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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9
    [독서]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4)
    겨울철쭉
  2. 2008/01/27
    [음반]김동률, Monologue(2)
    겨울철쭉
  3. 2007/10/28
    다른 '시간들'과 만나기(1)
    겨울철쭉
  4. 2007/10/22
    유럽여행 수난기(8)
    겨울철쭉
  5. 2007/10/18
    삶은여행;여행을 마치면서.(6)
    겨울철쭉
  6. 2007/10/18
    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겨울철쭉
  7. 2007/10/17
    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겨울철쭉
  8. 2007/10/16
    비엔나, 여행의 사치
    겨울철쭉
  9. 2007/10/12
    로마, 시간과 대면하는 곳(3)
    겨울철쭉
  10. 2007/10/09
    나폴리의 가난한 골목길
    겨울철쭉

[독서]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많은 언론에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내일 이 책에 대해서 글을 쓸 것이다) <만남>-서경식,김상봉 대담 때문이다. 그 전에는 목차를 보고는 그냥 독특한 여행책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첫 목차는, '마르크스의 무덤'. 나는, 마르크스의 커다란 두상이 놓여있는, 그렇게 꾸며진 마르크스의 무덤을 좋아하지 않았다. 런던에 가서도 그 곳에 가지는 않았다.

***

서경식, 서준식의 동생. 이렇게만 알고 있었다. 서준식 선생에 대해서라면, 그분을 실천과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떠나시게 된 이유를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그러나 존경하는 분의 형제라고 해서, "그렇구나"하는 이상의 별 생각은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다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아...하고 감탄 혹은 탄식. 왜 아직까지 이런 분을 몰랐을까, 지금, 처음 읽었을까.

***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만남>이라는 책을 만나고, 또 길을 돌아서 다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커다란 두상이 얹힌 무덤의 주인이 아니라, 한명의 디아스포라로 등장한다. 그도, 고향에서 뿌리뽑히고 흩어진 자, 디아스포라였던 것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디아스포라 기행, 여행기가 아니라 살아있거나 혹은 이미 죽은, 디아스포라들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디아스포라는 어떤 이들인가,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 중에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한참 한 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집에 돌아가 가스벨브를 틀거나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전부 내려놓았구나하고 쾌활하게 생각해보곤 한다.  - 50쪽에서 재인용, 한나 아렌트 "우리 망명자들" 중에서

서경식도 이 구절을 읽고 갑자기 자살한 유쾌한 친척을 떠 올리고, 자신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존재 자체가 동요와 불안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저런 정치적 이유로 공동체에서 분리된 망명자들, 이주자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민족적, 문화적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이주민 2,3세들 소수자들. 이들은 정도와 양상의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존재와, 존재하는 곳에서 근원적인 불일치를 경험한다.

서경식과 같은 재일 조선인은 모어-모국어가 일치하지 않는다. 모어는 일본어이고 일본어로 사고하지만 모국어는 한국어, 그것은 오히려 생소하고 거칠게 입안에서 맴도는 언어다. 디아스포라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신이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있는 나라)가 분열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셔널리티의 분열과, 그리고 영혼을 구성하는 언어의 분열은 개인에게 항구적인 상처와 균열을 새길 수밖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일지는 나와 같은 '내국인'들에게는 생각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런 분열이 살인적 폭력에 의한 경우에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여성 미술가 시린 네샤트는 어떨까, 우간다에 살던 인도 이주민의 후손으로, 이제는 영국에 망명해서 살아야하는 자리나 빔지는 어떨까. 백인 사회에서 자라난 코리언 입양아들은 어떨까. 그리고, 자신의 모어가 파시스트의 끔찍한 폭력의 언어가 되어 버린 독일계 유태인 시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파울 첼란에게는 어떨까. 그리고 바로 지금, 재일조선인과 고향에서 쫒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라크 사람들과 파리 방리유의 이민2세들과 르완다 난민들과 코소보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 옆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어떨까.

<만남>에서 김상봉은, 서경식은 타자의 고통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특이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것을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다. 영혼이 어떻게 그것들을 견딜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에게라면 그 자신의 영혼의 고통 덕분(?)에 타자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우리 모두에게 공동체의 윤리가 타자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려면 서경식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예를 드는 것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서경식은 솔직하게, "보편적인 고통같은 것에 저는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만남>356쪽)

그러나 서경식이, 한명의 디아스포라로서, 우리와 대화하려고 하는 것은 그러한 고통의 차이를 과시하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대화하고 만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도 오히려 만남에 나서야한다. 그/녀들의 고통이 대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라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들을 통해서 세계를 만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자의 고통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디아스포라를 만나는, 나와 같은 '내국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에 함께 하기 위해서 "있을 수 없는 비국민"(잭 시라이)이 되는 것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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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김동률, Monologue


김동률 5집 - Monologue
김동률 노래 / Mnet Media

나오기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주묵했던 앨범.
딴 곡들도 좋지만, 첫곡, '출발'이라는 노래는 참 좋더라.
또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촉촉한 길을 혼자 걷고 싶다.


아주 멀리 까지 가보고 싶어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 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곳을 바라볼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습기를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데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되겠지
이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간 발자국
첨보는 하늘 그래도 난 이큰길
언덕을 넘어 습기를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데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길을 걸어가네

작은 물병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습기를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데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 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넒은 세상으로


노래는 아래에서 들을 수 있다. (내가 올리기는 귀찮아서 ^^:)
http://blog.naver.com/mangto91/80047524182
사진은 알프스의 산길.  "서쪽길"을 들었던 날, 날씨가 좋았다..

가사가 묘사하는 것들은 혼자서 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장면이다.

김 동률의 지난 앨범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곡 하나마다 작은 플롯을 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앨범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극처럼 느껴진다. 정작 가수 자신은 노래에서 "영화에서처럼 짜릿한 반전은 기대하지 않아"(4/ "JUMP")라고 말하지만, 6/ "The Concert" 나 3/  "오래된 노래" 같은 노래의 가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인 것으로 들리는 노래들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러나 한 사람에게만 고유한 그 사랑 이야기들은 영화같은, 혹은 그보다 더 극적일 테니까.


===
사실 요즘에 '필'이 꽃혀서 듣고 있는 앨범은 "디어 클라우드 Dear Cloud"라는 밴드의 1집.
CD 케이스가 구름처럼 폭신거린다.



지금 읽고 있는 <스피노자의 뇌>라 는 책을 보면, '느낌'에 선행하는 '정서'가 생기기 위해서는 마치 자물쇠에 맞는 열쇠같은, 어떤 자극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앨범의 몇몇 곡이 그런 셈이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한 김동률의 '출발'도 나에게 여행의 정서를 다시 불러오는 열쇠다.)

하지만 꼭 맞지 않아도 열리는 것을 보면, 내 자물쇠가 좀 허술한 것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
다락방이 있던 집에 대한 추억같은 것은 없지만,  "그 다락방이 그립습니다"라는 노래에 특정한 정서와 그것으로 인한 느낌과 이런 저런 생각들이 따라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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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간들'과 만나기


▶◀ 고 정해진 조합원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주 며칠은 이런저런 일로 서울이 아닌 곳들에 있었다. 몇몇 동지들과 지리산 자락, 전라도 장수에도 한동안 있었다. 공공연맹에서 활동을 같이 하다가 지금은 다른 길을 찾는 동지들이다.

복수의 시간대들

지난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시간은 동시대에도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르고, 심지어 한 사람 안에도 복수의 시간대들이 존재할 수 있다.

장수에서 내가 간 곳은 그런 곳이다.(물론 농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선배가 사는 집과 귀농한 이남곡 선생이 사는 산자락과 계곡이다.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을 내일 할 수도 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한 자리에서 천천히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 단풍지는 산을 그냥 앉아서 바라볼 수 있다. 서울에서라면 평생 볼 일이 없을, 도민체육대회에 가서 흘러간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아무 긴장감없는 자전거 경기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곳은 '지금' 존재하고 서울에서는 버스로 네시간여 걸릴 뿐이지만, 다른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나즈막하게 작은 바람처럼 나간다.(솔직히 앞으로 가는지, 어느 방향인지도 전혀 불확실하다.)

그래서 그곳에 흐르는 시간은, 그곳을 찾은 이방인에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을 심어넣는다. 그것은 정신없이, 혹은 뒤죽박죽인 마음 속의 시계가 진정할 수 있도록 틈을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대에 넣어야할 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화석처럼 굳지 않고 오래, 푸르게 살아있어야하지만 천천히 존재해야하는 것들을 위해서.



돌아본다는 것

신뢰하기 힘든 기억들로 얼기설기 구성된 '나'라는 주체를 되돌아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어쩌면 전혀 쓸모없는 일일 수도 있고, 혹은 하나의 주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일일 수도 있다.

지난 여행을 하면서 돌아본 '나'는 그 전에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들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때문에 더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게 되고, 나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것을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장수에서 만난 선배, 동지들과 또 처음 뵌 이남곡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런 점에서 나의 경험이 어떤 보편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 (이남곡 선생은 남민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이후 사회운동을 하시다가 귀농한 분이다. 선배, 동지들과 만난 자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 세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또 처음 만난 분과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는 것은 보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때, 생명력을 갖고 다른 것을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외부의 투쟁 속에서 그런 공간을 갖지 못해왔다는 점. 그래서 그것은 누구에게는 개인의 고통과 좌절이 되기도 하고, 조직이 변질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어떤 개인들은 이 속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타락하기도 한다.

이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성찰이 각각의 개인들만에게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상호적이어야한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의 역할, 그리고 성찰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들도 중요하게 된다. 성찰도 시종일관 면벽수행와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보다 '사회적인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들을 갖는 것에 대해서 더 흥미와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낯설게 보기

장수, 지리산 자락 단풍과 가을걷이가 아직 모두 끝나지 않은 들판은 너무나 아름답다. 먼 외국에도 자신들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한반도의 산과 들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 벼를 베지 않은 들판의 진한 노란색은, 추수전 남프랑스 아를을 담은 고흐의 진노랑과는 또 다른 빛을 낸다.(아마 아를의 하얗게 부숴지는 햇빛과 푸르고 투명한 한반도의 가을 햇빛의 차이 때문일 것같다.) 멀리 안개에 묻힌 산의 모습은, 한반도에서 왜 유화가 아니라 수묵화가 발달했는지 이해하게 한다. 그 모습은 유화의 붓터치보다는 먹물이 스미는 한지에 더 솔직하게 담길 것같다.

지난 여행에서 배운 것은, 존재하는 것들을 낯설게 보는 습관이다. 무심코 보아왔던 것들 속에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은 경이롭다. 여행과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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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수난기

사실은 여행 다녀와서가 더 수난 중이지만(─_─;) 여행 중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고생하면서 배우는 것이기도 하고, 이제 다 지난 마당에 고생이야기는 재밌는 이야기거리일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땡볕 앞에서도 앞이 캄캄해진다. 내가 이 고생을 하러왔다니 미쳤지, 미쳤어.

여행 중에는 그런 일까지 주절대기에는 일기 정리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별로 남기지 않았지만, 이제 끝난 마당이니, 일종의 무용담;;을 겸한 수난기. 주로 충실히 사전 준비를 해간 여행 초반보다는, 여행하면서 준비하고 다닌 중반 이후에 일들이 많다. 길 한두시간 헤멘 사소한 일들이야 더 많지만, 좀 큰 건들로 7대 위기. 역시 주로 헤멘 일들이다.
(사진은 좀 뜬금 없는 것들도 있는데, 정신없을 때는 사진찍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비엔나, 막차는 끊어지고 야밤에 길을 잃다

여행 중반의 비엔나. 이제는 여행도 좀 했겠다, 나름 길찾기는 자신만만. 게다가 6일 동안이나 베를린에 머물렀던 경험도 있으니 길찾는 데 필요한 독일어 단어 몇개는 알고 있다.

프라하에서 저녁열차를 타고 비엔나 중앙역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10시반. 예약한 민박집을 찾아가기 위해서 메모한 설명을 보고 트램(전차)를 탄다. 흠, 잘 가는군. 근데 좀 오래 가네.

그런데, 어머나, 이게 왜 갑자기 서지? 깜깜하고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길가에 트램은 서있고, 기사도 없다.(야간에 자동운전;;) 이런 종점이란 얘긴데.. 아차, 그럼 트램 번호가..? 설명서에 D번라고 나와있는데 0번을 탄 것이다. 으악.  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 주위에 다른 트램 정거장을 찾자.

몇분간 헤메다 다른 트램 정거장을 찾고, 일단 중앙역으로 되돌아가야지. 아, 금방오는구나.
에구구, 그런데 이게 또 10분만에 종점도착;; 이번에는 거꾸로 탓다. 하지만 아직 막차가 끊어진 것은 아니고, 막차에 도착한 트램은 10분후에 다시 출발. 11시50분, 전철역을 찾았다. 아, 그래 전철노선도 있다고 했지. 일단 타고 보자. 달려라. 마침 들어오는 열차 안착!

에구, 출발한 열차는 바로 어떤 한적한 곳으로 가더니 선다. 모양을 보니, 군자기지 지하철노조 갈 떄마다 봤던 바로 그 지하철차량기지;; 역시 막차였던거다. 문도 안열리고 10여분을 더 기다린다. 사람도 없고. 아, 이대로 비엔나의 지하철 객차에서 밤을 새야하는가.

다행히 열차는 다시 움직인다. 어디가는거지?
조금 달리더니 다시 전철역. 가만 있으면 되나 싶어서 두리번두리번하고 있는데, 친절한 비엔나 시민이 말을 건다. Where do you go? 아, 나요, 저,저,I'm going to 그린칭. 이 차는 거기 안가요, 반대편이라네요. 으악. 문이 닫히는 순간 급거 탈출, 망연자실.

지하철 역을 나오니 거리에는 차도 별로 없다. 아, 이번에는 비엔나 밤거리 노숙이란 말인가. 침낭은 다행히 가져오긴 했는데.

아차, 그래 민박집 전화번호! 수첩에 적어 두었던 것이 생각나서 뒤진다. 다행이, 전화번호가 있다. 로밍받은 핸드폰을 이때 처음 사용.(앞으로 국제전화비가 장난 아니게 나올 거다 아마) 민박집 아저씨왈, 친절하게도 차로 데리러와준다네. 30분쯤 기다리니 차가 온다. 도착하니 새벽 1시, 그래도 총 2시간반만에 구원받았으니 이번에는 여행 수난에서는 워밍업.
(위에는 수난기와 상관없는 다리가 길어보여서 맘에 드는 비엔나 노을에 비친 그림자 사진)

스위스, 진눈깨비 밤길에 숙소찾기

스위스에 숙소는 전망 좋다는 그린덴발트에 유스호스텔로 잡았다 시설도 좋다는 리뷰가 있다. 한국사람들은 가봤다는 리뷰가 없어서 좀 그렇지만, 흠 역시 좋은 숙소를 잘 못찾아가는 한국사람들 같으니라구.

사실, 스위스오는 길도 평탄치는 않았다. 비엔나에서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서 숙소를 나서고는 트램 정거장을 지나버린 것이다.(젠장, 정거장에 제대로 서기도 않고 신호대기하다가 지나가 버린거다) 두정거장이나 지나서 알아채고 내려서는 총17kg짜리 짐을 지고 전철역을 향해서 뛰기 시작한다. 중간에 (이번에도) 친절한 비엔나 신사분을 만나서 전철역을 묻고 겨우 찾았다.

내려서 달리는데 이번엔 마침 생전없던 표검사를 전철역 출구에서 경찰들이 하고 있다. I'm very late to my train, very busy!!!!!! 소용없다. 무조건 Ticket!! 가방을 뒤져서 예전에 쓰던 표 주고 무조건 달려서 겨우 잡아탔다. (바빠서 전철표 못사고 무임승차 했거덩;;) 경찰이 쫒아오지 않은게 천만다행.

여튼, 이렇게 도착한 스위스. 알프스 산에 올라가는 거점인 인터라켄 역으로 가는 동안에도, 유람선을 (무료로) 타기 위해 내렸다가 시간이 안되서 1시간을 헛탕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 그린덴발트로 갈아타고 등산열차를 오른다.

자, 그린데발트역, 여행책자에는 "역에서 조금 걷는다"라고 되어 있다. 뭐, 조금 걷나부지.
지도를 봐도 주소를 찾을 수가 없어 역무원에게 물어본다. 그러자 약도가 있는 쪽지 하나를 주는데, 흠, 멀지 않군. There is the busstop. 뭐 가까운거 같은데 뭐하러 버스비 낭비하겠어요. 자 베낭을 메고 터덜터덜. 그런데, 이런 쭉 오르막길. 약도에 나온 길은 가도가도 나오지 않는다. 아, 이건 길을 잘 못든건가, 되돌아갈까 생각하는 찰라, 표시된 가게가 나온다. 아, 이 옆으로 돌면 금방이구나. 크크

하지만, 가게를 지나고 지나고 지나고 지나고 (헉헉;;) 지나도 길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20분을 한참 오르막을 올라서 교차로를 찾고 더 가파른 길을 10분을 더 걸어서 도착. 그런데, reception은 오후3시 이후에나 연답니다. 현재시간 10시 반;;;. 이대로 알프스의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결심하고 길을 거슬러 하이킹 코스로 돌입.(또 산을 올랐단 이야기죠.) 패스가 있으니 내려와서 슈퍼에서 저녁식사와 내일 도시락, 낼 저녁식사, 낼 모레 도시락, 저녁식사 등 식료품+와인+맥주을 잔뜩 산다.(스위스가 물가는 비싸지만 슈퍼는 용서할만 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지만, 야밤에 진눈깨비 내리면 악몽이 된다.)

그런데 올라가는 길은, 에구, 이제는 날이 산이라 벌써 어두워지고 흐린가 싶더니, 부슬비가 진눈깨비로 변한다. 잔뜩 무거운 짐을 양손에 지고, 깜깜해진 산길을 오른다. 아, 먹는거고 뭐고 다 버리고 싶은 알프스 그린덴발트의 오르막길.

아비뇽, 남프랑스 태양에 쓰러질뻔하다.

스위스를 나와서 다음 일정은 남프랑스. 일요일 새벽표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벌써 매진이다. 할 수없이 낮에 도착하는 표를 산다. 리용을 거쳐서 아비뇽으로, 최종 구경 목적지는 아를. 숙소는 아비뇽에 알아봤다.(두군데나)

아비뇽 도착. 역시 남프랑스의 햇빛은 강렬하고 아름답군. 흠흠.
일단 알아본 숙소로 가자. 거의 30분을 그 베낭을 메고 간 곳에는 숙소가 없다. 아, 지도를 잘 못봤군, 건너편 블럭. 한시간만에 찾아간 호스텔. 역시 5시부터 접수한답니다. 현재시간 오후 2시;; 안돼, 시간낭비는 안돼. 두번째 숙소를 찾아 걷는다. 역시 30분을 헤메는데, 문득 약도와 지도를 자세히 비교해보니, 여긴 그냥 강건너가 아니라 강건너고 섬을 건너서도 한참인 곳이다.;;; 두시간을 헤메고 포기.

결국 기차로 20분 걸리는 아를에 가서 숙소를 잡기로 한다. 아를 도착, 이번에도 숙소를 찾아 간다. 여행책자에는 "조금 걷는다"라고 되어 있다. 헤메고 헤메고 30분. 여긴 도심을 지나서 철도역 반대편 교외잖아!! 결국 기진맥진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다, 맥이 풀려서 짐을 풀고 나니 오후 6시;;


(아비뇽 근교의 황무지)

프랑스-이탈리아 국경, 야간열차의 위기

다음날 아비뇽을 거쳐서 이탈리아 피렌체로 간다. 기차역에서 아비뇽->니스 고속열차를 예약하고, 니스->피렌체 야간열차를 예약. (사실 이렇게 오는 데도 아를에서 짐보관소가 문을 닫아서 몇시간 만에 아비뇽과 아를을 두번 왕복하는 등 황당한 일은 계속되었다.)

자, 오후 4시, 기차를 타고 니스로 출발, 도중에 다리를 다친 중국인 모녀 짐도 들어주고 착한 일도 했다. 착한일 했으니 복이 오겠지, 왠걸.

야간열차를 갈아타고, 자리를 잡는다. 4명이 같이 쓰는 방인데, 모두 미국인인 것같다. 말을 걸고 (잘 모르겠지만 농담도 하고) 친절하다. 오, 좋은 외국인 일행이군. 그런데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어떤 사람이 와서는 "여긴 내 자린데요"(영어로;;), 아니거등요, 제 표에도 이 자리거등요.

5분후 차장 등장. 표 두개를 꼼꼼히 보더니 내 표를 주면서 하는말이,
"오늘 날짜가 아니군요" 으악!!!
한심한 아비뇽 역 역무원 아줌마가 엉뚱한 날짜로 표를 준거다. 아니, 어떻게 갈아타는 열차에 두 개를 서로 다른 날짜 표로 줄 수가 있지..? 혹시나 해서 메모까지 해서 줬는데. 항의해도 소용없다. 내리든가? 뭐???? 무조건 2등석 일반석으로 가란다. 그나마 가야지 어떻게, 생판모르는 프랑스-이탈리아 국경도시에 노숙할 수는 없으니.

밤새도룍 옆자리 단체관광온 미국애들(고등학생같다) 떠드는 데서 자는 둥 마는 둥. 이 객차가 피렌체로 가기는 하는건지 알 수도 없고.(유럽 기차들은 중간에 객차를 분리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기 때문에 정해진 객차가 중요할 때가 있다)
피렌체에는 이런 상태에서 새벽에 도착했던 것이다. (피렌체에서 글에 올렸지만, 이렇게 와서 처음 식사한 레스토랑에서 사기 당할 뻔 했으니 짜증 지대로.)

로마, 아, 이 고지가 아닌가벼..

로마에서는 좀 여유있게 있겠다는 심산으로 예정보다 이틀을 더 머물렀다. 중간에 감기도 걸리고 하루는 앓아누워있기도 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역시 사고.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팔라티노 언덕의 로마 황제의 궁전 유적, 전차 경기장터에서 바라본 모습)

마지막날, 민박집 아저씨에게 "그 동안 잘 묵었네요" 빠이빠이하고, 아, 아테네 가는데 공항 빨리가는 방법 없나요? 묻는다. 그리스는 aegean이라는 저가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간다. 그럼, 전철 어디어디로 사서 버스타면 1유로에 갈 수 있어요. 오호, 책에는 11유로짜리 기차가 안내되어 있는데, 역시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가는 게 절약하는 길이여..

여유있게 전철역찾고 공항에 도착. 자, 이제 chech in해야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예약한 aegean 항공이 보이지 않는다. information을 찾아서 물어본다. "우린 그런거 잘 몰라요" 하면서 짜증을 낸다. (역시 이탈리아는 좀 불친절하다.) 뭐야, 이거. 옆에 있는 경찰에게 다시 물어본다. "글쎄요", 아... 설마.....그럼 여기가 로마 FCO 공항 아닌가요? "여긴 campio 공항이랍니다. 거긴 다른 곳이에요"
... 으악! 민박집 아저씨가 엉뚱한 공항을 알려준거다.

부랴부랴 버스 바꿔타고 전철타고 중앙역가서 11유로짜리 기차를 간발의 차이로 탄다. 하지만 11시 비행기는 이미 출발, check in 포인트나 항공사 사무실도 문을 닫았다. 좌절과 절망. 이대로 로마에서 하루더 묵으면 여행 마지막 장소인 그리스 일정은 완전히 망가진다.

아, 그래 그럼 다음 비행기라도 예약하자. 보통 항공사들은 비행기 놓치면 다음 비행기를 주기도 하는데, 주말이라 좌석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다가 (변경 안되는 것으로) 악명높은 저가항공사들이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전화비 장난 아님) 인터넷으로 예약 좀 해주라. 혹시 변경가능하면 취소하면 안될까.

밤 8시 비행기를 다시 예약하고 9시간을 로마 FCO 공항에서 기다린다. 식사 사먹기도 좌절스러워서 초코바 하나로 버틴다. 오후 6시, 이제 슬슬 check in하러가자. 내려가니 항공사 사무실에 사람이 있다. 어머나 반가워요, 제가 비행기 놓쳤는데요, 변경되나요?
Yes, of course!
(아하, 그렇군,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근데 제가 혹시 몰라서 새로 예약을 했는데요, 그럼 새로 예약한거는 취소되나요?
No!
"아니 왜 그런 (그런 어감이었다)을 하셨어요?"
라는 거다. 좌절. "하지만 다른 노선을 이용하시려면 변경가능해요", 그래 그럼 그리스에서 산토리니 섬에도 노선이 있지! "그럼 바꿔주세요!" "I can't do it, 본사 서비스센터로 전화하세요, 전화번호는 그리스에 어쩌구저쩌구"

그래, 그래도 10여만원 돈이 어디냐. 그리스로 국제전화, 콜센터와 통화한다. 앞에서 보고 이야기해도 잘 안되는데, 전화로 영어로 이런 상담이라니, 원. 어떻게 어떻게 의사는 전달됐지만 변경 수수료가 배값보다 비싸다. 아, 그럼 변경신청은 했지만 포기. 결국 비싼 항공권 두장을 사용해서 아테네로 간다.

드디어 교통사고.

산토리니 섬에서는 드디어 교통사고까지 만난다. (다른 글에도 올리기는 했지만)
배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들이 렌트한 승용차가 운전미숙으로 길가 표지판에 박치기, 범퍼와 내부 지지대가 나갔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600유로!! (원화로 약 80만원!) 7명 일행이 나누어 내기로 했다. 으.. 배에서 만나서 동행하는게 아니었는데.. 집단으로 가면 숙박비 싸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서 20유로 아끼고 100유로 손해봤다.

답답한 것은 또 그 다음이었는데, 일행 중 몇몇은, 수리비가 너무 비싸니하면서 경찰서를 가야한다는 둥, 하면서 따지기 시작. 아마 렌탈 업체의 그리스 사람도 황당했을 텐데, 차를 부순 것은 당신들인데 왜 오히려 큰 소리냐, 싶었을 것이다. (큰 소리 지르면 이긴다는 한국사람들의 신념;;)


(사고나고 나서는 더 삭막해 보이는 산토리니)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 사고에는 꽤 금액이 나오는데다가, 설사 좀 과하다고 해도 여긴 아테네에서 배로 8시간 걸리는 섬이고, 게다가 현지인들을 이길 수도 없다. 이렇게 몇몇 사람들 쌈박질 하는거 자리 뜰 수도 없어 지켜주다가 산토리니의 유명한 노을은 오늘도 포기.

아테네에서, 진짜 목숨위태했다고 생각한 순간

마지막 여행지, 아테네에서 아찔한 순간.
아테네에는 리카비토스 언덕이라는 곳이 있다. '늑대의 언덕'이라는 뜻. 아테네 여신이 아크로폴리스를 지켜주기 위해서 가져온 돌이 언덕이 되었다는 곳.

이 곳에서 본 전망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낮에 가기는 일정이 바쁘니, 한밤에 출발, 도착하니 11시 반이 넘었다. 등산열차(여행책자에는 '케이블카'라고 하지만, 글쎄, 좀 뻥이 심한거 아냐;;) 비슷한 것을 타고 조금 오르면 언덕 정상에 도착해서 전망대에 갈 수 있다.

이 곳에서 난간에 기대서 MP3로 이상은 13집 The 3rd Place에 첫곡 Nocturne을 듣다가, 순간적으로 그냥 뛰어내릴 뻔 했다. 음악 때문인지 야경 때문인지,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그냥 날아가버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찔해서 난간을 잡고 음악을 다 듣기는 했지만, 충동은 여전히 두근두근. 아찔했던 순간.
아, 그때 그냥 날아가 버릴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좀 들긴 하지만.


(사진이 작아서 느낌이 잘 안 산다. 야경 중 아크로폴리스 부분 파르테논 신전이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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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통 '여행 트러블'이라고 하는데, 낯선 나라에 가서 이런 정도의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긴장하고 주의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도 많다. (내 경우도 많은 경우 내가 충분히 주의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그건 여행의 긴장이 풀어졌을 때 혹은 지나치게 자신만만 했을때 벌어진 일들이다.) 여행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혹시라도 주눅들지 마시길, (많이들 하는 이야기이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정말로 다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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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아테네의 야경에서 언급한 노래, 이상은, Nocturne :

(흠.. 지난 포스트에 이어 이번에도 이상은;;)
이상은 13집에는 첫곡에 이 노래가 Nocturne라는 노래의 영어가사로, 마지막 곡으로 우리말(제목은 야상곡)로 부른다. Nocturne은 영어가사 노래이지만, 보기 쉽게 마지막곡인 우리말 '야상곡' 가사를 함께. 가사와 함께 곡을 들으면 왜 날아가버리려고 했는지 이해가 될 듯하다.
하지만 영어가사도 좋고, 노래는 영어가사가 더 자연스럽다. 영어가사로 노래를 먼저 지은 것같기도 하다.
 
** 음악들을 수 있는 곳 : 이상은 13집 The 3rd Place 네이버 블로그
 


Friday night the world has gone and disappeared
Forget worries, we are natural born anarchist
With our soul, we can reach to the stars
And that's far far away from the world
Let's just open our heart

Don’t cry don’t try, there’s nothing to loose , sweet night...
Thousands of breezes and spells
Stop trying stop crying
Just escape
Thousands of meanings are lighting bright now

Cherry blossom, ylang ylang
Get on the night boat with dancing gowns
And we get together to expel the devils, tonight
With all your colorful scents and spells.

Save your heart from those meaningless pain and tears
Forget yesterday ,we are drifting in eternal space.
Think once more, all we need is to be brave
Our soul is so supernatural
Let’s just open our eyes

Don’t cry don’t try
There’s nothing to loose forever
Life’s thousand of meanings to cherish
It’s sweet summer night

Cherry blossom, ylang ylang
Get on the night boat with dancing gowns
And we get together to expel the devils, tonight
With all your colorful scents and spells.

La la la~

Never worry there's a way
Cinnamon, peppermint and olive
Get on the night boat with dancing gowns
And we get together to praise the life, tonight
With your beautiful and pure smile

La la la ~

금요일 밤 세상은 사라져요
행복한 아나키스트가 되세요
우리 영혼은 저 별까지 갈 수 있죠
아주 먼 머나먼 곳까지
마음을 열어요

우울해 말고, 울지 말고
믿어봐요
기도는 이루어 지니까

잃어버린건 잊어버리고
찾아봐요
마음의 열쇠를

체리 블로썸, 일랑일랑
향기로운 여름 밤 하늘
영원에 가까운 우주를 바라봐요
색색깔의 싱싱한 꿈들을

금요일 밤 아름다운 색전구와
피아노와 웃음꽃 핀 보트로 오세요

우리 영혼은 저 달까지 갈 수 있죠
아주 먼 머나먼 곳까지
마음을 열어요

우울해 말고 울지 말고 믿어봐요
기도는 이루어지니
잃어버린 건 잊어버리고

체리 블로썸, 일랑일랑
향기로운 여름 밤 하늘
영원에 가까운 우주를 바라봐요
색색깔의 기도 같은 별들

라라라~

걱정말아요 길은 있어

과일과 꽃내음에 섞여
인생을 찬미하는 노래소리
날아올라요
머나먼 저 별 사이
샤갈의 그림 속처럼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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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여행;여행을 마치면서.

삶은 여행, 여행을 마치면서.

남들은 20대에 주로 가는 한달반짜리 유럽여행. 하지만 어떤 여행도 너무 늦거나 이르지 않다. 여행은 언제라도 자신이 있어야할 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나의 여행에서도 하루하루, 한곳한곳은 바로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어떤 경험들을 주었던 것같다. 여행에서 많은 사람, 많은 시간과 장소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을 잃고, 헤어지고, 아픈, 영혼을 치유한다.

엊그제 우연히 여행사에 걸려있는 지도를 보았다. 내가 여행한 곳을 따라가보니, 먼길. 그러나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너무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작은 여행으로 너무나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한 것에 얼굴이 붉어진다. 세상에도 겸손해져야한다.

어떤 여행

여행에서 만난 많은 여행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여행을 한다. 주로 숙소나 길에서 만나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유럽의 도시를 ‘찍고’ 가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는 곳들만 찾아다니거나, 아예 자기 일정이 없이 ‘묻어가는’ 것이 목적인 사람도 있다. 도시에서도 어딘가를 다니기보다는 여행자들과 술자리를 즐기는 것이 주가 된 사람도 있다. 사치품 쇼핑을 주로 다니는 사람도 있다. 여행책자나 여행사가 짜준 일정에 충실한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 어떤 때는 신기해져서 관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들과 만남도 여행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각자 여행하지만, 잠시잠시 이런저런 사람과 동행하기도 하지만 주로 혼자 여행하고 나와 주로 대화하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낯선 것에 놀라고, 그것에 대해서 머리와 가슴에 되새김질하기를 즐긴 나의 여행도 나쁘지 않다.

유럽에서 만난 많은 낯선 것들은, 많은 경우에 ‘관념들’에 불과했던 것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다.(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우리가 가진 관념들의 상당수가 유럽에서 온 것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그 관념들이나 혹은 내 안에 있었지만 잠재되어 있거나 은폐되어 있었거나 억압되어 있었던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던 개념들을 갑자기 단락shotcut시키기도 하고, 그것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것보다 세상에는 더 많은 일이, 더 다른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이제야 알게된다. 그래서 상상력에 혈색을 돌게 하고, 또 이제까지의 경험들, 앞으로 있을 경험들에도 겸손하게 한다.

나를 만나기

스위스에서 쓴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혼자 여행은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혼자 걸으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있다. 슬픈 마음을 슬프게 느끼고 애도한다. 삶의 기쁨이 의외의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발견하고 놀랄 수 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남들은 시시하게 지나가는 것에도 감동받을 수 있다. 그런 속에서 나를 만난다.



그건 나에게는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만큼 내가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지 않고 살았기 때문일 테다. 나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고, 그러니 아픔에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겠지.

그래서 나에 대해서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떤 의무이나 책임같은 것으로 스스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 속에서의 나를 돌아보면서 왜 아픈지 나를 이해해주게 된다. 비로소 나를 다독거려준다. 울고 싶을 땐 울어, 그래, 괜찮아, 괜찮아.

자신에게 진실하기

여행에서 위대한 예술들, 숭고한 자연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각하게 된 것도 이번 여행에서 너무나 값진 일이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문명이 수천 수백년 동안 만들어온 역사의 가장 위대한 것들만 매일 매일 찾아서 만나고 다녔으니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여행에서 유럽이 자신의 역사 속에서 남긴 위대한 예술과 사상을 압축적으로 만난 셈이다.

(여행과 관련된 제도와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유럽의 거장들에게 미안해질 만큼 감격스러운 일이다. 물론 시간과 지적 능력의 제약으로 인해서 상당부분은 주마간산 식의 만남이라는 아쉬움이 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무엇이 그것을 숭고하게 만드는지 생각한다.

나 자신에 매순간 진실하게. 운명--Fortuna여신--의 일은 그녀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어느 순간에는 운명과 부딪힐 수도 있고, 그럴 때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운명의 순풍을 탄다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어떤 운명을 만나는 경우이건 그것은 다음 일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때 인간답고 숭고할 수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거나 방법을 찾았다고는 아직 전혀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다만 인간다운 삶의 방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고 할까. 그렇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이번 여행이 알려준 이제부터 삶의 긴 과제일 것같다.

삶은 여행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상은의 Soul Hospital을 들었다. 영혼의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노래한다.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거대한 Soul Hospital이었던 셈이다.

이번 여행 기간 중에 이상은의 새 앨범이 나왔다. (10월2일) 여기서 앨범을 살수는 없는 조건이라 (죄송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구해서 들을 수 있었다. 여행의 후반은, 이 앨범의 곡들을 듣는 곳이 많았다. 특히, 삶은 여행.

삶은 여행, 이상은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었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제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 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했던 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의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 (이상은 13집 The 3rd Place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the3rd_place/100042588037

피사의 낯선 거리, 어떤 다리를 건너면서 노래를 듣고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노래에 슬픔이 깊이 담겨있고, 나와도 다르지 않다. 이상은에게도 몇 년전의 앨범 Romantopia 이후에 깊은 슬픔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슬픔을 그냥 잊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일부로 더 아름답게, 아리게 만들어가는 이 음악들을 듣는다. 그리고 그녀가 슬픔에 대면하는 자세를 듣는다.



40여일, 먼 길을 걸으면서, 여행에서 쓰러지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을 가기 위해서는 강해져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그래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삶은 여행이니까, 삶은 계속되니까.

***
이번 여행에는 ‘먼곳의 동행’이 많았다. 중간 중간 내 메일을 받아준 이들,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은 사람들, 전화 통화를 한 사람들, 나를 생각해준 모든 분들, 그리고 이 블로그를 통해서 나를 지켜봐준 모든 이들의 나의 고마운 동행이다. 이 모든 분들 덕분에 때로는 어렵고 힘든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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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그리 오래 있지 못한데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그리스에서는 무척 아쉬움이 많다. 몇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우선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깐하자. (그리스 문명,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상 등은 다음 글이 가능하다면 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많은 비극에서 등장하는 신탁의 장소인 델피(델포이), 그리고 오늘은 아크로폴리스 옆에 디오니소스 극장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델피

아테네에서 버스를 타고 세시간 정도 걸리는 델피는, 아폴로 신전의 신탁으로 유명하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곳도 여기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죽게 된 것도 델피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가다가 오이디푸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연작에도 델피가 소재로 사용된다. (모두 신화의 이야기.)

델피에 다가가면서, 아, 그리스인들이 왜 이곳에 신탁의 장소, 아폴로 신전을 지었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다. 낮은 구릉들만 있는 평원에 혼자서 우뚝 솟아있는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 쪽에는 구름까지 끼어있다. 산으로 버스가 오르자, 높은 절벽과 깊은 계곡(물은 없지만)이 펼쳐진다. 마침내 도착한 델피는, 그 장소 자체가 장관이다.



델피를 신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만든 신전 이전에 그 산과 계곡이었던 것이다. 자연이 만든 숭고함이다. 절벽에 걸려있는 신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마치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신성한 장소라는 곳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늘과 땅의 중간지대. 그리스인들이 이 곳을 신의 말(言)이 내려오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태양과 이성의 신인 아폴로를 예언의 신으로도 생각해서 신탁을 받았다. 현대의 우리들의 관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않는 일인데, 예언은 이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폴로는 운명의 신들과는 불화하면서도 예언을 관장한다. 그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미래를 아는 것은 (비록 신탁이라는 종교적 형태로 표현되지만) 알 수 없고 변덕스러운 운명이 아니라 이성을 통한 예측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같다.

하지만, 그러한 신탁이 운명을 어찌하지는 못했던 것같다. 신화의 내용에서, 사람들은 신탁을 듣고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마는 이야기가 많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도 그런 경우인데, 신탁은 운명의 아이러니를 더욱 강조한다.

오디이푸스는 신탁을 통해서 미래를 알았으면서도, 그리고 그 자신이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으면서도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운명 앞에서 파멸하는 이유는 사소한 기질 상의 단점(길가는 노인--아버지--를 살해한 성급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고귀한 성품(진실을 끝까지 대면하고자하는)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의 파멸은 비극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디오니소스 극장

다음날 오후에 간 아크로폴리스 아래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같은 티켓으로 입장할 수 있다.) 극장을 찾느라 더운 날씨에 좀 헤메서 기진맥진해서 도착했다. 이렇게 찾은 극장은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감격스럽다. 바로 이곳에서 위대한 비극들--소포클레스, 아이퀼로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던 곳이구나. 별이 빛나는 밤에 여기 객석 어디선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위대한 극작가들도 비극 공연을 관람했겠지.



땡볕 속에서 객석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아 앉는다. 비록 무너진 극장이지만, 수천년 전 공연된 비극의 감동이 남아서 울리는 것같다. 이곳에서 비극경연대회가 열리고, 비극이 초기형태로부터 완숙한 형태(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제 비극은 완성되었다고 말한)까지 꾸준히 창작되었다.

시간을 견디는 것

비극경연대회는 사라지고, 그리스 문명도 쇠락하고, 돌로 된 극장마저 무너졌지만, 비극은 시간을 견디고 남았다. 지금도 그리스 비극은 세익스피어와 함께 가장 위대한 비극으로 평가받는다.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주는 감동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비극들은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윤리적이며 철학적이고, 예술적 감동을 준다.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예술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짜는 신파와는 다르지만 더 오래 남는 슬픔을 전하고, 또 단지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사고’할 수 있게한다.

알 수 없는 운명과 불화하고 그 때문에 파멸하더라도 위대한 인간들이 위대하다는 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운명--Fortuna여신--의 것은 그녀에게, 그러나 나의 영혼의 일은 나에게. 아폴로--태양과 이성--도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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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스위스의 알프스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자연 중 하나는 지중해에 푸른 바다와 하얀 햇빛이다.

그리스 여행의 전반부는 지중해의 섬 산토리니에서 보낸다. 산토리니 섬은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광고에서처럼, 푸른 바다와 하얀 햇빛을 모방하는 것같은, 마을의 하얀 벽의 집들과, 푸른 지붕이 인상적인 곳. 바다 빛은, 하늘빛보다 더 밝은 푸른 색으로 빛난다.



8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오면서 지켜본 바다는, 배에 부딪혀 부숴지면서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거린다. 카프리섬에서 본 ‘푸른 동굴’의 빛과 다르지 않은 빛이다. 잠시 갑판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가 빨려들 것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어지럽다. 조금만 눈을 들어보면, 이런 푸른 색이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져있다. 장관.

하지만, 이곳 산토리니 섬은 광고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겠지만 대부분 지역이 황량한 황무지 언덕이다. 화산섬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사막에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나무는 없고 낮은 잡초들만 듬성듬성한 바위 산들.

거대한 화산, 작은 섬

이곳은 기원전 16세기 경에 전성기를 누린 크레타와 함께 지중해의 그리스 문명이 찬란했던 곳 중에 하나라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섬 전체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고대 산토리니섬에 있던 문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물론이지만, 이 섬과 교역하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레타도 큰 타격을 입는다.

이 폭발 이후에 큰 해일피해를 입고 충격을 받은 크레타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후에 크레타에서는 타락한 신비주의가 만연한다. 바다의 힘에 대한 공포는 문어와 같은 바다 생물을 상징으로 하는 신을 숭배한다거나, 어린아이를 인신공양을 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문명의 밝은 측면은 사라져갔다. 급기야 그리스 반도에서 넘어온 도리아인들에게 기원전 13세기 경 파괴되는데, 이후 다시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피는 데까지는 4세기가 지나야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전설로 기억되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지진과 화산폭발로 사라진 대륙. 지금도 산토리니 인근 바다에서는 고대 유적이 출토되곤 해서, 섬에는 조그만 박물관도 있다.

섬의 해안에서 보이는 곳에는 화산의 중앙 부분이 있다. 이곳은 지금도 바다 온천이 솟아나고 있어서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서너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산토리니의 내해는 거대한 화산의 칼데라인 셈이다.

바위 언덕, 황량하고 쓸쓸한.

이 곳에 황량해보이는 바위 언덕은 사막과 다르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이집트, 그곳의 사막에서 하루밤을 보내지 못한 게 가장 아쉬운 나로서는 조금이나마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나할까.



오후에 오른 황무지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은, 푸른바다와 확연하게 대조되는 황량하고 쓸쓸한 바위산의 풍경이다. 따가운 햇빛이 비추는 산턱에는 거친 바위가 널려있고 가시가 달린 낮은 잡초들만 무성한 곳이 펼쳐진다. 산토리니의 이틀째 밤에는 바람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었다. 거친 바다 바람이 불고 비도 별로 오지 않는 기후는 발목정도밖에 오지 않는 잡초만 자랄 수 있게 한다. 수천년전에 일어난 뜨거운 화산폭발을 아직도 증명하는 것같다.

이 광경은, 어떤 아름다움도 없이 자연이 이렇게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 혹은 아무 것도 없는 곳. 그리고 말한다. 나의 마음에도 이런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황량하다는 것도 단지 사람의 느낌일 뿐일 텐데, 아무 것도 없는 마음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중해 해안의 하얀집들

지중해 해안에는 산토리니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보통 하얀색으로 칠한 집들을 짓는다. 산토리니처럼 지붕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이나,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등의 남부 연안에서도 절벽에 가까스로 하얀집들이 걸린 절경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의 여러 섬들도 사진으로 보면 대부분 그렇다. 아마도,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두꺼운 벽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얀 햇빛을 더 밝게 빛나게 하는 하얀 집들과,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 어떤 섬들에서는 하얀 절벽까지 지중해와 조화를 이룬다. 해가 질 때는 하얀 벽이 붉게 물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천천히 붉게 물들다가, 해가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그 빛은 사라진다.



여행의 우여곡절

산토리니에서는 페리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숙소를 잡고 같이 움직이다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일행들이 (무모하게) 렌트한 차량 접촉 사고로, 상당한 과외의 지출이 생기기도 했다. 이곳에서만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배운 교훈 중에 하나는,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에 잠시 게으르고 남들을 그냥 따라갈 때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긴장된 판단이 그나마 가장 적합하고,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스스로 고쳐갈 수 있다.
여행에서는 혼자서 걸어가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한다.


(풍차가 있는 언덕으로 빛나는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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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여행의 사치

비엔나, 여행의 사치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여행기를 쓰면서 도시마다 하나의 이야기 정도는 남겼지만,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인터넷이 되지 않는 조건에 있었기 때문인데, 여행기에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지만, 비엔나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여행이 끝나기 전에.

제국의 수도

런던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의 제국의 수도가 어떤 것인지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수도였던 오스트리아도, 런던과는 또 다른 분위기이지만, 하나의 제국의 수도로서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합스부르크 왕조는 절대왕정 하에서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와 경쟁하면서 궁전의 규모까지도 경쟁하면서 화려한 건축물들을 남긴다. 이런 것들은 이제 관광명소나 시민들의 휴식지가 되었지만, 이들의 허망한 경쟁이 남긴 유물을 보는 건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왕조의 화려한 궁전은 굳이 찾아가지 않는 여행이었지만, 빠리에서는 이제는 박물관이 된 루브르, 그리고 비엔나에서는 도심의 공원이 된 벨베데레 궁전에는 다녀왔다.



음악가들의 도시

18세기, 19세기에 왕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렵, 비엔나의 왕족과 귀족들은 음악을 애호하면서 후원한다. 이에 따라서 단기간에 한 도시에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이 모이는 일이 일어난다. 모차르트, 베토벤, 드로브작,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등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음악가들이 모두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그런 위대한 시기가 짧은 기간에 한 도시에서 가능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다.

우리가 듣는 위대한 클래식 음악의 상당수가 이러한 지원 하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점에서도  역사는 모든 것을 단순하게만은 판단할 수 없게 한다. (클래식음악도 지배계급의 것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일은 소련에서도 하지 않았으니.)

시내 곳곳에는 위대한 음악가들의 동상들이 있다. 왕궁 정원 한편에는 모차르트의 동상이 있다. 동상 한켠엔 꽃다발이 놓여져 있다. 모차르트의 동상 앞에 앉아서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는다. ‘캐논’을 들으면서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앞을 지나다 보면 베토벤 광장, 베토벤 동상에 이르게 된다.

베토벤 동상 앞 벤치에서 한낮이지만 ‘월광’을 듣는다. 그의 동상 옆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가 고통, 그러나 굳건한 표정으로 조각되어 있다. 베토벤에 어울리는 상징이다. 그의 음악은 마치 인간에게 영원한 시간에 속하는 음악을 선사했다는 이유로 신이 가하는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마르크스와 함께, 그는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렇게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동상이 있는 시립공원을 지나서 트램을 타고 조금 가면 음악가들의 묘지가 모여있는 한적한 ‘중앙묘지’에 닿을 수 있다. 몇몇 관광객들이 들리고,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왁자지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곳에는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슈트라우스 등의 묘지가 모여있다. 이곳에 이르자 MP3 플레이어서는 이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이 흘러나온다.

여행의 사치

이렇게 한 하루는 나의 유럽 여행에서 가장 호화로운 하루였다. 비록 돈이 많이 든 일정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감각으로 최고의 예술을 함께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한 곳 한 곳은 어느 사치스러운 여행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돈을 산 어떤 사치도 이런 호사에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저녁에는 (값싼) 음악회 티켓을 구해서 갔었지만, 음악회조차도 낮에 걸은 그 길의 감동에 비할 수 없었다.

베토벤, 환의의 송가

사실, 비엔나에서 느낀 것은, 최고로 인기있는 음악가는 모차르트라는 것이다. 어디가든 모차르트가 넘친다. 내가 간 날 알아본 음악회 티켓도 거의 다 모차르트 공연이 뿐이었다. (아니면 슈트라우스의 왈츠) 거리에 보이는 기념품샵도 대부분 모차르트와 관련된 것이거나, 그와 관련된 물품이 다수를 이룬다. 그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가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엔나에서는 베토벤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모든 인간적인 고통, 영혼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가장 위대한 예술을 창조한 인간이다. 모차르트를 들을 때는, 자유분방한 선율에 감동하게 된다. 베토벤을 들을 때는 고전적인 형식미 속에서 인간적인 열정을 녹여낸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고전적인 형식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영혼의 고통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열정으로 때로는 깊은, 깊은 슬픔으로 드러난다.

베를린에서는 일부러 베토벤을 듣지 않았다. 베를린장벽의 붕괴 이후에 독일의 통일, 그리고 동시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붕괴를 축하하는 브란덴부르크 광장 공연에서 번슈타인이 교향곡9번 ‘환의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라는 것으로 바꾸어 연주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인류애를 노래하는, 따라서 프랑스혁명을 지지한 공화주의자였던 그의 이력을 생각하지 않더라고 가장 공산주의적인 이 음악을 편협하게 해석한 해프닝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유럽연합은 자신들의 공식적인 상징음악으로, 베토벤의 ‘환의의 송가’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 곡은 유럽이 자신들의 상징으로만 채택하기에는 너무 위대한 곡이다. 말 그대로, (유럽의 연합이 아니라) 인류의 형제애를 노래하는 곡이 아닌가! 유럽(연합)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국가 간 체계를 민주화하고 그것을 세계화한다면 모를까.)

독일어로 된 가사를 들으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아래 번역을 보면서 4악장을 들어보자. 이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이다. (첫 구절을 제외하고는 쉴러의 시 ‘환의의 송가’를 가사로 쓴 것이다.)

오! 벗들이여 이 가락이 아니고 더욱 즐거운 가락 그리고 환희에 넘친 가락을 함께 부르자!

환희여, 신들의 아름다운 광채여,
낙원의 처녀들이여,
우리 모두 감동에 취하고
빛이 가득한 신전으로 들어가자.
잔악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은 다시 결합시킨다.
그대의 다정한 날개가 깃들이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자여,
환희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그렇다. 비록 한 사람의 벗이라도
땅 위에 그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러나 그것조차 가지지 못한 자는
눈물 흘리며 발소리 죽여 떠나가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의 가슴에서 환희를 마시고
모든 착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환희의 장미 핀 오솔길을 간다.
환희는 우리에게 입맞춤과 포도주,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친구를 주고
벌레조차도 쾌락은 있어
천사 케르빔은 신 앞에 선다.
장대한 하늘의 궤도를
수많은 태양들이 즐겁게 날 듯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
서로 서로 손을 마주잡자,
억만의 사람들이여,
이 포옹을 전 세계에 퍼뜨리자.
형제여, 성좌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신이 계시는 곳이다. 엎드려 빌겠느냐,
억만의 사람들이여, 조물주를 믿겠느냐
세계의 만민이여, 성좌의 저편에 신을 찾아라,
별들이 지는 곳에 신이 계신다.

내가 유럽에서 많은 성당들을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어떤 성스러운 것에는 그것이 그 종교의 구체적인 관행과 교리에 제한되지 않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신’이라는 것이 굳이 기독교의 ‘야훼’가 아니라도 인류가 공유하는 성스럽고 숭고한 이상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인류 모두의 환의의 송가가 될 수 있다. 그런 영혼에 울리는 보편적인 것을 각각의 종교, 문화, 언어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그렇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 서로 서로 손을 마주잡자,
억만의 사람들이여, 이 포옹을 전 세계에 퍼뜨리자.

위대한 인간의 위대한 예술을 다시, 청각과 시각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곳. 짧은 비엔나의 일정은 그래서 나에게는 이번 여행에서는 어쩌면 주제넘을지도 모르게 가장 사치스러운 경험이었다.

***
영화 ;  Immortal beloved

여행에서 본 영화 중에는 유럽 여행자들이 십중팔구는 본다고 하는 Before sunrise (그리고 Before sunset) 와 함께 베토벤에 대한 영화인 Immortal beloved 가 있다.

전자의 영화는 워낙 유명하게,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영화. 여행에서 어떤 우발적인(혹은 운명적인), 그러나(혹은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을 만나기를 바라는 여행자들의 기대를 담는다.

후자는, 베토벤의 주요한 작품들을 (주로 전기적 근거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개인적 경험과 연결해서 보여준다. 베토벤에게, 불멸의 연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력을 전제로.

영화의 상상력도 별로 나쁘지는 않다. 영화는 영원immortal하지만, 시간에 어긋난 사랑의 무대에 베토벤을 등장시킨다. 아, 시간의 덧없음이여. (여기서 시간이란 더 이상 위대한 무엇이 아니라, 가장 슬픈 결과를 낳는 운명Fortuna, 혹은 그녀의 장난과 같은 것. 오히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영원하다.)

하지만, 영화의 설정 때문에 주로 베토벤의 음악들을 거의 그의 개인사와 연결시킨다는 단점이 있다.(게다가 대사를 통해서 그의 음악들을 그런 식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서 베토벤을 작품 속에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실제로 그러한 측면이 없지 않더라도, 베토벤의 음악은 그의 개인적인, 개인의 영혼의 고통을 그대로 표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는 다소 편협한 측면이 있다. 그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고통받는 영혼의 인간이고, 그 고통을 음악에 담았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그것을 모두가 함께 공명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것으로 표현한 점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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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간과 대면하는 곳

로마, 시간과 대면하기

로마는 시간이, 마치 퇴적암처럼 쌓인 몇 개의 지층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고대 로마 유적부터, 중세,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간대가 남긴 물질적 증거들은 도시를 독특하게 만든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처음 느끼게 되는 당혹스러움은 바로 이런 시간대가 구별되지 않고 시야에, 머리 속에 섞여들면서 생기는 혼란 때문이다. 시간의 지층에 따라 여행일정을 짜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유적, 박물관 등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혼란은 어쩔 수 없다. 잠시 전에는 미켈란젤로가 15세기에 조각한 기원전 12세기 인물인 모세의 상을 보고 나서, 20분 후에는 기원전 3세기부터 건설된 로마 신전과 공회당 유적을 보게 되는 식이다. 수천년의 시간 대가 눈앞에서 질주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로마의 복잡다난한 역사가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로 수백년간 융성했던 로마는, 제국의 붕괴와 함께 황폐화되지만, 기독교의 중심으로 다시 건설되어가고, 15-16세기에 막대한 힘을 갖게 된다.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종교개혁을 불러오는 그 시기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어 위대한 건축과 조각, 회화 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한편에, 고대 로마 유적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기독교 교회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도 흥미롭다. 기독교도들은 신탁의 공간 정도였던 로마의 신전과는 달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는데, 이것은 로마의 공회당(바실리카)과 같은 건축물을 활용하거나 모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한 건축의 요소들은 뚜렷히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명한 성당 내부에는 그리스-로마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많은 성당이 로마의 판테온(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의 돔을 모방한 두오모를 갖고 있다.

(기독교가 교인들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특수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지적--이데올로기는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는--에 영향을 준다. 신도들이 공동체의 공간, 교회에 모여서 집단적인 물질적 실천, 무릎꿇고 기도하고, 예식을 집단적으로 매주 수행하는 것은 기독교에 고유한 요소. 그리스, 로마의 종교적 행위는 다른 방식이었던 것이다.)

산재한 고대 로마 제국의 유산도 엄청나지만, 기독교(현재는 그 한 분파인 카톨릭)의 중심인 로마에는,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저 성당에는 카라바조의 그림, 옆 성당은 베르베니가 설계한 식으로, 도시가 르네상스 시기 예술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를 생각하다

이곳에서 인상적으로 본 작품들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같다. 그래서 그런 것은 일단 (그런 게 있다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전체적인 인상, 그리고 그 속에서 생각한 기독교에 대한 단상만.

이곳에는 기독교의 각종 유물이 ‘현존’한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는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유골과 (여기부터는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 조각,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등의 성물이 안치되어 있다.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에는 베드로 성인을 묶었다는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고(옆 사진), 성스러운 계단 성당에는, 예수가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갈 때 올랐다는 계단이 옮겨져 있다.

(대부분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라나가 수집한 것이다. 아마도 제국의 변방에 300년도 지난 이런 유물을 찾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지역 총독이 어떤 식으로 황제의 어머니가 요구한 것들을 “찾아”냈을지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기독교가 어떤 초역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종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추상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만들어낸 종교라는 점. 따라서 그것은 오히려 ‘유한해’ 보인다. ‘역사적 기독교’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나할까.

또 한편, 이 속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이 있다. 이미 제국 곳곳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면서, 더 이상 탄압으로는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조성되기 때문이다.(황제는 자신도 사실은 기독교도라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신빙성이 없다고 알려져있다) 기독교는 신분의 차별을 부정하는 혁명적인 평등주의 사상으로 대중에게 확산되었는데, 지배계급은 그것을 변용하여 수용하고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용하려고 한다.

알튀세르는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이데올로기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독교의 역사가 바로, 피지배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지배이데올로기로 영유하는 과정이었다. 이후에 기독교는 계급지배를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순치’되지만, 그것은 지배계급 자신의 이데올로기 이전에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이러한 기독교 교회의 권력은 로마에 집중되었는데, 도시 전체가 위대한 종교적 건축물들로 넘치게 만들었다. 이런 성당에 들어가면, 종교를 믿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숙연해지는 성스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경우에, 특히 바티칸의 상징인 성 베드로 성당의 경우에는 그것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하고, 결국 종교개혁과 전쟁을 불러오게 되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교황청은 이 점을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보다 큰 성당은 지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카톨릭은 그나마 이런 자기 제어라도 있지만, 개신교는 날로 거대한 교회를 짓고 있다. 사실상 면죄부를 교회 안에서 판매하면서 말이다.

거대한 시간

고대 로마의 유적은 주로 ‘포노 로마노’라고 불리는 유적군에 집중되어 있다. 이 곳은 주로 언덕에 살던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언덕 사이의 저지대에 공회당, 원로원, 신전 등을 건축하면서 형성된다. 지금도 많은 유적이, 비록 무너졌지만 당시의 규모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들(‘모나리자’도 그런 경우)을 보면 배경에 거대한 폐허를 그려넣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곳의 풍경, 특히 로마 제국 황제의 궁전이 있던 카피돌리노 언덕 폐허의 장면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구나.

원로원 유적 앞에는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암살된 장소가 있고, 그 옆에는 안토니우스가 시저에 대한 추모연설을 통해서 로마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한 티투스황제가 세운 개선문도 남아 있는데, 그 문의 부조에는 성서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7개의 대가 있는 금촛대, 예리코 성벽을 무너트릴 때 사용된 은나팔을 노예와 보물과 함께 가져오는 장면도 있다. 유명한 콜로세움도 인접해있어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현장이, 돌덩이 유적으로 남아 이 곳에 있다.

유적 한켠, 무너진 대리석 기둥에 앉아서, 숙소에서 싸온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그곳들을 바라본다. 거대한 유적들만큼 거대한 시간을 실감하게 되는 현장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은 마치 곳곳에서 급류를 만드는 거대한 강물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어느 것에도 제지당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밀고 나간다.

내가 있는 시간도 그렇게 밀려간다. 이곳에 살았던 로마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고, 욕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했을까. 그것들이 모두 돌덩이로만 남아서 수천년 후에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배경이 된 곳.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는 어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만 자기 자신과 현재에 충실할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에 겸손해야한다는 것도, 그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야한다는 것도.

로마에서의 경험은, 너무나 거대한 것들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한 인간의 외소함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과 규모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스틴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런 천장화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작품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은, 미켈란젤로라는 한 인간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에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숙연함이다. 그런 존재들 앞에서 나는 있는 힘껏 내 존재의 최대치를 살아야할텐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 바티칸에 있는 몇 개의 작품은 다음에 언급하자, 무엇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피에타. 카라바조의 같은 작품들. 그리고 고대의 유물인 라오콘 군상에 대해서.

* 이제 내일이면 마지막 여행지, 그리스로 간다.

* 너무 인상적이라 숙소 근처에서 담은 노을빛, 본 것만큼 환상적인 색감은 값싼 디지털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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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가난한 골목길

나폴리의 골목길

나폴리는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인기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많다고 소문이 자자할 뿐 아니라, 정작 나폴리 시내에는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로마에서 출발해서 나폴리 근처를 여행하는 패키지 투어를 가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폴리에 묵는 여행자들도 나폴리 자체보다는 근처의 카프리 섬이나 소렌토, 폼페이 유적을 가려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다.

카프리섬이나 소렌토 같은 이탈리아 중남부 해안은 멋지다. 카프리섬은 하얀 햇빛이 더 하얀 절벽과 푸른 바다에 부딪혀 공기 중에 흩어진다. 햇빛이 공기중에 가루처럼 부숴진다는 표현이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그곳에서 알았다.



카프리 섬에 유명한 “푸른 동굴”은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이 하얀 석회암 바닥에 반사되면서 어디서도 보기 힘든 투명한 파랑색을 만들어낸다. 굳이 “푸른 동굴”이 아니라도 지중해의 바다는 빨려들어갈만큼 투명하다. 깍아지른 절벽에 하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포지타노 마을의 해변은 어디를 찍어도 그림같다. 이런 곳들에 오면 사람이 ‘비현실적’인 모든 것들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곳을 넘어서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놀라면서 다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폴리 자체는 그리 인기있는 관광지는 아니다. ‘세계3대 미항’이라는 건 뱃사람들이 편한 항구를 말하는 것일뿐, 여행자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폴리 곳곳은 지저분하고 혼잡한데, 그것은 이곳이 이탈리아의 “남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식실업률이 25%대에 이르고, 체감 실업률은 50%라는 도시.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유명한 이탈리아 노래도, 가난 때문에 나폴리와 인근 소렌토 항에서 배를 타고 이민해야했던 남부 사람들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니, 아름다운 소렌토 항구도 낭만만 있는 곳은 아닌 셈이다.

숙소 밖에서는 매일 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거리에는 흑인 노점상들을 어디든 볼 수 있는데, 어떤 날은 폭력배에게 자릿세를 내지않은 듯한 흑인 여성이 물건을 ‘압수’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옆에 있는 흑인 상인들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이 도시의 뒷골목은 마치 우리나라의 달동네 모습같다. 이제는 대부분 철거되고 재개발되었거나 예정된 그곳들. 5층 정도 되는 다가구 주택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빨래가 가득 널려있다. 아이들이 뛰논다. 어느 모퉁이에서는 위층에서 버리는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이 사는 골목길을 만나면서 마음이 찡하다.

이곳 골목길은 언덕 위까지 쭉 이어져있다. 하지만 언덕 전체가 달동네는 아닌데,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좋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망이 좋은 그곳은 아예 순환도로로 분리된 별도의 구역을 형성한다. 좋은 집들이 있는 고지대에는 지하철도 잘 되어있고 거리도 깨끗하다.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도 많다.

가난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낮은 곳에 사는 도시. 그 뒷골목은 여행에서 만난 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 중에 하나다. 그곳은 단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라, 힘겨운 삶의 공간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이곳에서, 어느 여행지도 단지 ‘관광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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