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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9
    나폴리의 가난한 골목길
    겨울철쭉

나폴리의 가난한 골목길

나폴리의 골목길

나폴리는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인기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소매치기 등의 범죄가 많다고 소문이 자자할 뿐 아니라, 정작 나폴리 시내에는 별로 볼 것이 없어서 로마에서 출발해서 나폴리 근처를 여행하는 패키지 투어를 가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폴리에 묵는 여행자들도 나폴리 자체보다는 근처의 카프리 섬이나 소렌토, 폼페이 유적을 가려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다.

카프리섬이나 소렌토 같은 이탈리아 중남부 해안은 멋지다. 카프리섬은 하얀 햇빛이 더 하얀 절벽과 푸른 바다에 부딪혀 공기 중에 흩어진다. 햇빛이 공기중에 가루처럼 부숴진다는 표현이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그곳에서 알았다.



카프리 섬에 유명한 “푸른 동굴”은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햇빛이 하얀 석회암 바닥에 반사되면서 어디서도 보기 힘든 투명한 파랑색을 만들어낸다. 굳이 “푸른 동굴”이 아니라도 지중해의 바다는 빨려들어갈만큼 투명하다. 깍아지른 절벽에 하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포지타노 마을의 해변은 어디를 찍어도 그림같다. 이런 곳들에 오면 사람이 ‘비현실적’인 모든 것들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느낌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곳을 넘어서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놀라면서 다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폴리 자체는 그리 인기있는 관광지는 아니다. ‘세계3대 미항’이라는 건 뱃사람들이 편한 항구를 말하는 것일뿐, 여행자에게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폴리 곳곳은 지저분하고 혼잡한데, 그것은 이곳이 이탈리아의 “남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식실업률이 25%대에 이르고, 체감 실업률은 50%라는 도시.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유명한 이탈리아 노래도, 가난 때문에 나폴리와 인근 소렌토 항에서 배를 타고 이민해야했던 남부 사람들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니, 아름다운 소렌토 항구도 낭만만 있는 곳은 아닌 셈이다.

숙소 밖에서는 매일 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거리에는 흑인 노점상들을 어디든 볼 수 있는데, 어떤 날은 폭력배에게 자릿세를 내지않은 듯한 흑인 여성이 물건을 ‘압수’당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옆에 있는 흑인 상인들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이 도시의 뒷골목은 마치 우리나라의 달동네 모습같다. 이제는 대부분 철거되고 재개발되었거나 예정된 그곳들. 5층 정도 되는 다가구 주택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빨래가 가득 널려있다. 아이들이 뛰논다. 어느 모퉁이에서는 위층에서 버리는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이 사는 골목길을 만나면서 마음이 찡하다.

이곳 골목길은 언덕 위까지 쭉 이어져있다. 하지만 언덕 전체가 달동네는 아닌데,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좋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망이 좋은 그곳은 아예 순환도로로 분리된 별도의 구역을 형성한다. 좋은 집들이 있는 고지대에는 지하철도 잘 되어있고 거리도 깨끗하다.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도 많다.

가난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낮은 곳에 사는 도시. 그 뒷골목은 여행에서 만난 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 중에 하나다. 그곳은 단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라, 힘겨운 삶의 공간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이곳에서, 어느 여행지도 단지 ‘관광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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