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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간과 대면하기
로마는 시간이, 마치 퇴적암처럼 쌓인 몇 개의 지층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고대 로마 유적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대가 남긴 물질적 증거들은 도시를 독특하게 만든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처음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은 바로 이런 시간대가 구별되지 않고 시야에, 머리 속에 섞여들면서 생기는 혼란 때문이다. 시간의 지층에 따라 여행일정을 짜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유적, 박물관 등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혼란은 어쩔 수 없다. 잠시 전에는 미켈란젤로가 15세기에 조각한 기원전 12세기 인물인 모세의 상을 보고 나서, 20분 후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건설된 로마 신전과 공회당 유적을 보게 되는 식이다. 수천년의 시간 대가 눈앞에서 질주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로마의 복잡다난한 역사가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로 수백년간 융성했던 로마는, 제국의 붕괴와 함께 황폐화되지만, 기독교의 중심으로 다시 건설되어가고, 15-16세기에 막대한 힘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종교개혁을 불러오는 그 시기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어 위대한 건축과 조각, 회화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한편에, 고대 로마 유적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도 흥미롭다. 기독교도들은 신탁의 공간 정도였던 로마의 신전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는데, 이것은 로마의 공회당(바실리카)과 같은 건축물을 활용하거나 모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건축의 요소들은 뚜렷히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명한 성당 내부에는 그리스-로마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성당이 로마의 판테온(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의 돔을 모방한 두오모를 갖고 있다.
(기독교가 교인들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특수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지적--이데올로기는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는--에 영향을 준다. 신도들이 공동체의 공간, 교회에 모여서 집단적인 물질적 실천, 무릎꿇고 기도하고, 예식을 집단적으로 매주 수행하는 것은 기독교에 고유한 요소. 그리스, 로마의 종교적 행위는 다른 방식이었던 것이다.)
산재한 고대 로마 제국의 유산도 엄청나지만, 기독교(현재는 그 한 분파인 카톨릭)의 중심인 로마에는,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저 성당에는 카라바조의 그림, 옆 성당은 베르베니가 설계한 식으로, 도시가 르네상스 시기 예술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를 생각하다이곳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같다. 그래서 그런 것은 일단 (그런 게 있다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전체적인 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생각한 기독교에 대한 단상만.
이곳에는 기독교의 각종 유물이 ‘현존’한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는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유골과 (여기부터는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 조각,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등의 성물이 안치되어 있다.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에는 베드로 성인을 묶었다는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고(옆 사진), 성스러운 계단 성당에는, 예수가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갈 때 올랐다는 계단이 옮겨져 있다.
(대부분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라나가 수집한 것이다. 아마도 제국의 변방에 300년도 지난 이런 유물을 찾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지역 총독이 어떤 식으로 황제의 어머니가 요구한 것들을 “찾아”냈을지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기독교가 어떤 초역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추상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점. 따라서 그것은 오히려 ‘유한해’ 보인다. ‘역사적 기독교’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나할까.
또 한편, 이 속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이 있다. 이미 제국 곳곳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면서, 더 이상 탄압으로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황제는 자신도 사실은 기독교도라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알려져있다) 기독교는 신분의 차별을 부정하는 혁명적인 평등주의 사상으로 대중에게 확산되었는데, 지배계급은 그것을 변용하여 수용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용하려고 한다.
알튀세르는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이데올로기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독교의 역사가 바로, 피지배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지배이데올로기로 영유하는 과정이었다. 이후에 기독교는 계급지배를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순치’되지만, 그것은 지배계급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전에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이러한 기독교 교회의 권력은 로마에 집중되었는데, 도시 전체가 위대한 종교적 건축물들로 넘치게 만들었다. 이런 성당에 들어가면, 종교를 믿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숙연해지는 성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경우에, 특히 바티칸의 상징인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에는 그것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하고, 결국 종교개혁과 전쟁을 불러오게 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교황청은 이 점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보다 큰 성당은 지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카톨릭은 그나마 이런 자기 제어라도 있지만, 개신교는 날로 거대한 교회를 짓고 있다. 사실상 면죄부를 교회 안에서 판매하면서 말이다.
거대한 시간고대 로마의 유적은 주로 ‘포노 로마노’라고 불리는 유적군에 집중되어 있다. 이 곳은 주로 언덕에 살던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언덕 사이의 저지대에 공회당, 원로원, 신전 등을 건축하면서 형성된다. 지금도 많은 유적이, 비록 무너졌지만 당시의 규모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들(‘모나리자’도 그런 경우)을 보면 배경에 거대한 폐허를 그려넣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곳의 풍경, 특히 로마 제국 황제의 궁전이 있던 카피돌리노 언덕 폐허의 장면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구나.
원로원 유적 앞에는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된 장소가 있고, 그 옆에는 안토니우스가 시저에 대한 추모연설을 통해서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한 티투스황제가 세운 개선문도 남아 있는데, 그 문의 부조에는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7개의 대가 있는 금촛대, 예리코 성벽을 무너트릴 때 사용된 은나팔을 노예와 보물과 함께 가져오는 장면도 있다. 유명한 콜로세움도 인접해있어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현장이, 돌덩이 유적으로 남아 이 곳에 있다.
유적 한켠, 무너진 대리석 기둥에 앉아서, 숙소에서 싸온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그곳들을 바라본다. 거대한 유적들만큼 거대한 시간을 실감하게 되는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은 마치 곳곳에서 급류를 만드는 거대한 강물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제지당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밀고 나간다.
내가 있는 시간도 그렇게 밀려간다. 이곳에 살았던 로마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고, 욕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했을까. 그것들이 모두 돌덩이로만 남아서 수천년 후에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이 된 곳.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만 자기 자신과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에 겸손해야한다는 것도, 그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야한다는 것도.
로마에서의 경험은, 너무나 거대한 것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한 인간의 외소함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과 규모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스틴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런 천장화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작품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은, 미켈란젤로라는 한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에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숙연함이다. 그런 존재들 앞에서 나는 있는 힘껏 내 존재의 최대치를 살아야할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 바티칸에 있는 몇 개의 작품은 다음에 언급하자,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피에타. 카라바조의 같은 작품들. 그리고 고대의 유물인 라오콘 군상에 대해서. *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여행지, 그리스로 간다. * 너무 인상적이라 숙소 근처에서 담은 노을빛, 본 것만큼 환상적인 색감은 값싼 디지털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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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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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바흐는 천상의 음악이죠. 아마 바흐는 천국에서 예수의 옆방에서 지내고 있을거에요. 그리고 이종영씨 책 어디에선가 바흐와 베토벤을 비교한 부분이 있었는데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부가 정보
무한한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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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음반들을 가지고 있어요. 글렌 굴드의 두 개의 연주야 워낙 유명합니다만, 머레이 퍼라이어의 연주나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도 참 좋아합니다(^-^). 아리아에서 첫번째 변주로 넘어 갈 때 너무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주륵 흘린 적도 있었는데(제가 조금 청승일 때가 있어서(^-^;)), 불현듯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이 납니다.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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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이종영씨 책 어디있나 궁금. 이종영씨 책을 처음에 나온 것은 열심히 보다가 최근에 잘 안봐설랑은.. 한번 찾아봐야겠어요.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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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 글렌 굴드밖에 못들어봐설랑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몇몇 곡들(이탈리아협주곡같은)과 함께 참 좋은 것같습니다. 흐, 지금도 걸어놓고 듣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만으로 이런 정념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참참..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