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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8
    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겨울철쭉
  2. 2007/10/17
    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겨울철쭉
  3. 2006/12/31
    [독서]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
    겨울철쭉

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그리스, 델피, 디오니소스 극장, 비극을 생각하다.

그리 오래 있지 못한데다가 마지막 여행지인 그리스에서는 무척 아쉬움이 많다. 몇가지 이야기가 있겠지만, 우선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를 잠깐하자. (그리스 문명,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상 등은 다음 글이 가능하다면 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많은 비극에서 등장하는 신탁의 장소인 델피(델포이), 그리고 오늘은 아크로폴리스 옆에 디오니소스 극장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델피

아테네에서 버스를 타고 세시간 정도 걸리는 델피는, 아폴로 신전의 신탁으로 유명하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곳도 여기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가 죽게 된 것도 델피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가다가 오이디푸스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연작에도 델피가 소재로 사용된다. (모두 신화의 이야기.)

델피에 다가가면서, 아, 그리스인들이 왜 이곳에 신탁의 장소, 아폴로 신전을 지었는지 조금씩 느낄 수 있다. 낮은 구릉들만 있는 평원에 혼자서 우뚝 솟아있는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 쪽에는 구름까지 끼어있다. 산으로 버스가 오르자, 높은 절벽과 깊은 계곡(물은 없지만)이 펼쳐진다. 마침내 도착한 델피는, 그 장소 자체가 장관이다.



델피를 신성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만든 신전 이전에 그 산과 계곡이었던 것이다. 자연이 만든 숭고함이다. 절벽에 걸려있는 신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마치 하늘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신성한 장소라는 곳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늘과 땅의 중간지대. 그리스인들이 이 곳을 신의 말(言)이 내려오는 곳이라고 생각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태양과 이성의 신인 아폴로를 예언의 신으로도 생각해서 신탁을 받았다. 현대의 우리들의 관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않는 일인데, 예언은 이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폴로는 운명의 신들과는 불화하면서도 예언을 관장한다. 그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미래를 아는 것은 (비록 신탁이라는 종교적 형태로 표현되지만) 알 수 없고 변덕스러운 운명이 아니라 이성을 통한 예측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같다.

하지만, 그러한 신탁이 운명을 어찌하지는 못했던 것같다. 신화의 내용에서, 사람들은 신탁을 듣고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마는 이야기가 많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도 그런 경우인데, 신탁은 운명의 아이러니를 더욱 강조한다.

오디이푸스는 신탁을 통해서 미래를 알았으면서도, 그리고 그 자신이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으면서도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운명 앞에서 파멸하는 이유는 사소한 기질 상의 단점(길가는 노인--아버지--를 살해한 성급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고귀한 성품(진실을 끝까지 대면하고자하는)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의 파멸은 비극의 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디오니소스 극장

다음날 오후에 간 아크로폴리스 아래에는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같은 티켓으로 입장할 수 있다.) 극장을 찾느라 더운 날씨에 좀 헤메서 기진맥진해서 도착했다. 이렇게 찾은 극장은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감격스럽다. 바로 이곳에서 위대한 비극들--소포클레스, 아이퀼로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이 공연되었던 곳이구나. 별이 빛나는 밤에 여기 객석 어디선가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위대한 극작가들도 비극 공연을 관람했겠지.



땡볕 속에서 객석이 잘 보이는 좋은 자리를 잡아 앉는다. 비록 무너진 극장이지만, 수천년 전 공연된 비극의 감동이 남아서 울리는 것같다. 이곳에서 비극경연대회가 열리고, 비극이 초기형태로부터 완숙한 형태(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제 비극은 완성되었다고 말한)까지 꾸준히 창작되었다.

시간을 견디는 것

비극경연대회는 사라지고, 그리스 문명도 쇠락하고, 돌로 된 극장마저 무너졌지만, 비극은 시간을 견디고 남았다. 지금도 그리스 비극은 세익스피어와 함께 가장 위대한 비극으로 평가받는다.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주는 감동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비극들은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윤리적이며 철학적이고, 예술적 감동을 준다. 비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예술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짜는 신파와는 다르지만 더 오래 남는 슬픔을 전하고, 또 단지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사고’할 수 있게한다.

알 수 없는 운명과 불화하고 그 때문에 파멸하더라도 위대한 인간들이 위대하다는 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운명--Fortuna여신--의 것은 그녀에게, 그러나 나의 영혼의 일은 나에게. 아폴로--태양과 이성--도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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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산토리니, 지중해의 햇빛

스위스의 알프스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자연 중 하나는 지중해에 푸른 바다와 하얀 햇빛이다.

그리스 여행의 전반부는 지중해의 섬 산토리니에서 보낸다. 산토리니 섬은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광고에서처럼, 푸른 바다와 하얀 햇빛을 모방하는 것같은, 마을의 하얀 벽의 집들과, 푸른 지붕이 인상적인 곳. 바다 빛은, 하늘빛보다 더 밝은 푸른 색으로 빛난다.



8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오면서 지켜본 바다는, 배에 부딪혀 부숴지면서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거린다. 카프리섬에서 본 ‘푸른 동굴’의 빛과 다르지 않은 빛이다. 잠시 갑판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가 빨려들 것같은 느낌이 들어 조금 어지럽다. 조금만 눈을 들어보면, 이런 푸른 색이 수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져있다. 장관.

하지만, 이곳 산토리니 섬은 광고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겠지만 대부분 지역이 황량한 황무지 언덕이다. 화산섬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사막에 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나무는 없고 낮은 잡초들만 듬성듬성한 바위 산들.

거대한 화산, 작은 섬

이곳은 기원전 16세기 경에 전성기를 누린 크레타와 함께 지중해의 그리스 문명이 찬란했던 곳 중에 하나라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섬 전체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고대 산토리니섬에 있던 문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물론이지만, 이 섬과 교역하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크레타도 큰 타격을 입는다.

이 폭발 이후에 큰 해일피해를 입고 충격을 받은 크레타도 쇠퇴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후에 크레타에서는 타락한 신비주의가 만연한다. 바다의 힘에 대한 공포는 문어와 같은 바다 생물을 상징으로 하는 신을 숭배한다거나, 어린아이를 인신공양을 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문명의 밝은 측면은 사라져갔다. 급기야 그리스 반도에서 넘어온 도리아인들에게 기원전 13세기 경 파괴되는데, 이후 다시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피는 데까지는 4세기가 지나야했다.

이 사건은 이후에 아틀란티스 대륙에 대한 전설로 기억되는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지진과 화산폭발로 사라진 대륙. 지금도 산토리니 인근 바다에서는 고대 유적이 출토되곤 해서, 섬에는 조그만 박물관도 있다.

섬의 해안에서 보이는 곳에는 화산의 중앙 부분이 있다. 이곳은 지금도 바다 온천이 솟아나고 있어서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서너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산토리니의 내해는 거대한 화산의 칼데라인 셈이다.

바위 언덕, 황량하고 쓸쓸한.

이 곳에 황량해보이는 바위 언덕은 사막과 다르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이집트, 그곳의 사막에서 하루밤을 보내지 못한 게 가장 아쉬운 나로서는 조금이나마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나할까.



오후에 오른 황무지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은, 푸른바다와 확연하게 대조되는 황량하고 쓸쓸한 바위산의 풍경이다. 따가운 햇빛이 비추는 산턱에는 거친 바위가 널려있고 가시가 달린 낮은 잡초들만 무성한 곳이 펼쳐진다. 산토리니의 이틀째 밤에는 바람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었다. 거친 바다 바람이 불고 비도 별로 오지 않는 기후는 발목정도밖에 오지 않는 잡초만 자랄 수 있게 한다. 수천년전에 일어난 뜨거운 화산폭발을 아직도 증명하는 것같다.

이 광경은, 어떤 아름다움도 없이 자연이 이렇게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은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것. 혹은 아무 것도 없는 곳. 그리고 말한다. 나의 마음에도 이런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황량하다는 것도 단지 사람의 느낌일 뿐일 텐데, 아무 것도 없는 마음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중해 해안의 하얀집들

지중해 해안에는 산토리니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보통 하얀색으로 칠한 집들을 짓는다. 산토리니처럼 지붕을 파란색으로 칠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이나,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 등의 남부 연안에서도 절벽에 가까스로 하얀집들이 걸린 절경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의 여러 섬들도 사진으로 보면 대부분 그렇다. 아마도,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두꺼운 벽이 유리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얀 햇빛을 더 밝게 빛나게 하는 하얀 집들과,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 어떤 섬들에서는 하얀 절벽까지 지중해와 조화를 이룬다. 해가 질 때는 하얀 벽이 붉게 물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천천히 붉게 물들다가, 해가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그 빛은 사라진다.



여행의 우여곡절

산토리니에서는 페리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숙소를 잡고 같이 움직이다가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일행들이 (무모하게) 렌트한 차량 접촉 사고로, 상당한 과외의 지출이 생기기도 했다. 이곳에서만은 아니지만 여행에서 배운 교훈 중에 하나는,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에 잠시 게으르고 남들을 그냥 따라갈 때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긴장된 판단이 그나마 가장 적합하고,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스스로 고쳐갈 수 있다.
여행에서는 혼자서 걸어가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한다.


(풍차가 있는 언덕으로 빛나는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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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그리스비극에 대한 편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상봉 지음 / 한길사


비극과 혁명, 그리고 슬픔에 마주친 우리의 자세

결국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신의 개념화에 입각해서 알튀세르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치에 대한 비전은 비극적tragique이라는 점을 인정하자...(중략).. 그것은 '대중들'(피지배 계급들, 인민계급들에 속하는 개인들의 잠재적 통일성)이 돌이킬수 없도록 분할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대중들이 두개의심금들, 그들 자신의 가상의두 개의 실존및 조직양식들 사이에서 내재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자.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또그 힘이 단순한 '관념들'의 힘과는 비교될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의 기능작용에 부합하는 '정상적' 행동과그 핵심에서는 항상 이미 잠재적 반역이 살아있는 그들의 경험의 공동체적,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적 결과들 사이에서 말이다. 그런데 후자의 측면이 전자의 측면보다 우세할 것이라는 어떤 보장도 절대로 없다.그 역도 마찬가지다.
- 발리바르, 「비동시대성: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中

혁명적 정치가 비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혁명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왜 비극이며, 또 그것은 비관주의 혹은 종말목적론과는 왜 구별되는 것일까?

그것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보증도 없는 현재의 운동이다.(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를 위한 11개의 테제/발리바르)  따라서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정세의 변화, 대중의 움직임에 따라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실패해왔다고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주체가 이데올로기적 미망에 빠져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실패를 예상하면서도 투쟁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전에 쓴 포스트 <판의 미로, 랜드 앤 프리덤, 카탈로니아 찬가> 에서 언급한 것처럼, 숭고한 가치를 위해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운명을 상대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80년 광주에서 도청에 남은 시민군에게서, 1944년의 스페인 반군에게서 발견한다. 이것은 안티고네가 죽음의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나,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파멸에 이르는 운명 앞에서도 진실을 대면하려는 것, 자신이 죽을 운명으로 예언된 전투에 스스로 나서는 아킬레우스와 같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의 의미는 이러한 운명 앞에 선 주체의 숭고함을 드러내는 것에만 있지 않다.저자는  예술형식으로서 그리스 비극은 서사시와 서정시의 시대를 지나 '시민의 시대'에 적합한 형태, 폴리스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서사시는 세계(존재)의 총체성을 반영하고 정신의 완전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서사시가 보여주었던 질서있고 조화로운- 완전한 삶의 모형이 정치적 혼란 속에서 해체되면서 개인을 자각하는 서정시가 나타난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Sappho는 이때 등장한다. 시인이 자신을 기억 속에서 반성할 때, 자신은 자립적인 정신으로 나타난다.

서사시의 비극성은 죽음과 삶의 비극성도 완전한 삶의 일부라는 점을 긍정하는 것으로 긍정된다. 이에 비해서 서정시의 비극성은 주체의 갈등과 분열에 뿌리를 둔다. 시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주체(조건과 정념)의 변화에 따라 주체가 타자가 되는 속에서 발생하는 슬픔을 보여준다.(아마도 그것은 시간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순간 안에도 존재하는 주체의 분열과 갈등을 생각해보자.)

(한편, 저자는 비극은 자기연민이 아니라고 말한다. 비극은 정신의 숭고함을 표현하지만, 특히 서정시의 경우에는 나르시시즘이나 자기연민으로 후퇴할 수 있다. 그런 예로 김수영의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를 든다. 우연찮게도, 나는 다른 글(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에서 김수영의 이 시를 비판한 적이 있다.)

자, 이제 서사시와 서정시의 시대를 지나 비극의 시대. 비극이라는 예술형식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시대와 관련되어 있다. 고립된 주체를 공동체의 시민으로 도야하기 위한 예술. 사람들이 함께 비극 공연을 감상하고 광장에서 만날 수 있게 한다. 예술의 형태에 있어서도 코러스와 대화로 구성된 공연방식은 시민들의 교통을 상징한다. 그래서 코러스보다는 대화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코러스가 나타내는) 공동체로의 고양 이전에 시민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보존하는 가운데에서도 서로 마주치고 교통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한 교통이 비극을 통해 느끼는 슬픔 속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녀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그/녀가 내 속에 들어와 머물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녀의 슬픔이 내 속에서 쉴 때 뿐이라고 말한다. "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속에서 타인의 슬픔이 고요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인 것".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모두 고통받았고, 슬픔 속에서 평등하게 서로 만나게 된다.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의 눈물 속에서 자신의 슬픔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위대한 예술인 그리스 비극이 가장 위대한 정치적 예술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혁명적 정치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 한, 혁명적 정세를 이유로 정치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은 지양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을 보증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최원씨의 <비극의 의의 혹은 취중결론>이라는 글 참고) 책의 서문 한 구절을 인용하자.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치는 내가 너와 만나 우리가 되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계기는 만남이다. 그런 한에서 정치적 예술이란 단순한 저항예술도 아니고 반대로 관변예술도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적으로 만남을 지향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참된 의미에서 타인과 만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슬픔 속에 있을 때이다. 만남은 슬픔이 주는 선물인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이것에 대한 가장 심오한 증거이다. 그것은 정치적 예술로서 만남의 총체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만남이 오직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정치적 예술은 비극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 25쪽

물론, 경험 속에서는 유사한 슬픔을 공유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만남의 그런 불가능성은 슬픔을 주체 안에 가두어 둘 것이지만, '자기연민'이 아닌 '교통'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 인용했던 발리바르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자. 비극적 관점은 착취의 모순과 이데올로기적 반역의 해후, 과잉결정으로서의 혁명에 대한 사고.  혁명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고 승리도 패배도 아닌 비극"인 이유.(『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윤소영)

그러나 비극적 관점이 비관적pessimiste 관점은 아니며, 종말목적론적fataliste 관점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모든 '계기'에서(모든 '단계'에서) 자본주의의 모순들 속에 착근된 하나의 가능성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발리바르, 「비동시대성: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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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인 책 한 권. 슬픔을 정념으로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준 책. 따라서 슬픔에 마주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나의 슬픔 때문에/에도 불구하고 타인들-그/녀들과 만날 수 있어야한다는 점을 알려주는 책. 따라서 마침내 '나'라는 자명하지 않은 주체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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