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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아래 포스트에 달린 '손님'의 댓글을 따라서 본 영화. 기억이나 불치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진부한 소재들을 진부하게 반복하지 않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더 단단하게 밀고갔다. 눈물을 흘리게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을 건드리고, 엔딩이 매우 인상적인 영화.
영화에서 두 사람의 이별은, 주인공이 상대에 대한 기억을 잃는 순간, 그래서 만나는 순간, 그 시점 이전으로 돌아간 순간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별은 마치 사랑 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사랑 전에,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타임리프를 탄 것처럼. 하지만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돌아가더라도 항상 너무 적게 혹은 너무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은 우리가 길들일 수가 없다.
사랑이 시작될 때처럼 이별도 각자에게 비동시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상호 동의하는" 이별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일테다.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두 사람에게 사건은 비동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끝내 이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의 책임도 아닌. 따라서 주인공들은 그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래 손님의 언급처럼,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변의 사람들에게나 사물에 남긴다. 영화는 그것을 하나씩 보여준다. 기억이 소멸할 때, 오히려 익숙했던 것들이 익숙하지 않게 되는 순간 드러나는 그 흔적들(의 도드라짐)을 통해서 감독은, 우리들 모두가 가지는 의미가 자신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억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아픈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도. 각자는 서로 교통하면서 모두의 영혼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억이 소진될 때, 나의 영혼이 아플 수밖에 없다.
* 좀 더 자세한 영화 소개는, 씨네21 이동진의 글이 친절하다.
(나도 요즘 며칠간 지금 하는 활동을 쉬는 일을 고민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려운 시간들에 따뜻하게 관심가져주고 있는 동지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Lucid Fall (루시드 폴) - The Light Of Songs (노래의 불빛)
루시드 폴 (Lucid Fall) 노래 / 만월당
이 블로그 오른 쪽 위에 있는 프로필 이미지는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2004년 앨범 표지이다. 루시드폴이 자신의 라이브공연 앨범에 붙일 '노래의 불빛'이라는 제목을 생각해낼 때 아마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을까. 공통점이 거의 없어보이는 두 앨범이지만 말이다.
루시드폴의 이제까지 세장의 앨범에 실렸던 곡들 중에 공연에서 불렸던 스무곡이 두장의 시디에 실려있다. 공연실황이라 녹음이 아주 깔끔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고, 맘에 드는 좋은 곡만 모았기 때문에 듣기에 편하다. 가슴에 남는 곡들. 공연에 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루시드폴을 처음 안 것은 1집 후에 나온 <버스, 정류장>이라는 영화의 OST를 통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듣기 좋은 음반이다. 영화도 좋았다.
영화에서 테마였던 곡은 Sur Le Quai 라는 연주곡, 불어인데 영어로는 On the dock 라는 뜻이라고한다. 그래서, OST 표지에서나 뮤직비디오에서 시디표지와 같은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도 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버스, 정류장>의 '정류장'이란 어쩌면 dock였다면 더 의미가 어울렸을지 모를 상징이다. 그래서 이 시디표지의 이미지는 너무 친절해서 약간 억지스럽다. 작품이 영화가 아니라 시였다면 '정류장'보다는 dock 였을 것같다. 그렇게 음악에서는 dock. 각각의 장르가 가진 고유한 가능성과 한계들.
dock은 땅의 끝, 걸어갈 수 있는 마지막 곳, 길이 끝나는 곳, 만나는 곳,헤어지는 곳, 알수없는 어딘가로 열린 곳...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없이도, 가사가 없는 것이 그래서 어울리는 곡.
아래 어느 포스트에서 내가 '길'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앨범을 BGM처럼 계속 듣는 이유는,
그런데 요즘 내가 서있는 곳은 길보다는 dock이 아닐까. 저 이미지에 뒷 모습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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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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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네요.에반게리온에서 '두려움'은 확실히 느껴져요.그런데 폭주를 제어하는 것도, 폭주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하는지도, 아직은 명쾌하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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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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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감독은 에반게리온의 폭주를 제어하는데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폭주'의 원인이 관계의 단절과 개인들의 고립에 있다고 보고 거기에 더 몰두한다는 생각이 듭니다.(뭐, 이게 주류적인 해석이기도 하죠 ^^;) 예전에 나온 극장판 마지막 장면에선 third impact 후에 인류는 모두 LCL용액에 용해되어서 "하나'가 되는데, 이게 안노 감독의 '해결책'인 셈이잖아요, 하지만 그게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는 전혀 확실치 않죠.. 그러니 (일본 밖에 있는 우리가 느끼는) 그 "두려움"이란게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더라도 안노 감독에게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이후의 젊은 세대들의 고립과 폭력적 일탈을 의미할테고, 그러니 더욱 개인적인, 따라서 더 초-사회적인 어떤 환상적 대안이 나오는 것이겠죠.(안노 감독의 에반게리온의 "두려움"은 직접적으로는 2차 대전과 관련된 두려움과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고, 하지만 일본 밖에 있는 우리들은 그것을 다른 맥락에서도 독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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