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판의 미로, 랜드 앤 프리덤, 카탈로니아 찬가

스페인 내전에 관한 세 개의 작품.

최근 개봉한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El Laberinto Del Fauno',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그리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꼭 보라는 친구의 소개(소개만 하지 말고 같이 봐줄 것이지, 쳇 ^^;)에 따라서 보려고 준비하다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작품을 아예 더 살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예전에 읽었고, 지난 홈페이지에 관련 글을 쓰기도 했다. 번번히 볼 기회를 놓쳐서 부끄럽게도 아직 보지 못했던 '랜드 앤 프리덤'은 이번에야 보게 되었다. (eMule 프로그램을 열 몇시간 돌린 끝에 겨우 인터넷에서 다운받았다. 그래도 결국 파일을 다 받았으니 다행.)

 

1936년 스페인 :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영화포스터에 보이는 붉은 깃발에 쓰여진 POUM은 '통일노동자당'의 약호다. 조지 오웰이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자신도 이 당이 주도한 민병대에 참가했다고 밝히는 바로 그 당.

 

영화는 혁명을 지키려는 투쟁과, 그것이 소진되는 과정을 그린다. 파시스트와 전투에서 죽은 동지를 묻는 처음 장례식 장면에서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영원할 것이라는 결의로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당(통일사회당PSUC)의 탄압으로 숨진 동료를 묻을 때, 부르는 'A las Barricadas'(To The Barricades)는 참담하다.

 

영화는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명대사로 가득하다. 아래 몇가지는 꼭 인용하고 싶은 것들.

 

해방된 마을에서 토지를 집단경작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마을에서 혁명을 계속할 것인지, 혹은 적당히 미봉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 한 늙은 농부가 말한다.

 

"혁명은 새끼 밴 암소와 같아서,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암소와 송아지까지 잃게되고, 아이들은 굶게 돼"

자본주의 외국들에게 경계심을 갖게해서는 안된다는 둥 갖가지 핑계로 '온건한' 조치를 요구하는 데 대한 간명한 답변이다. 혁명은 중단하는 순간 후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손녀딸이 낭송하는 윌리엄 모리스의 시(詩).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국제적 연대가 이루어진 투쟁이었지만, 가장 더러운 배신이 망쳐놓은 투쟁이기도 했다. 스탈린주의자들(PSUC)는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민중을 관리하려하고 혁명을 압살했다. 전선에서 부르조아 군대와 같이 계급과 위계제를 다시 도입하고 여성을 밥짓는 일로 축출했다.  도시에서 경찰을 부활시키고 '통제'를 도입하며 노동자의 파업을 금지한다. 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들이 접수한 공공기관을 정부가 '관리'하기 위해서 병력을 투입했다.

 

베르나르라는 의용군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이봐, 민병대는 투쟁의 심장이라구. 스탈린은 우리를 두려워해. 서방세계와의 협정에 싸인하고 싶으니까. 이미 그렇게 했어. 프랑스와 협정을 맺었지. 협정에 싸인하기 위해서는 거부감을 없애고 우호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지. 그런데 우리와 우리의 혁명을 지원하면 신뢰를 잃게 되는 셈이야. 그게 우리가 스탈린을 비난하는 이유야."

 

실제 역사는 진행된 대로. 스탈린은 배신하고 히틀러는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게르니카에서의 학살(피카소).

게르니카

 

주인공격인 데이빗(사실 이 영화에선 모두가 주인공이다)은 PSUC의 입장을 지지하는 영국공산당 당원증을 찢어버리면서 이렇게 편지에 말한다.

"스탈린은 노동 계급을 장기말 처럼 이용할 뿐이야.

팔아 먹고 이용해 먹고 희생시킬 장기말."

 

데이빗은 이렇게 해서 (지금의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 '당없는 공산주의자'(알튀세르)가 되었다. 20세기 마르크스주의 당운동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미리 보여주는 듯한 장면.

 

아이러니한 것은 21세기 지금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한편으로 스탈린을 용인하면서 한편으로 당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주체주의자)들은 어치피 죽어다 깨어나도 스탈린주의자들일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동자 계급의 자발적 투쟁을 관리하려 들고, 협상하려드는 노조관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관료주의를 상징하는 스탈린을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용인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혹은 그렇게 비판하는 주체주의자들(관료주의)이나 노조관료주의와 자신들이 공유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눈감기(맹목) 때문에?

(스탈린주의자들은 곳곳에서 혁명을 질식시켰는데,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르주님의 블로그; "북한 노동자계급은 역사적으로 침묵하는 계급인가?" 를 읽어보자. 아래로부터 대중의 자발적 투쟁을 혐오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이 마드리드의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나, 평양의 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나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영화에 삽입된 노래 중 'A las Barricadas' (가자! 바리케이트로)라는 곡은 폴란드 혁명가인 La Varsovienne (The Song of Warsaw)라는 곡을 스페인 무정부주의자-공산주의자들이 개사해서 부른 노래다.  참세상 겨울잠프로 중 구닥다리노래창고 13회. "우리가 알고 모르는 번안가요들 1"에서도 소개와 함께 들을 수 있다. 김정환의 번안으로 메아리가 부르기도 했다.(새벽인가?) 암튼, 여기 링크를 따라가면 들을 수 있다.

 

가사가 이렇다. (Wikipedia 홈페이지에서 인용, 가사끝에 Confederation은 최대의 노동자조직-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이었던 CNT(전국노동자협회)를 뜻한다고 한다.)

△ '랜드 앤 프리덤'에 삽입된 곡

 

Black storms shake the sky
Black clouds blind us
Although death and pain await us
Against the enemy we must go

 
The most precious good is freedom
And we have to defend it
With courage and faith

 
Raise the revolutionary flag
Moving us forward with unstoppable triumph

(original: carrying the people to emancipation)
Working people march onwards to the battle
We have to smash the reaction (aries)

 
To the Barricades!
To the Barricades!
For the triumph
of the Confederation

 

 

1944년 스페인 :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El Laberinto Del Fauno'.

감독은 비극적인 현실을, 판타지라는 양식을 통해서 예술적인 비극으로 형상화해낸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본 것도 놀라운 경험.

 

영화의 배경은 스페인 내전이 거의 파시스트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 '랜드 앤 프리덤'에서부터 8년 후, 1944년. 역설적이게도 2차대전의 유럽전선에서 나치들은 패망했지만, 프랑코는 승리한다. 얄타협정이 냉전의 국경선을 획정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최종적인 배신.

 

그러나 여전히 민병대는 남아 '반군'이 되어 투쟁한다. 마을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들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잘 훈련된 정예부대'로 대체하고자했던 그 사람들이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 민병대를 살해하고 무장해제하던, 제복을 차려입은 그 '정예부대'는 다 어디에 갔단 말인가?)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 내 블로그의 제목인 '겨울철쭉'은 '녹슬은 해방구'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1953~4년 겨울의 빨치산의 상황일 텐데, 혁명이 후퇴하고, 전투가 패배한 후, 그러나 여전히 투쟁하는 비극적인 상황. 이 영화의 민병대를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비극일 수 있는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체가 자기 스스로에게 떳떳하며, 숭고하기 때문이다.)

 

영화 첫장면, 해설이 끝나고 첫대사.

"대체 저 많은 책을 어쩔 셈이니! 오필리아"

오호! 이건  내가 책을 또 살 때마다 주변에서 나에게 하는 낯익은 잔소리다. 어쩌긴요, 하나하나 가장 소중한데다가, 언젠간 다 읽을 거랍니다. 그 속에서 모험이 시작되죠. 일단 오필리아, 나와 공감.

 

오필리아는 책에 나온 요정 이야기를 믿는다. 그래서 요정을 만나고, 미로 속에서 판Fauno을 만난다.(판Fauno는 마치 POUM같은 어감이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은 책의 이야기도 요정 이야기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어머니조차 그렇다. 산속 반군들은 노동자, 인민이 평등한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책에 나온 것을 보고 믿었는지는 확실치 않더라도, 그들은 산속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반군과 함께하는 하녀 메르세테츠는 유일하게 오필리아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그/녀들과 파시스트들 사이에는 전선이 그어져있다. 여기서 짧지만 빛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 구절을 다시 생각해보자.

 

..오히려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상의 요구들에 부응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들을 도출해내려고 집단적으로 시도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기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에 반대하여 반역하는 것이다.

- 발리바르, '비동시대성: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中


그/녀들은 모두 그것이 이데올로기이든, 판타지이든 자신의 '가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행동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현실에 반역하는 동지들이 된다.

'오필리아'는 '햄릿'에 나오는 이름이기도 하다.(아마 감독이 그 비교를 염두에 두었겠지만 말이다.) '햄릿'을 읽으면서 세익스피어가 오필리아를 너무나 수동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자면)  '햄릿'에서 그녀는 수동적이기 때문에 슬픈 정념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도 오필리아는 슬픈 조건에 처하고, 우리에게 슬픈 감정을 불러오지만 그것은 '햄릿'에서의 오필리아와는 다르다. 오필리아는 이번에는 지극히 능동적이고, 자신의 죽음-희생도 스스로 선택한다. 따라서 그녀의 행동은 단지 슬픈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기쁜 정념'. 판타지와 현실 사이(사실 그 구분이 뭐 필요할까 싶지만)에서 슬프지만 기쁜, 기쁘지만 슬픈. 그래서 오필리아는 한편에서는 죽지만, 지하세계의 공주로 찬란하게 부활한다.

 

그래서 오필리아가 돌아가는 곳은 영화의 처음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어둠의 세계가 아니라 빛의 세계. 지하에서 그곳의 아버지는 말한다.

"일어나거라, 내딸아. 어서 오너라.
너는 다른자의 순결한 피를 희생하지 않고 너 자신의 피를 흘렸구나
그것이 가장 어려운 마지막 과제란다"

이 시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전략)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세상의 미래를 가장 먼저 이룩한다

그렇다 생애는 추락보다 멀고 깊다

그렇다 패배를 죽음에 비유한 것은 옳지 않았다

무엇이 또 다시 일어서는가 그러나

일어서는 것은 씨앗이 아니다 일어서는 것은

이미 이룩된 것이다, 일어서라

이룩된 것이 보다 찬란하게 일어선다"

- 김정환, '에필로그' 『하나의 二人舞와 세 개의 一人舞』(1993)

소련의 몰락으로 한 시대가 최종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생각된) 후 쓰여진 시에서 우리는 유사한 비극적 감성을 느낀다.

 

그녀는 운명 앞에서 자신에게 끝까지 당당하기 때문에 이것은 숭고한 비극이다. 마치, 최종적인 패배를 예상하면서도 투쟁을 계속하는 반군들처럼 말이다.

 

오필리아는 그래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그리스 비극은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숭고한 정신을 형상화한다.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오필리아와 반군들에게도, 그리고 1953년 겨울의 빨치산과 80년 광주도청의 시민군에도 적용될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20세기의 패배 이후에도 투쟁하는 우리들에게도 어쩌면, 언젠가.)

 

오로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만이 죽음의 운명을 통해 도리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죽음보다 더 큰 정신의 크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146쪽)

..여기서 고귀함이란 자기의 탁월함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귀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죽음의 시험 앞에 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80년 광주의 전사들처럼, 삶은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선과 악이 싸우는 싸움터요, 때때로 그 싸움은 우리에게 의로움과 목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를 요구할 만큼 치열할 때가 있습니다. 트로이 성 앞에서 아킬레우스는 생존을 버리고 덕을 선택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운명보다 더 크고 강한 정신의 힘을 보였습니다. 80년 광주도청을 마지막으로 지켰던 사람들도 그랬겠지요.(151쪽)

-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김상봉, 한길사 中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 '랜드 앤 프리덤'과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 둘 모두 그렇다. 현실과 영화 세계의 진정한 비극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