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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9
    [독서]생각의 탄생
    겨울철쭉

[독서]생각의 탄생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책. 사람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몇 개의 개념(생각도구)들로 정리한다. ‘생각하기’에 대한 매뉴얼이라고할까.

이 책이 제시하는 생각도구들은 모두13가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이다.

대상을 인식하고 개념으로 다듬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다른 차원의 인식들과 결합하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과정까지를 13개의 생각도구를 이용해서 제시한다. 이런 과정은 모두 하나의 두드러진 목표, ‘창조성’을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저자들은 전인적 교육을 부활시켜야한다고 주장한다.(이 책은 ‘생각도구’들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제도에 대한 많은 제안들을 담고 있다.) 개별 학문들 사이에 벽을 쌓고 분리해서는 창조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술과 과학은 교통해야할 뿐 아니라, 예술가는 과학자가, 과학자는 예술가가 되어야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예를 드는 수많은 학자, 예술가, 사상가들은 그러한 주장을 확인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러한 통합과정은 서로 다른 영역의 '개념'들이 만나는 과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개념들과 감성이 만날 때, 심지어 몸과 만날 때, 그것은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 어떤 창조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순수하게 상상의 산물은 아니며, 오히려 낯선 것들이 만나는 가운데 만드는 고유한 효과라는 것을 말하는 것같다. 마치 상이한 문명들이 만나는 변경지대에서 창조적인 것들이 형성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의 ‘생각도구’들은 순수한 개념들 사이의 운동으로는 사고가 뻔한 결말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능력.

이 책을 읽으면서 13가지의 ‘생각도구’만큼 중요하게 제기되는 쟁점, 창조성과 그것을 육성할 수 있는 교육제도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현대의 대중교육은 어떤 창조성을 가진 ‘전인’을 육성한다기 보다는 노동시장의 상황(이중 노동시장)에 맞는 노동력을 길러 내는 것에 중심이 가있다.

따라서 이 책이 제기하는 ‘전인’이란 전-신자유주의적인 어떤 지식인모델이거나 혹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요구되는 엘리트일 수도 있다. (책이 나온 시점이나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을 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많지만.) 아마도 여기서 배제된 사람들은 불안정노동시장을 구성하는 현대의 프롤레타리아로, 그들에게 창조성이란 별로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요구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편으로는 엘리트 교육을 위한 방법론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창조적인 전인’이라는 이상이 단지 부르조아,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의전유물일 수는 없다고 다시 주장해야한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창조성이란 어떤 거추장스러운 무엇이 아니라 삶을 실현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은 물론이려니와, 창조성이라는 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물질적 조건이 구축되어야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이한 것들이 마주치는 과정을 통해서, 무엇인가 창조적인 것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할 때, 저자의 13가지 생각도구에 더해서, 하지만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적인 것 하나를 추가할 수 있다. 바로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서, 개념들과 미적인 요소들을 현실과 만나게 하고 실현하고 변용할 수 있다. 노동 속에서 창조성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저자들에게 ‘노동’이라는 항목이 이상하게도 빠져있는 것은 저자들에게나, 역사적으로나 창조적인 무엇은 노동과 분리된 엘리트들의 활동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창조성을 위한 사고의 도구이자, 그것을 실현하는 요소로서 노동이 강조될 수 있다면, 또 한편으로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창조적일 수 있도록 하는 현실의 조건(작업장과 교육현장에서)이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모든 사람에게 전업화가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한편으로는’ 화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러스킨은 1850년대의 런던의 노동자들에게 데생을 가르쳤는데, 이는 데생을 통해서(그림을 직접 그리는 것을 통해서) 사물을 더 풍부하게 보고 느끼고, 그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목수를 화가로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목수로서 더 행복하게 살게하려는 것이다”, 혹시 소질과 의지가 있다면 화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에서 재인용)

이렇게 노동자들과 예술, 과학이 만날 때,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들과 창조성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하는 대중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러스킨이 150년 전에 시작했던 일이 아직도-아직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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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창조적인 사고의 사례로 여러 인물을 드는 데 그 중에는 헬렌 켈러도 있다. 그녀는 활동 과정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있고, 메카시즘 광풍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그녀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녀가 한말은 아니고, 브라질의 해방신학 계열의 Helder Camara주교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여튼, 훌륭한 어구가 다시 떠올랐기 때문에 인용.)

"When you give food to the poor, they call you a saint. When you ask why the poor have no food, they call you a communist."
-- Archbishop Helder Camara, Brazilian liberation the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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