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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소리님의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잔치] 에 관련된 글.
4연맹 통합대회 유회, 이해하기 힘든 통합논의 과정공공-운수 4연맹 통합대회는 어제(26일), 5시반 정도에 시작해서 8시 정도, 두시간 반만에 정족수 부족으로 유회되고 말았습니다.
어제 유회 사태에 대해서, 여러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대의원들이 많이 안오고 일찍갔다'는 식의 일반적인 문제제기는 별로 적당치 않다고 봅니다. 논의하는 과정 자체, 최종적으로 통합을 하자고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파행적이고 졸속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위에 풀소리님이 포스트에 쓴 것과 같이 말이죠.
지난 주말 통합이 무산되었다는 판단 이후에도, 연휴기간인 23,24,25일에도 계속 재논의가 반복되었을 뿐더러 최종적으로 하루를 남기고 심야에 '결국 통합' 결정이 이루어지고 맙니다. 이렇게 며칠을 두고 계속 엎치락 뒤치락하는 과정에서 대중적 공유는 물론 간부들 사이에도 엄청난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조직을 새로 만든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닌데 너무한다 싶었던 과정이었죠.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그랬으니 실제로 논의를 진행하신 동지들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결국, 투쟁을 통해 조직을 건설하지는 못할 망정, 논의라도 제대로 해야하는데 그 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셈입니다. 이러니 상층논의, 일정박기식 조직건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지요. 통합대회에서 질의, 의견을 퍼부은 대의원동지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발언을 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특히나' 이런 상황이었으니 발언을 자제하라는 의장의 발언에 대해서 발끈하는 대의원의 항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조직의 의결단위의 핵심인 대의원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결이 제대로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 공공연맹은 1월10일경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통합방침을 재확인하며, 중집을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여 운영하기로 했습니다.(중집위원회 결정) 아마 민주노총 선거 등의 일정을 고려해서 통합대회는 1월 중하순(17일?)에 다시 열리게 되겠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중적 공유, 토론이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결정과정을 반복한다면 그 결과는 다시 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남은 기간동안 정말로 통합의 의지가 있다면 조직 내 토론에 총력을 다해야겠죠.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데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훈이라도 얻지요.
사실 어제 통합대회 중 어느 조직 대의원의 발언은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운수노조만 만드는 줄 알고 왔는데, 와보니 연맹도 통합해서 만든다고 한다. 그럼 상급단체가 하나 더 늘어나는건데 이래도 되는거냐?" 산별노조를 '또 하나의 상급단체'로 보는 시각도 시각이지만, 최소한 대의원들에게조차 어떤 논의와 합의가 있었는지도 공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조직 내 공유가 안되었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는 점. 그러나 더 문제는 이것이 자기 조직 내에서 충분히 토론하지 못한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말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운수부문의 전략적 중요성 : 구조적 힘암튼, 회의 자체는 그렇다치고,
이런 상황이 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운수-공공을 분리하려는 경향은 신자유주의 정세에서 노동자 운동이 나갈 전망을 보아도 별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런 입장들이 오히려 논쟁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논의 과정에서 '봉합'된 이후에 이런 식으로 뒤에서 치고 들어와서 정상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운수부문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은 실버가
<노동의 힘>에서 언급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운수노조 출범 자료집에서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남한의 물류-운수 산업도 확장되고 있고, 중국의 팽창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물류산업도 크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철도나 동북아 물류중심국가와 같은 구상은 그 일환인 셈이죠.)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생산의 국제적 팽창은 물류 산업이 확장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듭니다. 그러나 또 한편 적기생산방식JIT은 물류가 잠시라도 중단되면 생산 전체가 차질을 빚는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부품, 원자재 재고가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운수 부문 중 특히 화물운송의 경우 전략적 중요성이 있고, 그 때문에 이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구조적 힘'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업종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야말로 '세상을 멈추는'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힘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가.
(남한의 노동조합운동이 대부분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가 보기에는 이러한 구조적 힘을 해당 노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장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주체들의 노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워낙 노동조건이 열악한 상태에서 착취를 받고 있기 때문이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의 문제를 보다 사회적인 문제, 다른 노동자들(예컨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와 연결된 것으로 제시할 때만 보다 넓은 연대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운수노동자들이 이러한 힘을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이제까지 민주노조 운동이 밟아온 한계를 그대로 따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운수에만 갇히지 않는 조직적 전망을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라는 구호는 정당하고, 또 사실이지만, 새상을 멈춰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까지 고민을 함께 하자는 것이죠. ('구조적 힘'이 가지는 한계는 이미 제조업 대공장의 투쟁이 가지는 한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대공장 노동자들은 구조적 힘을 갖고 있고 이것이 많은 성과를 가능하게 했지만, 노동의 불안정화, 자본의 생산에서의 철수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는 그 조차도 지키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크게 늘어나는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울산 지역에서조차 점차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운수부문의 노동자들은 이제 막 크게 일어나고 있지만 마찬가지 한계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연합적 힘에 대한 사고가 더 필요해지는 것이죠.)
신자유주의 하에서 도시 교통의 노동자 : 연합적 힘
화물운송에 비해서 여객운송, 특히 도시교통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문은 도시의 시민들로부터 지지가 필수적이고, 이 과정에서 힘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지역별로 노동이 이루어지고 지자체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의 노동자, 사회운동과의 연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부문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구조적 힘을 가지는 화물운송 분야와는 약간 다른 조건에 처할 텐데, 지역을 중심으로 보다 '연합적 힘'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가 중요하게 됩니다. (버스노조의 여러 지역에서의 투쟁들은 지역연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점에서 버스 뿐 아니라 택시의 경우에도 지역연대를 중심으로 사고해야할 조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운수를 넘어서는 지역연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는 이들 조직이 더 힘을 기울여야할 것입니다.(하지만 택시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는 것같군요.) 이를 위해서는 지역연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슷한 조건에 있는 공공노조 쪽 조직들과도 연대를 강화하고 통합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또한 이런 점에서 거의 업종본부만을 중심적인 편제로 하는 운수노조의 구조는 안타깝습니다.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계획이 --철도나 화물은 전국적인 구획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버스, 택시 쪽에서는--적극적으로 제기되어야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어쩌면 '남의 조직'이지만 전망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같은 조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좀 주제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운수쪽 동지들에게 무례하다면 죄송.) 암튼, 결론적으로는 △ 운동의 전망을 갖는 데 있어서 구조적 힘을 강화하는 데 있어서는 사업장-업종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전사회적인 변혁의 일환으로 구조적 힘을 사용하기 위한 고민이 더 강화되어야한다는 점, △ 운수 안에서도 연합적 힘을 강화해야할 부문이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측면에서는 조직 안팍으로 지역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운수동지들이 당장은 공공부문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을, 이후에는 더 확장된 고민을 더 함께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어제 통합대회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많이 나갔네요.
통합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대중적 논의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한다는 점, 운수부문이 공공과 통합까지 발전을 사고하는 데 있어서 구조적 힘을 더 확장된 요구를 위해서 사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을 중심으로 연합적 힘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아마도 모든 과정이 다시 시작되겠지만, 정말 '제대로'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끄적거려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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