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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5
    [영화] 기담(1)
    겨울철쭉

[영화] 기담

오랜만에 공포영화를 봤다, 기담.
(스포일러 조금 있음)
이런저런 평처럼 "잘 만든" 공포영화다.
서로 연결되는 세개의 에피소드가 액자구조 속에 있다. 액자의 밖은 1979년 유신 말기, 액자의 안은 1942년 일제 말기 경성. 억압적인 시대--따라서 그 자체가 공포들인--들이 절정에 있고 끝나가는 시기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싶었나보다.

영상도 좋다. 알려진 것처럼 일본식 건물과 복식들이 아름답고도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외국에서도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남한 사람들에게는 일본전통양식은 뭔가 알수 없지만 존재했던 공간,아직 봉건적--따라서 前-이성적--이고도 근대적--따라서 이성적--인 것들의 불안정한 공존을 상징하는 것같다.

그것은 민족의 존재이자 부재, 과학의 부재이자 존재를 드러낸다.(이 영화는 병원이라는 근대적인 '과학'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괴담.) 역시 잘만든 공포영화로 기억되는 '장화홍련'의 배경도 일본식 건물이었던 기억이 있다.

중간중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공포효과'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플롯 자체는 그다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세개의 에피소드들에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역설적이게도 논리적--따라서 이성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여기서 '과학적'인 것이라면 정신분석이거나, 심리학적인. 다만 심리학을 과학이라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은 무의식의 어떤 불안을 건드리면서도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이 영화는 그에 비하면 너무 친절하다. (그래서 정신분석을 잘 아는 누가 꼼꼼하게 분석을 해주면 재미있을 것같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여러가지 정신적인 현상들을 소재로 가져온다. 시체성애 necrophilia, 엘렉트라 컴플렉스, 다중인격장애 같은 것들. 이것들은 모두 죽은자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다른 포스터에는 "사랑에 홀린자, 여기 모이다"라는 카피를 쓰는데, 내용들은 모두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응시한다. 사랑하는 대상들은(그것이 이미 죽어있든 사랑하다가 죽었든) 살아있는 주체에게는 여전히 죽지않고 살아서 함께 한다. 그것은 마치 모든 타자에 대한 사랑은 타자 자신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타자(의 욕망)이라고 상상되는 내 안의 가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같다. 사랑하는 자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유령이다. 뭐, 사실 모든 사랑의 진실이 거기에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것을 통해서 망각하고 대상의 부재를 상징화해야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것들에 실패하고 죽은 자들은 따라서 죽지 않는다. 특히 이런 점에서 세번째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애도작업이 수행되지 못하고 자아의 일부가 상실된 대상과 동일화 된다. 따라서 주체 안에서 죽지않고 공존하게 된다. (영화의 무대는 안생(安生)병원이라는 가상의 병원이다. 이름이 흥미롭다. 내가 보기엔 안(安)은 오히려 '아니-'라는 의미의 부정어로 보인다. 따라서 un-live라고 할 만한데,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un-dead.. 따라서 죽어도 죽지 않은,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좀비같은 존재다.) 이 영화의 공포효과는 이 부분, 죽었지만 죽지않은, 그리고 그 죽지않은 부분은(사실은 살아있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당신들 안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앞서서 이야기했지만, 잘 만든 영화이지만 그렇게 대단히 공포스럽지는 않다.(이것은 욕이 아니다.) 모두 설명가능하고 공포스러운 장면들 또한 모두 상징들로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섭다기 보다는 지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영화.(흠.. 깜짝 놀라고 무섭기도 장면들도 많다. 감독이 만든 영상-음향 효과는 뛰어나다.)

공포영화들이 최근에는 가족(장화홍련, 4인용식탁)이나 학교(여고괴담)를 다루어온 것은 그것이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주체들을 무의식에서 억압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제도적인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이라... 사랑도 그것이 공포의 대상이 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과잉되어 자기파괴적이기까지 한 주이상스로 나타날 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인영'(이자 동시에 그녀의 남편인 '동원'이기도 한)이 마지막으로 남성 인턴을 살해하려는 장면은 마치 여성상위체위에서 성교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장면에서 인영은 사실은 그녀의 사랑의 대상인 '동원'이 부재하는 대상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나비(퓌지스psyche-영혼)모양의 비녀로 가슴을 찌르고 자살한다.

그리고 인영의 마지막 대사, "쓸쓸하구나.."
실재계에 갑자기 마주할 때, 그런 느낌이다.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쓸쓸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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