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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2일; 하루의 절망과 희망.

12월22일, 금요일.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 다시 한번 절망과  어떤 희망.

 

09:30

 

은행연합회관 앞에서는 대우센터빌딩 비정규직노동자 동지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건물 안에서 원청인 대우건설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정식으로 인수하고 사장을 선임하는 이사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모인 연대단체들과 조합원들은 대우건설을 규탄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강력한 경고를 전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말 그대로 '자본가'들의 집단인 은행연합회 앞에서, 정말 가진 것 하나없는(이젠 심지어 일자리조차 빼앗긴) 노동자들의 외침이란!

 

 

11:00

 

다시 대우센터빌딩 앞으로 이동, 연대집회를 진행했다. 대우센터빌딩 투쟁의 중요한 특징이라면, 집회를 매회 할 때마다 연대대오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고, 매번 늘어나고 있다. 함께하는 조직도, 사람들도 말이다. 그래서 조합원동지들은 이 투쟁이 승리한다면 그건 연대의 힘 덕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쓴 것처럼, 도시에서 서비스부문에 종사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이 가진 것은 '연합적 힘' 뿐이다.

 

 

건너편 서울역 광장에서는 서울지하철노조의 집회가 같은 시간에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지하철노조 집행부는 현장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고 주5일제를 도입하는 요구안을 갖고 서울의 노사정기구인 '서울모델'의 사적 조정을 받았다가, 이 마저 서울시가 거부하자 파업을 경고하는 이상한 '투쟁' 중을 진행하는 중이다. 여튼, 지하철노조 집회에 들렸던 박준 동지가 (아마 우리는 섭외도 하지 않았던 것같은데도) 곧바로 달려와서 공연을 해주었다. 이 공연을 하곤 기륭투쟁으로 달려가신다. 정말 힘나고 고마운 공연.

 

이번 집회는 특히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 동지들이 전국공공서비스노조(공공산별노조) 가입처리 된 이후에 열리는 것으로, 산별노조 황민호 위원장도 참석하는 등 더 힘이 났다. 많이 늦었지만, 공식적인 지원과 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투쟁에서는 오랜만에 몸싸움이 없었다. 진입투쟁을 보류했기 때문인데, 사측이 다음주 26일 교섭을 하자고 요청했기 때문에 이번엔 넘어가기로 했다. 방금전에 열린 이사회에도 진입투쟁을 하려는 계획도 있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보류했다. (그런데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읽어보시면 밑에 나온다.) 대신, 연대온 동지들의 염원을 모아서 풍선을 매다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15:00

 

여의도 민주노총 집회. 수도권 간부 집중집회였다. 노사관계로드맵이 통과되는 날.

민주노총 집회는 예정시간보다 늦은 15:25분이나 되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6:10에 국회모형을 불태우는 상징의식으로 마쳤다. 시종일관 맥빠진 집회. 전날 투본대표자회의에서는 이미 끝난 판이니 마무리 정리집회 의미로 진행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들었다. 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로드맵은 국회 안에서 평화롭게 처리되었다.

참세상 기사 : 노사관계로드맵, 국회 본회의 통과

 

어이 없게도 집회를 진행한 40여분은 로드맵이 상정된 시간과 통과된 시간 사이에 정확하게 일치한다. 집회 사회자는 로드맵이 상정되었는지, 통과되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집회는 그렇게 끝났다. 해산하려가다 뒤늦게 처리 소식을 들은 도대체 이게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말, 아무리 투쟁을 정리한다고 해도, 이렇게 할 수가 있는가, 그럼 아예아예 집회조차 하지 말든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민주노총의 2006년 하반기 투쟁, 노동자의 명운을 건 투쟁이라던 이 투쟁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률과 노동권을 제약하는 법률을 나란히 통과시키고 바람빠진 풍선처럼 이렇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마 내년 민주노총 선거에서 이 투쟁에 대한 평가가 주요한 쟁점이 되겠지만, 과연 그러한 평가-논쟁의 진정성을 대중들이 믿어줄 것인가조차 의문이다.

 

 

16:30

 

공공연맹과 화물, 택시, 버스 등 공공-운수 4연맹 통합논의 진행상황을 들었다.

26일 통합 대의원대회를 예정한 상태에서,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택시연맹은 기존의 (통합준비위에서 진행된) 모든 합의를 뒤짚는 입장을 제출하여 논란이 거듭되고 있었다. '공공운수연맹'이 아니라 '운수공공연맹'으로 해야한다부터 시작해서, 공공연맹 수준의 의무금은 많으니 의무금을 인하하자, 그래서 재정이 부족하면 상근자 임금 수준을 삭감하자, 내년까지 함께 추진하기로 대표자회의에서 합의했던 '공공산별', '운수산별' 통합 합의는 없던 걸로 하자는 등  읽을 수록 눈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들.

 

그런데 이날 10시부터 다시 진행된 통준위 논의에서는 26일 통합은 확정하되 내용은 계속 논의한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통합 3일전까지(그 3일은 모두 크리스마스 연휴이다) 날짜를 박고 내용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통합될 조직의 명칭까지도 없는데 말이다. '날짜박기식' 통합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이번엔 정말 너무들 했다. 통합 방식, 내용에 대한 대중적 논의, 공유는 고사하고라도 간부들, 심지어 통합되는 조직인 연맹 간부들도 거의 알지 못하는 내용이 '묻지마' 상태에서 진행되는 상황.

 

대중조직의 통합이라는 것이 최소한의 대중에 대한 책임마저 방기하고 마치 정치공학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무기력해진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만나는 간부들, 조합원들에게 26일 대의원대회에 무어라고 말하고 오라고 조직해야하나?

(이 글을 쓰는 중간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4연맹 통합이 무산되어 연맹 임시대대를 개최한다는 내용. 예정했던 날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최종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다니..)

 

 

19:00

 

긴급하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대우:긴급] 용역깡패천막농성장침탈/7시30분 긴급규탄집회/연대부탁드립니다.

이런, 젠장!

 

급하게 달려간 대우센터빌딩 앞에는 아직 현장에 남아있는 용역깡패들과 함께 완전히 박살난 천막농성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막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천막을 박살냈다. 나중에 들으니, 이 과정에서 구권서 위원장은 몸에 휘발유를 끼엊고 불을 그으려고해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긴급하게 말렸지만 정말 큰 일 날뻔 했다. 몇몇 조합원들은 찰과상을 입는 등 다쳤다.

 

금요일 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특히 당장 달려온 학생동지들 무척 고맙다. 조합원 동지들, 특히 아주머님들은 분이 풀리지 않아 용역들과 몸싸움을 하고, 항의하고, 계란을 던지시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측이 교섭을 하자고 해서 별다른 몸싸움도 없이 오전에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불과 몇시간도 지나지 않아 폭력침탈이라니! 저 자본가놈들에게 양심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파렴치한 것들이다.

 

연대집회를 진행하면서 곧바로 다시 새 천막을 설치했다.

 

천막농성장을 용역깡패들이 철거하고 두 시간만에, 조합원들과 연대대오는 천막을 다시 완전하게 복구했다. 이런게 연대의 힘이다. 이런 게 희망이다.

 

농성장을 다시 설치하고 구권서 위원장은 발언을 통해서 사과하고, 살아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투쟁하자고 결의를 밝힌다. 하지만, 구권서 위원장님, 사과하실 건 전혀 없어요. 무척 위험했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 자리의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답니다.

 

(구권서 위원장은 노동운동판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훌륭한 활동가다. (나는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존경할만한 노동운동 활동가를 아직까지 구권서 위원장을 포함해서 너냇명밖에 만나지 못했다.) 매번 집회가 끝난 후에 구권서 위원장은 학생들까지 연대단위를 모두 모아서 현재의 정황과 투쟁의 맥락, 이후 방향 등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한다. 연대단위가 모인 공대위 회의에서도 '지원'요구가 아니라 투쟁을 함께 논의한다. 물론, 노조 안에서도 조합원 동지들과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투쟁에 연대하는 단위들도 그냥 몸만 대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의미를 공유하는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은 배려다. 나는 많은 사업장을 가보았지만 이렇게 연대단위들에게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함께 논의하는 투쟁현장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이런 자세가 있기 때문에 연대의 힘이 모이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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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몇몇 간부들과 소주 한 잔을 하고,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이렇게 저들에게 속고 얻어맞고 다쳐도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이런 연대의 힘이 있기 때문에 곧 승리할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확신했다. 

집에 도착해서 메일 하나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22일 하루, 맥빠진 민주노총의 국회 앞 마무리, 원칙이 사라진 조직통합 논의, 사측의 기만과 용역깡패의 탄압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연대의 힘을 확인했고, 그 연대의 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할 것이라는 걸 서로 확인하면서 마무리했다. 절망들이 판을 치지만, 작지만 가장 강력한 어떤 희망들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운동이 어디에서 취약하고 어디에서 강력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새로 복구한 천막 농성장은 원래 자리에서 좀 떨어져서 남대문서 방향에 설치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연휴이지만 조합원은 상주한다. 지나시는 분들은 음료수라고 하나 사들고 잠시라도 연대방문을 해보시는 것은 어떻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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