 더러운 도시빈민들과 분리되더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이러한 분리는 도시의 장벽을 건설하고, “새로운 중세”를 불러온다.

콩고의 칸샤사. 이곳에서는 상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실상의 중세가 도래했다. 국가의 유일한 자금원인 광산산업은 세계은행이 부추긴 외채(이 돈은 독재자가 스위스은행에 빼돌린지 오래다)를 이유로 외국에 넘어갔다. IMF는 SAPs를 통해서 공기업매각, 공무원해고 등으로 공공서비스를 완전히 파괴하면서 이자까지 악날하게 모두 가져갔다. 공식경제는 물론 국가제도 마저도 억압장치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붕괴한 이 곳에 600만명이 살고 있다. 화폐는 전혀 무용하다. 연평균소득 100달러 이하(1년간 버는 돈이 우리 돈으로 10만원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인구의 2/3가 영양실조. 이곳에서는 중세적인 미신이 창궐한다.

절망에 빠진 도시 주민들은 90년대 초 다단계 열풍에 휩싸였고 이것은 91년, 93년 붕괴한다. 이제 IMF와 세계은행도 콩고에서 철수한다. 이제 그들조차 더 이상 착취할 것이 남이있지 않게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세계가 붕괴하고 도박이라는 환상마저 붕괴하자 남은 것은 주술과 예언종교. 오순절파 교회가 엄청나게 확대되면서 주술 서비스를 제공한다. 절대빈곤 속에서 선물경제, 호혜교환도 모두 붕괴하고 미신만 남았다. 이들은 추천명의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하는데, 아이가 마녀로 지목될 경우 부모는 아이를 유기해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된다.

새로운 전쟁

슬럼으로 가득한 제3세계 도시의 청년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전의 병사, 범죄조직, 국제테러조직까지 갖가지 형태를 취한다.(그래서 저자는 네그리의 ‘리좀’과 ‘다중’이 이것이냐고 묻는다. 다소 조롱기로.) 그래서 역설적으로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 가장 투명하게 통찰하는 것은 미국의 펜타곤이다. 공군아카데미, 랜드연구소 등등. 이들은 미래 전쟁을 예상하면서  "도시화지형에서의 군사작전"MOUT이라는 것을 발전시키고 전술을 혁신한다. 21세기의 전쟁은 바로 이러한 슬럼에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에서 미국이 마주칠 것은 반란자들의 도시 해방구이자 범죄의 소굴, 이들은 모두 ‘테러와 범죄집단’으로 규정된다.  
(이와 관련해서 주변-반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내부적 배제에 대해서는 최근 읽고 있는 <공존의 기술-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을 참고할 수 있을 것같다. 이 책은 다 읽으면 리뷰.)


따라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만드는 미래의 지구를 예상하고자한다면, 어떤 책보다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다소 장황한 인용과 소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직접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슬럼은 도시의 미래일 뿐 아니라 지구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곳에서의 모든 정치적 쟁점들은 이 문제들을 우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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