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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전염병의 세계사 (Plagues and Peoples)


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인간에게 기생하는 두 가지 기생체, 감염성 질병을 유발하는 미시기생체(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와 거시기생체들(군대, 국가권력 등) 각각의 동학과 서로의 관계라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책이다. 저자인 윌리엄 맥닐은 <전쟁의 세계사>라는 책을 통해서, 군대체계, 무기 등으로 구성되는 군사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바 있다.


(<전쟁의 세계사>에 대한 소개는 '월간 사회운동'에 류주형이 이미 쓴 글을보면 될 것같다. 한편, 백승욱 선생은 <역사적 자본주의 강의>에서 아리기가 군사력의 발전과 자본주의라는 측면에서 맥닐을 참고한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연관되어 있는 셈인데, 과천연구실 세미나26권인 <보건의료: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에서도 맥닐의 이 책을 인용한다. 이러한 역사적 질병 분석이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 지는 궁금한 주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감염성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다는 점과, 미시 기생체, 거시 기생체라는 개념을 통해서 감염성 질병과 정치의 관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거시 기생체'라는 개념은 정치-군사권력이 인류에게 또 하나의 '기생체'라는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지주, 국가 등의 거시기생도 인간들에게는 미시기생체와 마찬가지로 물질 순환에 개입하여 에너지를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대사할 수 있는 물질이 제한되어 있다면, 따라서 거시기생과 미시기생이 '착취''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제한되어 있다면 이 둘의 관계는 하나가 우세하면 다른 하나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시 기생체는 자연환경에 따라 훨씬 빨리 적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 미시기생이 우세하다.
 
예를 들어 고온 다습한 환경으로 전염성 질병이 발생하기 쉬운 아프리카 중부에서는 대규모 거시기생의 발달이 제한되었다. 거시기생이 발전하는 경우에도, 전염성 질병이 적은 냉대, 온대 지방과 아열대 지방에서는 문명의 양상에 차이가 발생한다. (적어도 중국인들이 양쯔강 유역으로 진출하는데 500~600년의 시간이 걸린 것과 같이 시간적 지연이 발생한다. 춤고 건조한 북부에서 이주한 농민들이 얕은 물에서 감염되는 기생충과 질병 때문에 너무 빨리 죽었던 것이다.)
 


저자는 다소 대담하게(스스로도 대담하고, 혹은 거의 근거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문명의 특성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도입한다. 예를 들어 미시기생이 더 우세한 인도에서 대중에게 끊임없는 질병과 갑작스런 죽음은 불교와 같은 허무주의적 종교를 낳았으며, 거시기생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수준이었던 중국에서는 권력에 대한 통제가 중심이 되는 유교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정말 믿거나 말거나 일 수도 있지만, 인도에서 카스트 제도의 발전과 같은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고온다습한 환경은 북쪽에서 침략한 아리안족 지배자가 이 지역 토착민인 피지배자에게 접근할 경우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이 것이 엄격한 분리('불가촉')를 촉진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북쪽에서온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려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토착민은 그 지역의 풍토병에 이미 적응하여 항체를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고온다습한 환경에 있는 토착민이라면 더 많은 질병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온 거시 기생체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질병은 다른 지역에서온 침략자들에게 하나의 장벽이 되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경우가 극적으로 존재하는데, 아메리카가 이러한 경우다. '고립된 거대한 섬'과 같던 아메리카는 유라시아 대륙의 질병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수천년 동안의 질병의 교환을 통해서 많은 전염병 사망을 겪으면서 많은 질병과 안정적인 미시기생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문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 따라서 스페인 군대가 침략했을 때, 정작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숨지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겨우 10%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명의 유지란 불가능하고, 자신들을 더 이상 지켜죽길 포기한 것같은 자신들의 종교와 신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이자 기독교를 그렇게 빨리 받아들인 이유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아메리카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유라시아에서도 이런 일은 부분적으로 계속되었다.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로마제국의 몰락, 동로마제국이 몰락에는 페스트의 창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량의 사망으로 인해 제국의 행정적 기반이 붕괴한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몽골 지배 하에 인구가 1/2수준까지 격감하는 대량 사망이 발생하는 데, 페스트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은 역시 몽골의 지배가 유지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된다. 근대에도 동유럽에서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유라시아는 많은 감염성 질병을 교환해가고 항체를 보유할 수 있었다.

감염성 질병의 교환은 몽골의 침략과 같은 군사적 행동에 의해서나 실크로드, 근대무역의 발전과 같은 상업행위 등에 의해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몽골제국은 원난-버마원정을 통해 오지에 갇혔던 페스트를 스텝지역으로 확산시켰으며, 페스트가 확산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교역의 확대는 페스트를 전지역으로 확산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과 관계된 몽골의 몰락은 또한 이 질병과 관계된 유럽 중세의 몰락과 근대세계체계의 형성을 촉진하는 등 역사적 효과를 창출했다.) 많은 경우 전혀 새로운 질병의 출현은 해당 문명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는데, 중세말기 페스트의 창궐은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있다.

책은 우리의 상식을 허무는 사실들을 많이 제시한다. 대표적인 질문. 세계 인류는 점전적으로라도 증가해왔는가? 천만에, 앞서 중국의 인구가 1/2까지 줄어든 경우가 있다고 한 것처럼, 1/3~1/2의 인구가 전염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문명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AIDS가 원숭이로부터 전이된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같은 것은 어쩌면 우리의 '상식'에는 어긋나지만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매독이 아메리카에서 유입되었다는 것도 부적절한 상식인데, 이전부터 유라시아에 존재하고 피부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 점막을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전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

이러한 감염성 질병의 확대는 근대 보건의료체제의 정비와 함께 많은 부분 축소되었다. 예를 들어 크림 전쟁 당시에, 전투에서 죽은 영국군보다 이질로 사망한 영국군이 10배는 될 정도였다. 군대에서 시작된 집단적 방역은 체계적인 의료행정이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감염성 질병이 전적으로 소멸될 수는 없다.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사라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생체와 숙주는 공진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에게 적합한 형태로 함께 진화하는 이상 감염성 질병의 완전한 박멸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인간은 동물과, 특히 가축과 미시기생체를 공유하고, 새로운 질병이 끊임없이 유입된다. 최근 조류독감AI, 구제역 파동과 같은 것은 이러한 역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새로운 질병들은 유전공학의 위험한 실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여기서 감염성 질병의 새로운 양상도 자본주의의 발전과 관계된다. (<나쁜과학>에 대한 독서일기 참고)

따라서 이들 감염성 질병을 완전박멸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진화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마치 홍역과 같은 질병이 치명적인 사망 원인에서 소아병으로 전환되고, 인간도 홍역균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많은 질병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적응하거나 아니면 현재는 존재하지 않게되었다. 숙주인 사람에게도 덜 치명적이고 기생생물에게도 더 안전한 관계가 형성되어온 것이다.

과거의 현재의 질병은 그만큼 다르며 인류가 문명을 건설한 후 문명화된 질병들은 불과 수천년 동안에도 진화를 거듭해왔다. (숙주가 너무 빨리 사망하면 기생체도 존재할 수 없다. 페스트와 같은 질병이 한번의 큰 유행 후에 오랜 동안 자취를 감추는 것은 이러한 이유인데, 이는 기생체에게도 별로 유익하지 못한 방식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비감염성 질병이 확산된다는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노동강도 증가, 유해물질의 증가는 다양한 산업적 질병과 암과 같은 비감염성 질병을 확산시킨다. 이러한 질병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가 필수적이다.(다양한 정신질환도 포함될 것이다.) 게다가 저자가 책을 쓴 이후에 우리는 프리온 단백질로 인한 질병을 만나게 되었다.(광우병) 프리온 단백질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생명체가 아니며, 파괴되지 않는 유해한 단백질로서, 일종의 오염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생명활동 속에서 배태되었고 훨씬 치명적이다. 이러한 질병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특히 이러한 질병이 출현하는 새로운 조건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미시 기생체의 활동이 주요문명의 운명을 좌우할만큼 중요한 정세적 계기들이었다면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역사가들은 '질병의 세계사'에는 관심을 많이 갖지 않는데, 그것은 인간이 거의 통제-인식불가능했으며, 따라서 역사 속에서 순수한 우연적인 요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거가 부실한 부분이 많고 추론이 과도하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여주는 것처럼 질병의 동학은 역사적 요인들과 분명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이는 인과관계이기는 하지만, 단지 기계적 인과관계일지 구조적 인과관계일지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각각의 층위에 어느 정도씩 편재할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더 명확한 관계로 인식하고, 역사적 질병학(?)을 구성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미시기생체의 역사는 자본주의 하에서 보건의료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현재의 문제로 다시 인식할 수 있다. 아래의 책이 도움이 된다.


보건의료 : 사회 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비센트 나바로 외 지음 /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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